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의정부행 막차를 타고

  이 삼 헌


찢어진 의자가 서럽다.
덜컹거리는 의정부행
마지막 차창 너머로 빗물이 씻긴다.
도봉의 푸르름에 취했다지만
미아리 고개 넘어 수유리
그리고 50년 밀리다 보니
서울에서 멀다
청량리 지나 석계역
역사등도 꺼졌다.
더러는 졸음에 겨워 기대고
더러는 돋보기 너머로
구겨진 신문을 읽는다.
가난이 훈장이라는
술 취한 아저씨도 입을 다물었다.
서울의 고단한 하루 짐을
미처 내리지 못하고 열차는 길다.
총총히 막차에 몸을 싣고
내가 가진 건
근면과 끈기 뿐
내일이면 첫차를 타야 하는 것을
꼴찌로 사는 것이
그렇게 서러운 것만은 아니다.
비 멈추고
별이 쏟아진다.
오랜 세월 기다리는 아내여
오늘 밤엔 그대 치마폭에
별을 쓸어 담아 길을 밝히세  

당신은 의정부행 열차를 타 보았는가?

서울에 인접한 위성도시 의정부, 도시인의 삶이 끈끈하게 묻어나는 우리 모두의 원형의 공간이 그려지는 곳이 아닐까, 자정이 가까운 시간 앞에 의정부행 열차는 급하다. 열차도 의자도, 승객까지도 비틀거림을 곧추세우고 있다. 편히 쉴 곳 작은 집으로 가는 길. 시인은 열차 안 ‘찢어진 의자가 서럽다’고 절규하지만 왜 의자만 서러웠을까? 도봉산의 푸르름과 늠름한 산의 위용偉容도 어둠이 감싸고 보이지 않는다. 캄캄한 어둠만이 풍경을 채우고 있다. 이제 열차가 지나는 석계역 역사도 불이 꺼졌다. 시인은 곳곳에 남루함을 펼쳐 보인다.
구겨진 신문과 돋보기 술 취한 사내의 독백도 왠지 침묵이다. 밤의 고독을 선명하게 들춰 보인다. 시인에게 삶은 속절없이 아리고 슬프다. 꼴찌로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마음 달랜다. 내일 아침 열차꼬리는 되레 앞자리가 되어 달려 갈 것이라고, 차창에 뿌리던 밤비도 멈추고 밤하늘에 별이 쏟아져 내린다. 자정이 넘도록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여, 긴 세월 가난한 시인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어도 이 밤에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치마폭에 담아 銀河를 운행하듯 반짝이는 내일을 열어가게 될 것이라고, 밤이 어둡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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