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서학자가 말하는 한밝 변찬린과 ‘성경의 원리’
한밝 선생의 성경 연구는 한국의 토착화 작업과는 본질적으로 달라
이호재 교수(종교학자) : 오늘은 히브리 대학교(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에서 15년 동안 성서학을 연구한 조용식 박사님을 모시고 한밝 변찬린 선생(이하 ‘한밝 선생’)과 그가 쓴 <성경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서의 역사가 살아있는 이스라엘에서 15년이라는 장기간동안 유학을 가게 된 사정이 대단히 궁금합니다.
조용식 박사(성서학자) : 제 학부 시절(1983-1987)의 캠퍼스(연세대학교 신학과)는 민중신학, 해방신학, 에큐메니칼 운동 등의 본산으로서, 제5공화국 뿐만 아니라, 전통적 교리로 무장한 교회권력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소위 '맞짱'을 뜨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인간의 지성과 이성과 현실에 토대를 둔 자유로운 성서해석에 큰 매력을 느꼈지요. 이어서 군대를 다녀와 대학원(동 대학원 신학과)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성서학(구약학)을 전공했는데, 다양한 성서해석 ‘방법론’을 배우면서, 결국 성서학의 출발점은 ‘언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이스라엘로 유학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이 : 제가 알기로는 1980년대라면 연세대학 신학과에 한태동, 유동식, 김광식, 서남동 등 당대 최고의 신학자들이 계시던 때라고 생각되는데 학문적인 복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서구신학의 안테나’란 별명을 가지신 서남동 교수의 '전환시대의 신학'은 저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집필 과정은 한국 신학계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생각합니다.
조 : 예, 맞습니다. 학부 때 한태동, 유동식, 김광식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복이었지요. 동서양의 철학과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던 한태동 교수님의 강의, 도인이나 신선 같은 모습으로 ‘풍류 신학’을 설파하시던 유동식 교수님의 모습, 칼 바르트의 사상을 부흥강사처럼 알기 쉽게 설명하시던 김광식 교수님의 명쾌함은 지금도 멋진 추억입니다만… 그러나 제 주요 관심사는 아니었습니다.
이 : 사실 다른 분과 전공학자로서 신학의 분과학문이 너무 다양하여 혼돈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성서학은 신학의 하위 분과학문이 아닌지요? 이와 연관하여 설명을 해 주시면 인터뷰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조 : 그 당시에는 저도 몰랐고, 현재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신학’과 ‘성서학’은 전혀 다른 분야입니다. ‘신학자’는 인간의 사유체계를 위해서 성서를 사용하지만, ‘성서학자’는 성서를 위해서 인간의 사유체계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저는 교회에서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구약학, 신약학 교수님들의 새로운 성서해석 방법론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제 관심사는 성서 그 자체였지, ‘신학’은 아니었습니다. 더 나아가, 서구적인 방법론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유영모, 함석헌, 김교신 등 ‘한국인’의 성서해석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 한밝 선생의 성서해석과 한국의 토착화 신학자들과 비교한다면 어떠한 점이 차이가 있는지요?
조 : 저는 한밝 선생의 성서해석이 ‘토착화’라는 개념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토착화(土着化)’라는 개념은 ‘뿌리내림’이라는 의미로서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를 ‘심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는 한 한밝 선생의 성서해석은 무엇인가를 ‘심는’ 작업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캐내는’, 아니면 무엇인가를 ‘줍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한밝 선생에게 가장 본질적인 일은 ‘밭에서 이삭들을 줍는’ 것이지 밭들을 갈아엎고 바나나 농장이나 오렌지 농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밝 선생의 작업은 한국의 토착화 신학자들이 추구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봅니다.
이 : 당시 토착화 신학자들이 서구신학의 토착화를 추구했다면 한밝 선생은 성서에서 숨겨진 복음의 씨앗을 새롭게 발굴하였다는 의미로 이해를 하면 되는지요?
조 : 그렇습니다. 토착화 신학자들의 목표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토착화’라는 말 자체는 ‘밖에서’ 가져온 씨앗을 현지에 심는다는 것을 함의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한밝 선생의 작업에서는 씨앗 자체도 ‘자생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밝 선생의 궁극적 목표는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이 아닙니다. 밭에서 주운 이삭으로 배를 채운 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산삼을 캐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성서의 엘리야가 로뎀 나무 밑에서 천사에게 음식을 얻어먹고 그 힘으로 사십 일 동안 광야를 지나 호렙산에 올라가서 ‘그분’의 세밀한 음성을 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예수의 생애’에서, 예수와 주변 인물이 모두 ‘한복’을 입고 ‘갓’을 쓰고 마리아는 천사 대신 ‘선녀’의 수태고지를 들으면서 ‘물레’를 돌리고 있지만 결국 한복에 갓을 쓰고 있던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향합니다. 이것이 소위 ‘토착화(土着化)’의 한계입니다.
이 : 아주 흥미로운 지적이신 것 같습니다. 한밝 선생의 작업이 기존의 토착화 신학자와는 달리 ‘성서의 밭’에서 진리의 이삭을 먹고 직접 영생의 말씀을 찾았다는 표현은 아주 상징적인 통찰력 있는 지적 같습니다. 제가 《에큐메니안》에 한밝 선생의 '성서와 역(易)의 해후'를 중심으로 성서와 역의 상관관계에 대해 썼습니다만 성서학자가 성서 안에서 ‘괘(卦)’를 캐낸다는 것은 어떤 맥락의 의미를 가지고 사용하는 건지요?
조 : 십자가는 ‘상징’입니다. 예수가 거기에 못 박혔기 때문에 ‘십자가’라는 단어가 신학적 의미를 가진 것뿐입니다. 만일 예수가 조선 시대 죄수의 목에 채우던 ‘칼’을 쓰고 처형장으로 향했다면 성경은 분명히 다음과 같이 기록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에 칼을 차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 참조).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모습’을 조선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면, 십자가라는 로마 제국의 ‘도구’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십자가가 ‘고난의 상징’이라면, 바울 서신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정확한 표현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의 ‘십자가의 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십자가는 고난과 승리, 치욕과 영광, 죽음과 영생을 모두 포괄하는 ‘숙명(宿命)’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길흉(吉凶)을 포괄하는 동양 전통의 상징인 ‘괘’를 언급한 것입니다.
이 : 네 잘 알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밝 선생이 “성경은 선(僊)의 문서”라고 하면서 동이족의 신선사상과 성서의 변화와 부활의 도맥을 이해지평에서 융합시킨 연구에 대해서도 말씀을 듣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한밝 선생을 연구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토착화 신학은 복음을 한국 종교문화의 토양에 심는다는 선교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한밝 선생은 성서해석을 했다는 점이 크게 다르게 보였습니다. 이런 점은 신학계에서 어떻게 평가를 할 수 있는지요?
조 : 위에서 이미 한밝 선생과 한국의 토착화 신학자들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또 한 가지 본질적인 차이점을 언급하자면 한국의 토착화 신학자들에게는 한국의 문화와 종교가 그들의 ‘밭’이겠지만, 한밝 선생에게는 성서가 그의 ‘밭’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조직신학이든, 선교학, 목회학 등 실천신학이든, 토착화 신학이든, 그들에게 복음이란, 종묘장에서 길러낸 모종에 불과합니다. 그들에게는 성서가 ‘밭’은 고사하고, ‘종묘장’조차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종묘장이란 각 교파의 전통과 교리일 뿐입니다.
이것은 중세 로마 가톨릭의 상황이 아니라 현재 소위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상황입니다. 오늘날 ‘복음’이라는 단어는 존재할지 모르지만 그 복음의 ‘진리’는 실종된 상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밝 선생의 성서해석은 그 내용 자체보다도 본래의 자리 찾기라는 그 의미를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이 : 그동안 토착화 신학자들이 말하는 서구신학의 복음을 ‘씨’로 보고 한국 종교문화를 ‘밭’으로 보면서 연구한 발효모델, 파종모델, 접목모델 등 다양한 신학모델과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한국 종교사의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아직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안착되지 않은 ‘격의(格義) 그리스도교’ 현상이라고 저는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 중국에 불교가 들어왔을 때 불교의 공(空)을 노자의 무(無)로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선불교라는 중국불교로 탄생한 역사적 사례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밝 선생의 성서해석 작업은 독창적인 한국 그리스도교를 지구촌에 보편화할 수 있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성서해석의 한 기틀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조 : 위에서 한 얘기의 연장선상에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한국 기독교가 직면한 외적, 내적 ‘간격’들은 근본적으로 성서라는 ‘텍스트’와 기독교 공동체 사이의 간격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려서 아직도 성서가 ‘넘사벽’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기독교의 속사정을 잘 모르는 분들은 거의 2천 년에 걸쳐서 전 세계적으로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그토록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연구하고 분석한 단 한 권의 책이 여전히 ‘넘사벽’이라는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의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무지요, 둘째는 교만입니다. 교계는 무지하고, 학계는 교만합니다. 교계는 성서의 메시지(진리)를 추구할 뿐 탐구하지 않습니다. 탐구는 치열한 지적 활동이지 헌신, 봉사, 희생 등의 구도적인 활동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계는 무지합니다. 학계는 탐구할 뿐 추구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그 메시지를 듣는 것이지 인간의 이성으로 ‘끌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밝 선생에게는 ‘독창적’이라는 수식어보다는 ‘당연한’ 또는 ‘사필귀정’의 성서해석이라는 수식어가 적합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호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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