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6(일)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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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하고 있다. 인구 비율이나 교세로 보면 우리가 더 많이 파송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오대양 육대주에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하고 있다. 선교사들의 헌신과 수고를 격려하고 위로한다.

문제의 탐색
해외 선교라고 하면 대형교회나 도시 교회가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농어촌 교회는 자체의 존립도 어려운 여건이기에 해외 선교란 ‘꿈같은 이야기’로 치부된다.
이러한 인식을 깨고 전남 무안의 시골 교회가 해외 선교, 그것도 원주민 선교의 선봉장이 되고 여러 교회들이 이 사역에 동참하는 아름다운 소식이 있다.
이들은 “농어촌 교회도 복음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 사역에 기쁨으로 동참하고 있다.

사례의 탐구
이 시리즈를 위해 먼 길을 찾아갔다. 목포까지 KTX로, 거기서 무안까지 승용차로 달려 예드랑그리스도교회 서규석 목사를 만났다.
교회 목회와 대안학교를 운영하면서 농어촌 교회에 선교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서 목사의 이력이 이색적이다. 한국구화학교 교사로 6년간 일했고, 5년간 극단 ‘선교무대’를 이끈 사람이다.
김남식(이하 김): 남들이 보면 전원생활을 한다고 할지 모르나 실제로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지나온 줄 안다. 이곳에 온 계기가 무엇인가?
서규석(이하 서): 신학을 마치고 문화선교를 위해 극단 ‘선교무대’를 만들어 5년 동안 32회 공연하였다. 내가 제작·연출한 ‘새역사의 창조’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 사역 그리고 부활까지를 다룬 작품이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 교회가 없는 전남 무안으로 왔다. 그때가 1975년이니 벌써 43년이 되었다. 그러니 무안 사람이 되었다.
김: 교회 개척을 어떻게 하였나?
서: 연고지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예배를 드렸다. 또 내가 소속한 교단이 그리스도교회협의회여서 이곳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였다. 비닐하우스를 졸업하고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김: 연극 연출 겸 제작자에서 농촌교회 목사로 놀라운 변신을 하였는데 목회의 중심적 꿈이 무엇이었는가?
서: 교회가 세계 선교의 중심지가 되게 하자고 꿈꾸었다. ‘땅끝까지 증인되라’ 하신 말씀대로 선교 모델 교회가 되고 싶었다. 또 농촌교회도 해외선교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불어넣고 함께 힘을 모았다.
김: 그러니 시작부터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를 지향했다. 그때는 선교적 교회라는 이론도 없는 시대인데 선견적 이해가 있었는가 보다. 어려움이 많았을 줄 아는데 그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
서: 교회 개척 10년이 되는 1984년부터 선교사 훈련을 시작하고, 1988년 해외선교 시작, 1989년에 선교사 파송을 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믿고 나아갔다.
김: 선교학에서 신앙선교(Faith Mission)란 개념이 있다. 전략이나 방법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는 사역이다. 이것을 어떻게 전개했는가?
서: 선교학의 이론이나 무슨 전략도 알지 못하고 ‘기도하고 선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세 단계로 발전한 것 같다. 첫 단계는 지역 선교로 지역 전도에 집중하여 교회 성장을 도모하였다. 다음 단계로 해외 선교였는데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를 선교지로 삼았다. 셋째 단계로 교육선교였다. 무안에 대안학교를 세우고 선교지마다 현지인을 육성하는 교육기관을 세웠다.
김: 필리핀 선교부터 묻겠다. 그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이 되고도 남겠지만 필리핀 사역을 말해달라.
서: 우리는 선교사의 직접 파송보다 현지인을 육성하여 자신의 동족에게 전도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세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산지족(山地族)을 위해 부족선교신학원을 세워 현지인 사역자를 양성하고 있다. 평야지대 사역을 위해 방가신학교라는 국제선교신학교를 세웠다. 주목할 만한 것은 26년 전에 민다나오에 고아원을 설립했는데 지금은 필리핀 최고의 고아원이 되어 있다. 필리핀 일반 고아원들은 교사 학생 비율이 1:25인데 우리는 1:7로서 가정형태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아이들을 대학까지 교육시키고, 현지인들이 설립한 교회가 350개다. 목회자 재교육을 위해 한국에 초청하여 3개월 교육 후 재파송한다. 이 사역에 20여 교회가 동역하고 있다.
김: 귀한 사역을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떤가?
서: 슬라웨시에서 사역한다. 이들은 한글을 국어로 채택한 부족이다. 이곳에 15만 평의 땅을 구입하여 〈예수마을〉을 만들었다. 법인 이름이 ‘예뜨랑’인데 한국에서는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한다’의 약자로 만들었는데 인도네시아어로 ‘예뜨랑’은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란 뜻이란다. 이곳에서 제자훈련원, 농촌지도자훈련원, 고아원, 선교기념관을 세우려고 하고 현지인 스탭들이 사역하고 있다.
김: 인도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서: 인도도 세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이팔에 샬롬신학교를 세웠고, 나가랜드에 예뜨랑 아카데미를 세워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세우려고 단계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또 시킴이라방다에도 아카데미를 세워 교육선교를 하고 있다. 시킴은 시킴불교본부가 있고 세계에서 제일 큰 부처가 있다. 현지인들이 학교를 세워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김: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귀한 사역을 하고 있다. 선교의 표어가 무엇인가?
서: 우리는 “주인(현지인)으로 주인되게 하라”는 것을 표어로 삼고 있다.

기본에의 회귀
농촌교회들이 하나님만 의지하여 ‘신앙선교’(Faith Mission)를 할 때 이런 결실들이 나타나고 있다. 기도하고 전파하니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적절하게 채워주신다는 참으로 ‘원시적’이고 ‘기본적’인 전략이다.
해외 선교는 도시 대형교회만의 사역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역이다. 연극인에서 목회자, 그것도 농촌에서 43년간 사역한 한 목사를 만나고 돌아오는 KTX안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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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⑪ 원주민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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