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2-06(월)
 

한국교회의 한국역사 책임지는 역사의식 강조

개혁주의와 칼빈주의적 관점에 기반한 세계적 사관 지녀

 

박정규 박사.jpg

 

경남 통영 욕지도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고려신학교 졸업

 

유강 김영재(柔剛 金永在)1935522일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도에서 어장을 경영하는 부친 김수옥(金秀玉)과 모친 함복순(咸福順) 사이에 차남으로 태어났다. 유강의 증조부의 가업을 이어받은 조부 김상천(金尙天)은 목회자 사택을 짓도록 땅을 희사할 정도로 믿음 좋은 신자였다. 그러나 마산 태생의 어머니가 시집 왔을 때는 조부께서 별세하고, 가산이 기울어 집안이 어려울 때였고, 부친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가솔들을 데리고 처가가 있는 마산으로 이사했다.

 

그의 모친은 시모(유강의 할머니)를 따라 함께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모친은 유강의 나이 두살 때인 1936년 마산 문창교회에서 주기철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집사로 봉사하였다. 모친의 믿음은 해방 후 일어난 신사참배 회개운동이 전개될 때 더욱 깊어졌다.

 

유강은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어머니를 따라 한상동 목사와 주남선 목사를 비롯, 여러 옥중성도들의 집회에도 참석하였다. 이때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일제 때 옥중에서 고난 받은 이들과 신사참배를 지지한 이들과의 싸움을 보고 신앙이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의 흔들리는 신앙을 바로 잡아준 사람이 당시 전도사였던 홍근섭이었다. 홍근섭은 이북에서 피난 나와 고려신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홍 전도사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여러 교회로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한 열심있는 청년 전도사였다.

 

홍 전도사가 마산 문창교회에서 개척하기로 한 제3문창교회 개척 담당 교역자로 임명받게 되었는데, 유강도 홍 전도사를 따라 집에서 가까운 제3문창교회로 출석하게 되었다. 홍 전도사는 후에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어서도 꾸준히 유강을 신앙으로 지도해 주었고,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홍근섭은 이북에 있을 때, 주기철 목사의 장남 주영진 전도사로부터 성경을 배웠으며, 주영진 전도사는 6.25 때 월남하지 않고 북한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강은 홍 목사를 통해 요한계시록과 로마서를 두 세번씩 읽어가며 심도있게 배웠다. 젊은 유강은 당시에 이미 변홍규 박사의 신학원론도 읽고, 박윤선의 계시록과 공관복음 주석도 독파하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 좋아해 독서량 많아

 

그는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부산에서 개최된 S.F.C 겨울수련회에도 참석해 5일 밤을 꼬박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밤을 지새기도 하고, 아침 시간마다 로마서를 통독하는 등 자신의 신앙성장을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일본어로 된 소설과 문학 작품들을 읽기 시작한 것이 6.25 전쟁 중에는 적군의 따발총 소리와 기관총 소리가 오가는 포화 속에서도 책 읽기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는 책 읽을 욕심으로 영어와 독일어를 독학하기도 했다. 중고등 학생시절에는 돈이 생기면 책방에 가서 책을 구입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1954년 대학에 입학했으나 재정상 어려움과 폐침윤이란 질병으로 휴학을 하고 학도병으로 입대해 1년간 군 복무를 했다. 그리고 제대 후, 거창고등학교에서 영어와 독일어를 가르치며 7년 만에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19724월 결혼한 후, 고려신학교 강사로 사역하던 중, 후에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총장인 된 김진경 목사의 소개로 영국 브리스톨(Bristol)에 있는 트리니티신학대학에 유학했고, 다시 독일 부퍼달신학대학으로 옮겨 공부하던 중, 자녀들의 학업 문제로 귀국해 다시 고려신학교에서 한동안 강의를 하였다. 그러나 19693월 학내 문제로 교수직을 사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19725월 예장 경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72년 독일 친구 유트 목사에 의해 다시 독일로 초청받아 함부르크대학교에 적을 두고 독일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한국교회와 칼빈주의 전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다시 19803월 독일생활을 정리하고, 잠시 미국 미네소타에서 3년간 목회를 하던 중, 서울 사당동 총신대학교로부터 청빙을 받고 귀국하여 1986년까지 교회사 교수로 봉직하면서 신학생들에게 교회사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한국교회사의 연구와 그 중요성과 가치에 대하여 심혈을 기울려 가르쳤다.

 

미국 아틀란타서 교회개척... 합동신학대학원서 교수생활

 

유강은 이렇게 자신의 신앙과 신학, 교단과 학교와의 관계가 여의치 않자 고민 끝에 학교를 떠나 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로 가서 교회개척을 하게 된다. 그 해가 1986년이었다. 이곳에서 교회를 개척해 1990년까지 사역을 하며 교회가 안정되어 가던 중에 합동신학대학원 총장 김명혁 박사로부터 교수로 초청 받아 2006년 퇴임하기까지 한국교회사 교수로 의미있고 보람있게 공식적으로 마감했다.

 

김영재 박사의 은퇴기념논총출판위원회가 헌정한 헌정사를 여기에 인용하므로, 그의 신학적인 사상과 교회를 보는 사안(史眼)을 짐작할 수 있다.

 

"김영재 박사님은 학문의 활동에서만 신학을 신앙의 실제에 연결하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사역에서도 교수사역과 함께 목회사역을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헌신을 다하셨습니다. 혼탁한 교회의 현장에서 제자들은 김 교수님의 강의를 통하여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이 아니면서도 바른 신학의 길을 잃지 않는 교회관을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목회는 단지 신학을 교수하는 교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교인을 사랑하는 실천적인 활동임을 강조하신 교수님의 교훈은 제자들에게 자칫 이상을 쫓는 사변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주셨으며, 설교를 비롯한 목회활동의 현장에서 교인들의 음성을 듣게 하였고,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살피게 하셨습니다. 김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교훈을 단지 신학적 사유에만 의지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회사역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주셨습니다. 김 교수님은 지력이 부족하여 노력을 게을리 하는 제자들에게 온유하신 태도로 취하셨고, 인내로 거듭거듭 가르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김 박사는 1990년부터 지금까지 화평교회 협동목사로서 교회를 섬겨왔다. 그의 교수의 삶은 그리 길지 않아도 많은 저술로 전하고자 하는 신학과 역사관과 인생관을 펼치고 있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엄청난 독서량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습득된 글쓰기의 능력과 기교, 정통한 영어와 독일어 실력의 바탕 위에 성경신학적 안목과 고전어(古典語) 해독능력이 함께 어우러져 정확한 논점과 철저한 개혁주의와 칼빈주의적 관점에 기반한 신학이 유난히 돋보인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물로는 <한국교회사>(1992), <한국기독교 재인식>(1994), <교회와 신앙고백>(1989) 등이 있다.

 

종파적 역사관 배격... 민족의 구원역사 전체를 봐야

 

유강은 역사참여적인 역사관을 피력하고 있다. 그는 개인이 속한 종파를 극대화 하는 종파적 역사관을 배격한다. 종파적 사관에 머물게 되면 교회를 형이상학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수직적인 관계로만 보게 되고, 역사의 수평적 관계를 보지 못하게 된다. 성경에 대한 주관적인 이해를 절대시 하고 역사와 교회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역사는 현재의 우리를 존재하도록 해 준 어버이와 선조들의 삶의 현장이요, 업적이며, 유산이기 때문이다.

 

구원역사에 참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다른 역사의식을 가졌듯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역사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이러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겨레가 살아온 과거의 역사에 대한 존중과 현재 역사에 참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에 대한 존중이란 한국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이고, 우리의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의 역사는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가운데서 은총과 축복을 누리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장이며, 성화의 삶을 사는 현장이란 것이다.

 

한국교회는 한국 국민의 대다수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윤리적인 삶을 살고, 기독교인으로서 한국문화에 참여하며 기여하는 삶을 사는 그야말로 한국문화의 기독교적 변혁을 꿈꾸면서 한국역사를 책임지는 역사의식(Historical Consciusness)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강의 기독교 사관은 한국교회라는 좁은 시야에만 멈추지 않고, 세계를 응시하는 넓고 멀리 내다보는 세계적인 사관이라 보여진다.(한국교회를 빛낸 칼빈주의자들, 2020, p.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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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유강 김영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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