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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위기와 대응 그리고 회복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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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0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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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식 박사(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한국교회는 양적 성장 지상주의 함정에 빠져 있어

기복신앙은 설교를 바꾸고, 성도들의 신앙생활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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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신앙의 체질화?

한국교회의 위기 요인 중 또 하나는 전래의 기복신앙(祈福信仰)이 하나의 체질화로 고착된 일이다. 우리나라 재래의 무속적 기복사상에 기독교의 이른바 번영신학이 접목되고 나서 기독교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양상이 나타났다. 인간에게는 사회성과 종교성이 함께 존재한다. 인간의 사회성은 동등 혹은 상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종교성은 자신과 비교될 수 없는 절대적 대상을 인식하는 것으로, 이 절대적 대상을 통해 인간의 본능적 욕구들, 곧 재물, 건강, 성공 등을 이루기를 소원한다.

자신이 처한 불확실한 상황 또는 무엇인가 할 수 없음을 경험하는 인간적 한계 상황이 인간의 종교성과 맞닿아 있다. 절대자를 통해 자신의 필요를 얻고 한계 상황을 극복하려는 기도, 이것이 기복이다.이원규는 기복신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복은 특히 자신과 가족에게 주어지는 물질, 육체의 정신과 건강, 성공과 출세 같은 현실적 소유와 성취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복을 기대하고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외부, 특히 절대자에 의해 그러한 복이 주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기복신앙이라고 부른다."

’()에 대한 인간의 소원은 절대자를 향한 종교 행위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기복이 없는 종교는 없다. 기복은 에 대한 인간의 소원과 동시에 그것을 이룰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가장 진실한 표현이다.

종교의 기원을 논할 때 통상적으로 외래 종교와 토속 종교로 구분한다. 외부에서 들어온 종교를 외래 종교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종교는 외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는 물론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무속신앙, 곧 샤머니즘 또한 외래 종교다. 그러나 실제로 무속종교가 들어 온 때를 정확히 알 수 없을만큼 오래 전부터 이 땅에 토착화 되었기 때문에 외래 종교라 칭하기보다 토착종교화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무속신앙은 한국인들의 삶의 영역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종교가 되어 외래 종교가 들어오게 되면 이 무속 종교와 혼합되어 새로운 무속화가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샤머니즘은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영력의 근원인 영적인 존재들이며, 둘째, 영력을 추구하는 무속 신봉자들, 셋째, 영적인 존재와 무속 신봉자들 사이에서 영력을 중재하는 무당, 혹은 샤만이다.

먼저, 영적인 존재들은 인간 세상에 중대한 영향을 행사하는 자들로 신들, 영들,그리고 최고신을 포함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영적 존재들은 귀신과 조상신인데,무속 신봉자들이 굿을 의뢰하는 주목적은 재난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귀신과 조상신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그들을 위무함으로써 재난을 극복하고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샤머니즘의 영적 존재들은 인간의 윤리적인 삶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은 자신을 어떻게 대우하느냐를 중시하는데, 가령 정성껏 제물을 차리고 제사하는 식의 물질적 대우를 받으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물질적인 축복을 가져다준다.

다음으로, 영력을 추구하는 무속 신봉자들은 재난, 질병, 경제적인 위기 등을 피하거나 극복하고, 대신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누리기 위해 영적인 존재들에게 나아가는데, 이들을 신적 존재들과 연결시켜 주는 자가 샤만혹은 무당이다.

인간에게 복을 주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초자연적 존재(神的存在)의 몫이다. 그러나 샤머니즘의 중심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샤만이다.왜냐하면 복을 내리는 초자연적 존재를 움직이는 존재가 샤만이기 때문이다.

샤머니즘은 퉁구스어 샤만’(saman)에서부터 러시아어를 통해 유래된 말로 특히 시베리아(북방권)와 중앙아시아(남방권, 히말라야)에서 두드러졌던 종교 현상이다. 그리고 두 영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의 국가들이 양자로부터 영향을 주고받았거나 교류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 양종승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중심의 샤머니즘과 그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 축에서 시작된 샤먼문화는 인류문화의 창조와 지배 그리고 발전과 전승을 총체적으로 아우르고 있는 이른바 역사, 종교, 문화,사회의 총체적 시원이라고 말한다. 샤머니즘이 삼라만상을 지배해 온 신앙체계라고 한다면 여기에는 우주 만물의 창조와 진화는 물론이고 전파와 답습 그리고 현존하는 이유 및 그 실체가 있기 때문에 이를 탐구하는 것은 곧 인류문화의 총체를 알아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복만을 강조하는 종교는 미신으로 전락한다. 반대로 기복성이 전혀 없으면 종교가 아니다.그래서 종교에는 적절하고 현실성 있는 인간의 기복과 거기에 응답하는 절대신의 시복(施福)이 있다. 기복 없는 시복은 복지사업이지 종교가 아니다."

기복화’(祈福化)기복적’(祈福的)의 문제는 각 시대의 종교들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용광로 속에 녹아들어 기복화된 종교와 전략적으로 일부분 기복적이 된 종교는 다르다. 각 시대의 종교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재래종교의 용광로 속에 들어가 기복화 혹은 샤머니즘화 되었다는 유동식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종교마다 기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기복화되었다기보다는 대중화, 민중화의 결과, 기복적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기복화이든지 기복적이든지 한국의 불교와 유교와 기독교 속에는 모두 샤머니즘적 신앙이 나타난다. 한국의 기독교 역시 기복의 종교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불교와 유교가 샤머니즘을 만나 혼합주의적 성격, 기복적 성격을 갖게 된 것처럼, 기독교도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첫 번째 증거로, 기복신앙이 성도의 마음에 깊이 침투해 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에 대한 약속 가운데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는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과 배려로서(27:16-19), 정의와 사랑이 결핍된 복의 추구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런데 사랑과 배려를 실천해야 할 기독교 신앙이 나만 잘되면 된다라는 기복적 사고 속에 물들어 공동체 의식과 책임적 삶보다는 외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기복적인 신앙은 성도의 신앙생활을 바꾸었다.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 봉사를 하고, 헌금을 하는 등,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목적이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한 것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현세적 복에 대한 잘못된 이해도 기복신앙을 갖게 했다. 축복을 교회에 대한 자신의 헌신의 결과로 여기고, 복을 받기 위해 더욱 열정적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다.

정용섭은 기복신앙의 위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를 믿으면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물질과 건강까지 얻는다는 신앙은 겉으로는 축복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저주로 작용될 수 있다. 특히 교인들을 자기 재물과 건강, 성공에 끊임없이 집착하게 만듦으로써 기독교적인 영성과 심성,?하나님 나라의 역사적 성격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세 번째로, 기복신앙은 설교자의 설교를 바꾸었다. 기복설교가 교회를 성장시키고, 성도들의 헌신을 이끌어 내는 좋은 방편이라 여겨 축복을 남발하는 설교가 늘어나게 되었다. 전해야 할 성경 말씀을 제쳐 놓고 설교하는 설교자도 심각하지만, 설교자가 쏟아 놓는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고 여기는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이윤재는 기복에 빠진 기독교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기복신앙을 만난 교회는 마치 굿판처럼 되고 말았다. 목회자는 무당처럼, 하나님은 신령처럼 인식된다. 성도는 단지 구경꾼일 뿐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하나님을 향한 전인적 고백으로서의 예배, 성도의 교제 등을 발견하기 어렵다. 무교에서는 굿판이 크면 좋은 굿이라고 말한다. 기복신앙을 만난 기독교 신앙은 어느덧 물량주의에 빠져 큰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인식에 젖어 버리고 말았다.한국교회는 양적 성장 지상주의라는 함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도 수많은 무당이 굿을 하고 있는 나라다. 기독교인들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종교와 관계없이 기복신앙의 영향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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