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호 목사(한국에흐예언약학회 회장)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계획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구원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십자가는 구원의 중심 사건이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준비하신 이야기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고 얼마 지나니 않아서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시작이 바로 창세기 3장 15절에 기록된 한 구절의 말씀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은 뒤, 인간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고, 인간의 마음에는 두려움과 숨음이 생겼다. 죄는 인간의 삶과 역사 속에 깊이 들어왔다. 그때 하나님은 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세기 3:15)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이 처음으로 구원의 방향을 말씀하신 장면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이 말씀은 단순히 뱀과 인간 사이의 갈등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을 계속 읽어 보면 이 구절이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 앞에서 인간을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인간의 역사 속에 “여자의 후손”이라는 한 약속을 심어 두셨다. 이 약속은 매우 독특하다.성경에서 보통 계보나 후손을 말할 때는 “남자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자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이것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구속 역사의 방향을 보여 주는 단서가 된다.
성경의 이야기는 바로 이 약속을 따라 전개된다.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성경은 그 모든 인물을 동일하게 기록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는 짧게 지나가지만,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는 길게 기록된다. 그 이유는 성경이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의 계보와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한 줄기의 흐름이 보인다. 아담 이후 셋의 계보가 이어지고, 노아의 가문을 통해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며, 아브라함의 가문을 통해 하나님은 한 민족을 세우신다. 그리고 그 민족 가운데 다윗 왕이 세워지고, 그 계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진다.
이 흐름을 따라가 보면 성경은 하나님이 택한 특정 인물들을 통해 구원의 길을 기록한 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말의 시아버지를 통한 기행, 라합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 마리아로 이어지는 성경의 서사를 따라서 행간을 읽게 되면 하나님이 처음 뱀에게 한 여자의 후손이라는 약속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이어지고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어떤 특정인에게 맡겨진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존적 언약의 흐름 속에 있는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보게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선택하신 계보 속에서도 수많은 갈등과 위기가 나타난다. 형제가 서로 다투고, 민족이 흔들리고,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조차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반복된다. 인간의 역사만 놓고 보면 그 약속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그 흐름을 끊어지지 않게 지켜 오셨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실패 속에서도 약속의 흐름을 이어 가셨다. 그래서 성경의 계보는 단순한 가족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 속에서 이어진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종교 지도자로 소개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약속하신 그 구원의 길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계보를 아브라함과 다윗으로부터 시작하여 기록하고, 누가복음은 그 계보를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설명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이야기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하나님의 약속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씀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인간의 역사 속에 구원의 씨앗을 심어 두셨다.그리고 그 씨앗은 수많은 세대를 지나며 역사 속에서 이어져 왔다. 성경의 이야기는 바로 그 씨앗이 자라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이 한 말씀은 성경의 첫 장면에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향해 열려 있는 문과 같다. 이 문을 통과하면 성경은 단순한 종교 이야기나 역사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준비하신 구원의 이야기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결국 한 사건을 향해 흐른다.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갑자기 등장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자리이다. 그래서 성경을 이해하려면 이 첫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씀은 성경 전체 이야기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첫 구원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