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만섭 목사(화평교회)
현재 우리나라 정치의 중심에는 소위 말하는 ‘586세대’가 상당수 있다. 이들은 1960년대에 태어났고,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대략 나이로는 50대들이다.(2020년 총선 기준) 이들이 제도권 정치에 대거 참여한 21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가운데 58%가 ‘586세대’이다. 지역구 당선자만 놓고 보면 61%가 ‘586세대’이다. 이는 국회의원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세력이다.
우리 헌정 사상 이렇게 많은 세대가 한꺼번에 국회 의석 다수를 차지하기로는 역대 최다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었던 것이다. 이 세대는 1980년대 대학가에 데모가 한창일 때, 자신들도 여기에 참여하고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자부심을 갖는 세대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고 현실정치에 적용하고 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586세대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권의 모습은 어떨까? 586세대 가운데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 ‘민의의 전당’에 들어갈 때 기대와 우려를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것이 우려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586세대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586세대라고 모두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것은 아니고, 또 그 시대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제도권에 들어가 모두 정치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 그 시대에 함께 캠퍼스에서 운동권을 형성했던 사람들이 2023년 광복절을 맞은 지난 15일, 의외의 ‘반성문’을 내놓았다. 여기에 동참한 사람들이 580여 명이라고 하니 적은 숫자는 아니다. 이 자리에는 ‘586 운동권’ 세대와 새로운 세대가 함께 자리를 했는데, 그래도 대부분은 586세대이고, ‘586 운동권’에 참여했으나, 지금은 비판적인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다.
그 자리에서 있었던 반성문을 들어보자. ‘586 운동권’ 세대가 말한다. ‘우리가 젊은 시절 벌였던 잔치판을 설거지하여 다음 세대가 새 잔치를 벌일 수 있도록 하자. 먼저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담긴 반대한민국적이며, 일면(一面-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적인 역사 인식부터 치우자. 민주화운동의 상징 자산을 주사파가 사취하여 독점 이용하는 이런 어이없는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잘못을 바로 잡자’고 하였다.
젊은 세대는 이런 말을 하였다. ‘민주를 말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헌정을 무너뜨렸고, 노동을 말하는 사람들은 기득권을 위해 더 어려운 사람들을 사지로 몰았다. 연금 고갈, 부동산 폭등으로 수혜를 받지 못한 계층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희망조차 포기해야 했으며, 미래 세대는 수백 조의 나랏빚까지 떠안게 되었다’고 개탄한다.
다른 ‘586 운동권’ 세대는 ‘이제는 정말 북한체제를 추종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그런 세력들과는 완벽히 결별한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민주화 세력이 출범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 됐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이 가장 경악한 것은 ‘민주화 운동권 사람들 다수가 조국(전 법무부장관) 가족의 비리를 강하게 비호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님이 옳았다. 저희들이 틀렸다. 이 순간 우리는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통렬하게 반성한다.
같은 시대, 같은 운동권을 형성했던 사람들의 눈에도 현재 제도권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586 운동권’ 세대에게서 ‘민주화 운동’의 변질을 느끼는 모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586 운동권’ 세대는 전 정권하에 여당의 대표에서부터 국회의원, 장관, 사법부의 중직, 각계각층의 요직, 정치권의 핵심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이 바라보는 ‘586 운동권’의 행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들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것은 ‘주사파의 폐해’ ‘내로남불’ 이조 시대에나 있었던 ‘당파 싸움의 재현’ ‘민주화운동의 망령’ ‘피해자 코스프레’ ‘방탄 국회의 선봉장’ ‘제 편 감싸기’와 같은 분위기가 묻어 난다.
그들에게서 보고 있는 것은 참된 민주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을 빙자한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결핍 상태를 현실 정치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일반 서민들의 상식에서 보아도 분명히 잘못된 것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막무가내(莫無可奈)이다.
‘586 운동권’이 제도 정치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이다. 아마도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586 운동권’ 세대가 밀물처럼 몰려 들어간 21대 국회를 보면, 그런 기대를 함께 했던 것이 오히려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철저하게 국민들 앞에서 ‘반성문’을 써야 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고, 민의(民意)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지도자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