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과 연탄, 개안수술까지… 가난한 이웃의 안식처였던 정릉 안디옥교회
- 강제집행 계고장 날아와 존폐 기로… 발 벗고 나선 예장합동 재개발위원회
20년 넘게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에서 가장 낮은 곳을 지켜온 작은 교회가 재개발의 거센 파도 앞에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757번지 일대 정릉골.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곳에서 정릉 안디옥교회(담임 안연수 목사)는 지난 2004년 첫 예배를 드린 이후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난한 이웃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동네 교회'로 살아왔다.
그러나 최근 정릉골 재개발사업이 급물살을 타면서 교회는 강제집행 계고장을 받고 존폐의 기로에 섰다. 수십 년간 주민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예배당은 이제 법적으로는 '무허가 건물'이라는 이름 아래 철거 대상이 된 것이다.
성도들은 “재개발에 사라지는 것은 단지 작은 예배당 하나가 아니다”며 “달동네 주민들의 삶을 붙들어 온 사랑과 섬김의 역사가 함께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며 한국교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20년 동안 정릉골을 품은 교회… "주민들의 마지막 안식처"
성도들이 이토록 안타까워 하는 것은 정릉 안디옥교회는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간 안연수 목사는 교회의 문을 언제나 가난한 주민들을 향해 열어 놓았었다.
명절이면 빠짐없이 쌀을 나누었고, 겨울이면 독거노인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연탄과 생필품을 전달했다.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개안수술비를 지원하며 다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왔고, 외로운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주며 삶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 주었다.
주민들에게 안디옥교회는 예배당 이상의 의미였다. 힘들 때 가장 먼저 찾아갈 수 있는 사랑방이었고, 함께 울어주고 기도해 주는 가족 같은 공동체였다.
안연수 목사는 "교회가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웃을 섬겼을 뿐"이라며 "정릉골 주민들과 함께 살아온 시간이 어느덧 20년이 넘었다"고 회고했다.
국공유지 위에 지어졌던 예배당... 재개발 사업에 치명타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헌신은 재개발 앞에서 아무런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교회가 처음 정릉골에 자리 잡을 당시에는 지역 특성상 토지 소유권 없이 건물만 세워 사용하는 사례가 흔했다. 교회 역시 건물에 대한 재산권만 형성된 상태에서 사역을 이어왔고, 수십 년 동안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이러한 구조는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2024년 관리처분 인가 당시 안연수 목사는 심각한 건강 악화로 생사의 갈림길을 오갔다. 재개발 절차를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상황에서 조합원 신청 시기를 놓쳤고, 결국 교회는 '현금청산 대상'으로 분류됐다.
조합이 공탁한 보상금은 약 5천여만 원. 그러나 국공유지 변상금 대납 등을 감안하면 실제 손에 남는 금액은 교회를 이전하기는커녕 기본적인 생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근에는 강제집행 계고장까지 전달되면서 교회는 사실상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기총 전 사무총장 김정환 목사, 1년 째 도움의 손길
예장합동 재개발건축위원회도 본격 지원 나서
정릉 안디옥교회의 안타까운 사정에 가장 먼저 반응한 이는 김정환 목사(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였다. 김 목사는 지난해부터 벌써 1년 가까이 정릉골을 오르내리며 안디옥교회를 무상으로 돕고 있다. 철거민 목회를 직접 경험했던 그는 이번 사안을 결코 한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정릉 안디옥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정릉골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쌀과 연탄을 나누며, 개안수술까지 지원했던 사랑의 현장이었다"며 "교회가 흘린 눈물과 헌신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런 교회가 법의 한계와 자본의 논리 속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사라진다면 그것은 안디옥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수치"라며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신앙 공동체와 공공적 가치를 한국교회가 함께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교회가 속한 예장합동측(총회장 장봉생 목사) 재개발건축위원회도 최근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지난 18일 정릉골 재개발 현장을 찾은 전문위원 김철원 장로는 "안디옥교회와 같은 사례는 전국 재개발 현장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며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형성된 신앙 공동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개발 이후에도 공동체가 계속 사역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를 향한 관련 입법 추진과 조합과의 협의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종교시설이 보호받듯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 온 교회의 신앙적·공공적 가치 역시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합 측 "법적 한계 내 최선 다했다“
교회의 이같은 사정에 정릉골 재개발조합측은 안타까움은 공감하면서도, 법적 절차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합 법무팀 관계자는 "국공유지 위 무허가 건물이라는 특수성에 더해 관리처분 당시 신청이 이루어지지 않아 법적으로 현금청산 처리가 완료된 상태"라며 "조합 차원에서 교회의 국유지 변상금 8,000여만 원을 대신 납부하고 이를 면제해 주는 방식 등 실질적으로 1억 원 안팎의 배려안을 검토해 왔으나, 조합원 총회 승인 및 관련 법률상 교회를 존치하거나 수억 원대의 이전 비용을 추가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강제집행이라는 위기 속에서 안연수 목사는 아픈 몸을 이끌고 매일같이 교회를 지키며 하루하루 기도로 한국교회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
안 목사는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셔서 세운 교회가 바로 안디옥교회"라며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그저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고 이웃을 위해 기도할 작은 처소만이라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릉골에서 전하는 이 작은 교회의 절박한 호소를 한국교회와 성도님들이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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