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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미술에서의 유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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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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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을 여행하면서 오래된 교회나 미술관을 찾는 일은 극히 자연스럽고, 그곳에서 그리스도교 미술품을 감상하는 일 또한 그렇다. 어쩌면 적잖은 사람들에게 있어 그것은 가장 요긴한 여행 목적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리스도교 미술을 감상한다는 노릇이, 그 방면의 전문가라면 모를까, 그렇게 간단하지 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적잖은 세월을 목회자로 일해 오면서 나름대로는 교회미술에 대해서 다소의 관심을 가져 왔노라 여겨왔던 자부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일행 중에 내가 목사인 것을 알고 그려진 혹은 새겨진 미술품의 미술적 가치에 대해서는 물론이지만, 그려진 내용에 대해서 물을 때 식은땀을 흘리게 되는 일이 어찌 없었겠는가. 우선 숱하게도 많은 “최후의 만찬”이란 제목이 붙은 그림 앞에 섰다고 치자. 많은 인물들이 그려진 화폭 속에서 예수를 찾아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유다를 알아맞히는 일은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유럽인들이 그림에서 제일 먼저 찾는 것은 하필이면 유다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유다의 모습은 까무잡잡한 얼굴에, 매부리코, 그리고 텁수룩한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사나이를 염두에 두고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12사도 중에 예수를 배신해서 원수의 손에 넘겨 준 가장 악한 행위를 저지른 제자인 유다의 이미지가 교회 미술에서는 반드시 일정하게 나타나 있지 않으니 어쩌랴. 더군다나 “최후의 만찬” 장면을 그린 작품에서 제자들 틈에 섞여있는 유다를 영락없이 찍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체로 교회미술에서 유다를 식별할 수 있는 자료로는 앞서 열거한 얼굴의 특징 말고도, 예수와 비교해서, 키는 작게 그려져 있고, 예수와 다른 제자들의 머리에 따라다니는 후광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배신을 상징하는 누런 색깔의 옷을 입혀놓고 있다는 사실도 식별의 자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유명한 지오토(Giotto di Bondone)의 그림에서처럼.
그러나 흔히들 가장 두드러진 표징으로 돈주머니를 들고 있는 유다의 모습을 떠올릴 터이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감상자는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유다가 스승을 배신한 인물이면서도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과 비교해서 이렇다 할 결정적인 이미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 그러나 중세 이후에 그려진 그림이라면 조금은 판별하기가 쉬워진다. 화가들이 예수를 배신한 범인을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유다에게 나름대로 정해진 위치를 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최후의 만찬 식탁을 벗어나 멀찌감치 자리하게 하고 있는 것이 예사가 되고 있다.   
유다 말고도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는 여러 악역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대제사장 가야바, 헤롯왕, 로마총독 빌라도, 그리고 예수를 팔아넘긴 유대인을 등장시키는가 하면, 예수에게 채찍을 가하며 비웃고 있는 병사들을 그려놓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대체로 이방인(아랍인)이거나 유대인을 상징하는 특정한 모자를 쓰게 하고 있다. 실제로는 그들이 로마인이었다 할지라도 그런 모습 그런 복색으로 그려놓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한 눈에 그들은 악한 자들임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손을 쓰고 있는 것이다. 교회미술은 글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성서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역할이 주어져 있어, 무엇보다도 감상자들이 화폭에서 선한 자와 악한 자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럼에도 유다는 이방인으로는 그려지지 않는다. 악마가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유다자신은 악마로 그려지지 않는다. 로마의 총독이면서 예수의 십자가형에 소극적이었던 빌라도(누가 23장 13절 이하)는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는 아랍인으로 그리거나 추한 늙은이로 그리면서도 말이다. 유다는 대죄를 범했어도 예수의 사랑을 받은 제자였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예수의 제자를 악마나 이방인으로 그리는 전통은 교회미술에서는 생겨나지 않은 것이리라.
사탄은 처음부터 악마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람들에게 시련을 주는 악역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기도 했다. 배신자 유다에게도 나름대로의 사명이 주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배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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