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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노프 노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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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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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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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에는 참으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1850년 1월부터 1854년 2월까지, 나이 스물여덟에서 서른둘이 되는 네 해 동안을 시베리아의 옴스크 감옥에서 함께했던 150명 정도의 인물들, 특수한 환경에서 장기수로 살아가는 인물상들은 어느 하나도 소설의 소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죽음의 집의 기록>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시절. 이후 다른 번역으로 두어 차례 다시 읽었다. 얼마 전 필요에 쫓겨 다시 펴들고 이곳저곳을 더듬다가 새삼 보로노프 노인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예순 쯤 되었을까, 작은 몸집에 머리는 완전히 희였다. 첫눈에 나는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았다. 잔잔한 잔주름에 둘러싸인 맑고 빛나는 눈동자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의 시선에는 고요하고 차분한 그 무엇이 깃들어 있어, 다른 죄수들과는 닮은 데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자주 이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도 마음씨가 좋고 온화한 사람을 이전에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사람을 떼어놓거나 차별하는 일은 전혀 없는 성품이었다.”
“그는 중죄를 지어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내용은 이렇다. 마을의 구교도(분리파)들 사이에서 개종자들이 생기자 정부에서 반대파들을 위해서 교회를 세워주는 것을 반대하여 짓고 있는 교회를 불태워버린 것이다. 어떻게 어린 아이와 같이 온화하고 겸손한 사람이 폭도가 되었을까. 어느 누구도 이런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에게서 어떤 허세와 자만의 징후를 나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이렇게도 썼다. “이 사람은 밝고 아주 잘 웃는 사람이었다. 그 웃음은 죄수들의 비열한 냉소가 아니라 명랑하고 차분한 웃음이었다. 나는 이 분이 어떤 사람인지를 웃음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혀 처음 대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웃음을 좋게 느꼈다면 그 사람은 주저할 것 없이 좋은 사람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는 “분리파” 혹은 “구파”로 일컬어지는 종파에 속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러시아에서 분리파가 태어난 것은 17세기 후반, 중앙집권을 강화하려는 황제에 붙은 총 주교 니콘이 교회의 의식을 개혁한 사건에서 비롯한다. 이를테면 “두 번 부르던 할렐루야를 세 번으로” 한다거나 “엄지와 중지로만 십자를 긋던 것을, 삼위일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엄지와 인지 중지로 긋는다.”는 따위였다. 그러나 일반 신자들의 저항은 컸다. 중앙집권화를 껄끄러워하는 봉건영주와 수도원들의 반발에 농민들의 울적한 불만이 어우러져서 반대운동은 러시아 전토에 번져나갔던 것이다.   
평소 분리파에 공감하고 있던 도스토옙스키가 보로노프 노인과 의기투합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놀라운 것은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흉악한 죄수들이 보로노프 노인에게만 자신의 소중한 돈을 맡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용한 노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깊은 슬픔과 괴로움이 있었다. 한 밤중에 눈을 떴더니 노인이 소리죽여 울며 ‘주님, 나를 버리지 마시고 강하게 하소서’ 하는 기도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작가는 그 때 말로 할 수 없는 슬픔이 끓어올랐다고 썼다. 지금까지 자신의 지나친 사상과 병적인 감각과 아름다운 동경 속에서만 살아왔던 작가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무거운 운명과 만나는 체험을 한 것이라 했다.
옴스크 감옥에는 보로노프 노인 말고도 밀수하다 붙들려온 순진한 청년 타타르, 깨끗한 기질로 부지런하기만 한 산악민,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을까 하고 고개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는 아버지를 죽인 죄로 들어온 죄수가 무죄로 판명된 경우도 있었고.
도스토옙스키는 분리파라고 하면 성서나 예식서의 지식을 들먹이며 잘난 척하는 까탈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선입견이 이 보로노프 노인으로 해서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낡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교회를 불태우고 반역자가 되어 투옥된 이 노인은 “고난을 영광”이라 여길 뿐이었다. 도스토옙스키에게 강한 감명을 준 것은 아무런 그늘이 없는 노인의 미소였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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