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2-08(수)
 

강성률 목사.jpg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4:18).

 

가끔 동이 터 오르기 전에 제가 사는 곳에 있는 산에 올라 아침을 맞이합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부터는 태양은 거침없이 어둠을 삼키고 새로운 세계를 펼칩니다. 그렇다면 태양은 지난 밤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잠자고 있었을까요? 그 시간 동안 단절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나긴 밤에도 그들은 모태에 있는 어린 아이가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에 점점 자라고 있듯 끊임없이 아침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임계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리학에서 액체가 기체로 변화하기 직전 상태로 물질이 구조와 성질을 다른 상태로 변화할 때의 온도와 압력을 말합니다. 가령 물일 때는 온도는 섭씨 100도가 임계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0도가 되기 전까지는 계속 액체 상태로 있다고 해서 그 물은 기체로 변화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지만 표면에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일단 100도가 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변화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기도를 해도, 전도를 해도, 노력을 해도 진척이 없다고 생각하고 나는 안 돼하면서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성공하는 자와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 가운데 하나가 임계점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 긴 시간동안 정체 되어 있는 듯 하지만 태양은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듯이(1:5), 우리의 기도와 수고와 땀이 헛된 듯 하지만 단지 보이지 않을 뿐 솥뚜껑 안에 있는 물은 기체가 되기 위하여 달궈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임계점이 되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 영역이라고 할 수 있고, 신앙으로 말하면 가장 기본적인 것, 실제 삶에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요셉은 비록 그가 형님들에 의하여 애굽에 노예로 팔려 나갔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으로 그가 형님들을 다스리게 될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점점 꿈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러나 그가 30세 되던 해 바로의 꿈 해석으로 말미암아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13년의 기간 자칫 슬픔과 탄식의 시간이 될 수 있었지만 그것은 헛된 시간이 아니라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의 시간일 뿐이었습니다.

 

모세 역시 미디안 광야 40년 기간 그는 죽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양을 치면서 이스라엘 목자가 되는 훈련을 단단히 받았을 것입니다. 다윗 역시 사울에게 쫓겨다니는 날들이 기약 없어 보였지만 그 날들은 헛된 것이 아니라 그가 왕이 되기 위한 준비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을 다 채우자 그는 거침 없이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신앙인 모두에게는 임계점이 있습니다. 그 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죽은 자 처럼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것을 박차고 영적인 성숙이 이루어질 때가 있습니다. 임계점은 거기서부터 가시적인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하는 임계점이란 신앙의 성숙 영적인 성숙 속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도달하기 전까지 우리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매달려야겠습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웨이크 칼럼] 강성률 목사의 ‘점점 빛나는 의인의 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