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행복론 - 93

  • 기자
  • 입력 2018.12.21 15:01
  • 글자크기설정

  • 진심을 다하여 사랑하라
1.jpg
연애를 해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연인끼리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지 직감하게 된다. 교인끼리 대화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상대방을 그냥 예우해서 대하는가, 아니면 진심으로 대하는가는, 상대방이 더 잘 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끼리 교제를 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사귀어야 할 것이다. 잠시 바울의 설교를 생각하여 보자.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로마서> 15:1-4)
바울은 “믿음이 강한 우리”는 자기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 강한” 우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함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상대방을 생각하는 척하지 말자. 상대방은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하는가, 그저 위로하는 척하는가를 금방 알아차린다.
그동안의 나 자신을 생각하여 보자. 상대방에게 갖은 좋은 말을 다하면서도 은근히 자기를 드러내지는 않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말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지는 않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괴리된 말을 평소에 내뱉지는 않았는가.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매너리즘에 빠진 뻔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가.
그러므로 남을 탓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중심을 잘 지키면 상대방은 나의 진심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니 믿음이 강한 자로서의 중심을 잘 지키자. 이 시대의 교회는 믿음이 강한 자들이 중심을 잘 지킬 때 자연히 교회의 부흥도 이루어질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라”(<로마서> 15:4)
주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믿음의 중심을 지키려면 그냥 마음에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 마음에 있는 것은 언젠가는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이 스르르 빠져 나갈 수도 있다. 그래서 연단이 필요하다. 금광석은 용광로에 넣어 녹이고 쇠망치로 치고 페이퍼로 갈고 헝겊으로 닦고나서야 제대로 된 빛나고 뾰족한 화살이 된다. 우리에게 연단은 성경 말씀을 늘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두신 의가 무엇인가를 간구하고,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필자는 형제들은 다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가족에게는 전도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것은 가족들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샅샅이 알기 때문에 나의 부족한 점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가 “당신은 신문에 신앙 칼럼을 쓰면서 행동은 맨날 그 모양이냐?”고 비아냥거릴 때도 없지 않다. 그때 내가 하는 대답이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성자는 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가 주신 성령이 임하여 주님은 나같은 죄인에게도 의인이 되는 길을 열어 주셨다. 나는 주님이 인정하는 의인이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한 나의 삶은 복될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나는 성령이 인도하시는 한 믿음이 강한 자라고 자부한다. 기도하고 찬양하며 말씀 보는 것이 즐겁다. 그리하여 나는 복음의 투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백할 수가 있다. 나는 S교회에서 20년, E교회에서 10년, 그리고 W교회에서 10년을 찬양대원으로 일해 왔다. 나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찬양을 잘 한다고 자부한다. 그래서인지 나의 찬양을 보기 위해 교회에 오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 칭찬을 듣기 위해서 내가 찬양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다. 찬양은 나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시간이다. 찬양을 통해서 나는 십자가 보혈을 흘리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만끽한다. 그리하여 주님의 사랑을 느끼는 행복한 표정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찬양은 내가 믿음의 중심을 지킬 수 있는 주님과의 소통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가족들이 언젠가는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될 것을 믿는다. 내가 아무리 전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어서, 주님이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시켜 주시도록 기도한다. 그리고 내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가족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가족들도 주님의 사랑을 느낄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제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모하오니 나의 가족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 교회연합신문 & 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기독교인의 행복론 - 93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