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2(목)
 
아버지의 등 지게

오 청

무겁기만 한
옹이진 삶의 등 지게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고름과 상처로 얼룩진 훈장 달고
그늘진 곳에서 빛을 찾는다

높은 산이 가로막혀
질수록 무거운 등 지게
겨우 넘고 나면 또 가로막는 준령
언제 넘을까

고개 들어 쳐다보고
한숨 내쉬고
다시 오른다
넘어도  넘어도  끝없는 고갯마루

서녘으로 지는
노을빛 햇살이 풋풋한데
쓸쓸한 여정의 밤은 또 어떻게 지새울까
새벽이 몰려오는데...

‘아버지의 등 지게’. 시인은 굳이 등과 지게라는 두 개의 명사로 합성어인 시어를 장치(裝置)해 놓았을까, 전문에서 시는 우리의 감성과 축축한 기억들을 고스란히 이끌어 오며 공감하게 한다.  지금  우리는 냉엄한 4차 산업시대에 진입해 있다.            
주제가 된 지게는 아주 희미하고 지워져 가는 기억을 심화시키고 있다. 아버지와 등 지게는 정확한 등식이 성립 된다. 그래서 더욱 뭉클한 감동을 불러주는 농경시대의 마지막 잔영(殘影)이 되고 있다. 아버지의 삶은 지게 목발을 짚고 우리들의 노래로 간난신고(艱難辛苦) 고달픔을 승화 시키지 않았을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하늘 아래 아라리요 / 땅 위에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 너머로 넘어가게 해 주소.
세상은 광속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게는 드론이 되어 빌딩숲을 비행하며 그 날의 아버지의 등짐 진 모습을 지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아버지는 등 지게 진 그 분만이 가슴에 영원히 기억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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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아버지의 등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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