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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길봉 칼럼] 14. 마소라 사본 직역으로 읽는 창세기 14장: 솨탄의 제국 전쟁과 예슈아의 표상인 멜키체데크, 그리고 영적 이브리의 승리

  • 교회연합신문 기자
  • 입력 2026.10.1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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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길봉 목사(이브리어 단어별 합성어 해설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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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14장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세상 제국들 간의 전쟁을 배경으로, 솨탄의 궤계에 사로잡힌 세상의 참혹한 실상과 엘로힘의 언약 백성이 치러야 할 영적 전투를 묘사합니다. 이브리어 마소라 텍스트(Masoretic Text)의 원어적 직역을 통하여, 타락한 세상 속에서 거룩한 분리를 이룬 '이브리(건너온 자)'의 정체성과, 구속사의 찬란한 정점인 유월절 어린양 예슈아를 예표하는 멜키체데크의 등장을 고찰하고자 합니다.

 

소돔의 멸망과 육적 선택의 결과

 

"그리고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그들의 모든 양식을 취하여 가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아브람의 형제의 아들 롯과 그의 재물을 취하여 갔다. 왜냐하면 그가 소돔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 14:11-12 직역)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안목의 정욕을 좇아 소돔으로 향했던 롯의 결말은 참담한 포로 신세였습니다. 엘람 왕 크도를라오메르를 위시한 네 왕의 연합군은 소돔을 무참히 짓밟고 모든 재물과 사람을 약탈하였습니다.

 

이는 셰드(마귀)가 다스리는 세상 제국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솨탄은 육신의 풍요로움으로 인간을 유혹하지만, 그 끝은 철저한 파괴와 결박뿐입니다. 롯이 소돔에 거주하였다는 것은, 솨탄의 거짓말에 속아 유월절 어린양 예슈아와 만능들이신 엘로힘을 놓아 버림으로 영원히 실존하는 생명을 잃어버린 죄, 곧 '핱타앟(원죄)'의 굴레 아래 스스로를 방치한 참담한 결과를 증명합니다. 생명의 주권자이신 에핳을 떠난 세속의 번영은 한순간에 무너질 모래성일 뿐입니다.

 

영적 이브리(건너온 자) 아브람의 영적 전투

 

"그리고 도망친 자가 와서 이브리(히브리인) 아브람에게 알려주었다. (중략) 그리고 아브람이 그의 형제가 사로잡혔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가 그의 집에서 태어나 훈련된 자들 삼백십팔 명을 무장시켜 단까지 쫓아갔다." (창 14:13-14 직역)

 

본문은 성경 역사상 처음으로 아브람을 '이브리(עִבְרִי)'라고 칭합니다. 이브리는 '강을 건너온 자'라는 뜻으로, 솨탄이 지배하는 우상의 땅과 핱타앟의 본성으로부터 단호히 분리되어 엘로힘의 언약 안으로 건너온 자를 의미합니다.

 

창세기 14:13절 중심으로

 

영적 ‘이브리(עִבְרִי)’의 길: 솨탄의 강을 건너 엘로힘의 언약 안으로

서론: 성경 역사상 최초로 선포된 칭호, ‘이브리’

성경은 창세기 14장 13절에서 역사상 최초로 아브람을 향해 ‘아브람 하-이브리(אַבְרָם הָעִבְרִי)’, 즉 ‘이브리 사람 아브람’이라고 칭합니다.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성경은 그를 단순한 족장이나 유목민이 아닌 ‘이브리’라는 구별된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브리(עִבְרִי)’라는 단어는 ‘강을 건너다, 통과하다, 넘어가다’라는 뜻의 이브리어 동사 ‘아바르(עָבַר)’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온 자를 뜻하지만, 마소라 텍스트가 계시하는 구속사적이고 영적인 깊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브리는 단순한 지리적 이동을 뜻하는 호칭이 아닙니다. 그것은 솨탄이 지배하는 우상의 땅과 ‘핱타앟(חַטָּאָת, 빗나감/죄)’의 본성으로부터 단호히 분리되어, 오직 창조주 엘로힘(אֱלֹהִים)의 언약 안으로 완전히 건너온 자를 의미하는 거룩한 존재론적 선언입니다.

 

갈대아 우르의 흑암과 우상의 강을 건너다

 

아브람이 떠나온 갈대아 우르는 고대 바벨론 문명의 중심지이자, 달의 신(신, Sin)을 비롯한 온갖 거짓 우상들을 숭배하던 솨탄의 제국이었다. 그곳은 인간의 탐욕과 바벨탑의 교만이 지배하는 땅이었으며, 엘로힘을 대적하는 영적 흑암의 진원지였습니다.

 

아브람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넜다는 것은 과거의 모든 기득권, 혈연, 그리고 익숙했던 이방 종교 시스템과의 영원한 결별을 의미한다. 강을 건너는 행위는 배수진을 치는 것입니다. 다시는 솨탄이 지배하는 과거의 땅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맹렬한 결단입니다. 참된 신앙의 첫걸음은 이처럼 죄(핱타앟)와 사망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의 강을 건너는 철저한 단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핱타앟(חַטָּאָת)의 본성과의 단절

 

‘핱타앟(죄)’의 본질은 과녁(엘로힘의 말씀)에서 빗나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상을 만들어내고 자아를 숭배하려는 핱타앟의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이브리가 되었다는 것은 이 타락한 자아의 본성을 강 저편에 장사 지냈음을 뜻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치명적인 비극은 ‘강을 건너지 않은 자들’이 강단과 예배당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몸은 교회 안에 있지만, 심령은 여전히 강 저편의 우상의 땅에 머물러 있습니다. 십자가의 피 묻은 복음과 엘로힘의 철저한 통치를 거부하고, 헬라 철학의 인본주의와 세속적 번영주의라는 핱타앟의 웅덩이에서 헤엄치고 있습니다. 진정한 ‘이브리’는 세상과 타협하며 양다리를 걸치는 자가 아닙니다.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진리의 검으로 베어내고, 거룩한 엘로힘의 말씀에 자신의 전 인격을 쳐서 복종시키는 자입니다.

 

오직 엘로힘(אֱלֹהִים)의 언약 안으로 건너옴

 

강을 건넜다는 것은 버림과 동시에 새로운 소속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은 단순히 목적지 없이 떠돌아다닌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언약의 수여자인 창조주 ‘엘로힘’의 말씀 한 마디(“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에 운명을 걸고 언약의 세계 안으로 건너왔습니다.

 

이 언약의 세계는 철저히 엘로힘이 통치하시는 주권적 영역입니다.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토속 신명(God, 데오스, 하나님 등)을 부르며 기복적인 축복을 구하지만, ‘이브리’는 마소라 원어 텍스트에 스스로 계시하신 절대적 이름,‘에핳(יהוה)’과 ‘엘로힘(אֱלֹהִים)’만을 부르며 그분과 맺은 거룩한 언약(베리트)에 생명을 건다. 엘로힘의 본명을 상실하고 헬라적 잡신의 이름으로 창조주를 대체해 버린 현대 교회의 번역사적 배도 역시, 우리가 목숨을 걸고 건너서 탈출해야 할 솨탄의 기만입니다.

 

21세기, 참된 ‘이브리’로 일어서라

 

오늘날 한국 교회와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 성도들이여, 우리는 과연 강을 건넌 자들인가?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종교적 외투를 걸친 채, 여전히 이방 잡신의 이름과 세속적 성공이라는 우상의 땅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솨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향해 강을 건너지 말고 적당히 세상과 섞여 살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루하(성령) 엘로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영적 ‘이브리’가 될 것을 맹렬히 촉구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영원한 대속을 이루신 예슈아 크리스토스의 보혈을 의지하여, 인본주의와 거짓 번역의 가죽을 베어내야 합니다. 혼합주의와 번영 신학의 바벨론 강을 건너, 마소라 텍스트의 순전한 원형의 말씀이 지배하는 엘로힘의 영원한 언약 안으로 결연히 넘어와야 합니다!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이브리 아브람은 즉각적으로 318명의 가신을 거느리고 쫓아갑니다. 거대한 제국의 연합군을 상대로 한 이 전투는 단순한 육적 무력 충돌이 아닙니다. 철저히 루하의 권능에 사로잡혀, 셰드의 결박 아래 있는 형제를 구출해 내는 맹렬한 영적 전쟁입니다. 엘로힘의 백성은 세속의 전쟁에 휩쓸리는 자가 아니라, 언약의 힘을 의지하여 솨탄의 권세를 파하는 거룩한 용사들입니다.

 

멜키체데크와 빵과 포도주: 예슈아의 예표

 

"그리고 샬렘(살렘) 왕 멜키체데크(멜기세덱)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엘(엘 엘욘)의 제사장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를 축복하여 말하였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지극히 높으신 엘에게 아브람은 복을 받을지어다. 그리고 네 대적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엘은 찬송받으실지어다.'" (창 14:18-20 직역)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맞이한 이는 샬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엘의 제사장인 '멜키체데크(의의 왕)'였습니다. 그가 전리품이 아닌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는 사실은 구속사적으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 빵과 포도주는 장차 솨탄의 머리를 부수고 핱타앟의 저주를 영원히 끊어내실 유월절 어린양, 예슈아의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십자가 대속)를 완벽하게 예표합니다. 아브람의 승리는 그의 무력이 아니라 '대적을 네 손에 넘겨주신 엘로힘'의 주권적 은혜였음을 멜키체데크가 선포합니다. 이에 아브람은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침으로써, 자신의 모든 생명과 승리가 오직 엘로힘께 속해 있음을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솨탄-셰드의 재물을 거절하는 절대 신앙

 

"그리고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지극히 높으신 엘, 에핳께 내 손을 들어 올립니다. 실 한 오라기나 신발 끈 하나라도 당신에게 속한 것들로부터 내가 취하지 않겠습니다. 이는 당신이 말하기를, 내가 아브람을 부유하게 하였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입니다." (창 14:22-23 직역)

 

전쟁 후 소돔 왕은 사람을 돌려보내고 재물은 아브람이 가지라며 타협을 시도합니다. 소돔 왕은 세속의 부요함을 미끼로 성도를 에핳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솨탄의 하수인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에핳'의 이름을 부르며, 소돔 왕의 재물을 실 한 오라기조차 취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합니다.

 

자신의 부요함이 셰드가 주는 세상의 떡에 있지 않고, 오직 만능들이신 루하 엘로힘압(아버지)의 언약에 있음을 확증하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타락한 본성에 기대어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핱타앟의 유혹을 완벽하게 십자가에 못 박은 이브리의 참된 모습입니다.

 

결어

 

창세기 14장은 세상 제국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솨탄의 권세 앞에서도, 진리의 루하 엘로힘 압으로 무장한 언약 백성의 승리를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소돔의 풍요를 미끼로 다가오는 솨탄-셰드의 궤계에 맞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성도는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는 핱타앟의 본성을 버리고, 빵과 포도주로 예표된 유월절 어린양 예슈아의 보혈만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어떠한 세상의 유혹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오직 에핳의 이름만을 높이는 진정한 '영적 이브리'로 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조길봉 목사(잘되는교회)는 세계 최초로 하나님의 본래 이름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해 온 히브리어(이브리어) 마소라 본문 음가 원어 직역 및 단어별 해설의 독보적인 전문학자다. 그는 한국의 ‘하나님’, 일본의 ‘카미사마’, 영어권의 ‘갓(God)’, 중국의 ‘상제’, 인도의 ‘빠르메슈와르’, 러시아의 ‘보그(Бог)’ 등 세계 각국에서 서로 다르게 불리는 신의 호칭을 마소라 텍스트 음가 원형 보존 및 성호·신격 호칭의 원어 회복, 성경의 최초 명칭인 ‘엘로힘(Elohim)’으로 통일하자는 대개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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