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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독연 칼럼] 강성률 목사의 ‘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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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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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률 목사(신촌예배당)

강성률 목사.jpg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6:13).

 

작년 늦가을 교회 건물 옥상에 방수를 하였습니다. 준비단계에서 그곳 화분에 있는 식물들을 모두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화초들은 대부분 시들거나 그 생명이 다하여 가고 있었지만, 맨드라미는 그 때에도 수명이 한 달은 남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남겨 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모두 없애고 단 한 그루만 씨받이로 남겨 두었습니다. 방수를 모두 한 후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한 그루도 처리하였습니다.

 

방수를 깨끗하게 페인트칠을 해놓고 보니 더 이상 식물로 옥상을 더럽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올 해는 화분들에게 안식을 주기로 했습니다. 어떤 식물도 뿌리거나 심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과 다르게 봄이 되니 식물들이 쏙쏙 올라왔습니다. 작년에 자랐던 식물들의 씨들이 떨어져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맨드라미 싹은 화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다른 씨앗들에 비하여 늦게 발아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였지만 오랜 시간에도 나오지 않자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옥상에 있는 화분을 보니 맨드라미가 화분 여기저기에 모종 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기대를 포기하고 있었을 때 한 포기 남아있던 맨드라미에서 씨가 떨어져 한 화분 가득 싹이 돋아 자랐는데 그것을 자매 한 분이 모종한 것입니다. 한 그루의 맨드라미가 이곳에서 그들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그루터기가 나옵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6:13).

 

남유다가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겨두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거룩한 삶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거룩이란 성스럽고 위대함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속 된 것을 멀리하도록 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11:44). ‘거룩이란 몸을 구별하여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속 된 것으로부터 구별하는 것, 사치 세력, 음란 세력으로부터 구별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신앙인들이 불신자들처럼 속되게 살아가지 아니하고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 된 생활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18:4). 이와 같이 성도들은 거기서 나와야 합니다. 거기는 바로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곳, 사치의 세력이 있는 곳, 자신을 여황이라고 하고, 과부가 아니라고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서 부터 나와 따로 있는 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모두 세상 사람들과 어울러서는 안 되고 산속이나 숲속이나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살아야 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 속에서의 구별입니다. 고기가 바다 속에 살지만 짠물이 들여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기름이 비록 물속에 있지만 물과 섞이지 아니하고 구별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입니다. 거룩한 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거룩한 생활의 소극적인 면은 육체의 정과 욕심을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으면 속 사람이 나옵니다. 속 사람 따라 살아가는 것이 거룩한 생활입니다.

 

자기 생각을 좇아 살아가는 것은 속된 생활입니다. 만물보다 거짓 되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17:9). 자기 생각을 따라 살아가지 않는 생활이 순종하고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1:14-15). 순종하는 것이 거룩한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맨 처음 이스라엘 민족 모두를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19:5-6). 하지만 그들이 타락하여 금송아지를 섬기자 레위 지파만 제사장 지파로 삼았습니다(32:28-29).

 

그러다가 이스라엘 족속들이 발람에게 속아 모압의 신들에게 제사하고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25:12). 그 때에 제사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미디안 여인과 그와 함께 온 시므온 지파의 족장을 창으로 찔러 죽게 하였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 족속을 영원한 제사장 지파로 삼을 것을 약속하였습니다(25:11-13). 나중에 비느하스 족속도 타락하자 사독의 후손이 남습니다.솔로몬 왕 때부터 사독의 후손이 제사장 집안이 됩니다(44:15).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타락하면 거기서 솎아내고 또 타락하면 계속 솎아내어 거룩한 백성들을 그루터기로 삼습니다. 거룩한 생활은 순종하는 생활이며 거룩한 생활은 성령의 열매 맺는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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