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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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 소도시 전주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함박눈이 정원의 과실나무들을 솜이불처럼 덮었고, 온 도시가 하얀 눈으로 칠해졌다. 우리집에서 백 미터 떨어져 있던 D교회는 전주역 가는 길목에 있었다. 벽돌집으로 지어진 예배당은 고딕 양식의 높다란 창문이 있었고, 뾰족 첨탑 위의 하얀 십자가가 멀리서도 보일 만큼 우뚝 솟아 있었다. 그리고 예배당 옆으로 목조로 된 종탑이 있었는데, 거기서 커다란 종이 새벽에 울릴 때마다 어머니는 종종 걸음으로 예배당으로 발길을 옮기곤 하였다. 어머니의 신앙심은 가족에게도 전해졌고, 3남 4녀의 형제들은 모두 교회에서 성가대나 교사로 활동할 만큼 신앙심이 깊었다. 우리 형제들은 다가올 크리스마스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12월이 되면 어린이들은 성극이나 성극, 성경 암송 등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였고, 우리 형제들은 제각기 칸타타나 성경 암송 등을 저녁 늦게까지 연습하였다. 초저녁에 저녁을 먹고 나면 여섯 살 배기인 나도 초등학생인 누나들을 따라 예배당에 갔습니다. 소도시 교회인지라 우리를 지도하는 교사 J는 칸타타 연습을 끝낸 후 아이들을 모아 연습시키곤 하였다. 그러므로 J선생이 나타나기 전의 한 시간 가량은 아이들의 놀이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교육관 마룻바닥 위에서 술래잡기도 하고, 공기 놀이도 하였다. 나는 착한 아이여서 누나들과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내 옆에는 단발 머리를 한 영희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유치부 어린이로서, 전주 형무소에 가서 공연할 성경을 암송하는 나의 단짝이었다. 나는 누나들 옆에서 영희와 나란히 낮아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영희는 이 세상 어떤 여자애보다도 예뻤다. 계란형의 얼굴에 눈이 큰 영희는 내 마음을 쏙 빼앗아, 나는 그녀의 눈빛 속으로 속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녀만 생각하면 수많은 공상이 천장 위에 떠다니는 것이었다. 빨간 오픈카를 타고 그녀와 함께 갈대밭 사이를 달리는 광경이 떠오르고, 아주 예쁜 침대 위에서 공주가 된 그녀와 달콤한 잠을 자는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얼굴이 예쁜 여자 아이한테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서양화에서 반바지를 입은 소년이 예쁜 여자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는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서 얼굴이 예쁜 영희의 볼에 그만 나도 모르게 뽀뽀를 하고 말았다. 그러자 갑작스런 뽀뽀 세례를 받은 영희가 마구 울음을 터뜨렸다. 이 모습을 본 누나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너, 왜 그러냐? 좋으면 좋다고 말로 헐 것이지.”
누나들은 영희를 달래느라 눈깔 사탕을 구해다 주었다. 영희는 그 사탕을 볼에 가득 담고 울음을 그쳤다.
세월이 흘러 나는 서울로 올라와 S고에 입학을 하였고,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편지 한 통이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여학생에게서 온 편지였는데, 나는 여학생이 먼저 편지를 보낸 사연을 발신자에게 당당히 물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은 J중학교 졸업 앨범을 보고 내 주소를 찾아냈다며, 나와 펜팔로 교제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편지가 몇 차례 오가는 가운데 나는 그 여학생이 어릴 적 영희임을 알게 되었다. 편지 교제가 일 년이 지난 즈음 영희에게서 소식이 뚝 끊겼다. 나는 영희가 어디로 이사라도 갔나 싶어 궁금하였지만,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던 터라 영희가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편지를 끊었나 보다고 생각하며 공부하는 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짝꿍인 K가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가 영어 단어를 외워야 한다면서 쉬는 시간에도 책을 들고 다니기에 입시에 대한 압박감에서 그러는 줄 알았다.
고교를 졸업한 후, K는 동창회 모임에도 영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러자 친구들 사이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K가 병태의 펜팔 친구를 빼앗아 결혼해 버렸대.”
나는 그제서야 고교 시절 K가 나에게 갑자기 절교를 선언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K는 나의 펜팔 친구였던 영희와 결혼하게 되어 삼십 년 이상을 동창회에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자식. 그럼 진작 나한테 고백을 할 것이지.’
요즘도 K는 동창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K와 친한 H에게 전갈을 보냈다. ‘나는 이제 K를 용서하였으니, 이제 동창회에 나와도 된다는…’ 그러나 K는 동창회에 나오지 못 할 것이다. 나보다도 다른 동창의 따가운 눈초리를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K는 평생토록 나에게 죄의식을 느낄 수도 있었다.
이제 머지 않아 또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K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겨울이 되면 내리는 함박눈처럼 나는 그를 용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각난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태복음> 12:20). 주님이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셨음을 믿으면 구원받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어둠 가운데 헤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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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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