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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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만 호


한여름 모시적삼

갈아입고

독서 삼매경에 누울 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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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먼저 가져온

검붉은 마른 낙엽 하나

아 가을인가봐를 흥얼거린다

대청마루 실바람은

책을 펴는 내 앞에

설악산 영봉 가지 끝

서성이는 푸른

하늘 한 조각을 가져다

치맛자락에 살며시

가을을 내 민다


 Untact, 비접촉의 시간들이 우리 앞에 얼마나 더 길게 서 있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름이 참 빨리도 왔다. 시인이 모시적삼 갈아입고 대청마루에 누워 독서삼매경에 들어가 있다. 돗자리 한 장 펴고 누워있는 망중한(忙中閑)은 더 더욱 , 부러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선조들의 옷의 기능과 아울러 멋과 풍류가 깃든 아름다운 모시적삼은 아련하게 여름날의 향수를 불러온다. 읽고 싶은 책 두어 권 쯤 있다면 굳이 폭염을 뚫고 누구를 만날 일이 있을까,
 상상력은 날개를 달고 가을을 예감하고 있다 . 설악산 영봉도 대청마루 끝에 서성대고, 미리 떨어진 조락하는 나뭇잎, 푸른 하늘도 대청마루에 걸터앉는다. 모시적삼  품안으로 바람이 자연과 함께 들어와 나직이 지껄이고 있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처자야
모시적삼 안섶 안에 연적(硯滴)같은 저 젖 좀 보소

 연밥 줄밥 내 따 줄게 담배 씨 만큼 보여 주소

경북  칠곡 지방의 전래 민요다. 인간의 보편적 감성이 애로티시즘의 관점을 넘어선 아름다운 시가문학이다. 모시적삼과 연적(硯滴)을 병치 시킨, 모시적삼 입은 여인의 모습은 자연의 일부가 아닐까, 요란스럽지도 않고 소박하고 아리따운 ‘한국의 미’ 로 꼽아본다. 금년 여름은 모시적삼  한 벌 입고 시 한 편 읊조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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