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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독연 칼럼] 강성률 목사의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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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2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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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률 목사 (신촌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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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15:4).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안에 산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업적 안에 산다는 의미가 있고, 말씀 안에 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내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행위가 나의 행위가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우리 옛사람의 죽음이며,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죽었던 우리 영이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모태에서 갓 태어난 아이의 생이 이제 막 시작이듯, 새롭게 태어난 영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그런데 구원파의 잘못된 것 중의 하나는 예수님께서 신앙인들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다 사해주셨기 때문에, 이제 회개할 필요도 없고 구원을 누리며 임의대로 살아가도 된다는 신앙관입니다. 신앙인들의 죄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을(6:12) 볼 때, 그들의 신앙관은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믿어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 안에 있으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죽음이며,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우리의 부활임은 변함없는 진리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라고만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라고 말씀하신 후에 바로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원파들은 내 안에 거하라.”라는 사실만 강조할 뿐입니다.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라는 사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라는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살아 계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고(16:8),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며, 장래 일을 알리시기 때문입니다(16:13). 주님은 우리의 육체를 통하여 예수님을 재현하고 싶어 하십니다. 신앙인들이 몸을 드리고 주님께 순종하는 것만큼 예수님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안에 살아계신 주님은 졸거나 주무시지 않습니다(121:4). 부지런히 간섭하시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바울은 아시아에 먼저 복음을 전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그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 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 하시는지라.”(16:6,7). 그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죄를 사하심을 믿었다는 이유로 구원파의 주장처럼 임의대로 살았다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아시아에 복음을 전파하려 했을 것이고 그의 수고는 헛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살았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너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1:13-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바울 자신이 전한 말씀을 지키라 권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자신 안에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 주님은 가르치시고 교훈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신앙인들이 지키라” “행하라하면 거부감을 느끼며 심지어 율법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구원파적인 생각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힘으로 행하고 그 행위로 자신의 의로움을 인정받으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틀림없이 율법주의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인들의 행위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행위입니다. 바울은 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모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23:1). 자신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양심의 소리를 듣고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정통적인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에게 구원파적인 요소가 있거나 안식교적인 인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구원파적인 요소는 주님 안에 있는 것만 강조할 뿐, 주님이 우리 안에서 실제로 행하고 우리 몸을 통하여 나타내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사람이고, 안식교적인 요소는 성령으로 행하는 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힘으로 말씀을 지키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행하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행하게 하실까요? 그 앞 절에 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복종하는 자에게 행할 능력을 주셔서 하게 하십니다. 복종은 온전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먼저 능력을 주시면 행하겠다고 하지만,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먼저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디딜 때 강물이 갈라졌던 것처럼(3:15-17), 주님은 먼저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순종할 때 능력을 주셔서 행하게 하십니다(5:32). 주님이 재림하실 때는 추수 심판하시기 위하여 오십니다. 성령으로 행한 행위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오십니다(7:19-21). 주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셨기 때문에 마음대로 행하여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등은 있으나 기름을 전혀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처녀와 같습니다.

 

구원, 그것은 시작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분(벧전1:17)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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