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11(목)
 
  • 하미자 목사(대한기독교서회 출판국 전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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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기도하심으로써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모세도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40일 동안 금식하였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금식은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은 영적인 힘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금식입니다. 평상시에도 문제가 있든 없든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연약함과 악의 공격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금식할 때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와 재 등을 뒤집어씀으로써 자신이 금식하는 것을 알렸습니다. 위선적인 금식을 한 것이지요.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금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식은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삶의 원점으로 돌아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금식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행위이지 사람들 앞에 자신의 경건함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억압받는 자들에게 관심 두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약한 자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폭력을 멈추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며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는 행위가 동반될 때 진정한 금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58:6-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면 어떤 복을 주실까요?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58:8-9a)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수시로 가정, 교회, 나라를 위해 금식기도를 해야 합니다.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로 동족인 유다 백성이 멸망하게 되었을 때 모르드개에게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4:16)라고 전했습니다. 3일 동안 주야로 금식한 것을 볼 때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 민족 말살정책은 무산되고 오히려 이틀 만에 대적들이 전멸하는 대역전을 경험했습니다. 금식기도의 힘입니다.

 

요나서 3장을 보면,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하며 하나님께 함께 부르짖어서 재앙을 면한 말씀이 나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읍으로 가서 하룻길을 걸으며 사십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모두 굵은 베 옷을 입었습니다. 이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전해지자 왕도 임금의 옷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았습니다.

 

왕은 백성에게 왕이 대신들과 더불어 내린 칙명을 따라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 떼든 양 떼든, 입에 아무것도 대서는 안 된다. 무엇을 먹어도 안 되고 물을 마셔도 안 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굵은 베 옷만을 걸치고,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을 그쳐라.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7-9)라고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켜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뉘우치는 것, 곧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10)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께 함께 부르짖어서 재앙을 면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 금식의 힘입니다. 함께 기도하며 함께 금식할 때 주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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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올바른 금식’(마 6: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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