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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건설 이봉관 회장, ”어머니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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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1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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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전을 가장 많이 건축한 축복, 어머니의 기도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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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채널방송에서는 <..보 어머니>(사랑하고 그립고 보고싶은 어머니) 세 번째 손님으로 성전을 가장 많이 건축한 기업인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청운교회 장로,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회장)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봉관 회장은 1945년 평양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잘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부모님의 결단으로 온 가족이 남하했다. 이후 5년 뒤 6.25 전쟁이 발발했다. 피난민의 생활은 어린 이봉관 회장에게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내 몸의 몇 배나 되는 짐을 지고 산을 다니곤 했었죠. 맨발로 돌밭을 내려오는데 발에서 피가 나도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한번 짐을 내려놓으면 혼자 다시 짊어지고 이동하기 힘들었거든요라고 회고했다. 가난한 피난민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상상할 수도 없는 비천함에 처한 이봉관 장로를 붙잡아 준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의 기도였다.

 

어머니가 병들어 죽어가는 순간에도 저를 위해 온 마음 다해 기도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힌 이봉관 장로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찬양인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신 주를 부르며 어머니의 사랑을 추억했다. 또한 그는 삶 속에서 역경이 많았어요. 그것을 버티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으며 다윗처럼 찬양하고, 야곱처럼 달려나가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러나 지나고 보니 제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이 그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라며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성전을 가장 많이 건축한 서희건설의 회장으로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라 생각해요. 어머니의 기도가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이지요라며 어머니를 향한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진행을 맡은 김삼환 목사는 어린 시절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어요. 그 신앙을 가르쳐준 분이 어머니인데, 어머니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요.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죄송하고...그리울 뿐입니다라며 이봉관 장로의 고난과 힘겨운 삶에 깊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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