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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독연 칼럼] 강성률 목사의 ‘은혜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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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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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률 목사(신촌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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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17:1).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를 통하여 아합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어둠이 조금도 없으십니다(요일1:5).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은혜입니다. 은혜가 아니라면 아무런 경고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합에게 이 말을 한 것은 아합이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회개하지 않은 까닭은 첫째, 시돈 여인 이세벨이 끌고 들어온 바알 우상의 영향이었을 것입니다. 바알은 곡물들을 생산하게 한다는 우상으로서, 당시 그를 믿는 사람들은 풍작이나 흉작은 전적으로 그에게 달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합이 엘리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것은 되고 안 되고, 번성하고 망하고,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바알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둘째로 아합은 엘리야를 무시했습니다. 엘리야의 외모는 초라했습니다. 그는 길르앗 사람으로서 므낫세 지파에 속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이었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었습니다(왕하1:8).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심령으로 온 사람이었는데 세례요한의 행동에서 엘리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3:4). 약대 털옷, 가죽 띠, 메뚜기와 석청이 주는 공통점은 가공되거나 꾸밈이 없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입니다. 왕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아합이 보기에는 초라하기 그지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누구의 자녀라고 소개하는 것이 습관화 되었는데 엘리야는 그러한 소개마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유력한 가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아합으로 하여금 엘리야를 무시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붙들고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물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분명 모세의 말을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11:16-17).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않게 하는 것은 다른 신을 섬길 때 그렇게 됩니다. 아합은 그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것을 회개해야만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기갈은 환경의 기갈을 불러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가지고 있어도 타락하지 않을 정도는 주십니다. 그런데 그것마저 빼앗아 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인들이 우상을 섬길 때입니다. 신앙인들이 오늘날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전처럼 불상이나 큰 바위 큰 나무를 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우상입니다. 돈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명예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권력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우리 자신의 마음을 온종일 묶거나 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입니다(고전12:2).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멈추게 됩니다.

 

아합 시대에 가뭄이 들기 전 전조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16:34). 이 일이 일어나기 500여 년 전,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여리고 성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6:26).

 

히엘이 여리고를 재건한 것은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그렇게 했을 수 있습니다. 알고도 당시 바알 신이 그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한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터를 쌓았을 때 맏아들이 죽었으면 이스라엘의 누군가는 그 사실을 알렸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쌓아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말째까지 죽고 만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입니다.

 

당시 히엘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그러한 기근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아모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8:11).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영적 기갈이 임하고 영적 기갈이 오면 환경의 기갈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졸리거나, 지겹게 느끼거나, 거꾸로 듣는 현상입니다. 거꾸로 듣는다는 것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자신을 콕 찍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환경에 기갈이 임합니다.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은 은혜받을 기회가 적어집니다. 반드시 들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회개해야 합니다. 영적인 말씀은 영으로라야 들을 수 있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7:21-22). 속 사람이라야 들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 겉 사람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주일에 영적인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은혜가 되는 것은 귀를 즐겁게 하는 말씀, 예화나 세상 이야기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안 들리면 겉 사람 따라 살아간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용서해주시고 귀를 열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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