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회학자이며 정치경제학자인 ‘베버’(Max Weber)는 근대 자본주의의 발생은 새로운 가치관 형성에 의한 것이며 이 가치관 수립에 비합리적인 요소인 종교가 그 기반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을”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그는 이를 해명함에 대하여 이 문제를 다시 비교사회학적인 <세계 종교와 경제 윤리> 연구로 전개시켜 종교사회학에 필요한 많은 관점과 개념을 밝힌 바 있다.
오늘의 분단된 우리민족의 삶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그 삶을 손수 경험하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 체재에서 해방을 맞은 기쁨에 이어 우리 민족의 조국 해방이라는 민족적 희열과 더불어서 생겨난 비극적인 이념적인 문제로 한 민족의 아픈 분단의 역사에서 살아옴은 민족의 부끄러움임을 알게 한다. 이는 곧 우리 한 민족이 그동안 분단을 당연한 사실로 인정하면서 통일에 대한 진정한 사실을 외면하면서 문제의식이 없이 살아 왔던 그동안 우리의 현실에 부끄러움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오늘의 평양의 인민들이 남한의 대통령에 대단한 환영으로 그들의 뜻이 삶의 비교의식에서 보여줌은 통일에 대한 그동안 우리의 무심한 태도에 우리민족 서로가 부끄러움을 갖는다. 이렇게 분단시대를 살아가야만 하는 같은 민족으로 긍지는 고사하고 두 동강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질적 형편은 우리 모두의 삶에 자아 분열로 뿐만 아니라 민족의 분열로 이어 지기 때문에 그동안 분열의 아픔을 안고 사는 삶이었음을 통감한다.
이는 통일이라는 애매한 단어로 슬쩍 스치며 살아왔다가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결속한 만남은 오늘의 민족통일이라는 명제를 두고 오늘을 잘 살아가는데 한 민족의 만남에서 “한반도의 분단”을 생각하며 삶의 경제적인 면에서의 그 가치를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이 자기 확립의 힘이 없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는데 힘이 부족했음을 알게 한다. 말하자면 우리 민족에게 자기 확립의 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해방은 민족의 자기 확립의 부족에서 온 것이 아니다. 분단은 민족과 국민의 주체적 노력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삶의 모든 태도가 타의 의존에서는 아니됨을 알게 된다.
삼천리 반도로 국토를 금수강산을 이루고 살아 온 우리 한 민족이 나눠진 체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 우리 민족 모두가 8.15 해방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잠정적으로 그어진 3.8선으로 말미암아 그어진 분단이 오늘날에까지 오게 된 것, 그 모두가 한반도의 지도자들이 민족분단 극복을 위한 한 민족의 삶에 그 사명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차일피일로 민족통일의 때를 가누지 못함에 있어서 이를 반성하게 한다. 따라서 해방 후에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족주의적인 근대에 맞는 삶을 회복될 뻔했으나 그 당시 근대 국가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당파에 얽힌 권력 때문에 통일의 꿈이 사라졌음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살아온 삶을 알게 된 것은 부정적인 정치이념과의 관계에 의함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부정적인 정치이념은 결국 분단을 고착화 시켰으며 그러므로 이 부정적인 이념은 남과 북이 이념적으로 서로 달리하여 체제를 굳히고 부정적 이념들이 서로의 주장들로 일색이 되어 주체성이 손실되어 오다가 민족주의가 사라져 왔음을 보게 한다. 국가주의(Nationalism)로 이는 우리말로 여기면 ‘국민주의’, ‘민족주의’라 한다.
여기서 챙겨 보면 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첫째 지금 한반도에 동질성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민족의 이질화를 막아야 한다. 한반도 안에 남과 북의 언어도 점차로 이질화 되어 가고 있음을 본다. 동질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늘 지금의 남과 북은 자주적인가? 생각해 보면 1945년 일본 제국주의로 부터 해방된 우리 조국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과연 독립했는가? 현실로 경제적인 면을 보면 북은 외국의 빚에 압박을 받고 있으며 남은 외자 중심의 경제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남쪽의 경제성장이 민족 자본에 의한 자주적인 성장이라 하겠는가? 자주 경제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 기업이 들어와 민생을 증대시켜주는 지는 의심스럽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나타난 정치적인 뒤에 나타난 제국주의는 ‘신제국주의’라는 이념이 국제경제질서를 꿈꾸며 나타나고 있기에 오늘의 제3세계의 ‘민족주의’를 갱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다만 민족 경제와 민족 자본이 반드시 민중을 위한 것 일 때 바람직함을 알게 한다. 이는 곧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도 역시 그것은 ‘민중’이 주인 됨을 알게 한다. 우리는 ‘한 조국이 분단을 넘어서야 한다’ 이는 “한반도의 분단을 위한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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