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2-08(수)
 

민족교회론에 기초한 민족교회사관주창

<한국기독교회사, 교회와 민족, 한국민족교회> 형성사론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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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장연군 솔래 출신... 한국 기독교 역사학계 거목

솔래 민경배(松川 閔庚培)1934622,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장연읍은 뒷동산엔 무성한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앞으로는 황해(黃海)로 흘러 들어가는 큰 내()가 있는데, 그 내를 이름하여 송천(松川, 솔래)이라고 한다. 이곳은 일찌기 기독교가 전래되어 조선 최초의 토착민에 의해 세워진 소래교회(松川敎會)가 있었다. 이 교회는 1885년 미국 선교사들의 한국 입국 전에 서경조 형제와 여러 조선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여 세운 교회로, 이후 서울의 언더우드 선교사를 찾아와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한 바로 그곳이다. 그곳에서 민경배가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의 선교역사를 널리 광포하기 위해 예비한 큰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되어진다.

 

민경배는 서울로 와 19523월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 진학하여 대학원을 마친 후, 1956년에 모교에 강사로 임용되어 명예교수가 되기까지 신촌의 연세대학교 캠퍼스를 떠나지 않고, 교회사 학자로서 자리한 기독교계의 거목이라 하겟다.

 

19949월에 그의 회갑을 기념하여 간행된 <한국교회사론총>에 간행위원장 김인수와 편집위원장 박효생이 공동으로 기술한 간행사를 보면, 솔래의 공적을 읽을 수 있다. 한국교회사연구는 용재 백낙준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지만, 학문적인 체계로 정립한 것은 솔래이다. 그의 학문은 위당 정인보를 비롯하여 백낙준, 홍이섭으로 이어지는 연세의 국학연구 전통에서 이룩된 것으로서, 솔래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금자탑을 일구어냈다. 그가 이룬 학문은 후학들에 의해서 계승 발전되기는 하겠지만 그를 능가하는 학자는 오랫동안 나타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그가 보여준 학문적인 자세는 제자들에게 공감이 되고도 남는다. 명쾌한 논리로 세운 사관(史觀), 수려한 문장 구사, 파 헤쳐지지 않은 사료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문헌의 섭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한다. 그는 학자로서 행운도 타고나 일찍부터 연세대학교 강단에서 교수하기 시작하여 평생을 연세의 울타리 밖을 나가지 않은 연세의 거목으로 자리하고 있다.(회갑기념론총 p.5).

 

민족교회론에 기초한 '민족교회사관' 정립

솔래 민경배의 교회사연구 시각은 은사 용재의 교회사관인 선교사관(宣敎史觀)을 뛰어넘어 소위 '민족교회사관'을 주창하였다. 그의 민족교회론은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독특한 교회사관이다. 그는 이 사관에 입각하여 한국교회의 역사를 전개한다. 이 민족교회론에 기초한 민족교회사관은 앞으로 100년 정도는 더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중심적인 사관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한국교회사의 정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골격으로 한국교회의 올바른 신앙을 척도하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솔래의 민족교회사관에는 교회와 민족의 조화뿐만 아니라, 신앙과 신학의 조화,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는 지상과제인 민족통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솔래의 민족교회론에 대하여 장로회신학대학교의 교회사 교수였던 이영헌 목사는 1977년에 "교회사를 일종의 예술품으로 만든 놀라운 솜씨"라고 평했다. 그는 이 민족교회론을 "주체성 있는 민족교회 형성이란 강한 주견을 가지고 종래에 빠지기 쉬웠던 선교사들의 식민지적인 선교교회의 탈피를 그 과제로 하고 있다",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민족교회론이 가지는 그 위치의 중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이영헌, 한국교회사의 최근 동향, 신학사상 1977년 봄호, p.35).

 

솔래가 주장하는 민족교회론의 구조를 살펴보면, 그의 민족교회론은 내연(內燃)과 외연(外燃)이라는 구조를 가진다. 그가 내연-외연이란 구조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1981년에 간행한 그의 저서 <교회와 민족>(1981)에서 이다. 그는 이 내연-외연 구조의 원형을 1905년 원산에서 시작하여 1907년 평양에서 있었던 '대부흥회'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부흥회가 비신자들을 상대한 전도운동이 아니고, 신자들에 대한 정화운동이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당시의 국가 사정에 상심했던 사람들이 마음을 돌이켜서 주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되돌아오게 하려는 노력이 몰역사성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부흥운동은 민족교회 구형(構形) 과정에서 중요한 특장(特長) 하나를 교회가 구유(具有)케 하는 결정적인 공헌을 남겼다. 그것은 내연의 신앙이 있고 나서 그것이 뿜어내는 외연력에 의하여 확장되고, 역사 속에 참여하는 절차논리의 확립이었다. 그래서 결국 종교와 윤리에 우선 귀착해서 거기서부터 새로운 가치체계를 이루고, 이 내적 변화에 의해 구 질서와의 차질을 경험하면 그 차이점에서 생성되는 에너지가 외연되어 마침내 상황 돌파의 이데올로기가 된다는 그러한 고귀한 체질의 형성이었다.

 

그의 민족교회론은 신앙의 내연화를 통한 민족운동으로 승화

그의 내연-외연의 구조를 간단명료하게 다시 설명해보면, 1905년에서 1907년에 이 신앙 내연의 구조가 잡히고, 1919년에 그것이 거대한 민족운동으로 외연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김익두(金益斗)나 이용도(李龍道)의 신앙부흥운동을 통하여 내연화 하고, 1935년 일제의 가혹한 군국파쇼전시체제로의 동원으로 신사참배가 강요될 때 그 마지막 저항으로 외연화 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내연된 신앙은 외연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외연 형태는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다양하지만,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나타난 외연 형태는 사상적 측면에서의 평등사상과 경제적 저항, 민족산업형성의 측면을 말할 수 있고, 사회적 측면으로 신분제 철폐와 같은 사회개혁을 들 수 있다. 또한 정치적 형태로 표출된 것은 충군애국으로, 일제에 의한 조선합병 후에는 국권회복을 위한 항일투쟁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솔래의 역사방법론을 연구한 순복음신학교의 한정열 교수는, 민경배의 역사방법론은 성서 이해에서부터 시작한다. 왜냐하면 교회사 탐구의 대상이 신앙인이고 교회임으로 성경에 대한 지식과 이해 없이는 교회사 서술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 역사는 인과법칙의 논리구조로 실증적이며 인본주의적 자료해석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교회사는 역사의 구조와 신앙의 형질은 본질상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서를 중요시 하는 이유는 성경이 가장 역사적이고 역사에 대해 구원적인 문제를 밝혀주기 때문이다. "민경배의 내연과 외연의 역사방법론의 중요한 가치는 그 방법이 개념적이고 주체적이며 체계적인 점에 있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찰할 때 청진기를 사용하는 것과 X-ray로 환자의 내면을 살펴보는 것과의 차이라 하겠다. 이 신앙의 내연이 외연화 되는 현상학의 방법론은 역사에 나타난 사건을 평면적으로 사료(史料)에 의존하는 인문학적 해석으로 끝내지 않고, 심층적인 내부의 신앙과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까지 관통하는 연구방법으로 다양하게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분석하였다(한국교회사학연구원 2013. 2 .7, 정기세미나 발표 p.24).

 

고신대 명예교수 이상규 박사는 솔래의 산수를 기념해 발표한 논문 '민경배 박사의 한국교회사 연구'에서 솔래의 <한국기독교회사>(1962)에 대하여 영어권에서 세계교회사를 연구하는 자들이 필립 샤프(Philip Schaff 1819-1893)의 교회사를 인용하지 않을 학자가 없을 만큼 솔래 선생의 '한국기독교회사'는 한국교회사 연구의 토라이자 카논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기술하였다. 첫째, 이 책은 1968년 이후 40여년 간 그 구조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고, 긴 기간동안 700쪽에 달하는 대작으로 발전한 점이고, 둘째, 1972년판 <한국기독교회사>로부터 '한국민족교회 형성과정사'라는 부제를 붙이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 점은 저자가 한국교회의 역사를 종래의 선교사들의 주도로 파악했던 선교의 역사로 혹은 선교확장사로 보지 않고, 한국교회를 한국민족의 현실에서 읽는 새로운 사안(史眼)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솔래의 역사서술에 있어서 독특한 레토릭 곧 예술적 기술이다. 그의 역사 기술에는 서양적 학리이론과 동양적 재예(才藝)가 조립되어 있다. 이 점은 민경배 교수의 수사학적 묘미라고 할 수 있고 동시에 그의 책의 가독성을 높여준다. 그의 기술적 능력은 다른 역사가들과의 분명한 차이점이라 생각한다. 한문 혹은 한자어에 대한 그의 수사학적 표현은 감성의 여백을 자극하고 심미적인 힘이 있고, 한문을 공부한 이들에겐 상당한 호소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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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김광수 박사 (1926-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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