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09(토)
 
성탄절,  하얀 밤
-후란넬 바지의 기억

경 현 수

나는 하나님께 말하려 했다
헐렁한 후란넬 바지의
외당숙 아저씨에 대해, 그러나
지금 이곳에는 없다

한국전쟁도 한참 지난 때
우리엄마 사촌동생 외당숙 아저씨, 가끔
우리집에 들르시면
늦은 밤 무릎 꿇고 조용히 울먹이며 기도한다
씨레이션 봉지와 희한한 향기 나는 껌과
사탕 몇 알 쥐어주시던 아저씨
무릎 낡은 후란넬 바지가 푸석거렸다
손때 묻은 가죽 가방에서 성경책 꺼내 읽던
예수쟁이 아저씨, 언제나 환히 웃어주셨다

외갓집 마을에선, 미친 예수쟁이라고 수근댔단다

걱정 슬픔 내려놓고 복된 소리 전하시던
아저씨 이야기는 끝도 없었지
다니엘과 사자굴, 아기예수와 마굿간
흰눈 내리는 날 이면
아저씨 성경 이야기가 도란도란
창밖 싸락눈과 함께 내린다

성탄절, 하얀 밤
외당숙 아저씨 성경 이야기
도란도란 내린다
내 안에서 지금도 나직이 내리고 있다

성탄절 절기가 오면 왠지 바쁘고 설렌다. 한 해가 저무는 아쉬움도 있겠지만 온 인류에게 새 생명과 새 희망의 선물을 안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쁨이 있다.
성탄절기의 어릴 적 기억은 아름다운 紋樣으로 아로새겨 진다. 낯설게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던 시절, 전도자 앞에서, 어린 아이는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오묘한 복음의 소리를 듣는다. 외당숙 아저씨는 얼마나 무릎을 꿇고 기도했을까, 후란넬 바지의 무릎이 낡아져 있고 성경가방은 그 간절함으로 손 때 묻어 낡은 가방이 되었다. 눈 내리는 성탄의 밤... 밖에는 흰 눈이 내린다, 예수그리스도의 성결한 모습을 닮은 눈은 더욱 신비롭고 성스럽다.
마을을 돌며 聖誕頌을 부르던 성스런 밤, 천상에서 노래하는 천사들의 화음이 눈과 함께 소복하게 쌓였다. ...아저씨는 지금 여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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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성탄절, 하얀 밤-후란넬 바지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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