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역개정판과의 현저한 유사성, 저작물로서의 특성 감지”
서울중앙지법 제26민사부는 지난 2월 18일 성서공회가 성경공회를 상대로 지난 2014년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 대해 일부 원고 승소 판결했다. 성경공회의 바른성경이 성서공회의 개역개정판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성경공회를 향해 바른성경을 복제, 제작, 반포, 판매, 전시, 소지하여서는 안된다고 했을 뿐 아니라, 각 사무실, 공장, 창고, 판매점포에 보관, 전시, 진열 중인 완성품, 반제품, 시작품, 부분품 모두를 폐기하라고 판결했다. 사실상 바른성경이 더 이상 한국교회에서 존재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법원 “바른성경, 개역개정판의 고유 표현 다수 사용”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판단하는데 있어, 개역개정판 성경에 있는 번역자의 개인적 의도나 판단이 바른성경에 그대로 활용된 것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성경 원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표현이지만, 개역개정판에서 번역자이 판단에 따라 추가된 부분, 성경 원문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개역개정판에서 번역자가 의도적으로 제외한 부분은 독자적인 창작적 표현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며 “피고들은 바른성경에서··· 개역개정판과 동일하게, 원문에 존재하지 않는 부분을 추가 번역했다”고 밝혔다.
즉 원문을 직접 번역했다고 주장한 바른성경에 원문이 아닌 오직 개역개정판에만 있는 표현이 다수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바른성경과 개역개정판은 동일한 독자(개신교 신자)를 대상으로 동일한 목적(예배용 성경)을 가지고 있는 저작물인데, 유사 어휘와 구문이 대부분이어서, 개역개정판이 지닌 저작물로서의 특성이 바른성경에서 그댈 감지되는 점, 피고들이 개역개정판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현저한 유사성이 바른성경에 나타나는 점 등을 볼 때, 바른성경은 개역개정판에 의거해 작성되었음을 넉넉히 알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한국교회는 한 세기가 넘는 동안 교파를 초월해 각 시대마다 공인역 성경인 개역 성경을 번역, 개정하는 작업을 함께 해 왔다. 이를 통해 교파가 서로 다른 교회들이 서로 협력해 연합할 수 있었고, 성서를 통해 교회 일치 정신을 이어올 수 있었다”면서 “대한성서공회는 성경의 번역과 보급을 맡고 있는 한국교회의 연합기관으로서, 한국교회의 예배용 성경인 ‘개역개정판’을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시대에 맞는 다양한 성경 번역 필요
비록 일부만이 사용하는 성경이었지만, 한국교회 성경 출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던 바른성경이었기에, 이번 사건은 교계에 상당한 아쉬움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바른성경은 개역성경과 성서공회가 내놓았던 표준새번역의 오류 및 성향적 문제를 지적하며, 예장합동측을 필두로 한 교계 보수권이 함께 결집해 만들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더구나 개역판 성경과 대비해 원문을 직접 번역했다는 바른성경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발간과 더불어 그 한계도 계속적으로 상존했다. 무엇보다 바른성경에 대한 보급률이 워낙 낮았다. 합동측은 물론이고, 정작 바른성경을 만들어낸 교단들조차 대부분 바른성경을 외면했다. 바른성경을 강단용으로 사용했던 것은 예장계신측 교회들이 유일했다. 예장계신측은 성경공회를 오랫동안 이끈 이병규 목사가 설립한 교단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한국교회는 성서공회에서 낸 개역성경(1938년)만을 벌써 80년 이상 사용해 오고 있다. 개역개정판은 개역성경의 수정판으로 그 기본은 어디까지나 개역성경에 두고 있다. 바른성경은 한국교회 역사에서 사실상 개역성경에 대비된 유일한 성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몇몇 사제 성경이 있었지만, 정통이 아니라는 거부감에 대부분 이름도 모르게 사장됐다.
더 큰 문제는 언어의 변화에 전혀 호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시대적 변화에 맞춰 30년에 한 번씩은 교체가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성경을 보며 느끼는 어렵고, 애매하고, 매우 구식적으로 보이는 문구들은 1938년 당시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책은 자연히 일상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위기의 주요 요인으로 성경에서 멀리한 신앙생활을 꼽는데, 이는 언어적 문제가 근저에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성서공회는 원문을 직접 번역한 새로운 성경을 출판할 준비를 하고 있다. 비록 늦은감이 있지만, 참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는 그간 정체된 한국교회의 부흥에도 큰 반전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만 성서공회 뿐 아니라 다양한 성경번역의 시도도 필요하다. 성서공회의 성경은 한국교회 공교단들이 참여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공공용 성경으로 압도적인 권위를 갖추고 있지만, 미국 교회의 경우를 고려할 때, 여타 성경 역시, 각각 목적에 맞춰 개발될 때 충분한 활용도를 가질 수 있다.
이번 법원의 판결이 한국교회 성경 개발에 대한 위축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다양한 발전의 촉매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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