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6(일)
 
겨울 방학

김 현 승

아내는 헌 옷을 꺼내어 다듬고,
고드름 녹아내리는 처마 끝에서 나는 포도
넝쿨을 자르는
이 시간이 내게는 양지(陽地)와 같이 다습다

오래 잊었던 기억의 검은 아궁이에
단풍(丹楓) 같은 불을 피우고,
형님의 슬픈 사연이랑 동생들의 가난한 이야기를
고전(古典)들에 섞어 읽는
이 시간이 내게는 고향에 온 듯 그리웁다

보랏빛이나
연두빛 보다는
희끗 희끗 이제는 회색이 내뵈는 사십(四十)
의 시(詩)를 쓰는
이 무렵이 내게는
눈 내리는 오후와 같이 칩칩컨만 포근하다.

개학도 얼마 남지 않은
정월 중순--- 사온일(四溫日)의 어느 날,
나는 쓰고 또 읽기를
정서(情緖)의겨울은 길고 사상(思想)의 봄은
빠르다.

방학은 설렌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 길 같이 모든 일상을 내려놓고 기차역 플렛폼 앞에 서 있는 누군가의 모습, 긴 휴식과 자유가 기다린다.
이성적이고 치밀한 계획이나 전략적 도전도 무의미하고 희미하다. 순연한 흰눈이 내린 전원의 풍경이듯 이미 주제에서 따뜻함이 전이되고 있다. 전문의 배경은 반세기 전 쯤의 낯익은 구도다. 가난한 아내는 헌옷을 깁고 매만지면서 겨울을 준비하고 검은 아궁이에는 단풍같이 붉은 불꽃이 타 오른다. 화자(話者)인 시인은 고드름 달린 처마 끝에서 또 다른 계절의 포도원(葡萄園)을 꿈꾸며 포도 넝쿨을 자른다  쉼 없이 유토피아를 갈구하는....
고전(古典)속의 이야기는 전설이듯 피어 오르며 겨울은 익어간다. 푸르른 청춘도 지나간 회색빛 감도는, 불혹(不惑)에 다다른 시인은 시를 쓴다. 눈 내리는 오후는 축축하게 젖어 있어도 포근하고 넉넉한 것 같이 눈 내리는 오후의 은유(隱喩)가 새롭다.
겨울방학은 속박되지 않는 그래서 그 자유가 모든 것을 가진 듯 행복하다. 시인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인간의 자유함을 구가하는 본성의 형질로 격조 높이 시에 녹아들어 작품 속으로 함께 들어가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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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겨울 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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