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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모세의 탄생과 두 어머니’ (시 90: 1~12)

  • 교회연합신문 기자
  • 입력 2026.10.2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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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준형 목사(드림교회, 국제독립교회연합회)

박준형 목사 새 사진.jpg

 

 이집트 땅에 히브리 민족이 들어와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히브리 민족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요셉이 형들의 미움과 시기 때문에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갔다가 그곳 이집트에서 총리가 됐던 덕분에 온 가족이 선진국인 이집트로 옮겨 와서 살게 됩니다. 그렇게 히브리 민족이 거기 이집트에서 번성하게 되자 본국인 이집트는 이들을 미워해서 더욱 핍박하게 됩니다.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모세가 태어났을 때, 이집트의 바로 왕은 히브리인의 남자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토록 끔찍하고 무서운 명령은 영혼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왕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이인 모세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자기가 가진 악성, 즉 그 안에 있었던 사탄의 성향은 이미 모세가 어떤 자인지, 그가 어떤 역할을 할지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대 유명한 교부였던 닛사의 그레고리(St. Gregory of Nyssa, 335-395)는, 이집트의 바로 왕이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 태어난 남자아이들을 몰살시키고자 했던 일에 대해, 당시 ‘남자아이’를 남성성을 대표해서 덕을 위해 굳세게 싸우는 삶으로, 즉 절제와 정결을 지키고, 불의한 권력에도 굽히지 않는 삶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여자아이’는 당시의 상징 언어로, 욕망과 감각에 끌려가며 쉽게 흔들리는 삶을 가리켰는데, 이러한 성향을 대개 폭군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서 바로왕은 자신에게 맞서 싸울만한 위험이 있는 덕의 삶, 즉 남성은 없애고, 감각과 열정을 지닌 여자만을 남기려 했다고 말합니다.

 

즉 바로는 사람을 욕망이라는 함정에 묶어 두려는 폭군이며, 모세의 탄생은 그 폭군을 이길만한 덕스러움의 시작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남녀의 구분은 그레고리가 살던 시대의 대표적인 상징적인 표현으로 상당 부분 이해될 수 있지만, 남성과 여성의 가치를 나누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바로 왕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시작된 덕으로서의 모세의 삶을 막으려고 대학살이라는 비극을 자행했지만, 모세의 어머니를 통해 아기를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운 것처럼, 하나님이 정하신 믿음의 행보는 거친 세상의 물결 속에서 영혼을 보호하는 상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기 모세를 건져 자기 아들로 삼은 바로의 딸은 정작 자신에게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히브리인이었지만 아름다운 모세를 자기의 아들로 삼고자 했습니다. 교부 닛사의 그레고리는 이 바로의 딸을 가리켜 교회 밖의 세상, 혹은 세상의 지식으로 비유합니다.

 

바로의 딸은 생산하는 생명력이 없는 세상적 존재로 하나님 나라의 가문과 대를 잇지 못하는 어머니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친모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떨어진 세상적인 상황이나 방법은 어느 정도의 필요는 있지만, 오래 고민하고 많이 배워도 하나님을 아는 빛을 얻지 못하면 참된 생명을 낳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도 모세가 공주의 집 궁궐에서 자란 것처럼, 세상 학문에서 유익하거나 필요한 것을 배울 수는 있었습니다. 다만 모세는 친어머니를 유모로 삼아 친어머니의 젖을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인도하심 속에 자신이 히브리 민족임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잊지 않게 됩니다.

 

즉 비유한다면, 모세의 친어머니는 교회이고, 그 젖은 교회의 가르침과 삶의 규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세상 지식을 배우더라도 영혼은 교회의 가르침으로 길러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모세가 자라 두 어머니의 차이를 알아보고 자기의 뿌리를 찾아갔듯,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 속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와 그 계획을 발견하기 위해 자기 정욕과 자기 가문에서 이어져 오는 정욕을 잘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분별력은 무엇이 참 생명을 주는지, 무엇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인지, 무엇이 건강한 영혼과 올바른 인생길을 가도록 해주는지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아침에 돋는 풀 같은 짧은 인생임을 깨달아,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분별력을 갖고 오늘을 지혜롭게 살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성실히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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