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점심(點心)
주 원 규

늙은 장로와 늙은 집사가
겸상하여 마주 앉은 자리다
고등어 가운데 토막을 서로 드시라
밀쳐 놓는다
토담 너머에선 오동잎 큰 잎새가
너훌 너훌 떨어져 내린다
개울물 물소리 사이사이로
말매미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다닌다
고등어 가운데 토막은 가운데 토막으로 그냥 있고
오동나무 큰  잎새가 또 한 잎
너훌너훌 떨어져 내린다
개골창 물소리가 더욱 소리를 높이는 사이사이로
늙은 장로님과 늙은 집사님
서로 건너보는 눈빛이 깊다

한 낯 아무도 없는 적막한 집에 노 부부가 마주앉아 점심상 앞에 고즈넉이 앉았다
소박한 밥상이다. 독실한 크리스챤의 모습이기도 하다. 배려와 사랑이 몸에 베어든 부부는 아름답고 아리다, 무엇을 서로 더 나누어야 할까, 고등어 한 토막을 서로 미루다가 밥 한 그릇 다 비우도록 고등어는 달랑 혼자 남았다.
그들의 고독을 달래 줄 누구도 없다, 토담 너머 오동잎들이 그들의 시간을 다 써버린 듯  잎새는 흙으로 쓸쓸히 되돌아가려는 모양이다.
 노 부부도 오동잎을 닮아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신비롭고 경쾌하다 개울물 소리, 철모르는 말매미들, 그들의 삶에 도취되어 마냥 날아다닌다, 모든 소리와 적막이 자연의 행간을 오고 간다.
늙은 장로와 늙은 집사님의 사랑의 빛깔이 밥상위에 갈색으로 얹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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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점심(點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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