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는 예수처럼 살려고 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쳤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은 대부분 예수처럼 십자가를 지고 순교했고, 예수께서 생명을 바쳐 섬겼던 것처럼 교회는 자신들의 모든 소유를 다 바쳐서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며 제자의 길을 갔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제자들의 공동체는 그래서 ‘예수의 교회’였다. 초대교회의 헌신과 나눔 그리고 섬김의 실천이 교회를 ‘예수의 교회’되게 만들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어떻게 예수의 삶을 살고 있고,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가?
한국교회의 섬김과 나눔의 실천은 참으로 미약하다. 한국교회의 사회봉사비 지출은 대략 5%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고서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많은 교회들이 교회 건물을 크고 아름답게 건축하는 일, 그리고 각종 내부 시설을 화려하게 리모델링하는데 엄청난 헌금을 사용하는데 비해 이웃을 섬기기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데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이제 다시 본래적인 모습을 회복하여 어려운 이웃을 봉사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사회봉사는 교회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 과제가 아니고 교회의 사명이다. 우리는 교회의 사회봉사를 선교론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보다 교회론적인 측면에서 교회의 본질적인 과제가 바로 사회봉사라고 하는 신학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던 일이고 또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가 했던 일로 이는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는 교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교회 일각에서는 교회가 사회봉사 기관이 아닌데 사회봉사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교회의 본래적 사명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교회는 본질적으로 사회봉사의 사명을 갖고 있다. 이미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초대교회가 이를 잘 보여주었다. 또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이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오히려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사회봉사(diakonia)라는 교회의 본질적 과제에 충실하지 못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
대부분의 교회가 자신의 가르침과는 달리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고 자기 몸 불리기에 정신이 없는 현실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신 예수님의 제일 큰 가르침을 외면하고 살면서도 교회만 나오면 무조건 구원받은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사회봉사를 교회의 기본적 과제로 인식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회봉사만이 교회의 과제는 아니다. 그러나, 균형 잡힌 교회가 필요하다. 선교, 봉사, 친교, 교육 등 모든 교회의 본질적인 과제에 충실한 교회가 균형 잡힌 교회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가장 빈약한 부분이 바로 사회봉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교회의 사회복지선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교회의 반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교회 내에서 사회복지 선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사회를 위해 다가가는 방법으로 사회복지 선교라는 접근을 하는 것이다. 아직은 사회복지 선교에 대한 명확한 개념규정이 되어 있지 않지만 교회의 사회봉사가 선교적 목적을 갖고 수행될 때 이를 사회복지선교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사회봉사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갖게 될 때 순수성을 잃어버린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교회의 사회봉사가 일차적으로는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는 목적을 갖고 수행되지만 부수적으로 선교적 효과가 나타나게 될 때 이를 교회가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사회봉사를 선교의 도구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회가 사회봉사에 뛰어들게 될 때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재정이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은 돈이 없어서 사회봉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돈만으로 사회봉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물질적인 자원 말고도 대단히 중요한 인적자원과 조직적 자원 등 사회복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중요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이 바로 교회의 사회복지 시설 수탁을 통한 선교의 가능성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재정은 정부의 지원이나 사회의 지원에 의존하고 교회는 잘 훈련되고 헌신적인 풍부한 인적 자원과 체계화되어 있는 조직체계를 사회봉사에 기꺼이 내놓게 된다면 그것으로 사회봉사에 크게 참여하는 것이 된다. 물론 교회가 물적자원인 돈까지 내놓는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은 사람이 한다. 그런데 일하기 위해 사람을 찾으면 사람이 없다. 우리 교회에 많은 사회복지 일꾼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지 않다. 한마디로 우리가 사람을 키우는 일에 소홀했다. 사람이 없다는 말은 종사자가 적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신앙정신에 투철한 사회복지 일꾼 곧 자신을 희생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울 열정과 믿음을 가진 실천가를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사회복지를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넘쳐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몸을 던져 지역사회와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실천가는 매우 적다.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 교회가 키워내야 한다. 아직 우리 교회는 헌신된 일꾼을 길러낼 교육체계를 갖지 못하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전문성을 갖춘 교육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 디아코니아가 활성화 되어 있는 독일교회는 교회 안에 수많은 복지 일꾼들이 있다. 우리도 그러한 인력풀을 만드는 일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교회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교회가 사랑의 눈으로 이웃과 지역사회를 바라보면 수없이 많은 할 일이 보인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이웃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말이다. 문제가 있는 곳에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문제 어려운 이웃의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않고 우리 문제로 끌어안으면 할 일은 수없이 많이 보인다.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노인문제, 청년들의 실업과 일자리문제, 청소년들의 일탈행동과 보호문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문제, 해체되는 가정들의 문제, 장애인들의 사회적응과 자활 그리고 보호체계 문제, 빈곤가정과 다문화 가정들의 문제, 탈북동포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보호 문제 등 수없이 많은 사회적 과제들을 교회가 외면하지 말고 애정을 갖고 접근해 가야 한다.
교회가 사회봉사를 할 재원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교회가 가진 재원을 우선순위를 바로 정해서 쓴다면 지금 우리가 가진 것으로도 많은 사회봉사를 할 수 있다. 또 일을 하다가 보면 수없이 많은 자원들이 연결될 수 있다. 사실은 돈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사회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이 문제이다.
현재 교회의 위상이 한없이 추락해가는 오늘 우리 사회 안에서 섬김과 봉사로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 어려운 이웃들과 지역사회 안에서 실천함으로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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