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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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그리스도교의 통찰은 인간의 죄와 고통이라는 실재적이고 현상적인 신학적 주제들로 알게 한다 .예컨대 인간들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인간의 삶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섭리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은 무엇이고 어떻게 다가오는지 그리고 그 죽음과 종말을 인식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또한 이는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물음들로 발전한다.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빚어내셨음을 감사하고 존재의 고통과 환희 그리고 무자각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인간에게 창조주의 형상을 내어주심은 인간을 포기(파괴)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의지이고, 끊임없이 삶에 희망을 주시는 존재로 거듭나게 하심이라 믿는 것이다. 생명 중에 가장 완벽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래서 어느 인간도 흉내 낼 수 없는 형상으로 이 세상에 오신 인간 예수 그리스도. 그의 인간의 삶은 그래서 가장 고통스러운 인간의 길이었음을 성서는 말하고 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간 때문에 완성되지 못하고 지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 과정 속에 인간으로서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형상은 끊임없이 인간에게 요청하고 있다. 인간의 죄와 악으로 점철되어진 피조세계의 신음소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매개로 유한자 인간과 무한자 하나님이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통해 감각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피조세계의 신음소리에 가장 민감했던 인간 그리스도의 삶은 고난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인간은 제 십자가를 지고 그 고난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음의 사명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현상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컴퓨터를 이용하는 형상인식에는 문자의 특징을 형상화해두고 손으로 쓰거나 인쇄된 문자를 읽어 이것과 비교하여 어떤 글자인가를 판별한다. 마찬가지로 성문(聲紋)을 형상화하면 음성을 인식할 수 있고 지문을 형상화하면 범죄수사에 유용하게 이용된다고 한다. 이 분야에서 가장 일찍 실용화된 것은 손으로 쓴 숫자를 읽는 우편번호 자동판별기이다. 또 활자로 된 글과 또박또박 쓴 필기체의 형상인식은 이미 실용화 단계로 들어섰다. 이미 시판된 컴퓨터 모니터 중에는 화면에 전자 펜으로 글을 쓰면 내장된 글자인식 장치가 글을 판별하여 건반으로 타자한 것처럼 기억 장치에 입력할 수 있다. 한글의 경우도 획마다 또박또박 쓰는 경우에는 90%의 인식률을 가진 한글필기인식 방식을 이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공지능연구센터에서 개발했다고 한다. 또한 인간의 음성은 변화하는 가청진동수의 형상으로 나타낼 수 있어 음성인식 방식은 이것을 컴퓨터에 내장된 음질과 낱말의 소리의 형상과 비교 판별하여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음성인식 방식은 우선 전화번호 안내에 이용될 것이며, 다음 단계는 인간의 구술(口述)을 컴퓨터 문장으로 옮기는 받아쓰기에 이용된다는 것이다. 과학 기술의 능숙한 기능은 이미 근래 들어 형상인식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자기 초월의 능력을 가리킨데 대해서 최초의 신학자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이다. 그는 인간의 능력은 하나님을 가리킬 뿐 하나님을 직접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이는 인간은 자기 초월의 힘으로서의 그 정신은 사고의 능력으로서의 이성(logos)을 배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함에 유의 한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하게 하는 것은 로고스(logos)가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한다고 할 때 이것은 본래 단순히 합리주의적인 이성에 국한하기보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말한 우주적 이성, 보편적 이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성은 이 우주적 이성에 근거한 데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칼 빈의 “그리스도교의 강요”에 의하면 칼빈은 “영혼의 이성” 속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인간의 자기 초월성과 함께 의지의 자기결정성을 포함시킨다는 점에 유의한다. 또한 여기에 루터는 그의 “창세기 주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영혼, 기억, 정신, 지성, 그리고 ‘의지의 힘 이상의 것’이라 말하고 있음에 유의하기 바란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오늘의 인간은 타락 이전의 아담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있으며 여기에 신학적인 논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인정하는 귀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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