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1.jpg
 성령을 받으라
셋째로 성령의 감동은 성령님에 의하여 완전히 붙잡혀 있는 상태를 말한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본 환상을 말하면서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계 1:10),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계 4:2)라고 했다.  여기에 나오는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는 ‘성령 안에서 (어떻게) 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받기 위해서는, 첫째로 성령 안에 있으면서 성령님의 영향하에 있어야 하고, 둘째로 성령에 의하여 움직여져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고, 셋째로 성령에 붙잡혀져 있어야 한다.

루터의 신학과 영성 : 십자가 신학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모든 현상적인 것들의 본질을 회복하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율법이 복음으로 바뀌었고, 제사가 예배로 바뀌었고,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상보다는 본질이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현대교회 성도들이 영성훈련을 통하여 추구해야 할 내용은 외형적인 현상인 세상적인 축복을 받고, 대형교회를 이루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닮아가서 거룩함을 이루는 본질적인 성화를 추구해야 한다. 성도들의 행복한 삶은 세상적인 축복보다 본질적인 영적인 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만성절을 기하여, 로마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에 대하여 라틴어로 쓴 ‘95개조 항의문’을 비텐베르그 성 교회문에 게시함으로 시작되었다.
루터가 ‘나는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개인적인 구원 문제로부터 얻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칭의 교리는 신앙의 기본적이고 주된 조항으로서 기독교 교리의 요약이고, 또 종교개혁은 기독교 회복의 기초가 된다. 이것은 은총에 의한 신앙을 통한 득의(得義)라고 요약된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을 루터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라고 불렀다. 부분적으로 의인이고, 부분적으로 죄인인 것이 아니라, 완전한 죄인이고 완전한 의인인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다루는 놀라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 특성은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칭의 신학은 루터 신학의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십자가 신학으로 가는 길이 된다. 그것은 이신칭의(以信稱義)가 이루어지는 기초가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에 있기 때문이다.
루터는 1518년 하이델베르그 논쟁에서 진정한 신학의 본질을 십자가의 신학으로 서술하고, 그 반대는 영광의 신학이라고 정의했다. 즉 인간의 선행과 교회의 조직과 부를 의지하는 것을 영광의 신학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 루터는 성경 말씀과 선포되는 말씀을 다 ‘외적인 말씀’이라고 한다. 이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인간의 영으로 오는 직접적 신비적 교통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인간에게 들어오고 다른 사람에 의해 전달되고 중개된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말씀하시는 ‘내적인 말씀’과 구별한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적으로 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 받아들여 믿게 되는데, 이것이 성령의 사역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루터의 신학은 칭의의 신학이요 말씀의 신학이라 한다. 그것은 루터가 사람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데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인 루터의 신학은 스스로 말한 대로 십자가의 신학이고, 그리하여 루터의 영성은 십자가의 영성이다. 루터의 십자가의 신학에서 동전의 앞면과 같이 나타나는 것이 이신칭의이고, 동전의 뒷면과 같이 나타나는 것이 숨어 계신 하나님이다. 따라서 루터의 신학의 핵심인 십자가 신학을 잘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십자가 신학의 표면으로 나타나는 칭의를 알아야 하고, 그리고 십자가 신학의 이면에 담겨 있는 숨어 계신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루터가 찾은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숨어 계신 하나님’ 즉 ‘십자가 신학의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계시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달려 죽은 그 끔직한 십자가에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도 (숨어 계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늘 하나님 앞에(Coram Deo) 사는 사람이었다. 예배를 인도하는 설교자는 항상 ‘하나님 앞’이라는 신전의식(神前意識)을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 성도들도 임재의 생활화를 이루어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따라서 루터의 영성의 핵심은 ‘신전의식(코람데오)’과 ‘내적인 말씀’과 ‘십지가’에 있었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그리스도 강림 이후 부흥과 복음 -13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