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신앙 왜곡하는 기복주의와 교권주의에 맞서 싸워야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기독교언론
현대인이 처한 이 다원주의사회가 어느 누구에게도 절대주의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종교에 있어서도 마친가지이다. 다원주의는 상대주의를 뜻한다. 이 상대주의가 종교세계에 들어와 종교다원주의를 낳았다. 종교는 그것이 어떤 형태를 가졌든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절대신념체계를 갖는다. “내 종교는 옳고 네 종교는 틀렸다”는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속주의 종교와는 전혀 별개인 기독교마저도 상대주의화 한다.그러나 이는 어느 특정종교를 절대화 할 수 없다는 것이지, 종교다원주의가 곧 종교혼합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오히려 상대의 절대신념체계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또한 상대가 나의 신앙도 그렇게 대해 줄 것을 기대하는 성숙한 사회인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종교다원주의란 미명하에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이 모호한 채로 ‘타종교와의 대화’는 오히려 종교간의 혼돈과 갈등만을 초래하게 될 뿐이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독생자시요,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에 동의하지 않는 타종교인과 무종교인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 사실을 증언하되, 그들의 생각과 판단도 일단 존중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기독교가 종교패권주의화 하거나, 또는 타종교가 기독교를 무시하는데 대해서는 기독교언론이 이를 바로 잡고 방어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요즘 소위 진보적 언론을 자임하는 일부 기독교매체 가운데는 기독교의 호교(護敎)보다 오히려 ‘개혁’(改革)이란 미명하에 기독교 내부의 약점을 들추어 공격하는 것을 사명으로 아는 언론도 있다. 또 이런 언론을 교계의 지성인들이 후원하고 공공연히 지원한다. 이런 사람들은 한국교회라는 공동체는 망가지던 말던 자신만 건들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 인간들이다.
교회의 정체성과 언론의 역할
교회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사건이나 또는 교회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목회자나 교계 지도자들은 한 사람 예외 없이 언론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교계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교계언론의 역할 중요하다. 신구약 시대를 통털어서 특히 문서운동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구약시대의 예언자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구두 예언자이고, 다른 하나는 문서 예언자다. 구두 예언자의 예언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으나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왕사(王史)에 몇 줄씩 인용된 내용뿐이다.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위대한 선자자들의 예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문서 예언자들의 예언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그대로 남아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것이 문서의 중요성다.
그리고 오늘날 목회자들의 설교 역시 아무리 훌륭한 설교라고 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그 목사가 담당하고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미치는 것 뿐이다. 그것이 언론을 통할 때 비로소 그 교회 울타리를 넘어 전국교회 또는 우리사회에 보다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기독교언론이 교계 지도자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다. 광고도 구독료도 내지 않는다.
이 시대 기독교언론의 역할과 사명은 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보호하는 호교(護敎)와 선전(宣傳)에 있다. 호교는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하는 것이고, 선전은 내부의 복음을 외부에 전파하는 창의 역할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언론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영향력 있고 제대로 된 기독교언론을 육성할 책임이 있다. 특히 기독교 정체성의 문제는 한국교회가 기복주의와 물신숭배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언론의 사명이어야 한다. 이미 한국사회는 ‘돈’(Mammon)이라는 유사신(類似神)을 숭배대상으로 찬미한 지가 오래이다. 여기에 교회마저 비판없이 함께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복주의에 사로잡힌 교회가 섬기는 신(神)은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기독교언론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설교되고, 목회자나 교인들이 물욕을 버리며, 정직한 삶을 살 때, 기독교의 정체성은 저절로 확립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설교를 하는 기독교, 십자가의 죽음과 무덤에서 살아나오지 않은 기독교는 ‘가짜 기독교’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처럼 “믿습니다. 아멘”의 기독교는 싸구려 은혜에 매달려 있는 낮은 수준의 기독교이다. 이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한번 콧김으로 ‘후-’하면 다 날아가 버리고 말 가라지인 것이다.
교계언론인의 자세
교계언론인은 예언자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예언자는 자기의 유익을 따라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메시지와 하나님의 공의만을 선포한다. 그러다보니 권력과 충돌하기도 하고, 종교적 기득권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교계언론인의 사명이 예언자적 사명이라면 예언자가 겪은 고난도 함께 따르게 되어 있다. 때로는 자신이 쓴 기사로 인해 고소고발도 당하게 되고, 심지어 원치 않는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언론인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복음을 변증하다가 감방을 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일제 시대나 군사독재 시대도 아닌데 기독교언론인이 감방 갈 일이 어디 있겠는가’고 생각한다면, 이는 기독교언론의 위치나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의 언론관은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왜곡과 불의와 부정이 판을 치는가.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다가 권력과 충돌하고 교권과 부딪친다. 그러면 자연히 신변에 위협이 닥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내가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기독교언론을 통해 교회와 사회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그만 두어야 한다.
끝으로, 개교회와 기독교언론은 두 바퀴처럼 함께 가야 한다. 그런데 교회는 비대한데 기독교언론은 빈약하다. 한 쪽 바퀴가 너무 작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빙빙 맴돌뿐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교회는 기독교언론을 지원하고, 기독교언론은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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