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조차 거부한 사람”이란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장 폴 사르트르는 자국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범접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강하게 인상지어져 있는 인물이다. 1964년 10월 중에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그에게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는 그 상 받기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 수상 거부 소식이 밖으로 흘러나갔을 때 전 세계인들이 모두 놀랐지만 특히 프랑스인들이 더 놀랐었던 것 같다. 그 실상이 안니 코엔-솔랄 지은 ‘사르트르’ 전(傳)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의 그 실상이 코엔-솔랄의 사르트로 전에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되어 있다.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르트르가 더욱더 자신을 선전하기 위해 수상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알베르 카뮈가 그에 앞서서 수상했기 때문에 거부하는 거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또한 시기(猜忌) 질투를 할 계약 결혼녀 시몬느 드 보봐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르트르의 제스처를 놓고서 수많은 터무니없는 오해들이 난무했다고 그 전기는 말해주고 있다. 이때의 그 광경을 필자가 종합적으로 이렇게 요약 촌평(寸評)하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키 작은 한 거인에게 키 큰 소인배들은 결코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그 ‘키 작은 거인’에게서 나온 수상 거부의 돌올한 자세를 보라. 그는 이렇게 썼다. “스웨덴 한림원에 대한 저의 존경심에는 변함이 없지만 저는 올해에도, 미래에도 노벨상을 받을 수 없으며, 받기를 원치도 않습니다.” 일은 그렇게 간단히 끝나버리고 말았다. 아직까지 노벨문학상 앞에서 이렇게 우람한 거인의 용자(勇姿)를 보여준 이가 그 말고 또 누가 있었던가.
소련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그 상(1958)을 거부하기는 했었지만 그것은 옛 소련 정부의 간섭(압력) 때문이었지 그 자신의 본의는 아니었다. 타의에 의해 막힌 것이지 자의에 의한 용단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볼 때 사르트르의 거인다움은 누가 무어라고 해도 결코 깎이지 않으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사르트르의 거인 풍모를 예찬한다고 해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어느 문인에게 노벨문학상이 주어진다고 했을 때 사르트르처럼 그 상의 수락을 거부하라고 선동하려는 뜻은 애초에 없다. 기회가 온다면 수락해서 좋고 또 큰 영광이기도 할 것이다. 왜냐면 그 상이 불명예스러운 상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상이 불명예스러운 상이라고 지적을 당하든 말든 “받아놓고 보자”식의 ‘수상욕(受賞慾)’들이 문인들에게 너무 강하다는 데 있지 않나 여겨진다.
3.1운동 1백주년 및 임시정부 수립 1백주년의 해를 맞이하여, 또는 앞서부터 진행되어 온 역사바로세우기운동의 일환으로 강원도 춘천시 당국이 2012년 춘천문학공원에 세워 놓았던 한국문인들을 기리는 20여 기의 시비(詩碑)들 중의 일부(3기)를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지난 5월3일 이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고 한다.
이는 춘천문인협회 측의 요구도 반영된 결과로서, 그곳의 문인들이 과거 친일활동을 했었던 문인들 3인의 시비를 문학공원 경내에서 철거하는 게 옳겠다는 주장을 해 와, 춘천시 당국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마당이라면 그들의 이름을 달고 지금껏 시행돼 온 문학상들도 이젠 그 시상(施賞) 여부에 대한 숙고(재고)가 있어야 할 때가 도래하지 않았나 판단된다. 그 3인이란 서정주 시인, 최남선 시조시인, 조연현 평론가 등 고인들이다.
육당 최남선(1890-1957)은 서울 태생으로, 1935년부터 일본의 신도(神道) 보급에 앞장섰으며 1936년부터 3년 동안 조선총독부의 중추원 참의를 지낸 바 있다. 미당 서정주(1915-2000)는 전북 고창 출신으로, 1942년부터 3년 동안 창씨개명을 한 그 이름으로 친일문학 작품 활동을 했으며, 그 때문에 최근 그의 호를 달고 시행돼 온 미당문학상이 구설수에 올라 있기도 하다. 석제 조연현(1920-1981)은 경남 함안 태생으로, 창씨개명을 한 그 이름으로 친일의 글들을 상당수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춘천시는 친일문인의 시비 3기를, 철거 이유를 밝혀 제작한 별도의 표지석과 함께 땅속으로 파묻었다. 그 표지석에는 “이곳, 춘천문학공원에 불손하게 들어앉은 일제강점기 친일문인들의 흔적을 이곳에 묻는다. 슬픈 역사도 버릴 수 없는 우리의 것이나 민족의 아픔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까닭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이젠 그들의 이름을 딴 문학상들도 함께 지하에 묻혀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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