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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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우선시 하였다. ‘하나님나라가 임하시오며’는 이 하나님나라를 세상에 정착시키고, 새로운 질서로써 시민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동력인 기도문이다. 새로운 세상을 가져 오려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운동력을 살펴보면 ‘우리 승리 하리’라는 짧은 노랫말과, 단순한 리듬과 곡조로 운동력을 극대화 시킨다. 다니엘은 세이레를 기도하면서, 기도의 능력이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데 얼마나 요긴하게 사용되어짐을 잘 이해한 것 같다. 다니엘은 자신의 기도 행위에 딴죽을 건 정적들에게, 보란 듯이 구체적으로 창문을 열고 기도함으로써 일인 시위를 시작하였다.
다니엘의 기도는 단순한 기도가 아니었다. 그의 기도 이야기 문장에 나타난 대로 ‘소리를 지르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다. 온 세상이 두려움에 떨며 몸을 사리고 있을 때에, 창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시온성을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예전과 같이, 흐트러짐이 없이, 천천히, 큰소리로, 또박또박,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였다. 오늘의 어느 종교단체에서 확성기로 드리는 기도와 같은 큰 소리로, 모든 시민이 인지되도록 ‘하나님나라가 임하시오며’를 기도하였다. 정적들은 다니엘의 성격이나 의중을 잘 파악하였기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체포하였다. 다니엘의 기도운동은 힘이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하거나 칭할 때에는 ‘힘이 있으신 하나님’이라 부른다. 이는 하나님이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기 시민들에게, 새로운 질서를 세우실 수 있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리라.
오늘 어느 교회들에서 기도의 필요성을 알아차리고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린 계시의 말씀 인 듯, ‘세이레 다니엘 기도운동’을 일으키는데, 참가 교회들이 일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어느 교회에서는 ‘통일 기도회’를 시작하였는데, 그 때마다 거두어들인 통일 기금이 상당하게 비축되고 있음을 물론이고, 함께 호흡을 맞추는 교회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무슨 운동력이 기지개를 편 듯하다. 이 뿐만은 아닌 것 같아서 이야기를 숨길 수 없는 것이, 한 지상에서는, 목회자들이 40일 금식 기도를 시작하였는데, 한 그룹은 이미 그 기도 기간을 마쳤는데,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주중에 하루 이상의 금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도 운동은 지속적으로 연계되어 가중되는 것 같아서, 오랜만에 밀려오는 기쁨을 이겨낼 수 없다. 한주에 3일을 금식하고, 4일은 약간의 식사를 하면서, 14주간을 기도 한다니, 무려 100일간 지속되는 기도이기에 동력이 크게 일어나지 않을 수 없으리란 믿음이 든다.
이참에,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세우려면, 최소한 몇 개의 기둥으로 세워야 하나를 논해 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사람이 적어도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적어도 세 사람이 같은 마음과 생각을 일관성 있게 개진할 때에 사람들이 따르게 된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이다. 우리 교계가 무너지고 더럽혀진 제단을 다시 쌓고, 거룩한 모습으로 세상 속에 텐트를 치려면, 최소한 몇 개의 기둥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리스도가 ‘하나님나라와 그의’로 새로운 질서를 온 세상에 세워갈 때에, 최초로 사도들은 세 개의 간략한 기둥으로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초대 교회에서는 먼저 그들의 입으로, 그들이 본 바요 들은 바요 아는 바를,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전하지 않으면 화를 입게 될 것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전하였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처음 보게 된 이들은, 그들의 입으로 선포되는 복음에서 느껴지는, 그 무엇들이 있었는데, 복음을 선포하는 이마다 권세 있는 새로운 교훈으로 선포하였던 것이다. 둘째로 확연하게 나타나는 것이 있었는데, 복음을 듣고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롤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소위 하나님나라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들이 세 번째로 갖춘 기둥은 ‘성령의 선물들’이었다. ‘하나님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 능력에 있는 것이다.’ 바울도 그렇지만 베드로도 그랬다. 그들은 기라성 같은 인물이 되어 있었으나, 온갖 악취에도 아랑곳 하질 아니하고, 변방의 무두장이 집에서 거처하면서 전하는가 하면, 항시 그들의 복음 선포에는 ‘성령의 나타남’이 있었던 것이다. 먼저, 사도들이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함에 있어서, 기본으로 갖춰진 기둥들이, 내게도 갖춰져 있는가를 확인해야 할 것이고, 만일 놓친 것들이 있다면 돌이켜 재무장해야 할 것이요, 이 세 기둥이 생소한 것들이라면, 아버지 집으로 돌이킨 탕자처럼 새로운 사귐을 시작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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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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