• 최종편집 2024-05-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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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를 맞이하며 남북관계 개선의 희망을 기대했었다. 지난 1월 6일 북한의 수소탄실험은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 또한 큰 법이다. 남과 북의 관계는 한 치를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 질서 전략에 한,미,일 동맹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가운데 생각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통해 어순선한 가운데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즉각적으로 휴전선에서 대북선전방송을 재개했다. 북한 역시 대남 삐라를 뿌리고 여기에 대응하고 있다. 이미 지난 목함 지뢰에서 보았듯이 휴전선에서 심리전이나 자극적인 행동은 어떤 상황으로 위기가 전개될지 모른다. 전쟁 직전까지 가다가 가까스로 협상을 통해 불을 끄게 되었다.
왜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진정한 프로쎄스가 없을까? 항상 반복되는 위기와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작년에 분단 70년을 한반도에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성서적으로 하면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70년 동안 철저한 신학적인 반성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세웠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민족문제에 철저하지 못했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의 선택이 아닌 강대국들의 결정과 강요에 의해 그어진 분단체제에 대한 깊은 신학적인 성찰을 하지 못했다. 분단 70년에 거의 전쟁 직전까지 위기가 고조되고 있음에도 무감각하게 흘려보내고 말았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 둘 다 포함하고 있다.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면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하면 위기는 더욱 가중되는 법이다.
지금 우리는 분단 70년을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분단체제에 대한 철저한 신학적인 성찰이 없이 지금 위기 한 가운데 놓여 있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북한의 핵문제가 불거지면서 감정적인 대응밖에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것을 빌미로 미국의 B52 폭격기와 핵 잠수함등을 한반도에 파견하면서 한반도 상황은 매우 엄중한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왜 북한은 새해 벽두부터 이런 무리한 강수를 두었을까? 우리는 우리 입장에서가 아니라 저들이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핵실험을 통해 그들이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를 살필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움에 처해 있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목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위 강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1955년부터 3대 자립을 시도해왔다. 사상에 대해서는 주체사상으로 확립됐다고 보고 있고, 선군정치에부터 시작해서 현재 경제, 핵 무력병진노선을 채택함으로 국방에서 강국을 이루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남은 한 가지가 경제문제이다. 왜 북한이 경제건설과 핵 병진노선을 주장하고 나섰을까? 이번 4차 핵실험에서 보듯이 핵실험이후에 대북제제는 강화되고 고립의 길을 걸어 갈 수밖에 없는데 왜 그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핵 억지력을 통해 국방비를 걱정하지 않고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집중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북제제에 맞서 내부 결집과 경제에 매진하여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내부 인프라나 경제적인 능력을 볼 때 독자적으로 경제건설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는데는 한계가 있다. 북한은 우리나라의 도움이 없이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기가 매우 힘들다. 북한이 계속해서 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북한은 무리수를 두면서 체제유지를 위해 강경한 입장을 택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여기에 그들의 딜레마가 있다.
북한의 가장 큰 관심은 체제유지에 있다. 체제유지를 위해 관계개선을 희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과도 관계개선을 통해 자신들의 체제보장을 받고 싶어 한다.
왜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나? 그것은 동북아 지형의 국제정세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국가들이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오히려 한반도 정세의 적당한 긴장을 원하고 그 긴장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동북아 전략에  이용하고 있다.
북한이 계속해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자고 주장하면서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도 이런 긴장상태를 돌파해 자신들의 체제를 확고히 하고자하는 전략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단순히 우리 자신들만의 결정으로 한반도 문제가 결정되는 범위를 넘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들이 있다.
남과 북의 갈등이 고조되고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적당한 갈등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과 패권을 유지하려는 상황에서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교회는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 성서는 철저하게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교회가 갈등상황을 만들어내고 오히려 부추기다면 그것은 진정한 교회일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를 기초로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먼저 교회는 주님의 정신에 철저해야 한다.
주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교회는 자리는 바로 그 자리여야 한다. 교회가 십자가의 자리를 회피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도 아니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될 수 없다.
남, 북한이나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들은 한반도상황에서 서로의 이익을 생각하며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해서는 않된다. 교회는 언제나 사랑과,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반도의 상황에 감정으로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고 그 물음이 기도가 되게 해야 한다.
반드시 질문은 답을 가져온다. 바른 질문은 바른 답을 가져온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대답이 없다. 지금 한국교회는 분단체제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분단 70년을 넘긴 오늘, 우리가 처한 분단체제가 옳은 것인가?  진정 하나님이 원하는 것일까? 교회가 여기에 침묵을 지킨다면 하나님도 여기에 침묵을 지키실 것이다. 분단의 땅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여기에 우리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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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한반도 평화·통일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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