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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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는 종교개혁뿐만 아니라 교회 음악개혁도 성취한 인물이며 그의 종교개혁은 찬송으로 이뤄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종교개혁은 교회음악의 모습도 바꾸어 놓았다. 종교개혁 이전까지 교회의 모든 의식은 라틴어로 진행되었다. 성가도 모두 라틴어로 불렀다. 루터는 예배에서 일반 신도들이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 교회에서 자기 나라 언어인 독일어 사용을 권장했다.
종교개혁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교회음악 양식은 오늘날의 찬송가에 해당되는 코랄(chorale)이다. 그전까지 예배의식은 모두 라틴어로 진행되었으며, 노래는 성가대만 불렀다.교인들은 그냥 자리에 앉아서 성가대들이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기만 했지 직접 교회음악에 참여하지 않았다. 부르는 것이 허용되었다고 해도 아마 한정된 사람만이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래가 너무 어려워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야만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루터는 일반 교인들도 음악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코랄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창안하게 되었다. 루터는 사람을 움직이는 성가의 능력을 믿었다. 성가는 성경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가 창안한 개신교회의 코랄은 음악을 통해 교인들이 직접 예배에 참여하기를 원했던 루터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루터나 칼쟁, 그리고 츠빙글리 모두 다성음악의 화려한 음악의 모든 부산물들을 과감히 교회 밖으로 던져 버리고, 경건히 그레고리오성가를 부르듯 단선율에 가사를 실어 찬송하게 했다. 코랄이라는 형식을 통해 처음으로 교회음악의 대중화를 실현했다. 그동안 예배의식에서 소외되었던 교인들을 예배찬송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렇듯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음악을 정비하였다.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이고, 웅장하면서도 복잡했던 음악들을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단선율 찬송으로 정리했다. 음악적으로 본다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몇 백년, 아니 아예 처음의 상태로 되돌리는 결과 같았지만 종교개혁의 정신이 그렇듯이 잘못된 것을 한번에 개혁할 수 있는 방법을 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곧 교회다움과 예배의 회복인 것이다.
루터와 그의 동료들은 교회력에 맞추어 모든 주일에 부를 수 있는 코랄을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코랄이라는 양식을 창안한 후 20년동안 찬송 117편이 수록된 찬송가를 발행해 보급했다.
종교개혁 이후 마르틴 루터가 만든 독일 코랄(Chorale)이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의 효시가 된다. 코랄은 현대어로 번역하면 찬송가가 된다. 현대의 찬송가는 모두 4성부로 이루어져 있지만 최초의 코랄은 화음도 없고 반주도 없이 제창으로 불리는 단순한 노래였다. 하지만 화성과 대위법을 통해 얼마든지 큰 형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교회음악사는 찬송가의 역사로 이어진다. 그러나 서양음악사의 역사는 바로크음악, 고전음악, 낭만음악, 근대음악, 그리고 현대음악으로 이어진다.
종교개혁 이후 찬송가는 교회음악의 전부이며 교회음악사의 중심적 흐름이다. 안타까운 것은 종교개혁 이후 교회음악은 찬송가 외에 특별한 음악 양식을 생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서양음악은 오페라, 합주곡, 교향곡 등 수많은 음악 양식을 생산하며 음악계를 주도해가고 있다.
루터의 의해 기초가 세워진 개신 교회음악은 그 후 바흐에 의해 그 화려한 꽃을 피웠다. 특히 바흐는 코랄을 기반으로 코랄 전주곡, 코랄 환상곡 등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루터가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음악적 성과였다. 루터는 모든 회중이 함께 찬송 드리기를 원했다. 이런 토양에서 <코랄>이 나오고 하인리히 쉬츠나 요한 세바스찬 바하, 팰릭스 멘델스존, 요하네스 브람스가 배출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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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자 루터와 두 가지 개혁운동(2)-이효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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