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9(수)
 

      사시나무 숲에서


                                                                                   엄 원 용


늦가을 공원 사시나무 숲속을 거닐어 보았다.
수피가 은백색인 수십 그루의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어찌 보면 세월을 다 이기고 머리 희끗 희끗 날리는 노인들이 꿋꿋이 서 있는 것도 같고, 재질이 무르고 가벼워 가구재나 성냥개비 젓가락 등에  쓰인다는데, 나이 들어 가벼워지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름답게 물들인 낙엽처럼 한때 곱게 물들었다가 지상에 떨어져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리라.
참으로 정갈한 은백색, 그 위에 노랗게 물들인 낙엽을 보면서 인생도 이렇게 아름답게 저물어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만추의 숲속은 황홀하게 쓸쓸하다,온갖 색채와 음향들이 적나라하게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겸손하게 내려놓고 적신으로 서 있는 나무와 나무, 울울했던 지난 계절의 찬란했음을 결코 말하려 들지 않고 있다.
가을날 더군다나 사시나무숲은 어떨까, 잎 보다 꽃을 더 성급하게 피우던 사시나무, 넘쳐나는 생명력의 분출로 쉼없이 팔랑 팔랑 온 몸으로 전율하며 춤 추었다. 활엽수인 백양나무 잎들은 그들의 본향인 흙으로 내려앉는다. 아주 조용히-
은백색의 수피는 노년의 시인의 모습과도 닮았다, 잎을 떨군 백양나무와 정갈하고 가볍게 숲을 거니는 시인의 동질성이 놀랍다.
사시나무는 희고 부드러운 재질로 무엇인가 담길 상자로, 혹은 불꽃을 만드는 성냥개비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시인은 다시 또 다른 이름으로 태어나고- 그래서 숲은 잠 들지않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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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 사시나무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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