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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연합운동 분열,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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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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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를 뒤덮은 ‘분열의 화(火)’

연합 한기총.jpg

 

한국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앞뒤 맥락 없는 뜬금없는 문제제기지만,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이 문제를 공감치 못하는 기독교인은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수년간 그야말로 처절하게 무너졌고, 지금 이 순간도 날개 없는 추락을 지속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위험에 더 이상 반응치 않는 교계다. 최근 수년간 한국교회를 표현했던 위기라는 단어는 우리의 신앙에 더 이상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할 만큼 진부해졌고, 오히려 친근해졌다. 만성화된 위기에 따른 의식의 부재’, 어쩌면 한국교회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최악그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로 인한 한국교회의 피해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을만큼 컸다. 월세를 감당치 못한 수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았고, 생활고를 버티지 못한 목회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생명의 젖줄과도 같은 백두대간의 수많은 샛강들처럼 전국의 작은 골목을 책임졌던 미자립 교회들에 공급되던 물줄기는 메말라 버린 지 오래다.

 

여기에 농어촌교회들의 연이은 폐쇄는 실로 결정적이다. 시대의 발전에 비례한 심각한 도농간 불균형 속에서도 꿋꿋이 고향을 지켜내던 이들 농어촌교회들이었지만 광폭한 코로나19의 포화는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지붕 위의 십자가를 거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위기의 시작은 언제인가? 혹자는 지난해 발발한 코로나19를 그 시작으로 보고 있지만, 실상 한국교회는 코로나 이전에도 충분히 위기였고, 심각했다. 코로나는 무너지기 직전에 있던 한국교회에 마지막 한 방을 날렸을 뿐이다.

 

한국교회 위기의 시작은 바로 분열이었다. 한국교회는 흔히 장···순으로 불리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실상 장로교만 300개가 넘을 만큼 어마어마한 분열을 반복했다. 한강의 기적과 비견될 정도로, 전 세계교회의 찬사를 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부흥 이면에는 분열을 통한 경쟁적 성장이라는 매우 씁쓸한 이유가 숨겨져 있다.

 

어느 순간 숫자를 세는 것이 무의미해 질 정도로 분열이 일상이 된 상황에, ‘연합단체의 구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 과제였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바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애초 진보 일색의 NCCK에 대응해 출범하기는 했지만, 한국교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수 교단들이 한기총을 통해 함께하며, 한국교회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교단 분열의 대안격으로 등장한 연합단체 역시 분열의 화()를 피하지 못하며, 한국교회는 본격적인 침체에 들어간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무너지게 한 결정적 단초, 하늘로 비상하던 한국교회의 날개를 꺾어버린 사건이 바로 연합단체의 분열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가장 이상적 형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가 양분하던 때다. 각각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며, 거대한 수레의 두 바퀴가 되어 한국교회를 이끌었던 이 당시는 누가 뭐래도 한국교회가 우리사회의 당당한 리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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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과 NCCK가 공동으로 준비했던 2010년 부활절연합예배

하지만 한기총으로부터 촉발된 보수 연합운동의 분열은 팽팽하던 양 진영의 균형을 완전히 깨뜨려 버렸고, 한쪽 바퀴를 잃어버린 한국교회란 수레는 제자리만 맴돌게 됐다. 무너진 보수 연합운동은 한국교회 발전의 전면적인 후퇴를 불러왔고, 보수의 견제가 없어진 진보 연합운동은 기독교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채 폭주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왜곡, 동성애를 포함한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 코로나 예배 제재 등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린 초유의 사안들에 한국교회가 지독히도 무기력 했던 것은 무너진 연합운동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였다. 그나마 다툼과 반목만 일관하던 연합단체들을 대신해 몇몇 의식있는 목회자들과 전문가들이 음지에서 전력으로 맞선 덕분에, 최후의 저지선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참으로 씁쓸한 다행일 뿐이다.

 

한국교회를 뒤덮은 분열의 화()’

 

사람과 사람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그 집단의 유기적인 관계는 사회로 형성된다. 애초에 하나가 아닌 서로가 다른 남이었기에 그 집단, 혹은 그 사회는 언제나 분열의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모든 분열이 그르다고 볼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이유로, 또는 스스로의 양심으로 택할 수 밖에 없는 분열이라면 때로는 그 사회의 더 긍정적인 미래를 가능케 하기도 한다. 한국 초창기 장로교회가 김재준 박사의 진보 신학을 둘러싸고 벌어진 분열(예장-기장)이 그러했으며, 1959WCC로 인한 분열(합동-통합)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명분없는 분열이다. 사실 59년 이후의 한국교회 분열에 정당한 이유를 찾기는 힘들다. 돈과 권력, 대표 자리를 둘러싼 이합집산만이 반복됐을 뿐, 장로교 300개 시대가 유독 씁쓸한 것은 그 속에 어떠한 하나님의 뜻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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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의 출범

지난 2012년 한기총과 한교연의 공식적 분열 역시 마땅한 명분을 찾기 어려웠다. 분열을 주도한 이들은 이단문제를 주 원인으로 꼽았지만, 그것은 표면적 이유일 뿐 그 뒤에는 한기총의 대표회장 자리를 둘러싼 교단간의 안력 다툼이 지배했다. 당시 분열의 주체였던 몇몇 대형교단들과 인사들은 이러한 주변의 비난을 절대 인정치 않았지만, 수 년이 지나 터져 나온 한교연 분열의 주 이유는 교권이었다는 핵심 인사의 자성 섞인 고백은, 한국교회가 연합운동의 근본적 목적을 진즉에 상실했음을 증명했다.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등장은 80년대 이후 본격화된 교단 분열과 맞물려 있다. 나노(nano) 단위로 쪼개질 듯한 교단들의 계속된 분열은 현실적으로 다시 하나로 회복되기 어려웠고, 그 와중에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연합운동이었다. 문제는 이 연합운동마저 분열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합운동의 분열은 기존 교단 분열과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진다. 연합운동은 그 자체의 의미보다 교단 분열의 병폐에 대한 치유적 성격을 갖고 있기에, 연합운동 자체가 분열하는 것은 한국교회 미래에 더 이상 답이 없음을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분열의 반복이다. 2012년 한기총-한교연의 분열 당시, 교계가 우려했던 또 다른 한 가지는 이 분열이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경험에 의한 예측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분열의 치유격인 연합운동이 분열한다는 것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런 편견(?)을 깨고 강행한 한기총-한교연의 분열 덕에, 연합운동 역시 분열할 수 있다는 명분과 당위성이 생겼다.

 

한교총 출범.png
2017년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의 출범

 

그리고 그 우려는 2017년 한교연-한교총의 재분열로 정확히 증명된다. 철 없는 어린 아이들의 나쁜 짓도 처음만 어려울 뿐 그 다음은 한결 수월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한교총의 분열이 결코 마지막이라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언제든 교권을 따라, 4, 5의 분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다시 하나됨으로

 

연합운동의 기본 전제는 결코 깨어질 수 없고, 흩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모든 집단과 사회는 필연적으로 언제나 문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문제를 치유코자 하는 노력이다. 부득이한 명분 없이, 교권, 자리다툼으로 단체를 가르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분열을 정당케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12년 한기총은 어떻게든 내부에서 그 문제를 수습했어야 했다. 한기총의 혼란은 분명 심각했지만, 이를 빌미로 한 한교연으로의 분열은 돌이키기 어려운 최악의 선택이었다.

 

우리가 지금 대통합을 부르짖고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자행한 분열의 결과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의 교단이 300개의 교단으로 흩어졌고, 이를 하나로 묶고자 탄생시킨 연합기관은 다시 세 개로 나뉘었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결코 정당화 되지 않을 과거의 죄악 앞에 우리가 대통합을 얘기하는 것은 죄에 대한 철저한 인정이며, 새로운 미래를 위한 당연한 회개.

 

분열은 또 다른 분열을 정당케 한다. 한교총의 분열이 정당화되는 것은 또 다른 분열을 야기할 뿐이다. 반대로 한교총이 결코 이상적이지 않아야 하는 것은 더 이상 대형교단들이 자기 이권에 맞게 한국교회 연합운동을 좌지우지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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