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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회 논평] 광주가 평양인가? 중공영웅과 북한영웅을 기리는가?​
    우리 사회가 분별력을 상실하고, 국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어 매우 우려되고 있다. 이는 국가의 체제마저 허물려는 편향된 정치가들이 문제이고, 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문제가 이를 더욱 고착화 시키고 있다. 최근 광주광역시(시장 강기정)에서는 광주 출신이라며, 중공(中共)의 영웅이며, 북한의 영웅인 정율성(본명: 정부은)을 기리는 거리를 조성하고 기념공원을 만드는데 무려 48억 원을 투입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며, 중공으로 귀화한 인물을 지역 출신이라 하여 이처럼 높이는 것은 대한민국 건국과 독립을 위해 싸웠던 분들에 대한 모독이며, 국민 무시이다. 정율성은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났고,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혁명간부학교에 들어갔고, 거기에서 공부하던 중 지린성에서 주로 활약하던 사회주의 계열의 의열단에 들어갔다. 그리고 1936년에는 중국의 좌파 청년들의 모임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그리고 1937년 옌안으로 옮겨 중국 공산당의 루쉰예술학원과 중국인민항일군사정치대학에서 학습하고, 1939년 중국 공산당의 당원이 되었으며, 공산주의 혁명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가 작곡한 ‘팔로군행진곡’은 중국인민해방군 군가(軍歌)가 되었다. 그의 대부분의 노래는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민족의 비극인 6.25남침 전쟁이 벌어졌을 때에도 마우쩌둥과 저우언라이가 한국전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을 돕게 하기 위하여 1950년 12월 그를 북한에 들어가게 했다. 그는 이때 ‘조선인민군행진곡’을 작곡하여, 6.25전쟁 때 북한 공산군들을 한껏 고무시키는 역할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1976년 12월 중국의 베이징에서 사망하여 중국 공산당이 배려한 바바오산의 혁명투사 묘지에 묻힌 사람이다. 그는 중공의 영웅이며, 북한의 영웅일 뿐 대한민국을 위하여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6.25전쟁에 중공군 일원으로 직접 참전하여 우리나라를 괴롭힌 사람이다. 그런데도 광주광역시가 막대한 시민의 세금으로 ‘정율성 유적지 역사공원 조성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광주 시민이나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양이나 베이징을 위한 것이 아닌가 의아스럽다. 광주시가 내세울만한 인물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광주 시민들은 공산주의자를 떠받들고 추앙하는 일을 관망만 할 것인가? 이 사업이 올해까지 진행된다고 하는데, 말이 되는가? 광주광역시는 이런 해괴한 일들을 당장 중단시켜야 하며, 이렇듯 막대한 예산을 시민들의 복지와 문화, 지역발전과 시민의식을 고취시키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자격 없는 사람을 분별없이, 아무나 기념하고 기리는 일들이 없어져야 한다.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8-2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진심을 다했을 뿐입니다”
    지지난주 금요일에는 한교총 상임회의가 열렸습니다. 저는 이미 총회장도 지냈고 한교총 회장을 지냈지만 지금까지 줄곧 한국교회 연합기관 통합을 외쳐오고 활동을 해왔습니다. 제가 한교총 대표회장일 때도 연합사업을 추진해 왔지만 그때는 한기총이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최종적으로 이루지 못했었습니다. 대표회장 임기가 지난 후에도 연합기관 통합위원장 직을 맡아 세부합의서까지 도출해 냈습니다. 그런데 일부 교단과 교단장의 이견으로 인해 어그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분들의 요구사항을 다 합의 도출해서 완전히 되는 줄 알았습니다. 현재 대표회장인 이영훈 대표회장님을 비롯해서 대다수의 주요 교단장들이 내부적으로 합의를 하였기 때문에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일부 몇 교단장들의 이견이 표출된 것입니다. 사실 그런 이견은 옛날에 교단장들이 똑같이 주장한 것입이지요. 그래서 저는 한교총 실무자에게 한기총에서 이단자들을 어떻게 제명했거나 행정보류를 시켰는가 등을 다 드러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잘 될 거라고, 일부러 세세한 걸 드러낼 필요가 없고 선통합 후에 해도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생각지도 못한 교단에서 또 생각지도 못한 주장들이 제기된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 앞서서 연합기관 대표회장을 한 사람으로서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통합위원회 서기로 하여금 발표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견들이 나오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제가 일어나서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저도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100% 있는 게 아닙니다. 저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끼리만이라도 얼마나 만족하고 행복한 케슬과 같습니까?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끼리 모여서 의견 다툼을 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 역사를 보십시오. 아니,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십시오. 왜 기독교가 무너지고 망했습니까? 그건 분열과 다툼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반기독교 악법을 막기 위해 가장 최후의 전선에서 싸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코로나 상황 때도 정부와 맞서서 예배 조율과 협상에 나선 사람입니다. 그런데 서로 이견이 있을 때 앞서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곤혹스럽고 당황스러운지 아십니까? 기독교가 분열할 때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 줄 아십니까? 반기독교 정서를 갖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종교를 길들이기를 좋아하는 편일 것입니다. 저는 보수주의와 청교도 개혁신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결코 이단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공적교회와 공익을 위해서는 이단을 제외하고 하나로 뭉쳐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줄기차게 연합사업을 강조해 온 사람입니다.” 그러자 여기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시기를 언제 할 것인가를 논의하였는데, 원래는 9월 총회 전에 마무리를 짓고 총회 때 보고 하려고 했지만, 통합은 하되 결의는 총회 후에 하자고 하였습니다. 지난주는 비서들이 휴가를 갔기 때문에 다른 부목사님이 운전하고 갔습니다. 오면서 하는 말이 “정말 왜 저렇게 연합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할까요? 정말 제 심장도 쪼여 가는데 목사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그러나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과 악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것은 이해와 인식 그리고 의식의 차이일 뿐이죠. 얼마나 많은 걸 보고 얼마나 넓은 걸 보느냐에 대한 사고의 차이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선악을 넘어서, 옳고 그름을 넘어서 진심을 다했을 뿐입니다. 여기까지 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주님 앞에 최선을 다했고 진심을 다했음을 감사할 뿐입니다.” 사실 교계 연합기관이 분열을 안 했으면 이렇게 다시 연합을 하려고 몸부림을 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열을 하였기 때문에 계속 또 다른 분열이 연쇄작용을 일으킨 것입니다. 저는 영화 ‘오펜하이머’가 떠올랐습니다. 주인공 오펜하이머가 가장 고민하고 우려했던 것은 자신이 만든 원자폭탄으로 인한 파멸의 연쇄작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소폭탄 제작을 반대하고 원자력 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서 노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교계 분열의 연쇄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다시 연합을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늦은 여름밤인데도 숫매미들의 노랫소리가 무성합니다. 저 매미소리와 함께 저는 주님 앞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한국교회 공적교회와 공적사역을 위해서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노라고, 그리고 진심을 다 바쳤노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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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8-27
  • [언론회 논평] 삼보일배(三​步一拜)는 기독교의 추모 방식이 아니다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10.29이태원참사를기억하고행동하는그리스도인’의 명목으로, ‘10.29이태원참사진상규명특별법제정촉구 및 300일추모4대종교삼보일배’를 한다는 소식이 알려진다. 지난해 10월 할로윈데이에 이태원 지역에서 사고가 난 것을 추모하며,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면, 기독교계의 진보 연합 단체, 진보 성향의 교단과 단체, 또 윤리나 개혁을 주장하는 단체, 진보 사회 선교 단체들과 진보 성향 일부 교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태원 사고에 대하여 충분한 원인 규명이나 처리에 관한 문제라면 그에 대하여 정부나 수사당국에 요구하면 될 것이다. 비록 반기독교적이고 상업화된 문화를 따르는, 할로윈 행사에서 젊은이들이 사고를 당한 것은 지금도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위하여 특별법을 만들고, 또 그리스도인들이 추모를 한다며 삼보일배를 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이는 기독교적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보일배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삼보는 불교의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부처와 불교 교리와 승려에게 귀의(歸依)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고 속세에 더렵혀진 진심(塵心)을 버리고 부끄러운 치심(恥心)을 멸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삼보를 걷고 일배(一拜)하는 것이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간 분들의 가족을 위로한다고 하여도 불교에 귀의하면서까지 이런 행사를 할 필요가 있는가? 이런 것을 추모한다는 것을 기화(奇貨)로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이는 종교혼합과 다원주의를 조장하는 것으로, 결코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종교가 정치성을 띤 집회를 주도하여 국민들을 선동하고, 특히 기독교의 이름으로 비성경적인 방법으로 추모에 참여한다는 것은 반드시 재고(再考)되어야 한다. 다른 종교는 모르겠지만,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사회적 문제에 접근하고, 다른 종교의 수행방식을 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성경 십계명은 제2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20:4~5)고 하신다. 그리고 제3계명에서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출20:7)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기독교인의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저촉(抵觸)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도 기독교인이 이런 모임에 삼보일배(三步一拜)로 동참한다면, 이는 기독교인의 행동이 아니라 이방인들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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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8-2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보람과 아쉬움은 항상 공존한다”
    로마는 보병을 통해서 세계를 정복했다고 하지요. 그다음에 칭기즈칸은 기마병으로, 영국은 함대로, 미국은 에어포스 공군을 통해서 세계 최강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에어포스보다 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미디어’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디어 사역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요즘 미디어를 통해서 자극적이고 충동적 영상들이 얼마나 많이 배포되고 있습니까? 이런 때에 건강한 정신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저는 교회가 공적 미디어 사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미디어 영상 속에 인류의 보편 가치인 인간애와 인류애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기독교적인 선한 이미지도 첨가하고 싶은 선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단일 교회로서 공영방송에 십수 차례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방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러시아의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중심으로 다큐를 만들기로 했는데 제작사를 바꿨습니다. 한마디로 다큐의 질은 훌륭하고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다큐가 끝나고 여러 문자가 왔는데 대표적으로 두 종류의 문자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대학교수님이 보내오신 문자인데요.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가장 크게 남습니다. 흉상과 기념비 세우기에 앞장서신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다큐를 보면서, 한국기독교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도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외람되지만, 기독교 목회자의 공적 사역은 교회와 교인들의 영적, 사회적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목회자는 영적 지도와 가르침 못지않게, 사회적 봉사와 영향력이 매우 중요한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역사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변화를 주도하시는 목사님의 활동은 존경스러웠습니다. 목사님이 그동안의 종교적 역량과 활동을 기반으로, 훌륭한 ‘종교적 평화주의자’로서 족적을 남겨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종교 공동체 내에서 평화와 헌신, 사랑의 가치를 강조하는 문화를 형성하시고, 사회적 모범을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저는 청년 시절, 제가 다니던 교회로부터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 되기를 권유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만일 그때 권유를 받아 신학을 했더라면, 지금쯤 어떤 목사가 되어 있을까 상상해 봅니다. 아마 소강석 목사님의 ‘창의성과 혁신’, ‘사회적 변화에 기여하는 공적사역’의 모습은 아마 저의 롤모델 이었을겁니다.” 이분은 우리 교회가 공공성과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일을 한다는 걸 치하해 온 문자였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이번 다큐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나라 사랑, 숨어 있는 역사를 재조명해 줌으로 인해 아주 만족스럽고 절대적 보람과 가치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런 문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목사님, 10교구 이00 집사인데요, 최재형 선생 다큐를 보며 광복절에 즈음하여 너무나 의미 있는 사역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잊혀져가는 역사를 기억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위인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이전 다큐와 다른 세련된 촬영과 앵글 그리고 객관적 시각으로 진행되는 스토리 전개 등이 폭넓게 접근해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역시 허브넷이구나, 동네 한 바퀴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평소에 목사님이 강조하시던 양부모로부터 전수받은 최재형 선생님의 기독교 정신과 가치가 배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참 아쉬웠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애국, 애민했던 선생님의 정신이 덜 드러나지 않았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후손들의 제사 예식도 그렇고요. 그래도 목사님의 시를 통해서 충분히 세계관 전달이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그 먼 길을 돌아 돌아서 가신 보람이있었네요. 주님께서 기뻐하실 다큐로 기억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라고 왜 이런 마음이 없겠습니까? 꼬마 아이가 아버지를 따라 연해주로 가고, 그리고 집을 나가 포시에트 항구에 쓰러져 있던 그를 발견하고 양아들로 삼아 공부를 가르치고 기독교 신앙을 심어준 양부모, 세계를 항해하며 식견을 넓혀서 블라디보스토크의 거상이 되어 학교를 짓고 교회를 세운 감명 깊은 이야기, 흙수저 출신이었지만 대부호가 되고, 특별히 기독교 신앙의 정신인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신념으로 고려인들에게 페치카(벽난로)가 되어주고 독립운동을 했던 스토리로 풀어가도 정말 휴머니티 하면서도 감동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제작자가 아니고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의 아쉬움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성도들에게는 송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꼭 아쉬움만 남는 것은 아닙니다. 보람과 가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어느 목회자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어느 교회가 발상이라도 했겠습니까? 인간이 살아가고 일을 하면서 모든 것에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또 아쉬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보람과 아쉬움은 항상 공존하고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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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8-20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강성률 목사의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 석수장이가 바위를 부술 때 큰 망치를 가지고 무조건 때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위 사이에 난 틈을 찾습니다. 조그마한 틈이 보이면 쐐기도끼를 틈 사이에 끼우고 비로소 망치질을 합니다. 그러면 큰 바위라도 갈라지고 깨어집니다. 마귀가 신앙인들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틈을 노립니다. 마귀에게 보이는 틈이야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크게 두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분노는 마귀에게 주는 틈입니다. 만일 분노가 오래 지체되면 마귀는 여지없이 그 틈을 뚫고 분을 품은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고 맙니다. 사울이 멸망하게 된 것도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라는 여인들의 춤추며 노래하는 소리에 격분하였기 때문입니다(삼상18:6-8). 압살롬이 스스로 죽음의 길로 간 것도 자신의 누이 다말을 강간한 이복형 암논에 대하여 오랫동안 분을 품은 결과였습니다(삼하13:32).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아사왕은 그의 잘못을 책망하였던 선지자에게 노하다가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죽게 되었고(대하16장), 매우 총명했던 웃시아 왕 역시 분노를 품다가 한센병이 발하여 여생을 별궁에서 홀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대하26:16-23). 이처럼 분노는 마귀로 틈타게 하여 상대방보다 분노하는 자신이 더 해를 입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분을 품지 않을까요? 분노는 증상입니다. 허리가 쑤시고 아픈 것은 병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듯 분노 역시 증상입니다. 하지만 디스크가 돌출 되었거나 근육이 뭉쳤다면 그것은 허리 통증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분노가 병의 증상이라면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정의로 대표되는 자기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뜻이 가로 막히고 상처를 받을 때 분노를 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품지 않으려면 자신의 지정의를 십자가에 처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자신의 지정의를 무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잠3:6).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일어나는 일들마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장이 ‘쿵’ 찍혀 있음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 베냐민 지파 사람 시므이가 그를 저주하였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16:7-8). 이 말에 대하여 아비새는 격분하여 다윗이 명하기만 하면 단칼에 시므이의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삼하16:10). 이처럼 다윗은 시므이를 단순한 시므이로 보지 않고, 그를 저주하라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시므이에게 격분하지 않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을 계기로 삼았습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하고”(삼하16:12). 그의 말대로 하나님께서는 시므이의 저주를 다윗에게 선으로 바꾸셔서, 다윗이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신앙인들이 분노하지 않게하는 첩경입니다. 만일 분노하였다면 본문처럼 해가 지기 전에 화해하고 풀어버려야 합니다. 두 번째로 마귀가 신앙인들에게 노리는 틈은 그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마귀와 악한 자들은 강자에게는 굴욕적이며 약자에게는 한 없이 강한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는 두려움 없이 처음부터 강하게 나와야 합니다. 한 번은 아람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왕 아합에게 사자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처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왕상20:3). 그러자 아합왕이 다음과 같이 응답하였습니다.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아합은 이렇게 대답하면 벤하닷이 만족하게 여겨 거기서 멈출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벤하닷은 한 층 더 강하게 나옵니다.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내 신복을 네게 보내리니 저희가 네 집과 네 신복의 집을 수탐하여 무릇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왕상20:1-6). 처음에는 신복의 집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두 번째 사자를 보냈을 때는 신복까지 포함되어 모두 가져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합이 처음부터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탄의 공격은 받아주면 받아줄수록 더 큰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니 처음에 딱 거절해야 합니다. 술이나 담배 도박 마약 등은 사탄의 사자들인데 처음에 거절해야지 조금씩 양보하면 마침내 그들이 사람을 삼키고 맙니다. 처음에 항거해야 합니다. 때가 늦으면 이기기 힘듭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도 처음에 과감하게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혼미하게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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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IC 칼럼
    2023-08-19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교육 3권 몰각(沒覺)의 의미’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조선의 근간이었다. 그것에 대한 현대적 평가는 당시를 기준으로는 의미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적어도 조선 사회를 굳건히 세웠고, 조선을 지탱시킨 사회적 내공의 근저가 이 것이다. 조선의 패망은 관리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유교적 질서의 허례허식과 파당정치가 가져온 필연적 귀결이었지만, 그런 나라가 그나마 5백년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군사부일체의 사회적 동의와 실천이었다. 그런데 비단 조선사회가 아니더라도 한 나라의 교육을 지탱하는 교사와 부모와 사회적 권위는 절대적이고, 질서와 윤리적 가치를 고양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이것을 필자는 교사의 훈육권(敎師勸), 부모의 양육권(父母權), 사회적 계도권(啓導權)이라고 정의한다. 교사들이 가르치고 훈육할 권리(敎師勸), 부모들이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할 권리(父母權), 임금에 준하는 사회적 질서 유지를 위한 권위(啓導權)가 제대로 보장된 나라는 언제나 강성하고 미래 전망이 밝은 나라였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반면 이것이 무너진 나라는 다른 곳에서 생긴 허점을 견딜만한 내공을 갖추지 못해 결국 망국 지경에 이르고야 만다. 가슴 아프지만 지금 우리의 교육 현장은 이 세 가지가 모두가 누군가 의도된 과정을 거쳐 무너져 버렸다. 아무리 경제가 성장하고 강대한 군사력을 가져도 이를 다루고 사용할 미래 인재가 무너지고 망가지면 그 경제와 군사력이 오히려 자신을 해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새내기 교사의 슬픈 사연을 되뇌고자 함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 교육의 죽음이고 미래의 죽음이다. 이런 참담한 현실에서 무너져 내린 교사권과 부모권과 계도권을 되살려내지 못하면 더이상 우리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례, 무지한 일이다. 소위 이해찬 세대라 불리는 교육의 결과는 철저한 교사권의 붕괴였다. 권위주의를 버리라는 노무현을 오해한 이들이 소중한 권위를 버려버렸다. 이 흐름에서 어른됨, 선배됨이 무시되고, 부모의 권위와 교육권은 무너지고 말았다. 서구의 교육제도를 취사선택하여 나라의 근간을 훼손하며 우리의 교육을 무너뜨리는 데 악용하였다. 서구 교육의 내면은 철저한 교권중심주의이다. 겉으로 보면 학생들의 학습권이 철저히 보장되고, 젊은이들이 마구잡이처럼 자유분방하여 버릇없어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그것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교권이 버티고 있다. 즉 학습권은 사회적 합의가 있는 권위있는 교권에 기초해 있다는 말이다. 늦었지만 지난 18일 이주호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교권 회복·보호를 위한 시·도교육감 간담회’에서 “정당한 교육 활동과 학습권이 보장되고 교권과 학생 인권이 균형 잡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교육부의 교권 회복·보호 종합 방안 시안에서 완성도 높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이 말을 믿고 싶고, 진심으로 기대한다. 모두가 힘을 모아 악성 민원을 근절하고 교원과 학부모의 건전한 소통을 위한 방안을 찾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기회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부 세력들에게 속아 우롱당하여 스스로 내버린 교사들의 교권(敎師勸)과 부모의 양육권(父母權)과 사회적 질서 계도권(啓導權)을 되찾아 바로 세워야만 한다. 이 교육 삼권의 몰각(沒覺)에 교회와 목회자들이 책임이 크다. 우리 교육에서 기독교를 빼고, 가정 훈육에서 교회교육을 빼고 이야기할 것이 얼마나 있는가? 온전한 질서와 가치는 올바른 윤리적 실천에서 온다고 가르쳤다. 이것을 몰각(沒覺)한 채 교회 성장에만 매달려 방관하고 무책임했다는 채무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현장으로 가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자. 이것이 망가진 교육의 피해자 우리 자녀들에 대한 진정한 회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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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3-08-19
  • [언론회 논평] 새로운 가치로 건국된 대한민국 역사를 돌아보아야
    올해로 광복 78주년과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국 75주년을 맞게 된다. 우리나라는 수천 년 동안 왕이 다스리는 전제주의(專制主義) 국가였다(세계 많은 나라들도 대부분 그랬다) 그러다가 1910년 일제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게 된다. 그 후 식민지로 36년을 지내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열강들에 의한 해방을 1945년 맞이하게 된 것이 벌써 78년이 되었다. 그리고 3년 후 대한민국의 헌법을 만들고 새로운 나라, 국민이 주인 되고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졌다(이런 나라들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으로 성공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38선 이북에는 소련의 지지를 받은 김일성이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소중히 알고, 모든 국민들이 이런 국가의 정체성 속에서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의 비교는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세력들은 여전히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하여 술수를 부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오랜 동안의 전제주의 국가 체제를 지양(止揚)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분은 당연히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신(神)의 섭리가 있었던 인물이다. 이승만은 1875년에 태어나 21세 때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독립협회와 연루되어 7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는 1895년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향(志向)하는 미국으로 건너가, 1907년 조지워싱턴대학교 정치학 학사, 1908년 하버드대학교 석사, 그리고 1910년 프린스턴대학교 국제정치학박사를 받는다. 이때가 35살 때였다. 이렇듯 그는 망한 조선의 몰락한 왕손의 가문에서 태어나, 개혁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민주주의 본산인 미국에 가서 공부하므로, 새로운 국가 질서와 토대를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과정과 그에 따른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한국 독립을 위한 외교적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방된 나라에 돌아와서는 1948년 제헌의회 의장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질서를 상징하는 헌법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또 같은 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반제국주의를 내세운 저항적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된 상태였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정부를 원하던 때, 이승만 대통령은 그렇게 되면 공산화가 된다는 것을 알고,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주장하여 공산화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였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이승만 대통령이 추구한 가치는 민주 모범국가 건설, 모범적 기독교 국가 건설, 반소•반공의 보루, 평등사회 구현, 문명한 부강국가 건설이었다. 이 중에 기독교 국가 건설을 빼고는 모두 그가 뜻하던 나라로 이루어진 셈이다. 1948년 당시 우리나라는 인구 2,002만 명, 예산 54억 3,230만 원, 1인당 국민소득 50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세계에서도 최빈국이었다. 이를 북한과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 1950년 6.25때 만해도 남한은 인구가 2,019만 명인데, 북한은 975만이었으나, 무역총액은 남한이 1억 4천만 달러, 북한은 우리보다 4배 가까이 많은 5억 1천만 달러로 차이가 났다. 그러나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2023년 현재, 총인구 5,155만 명, 국가 1년 예산 639조원, 국민 1인당 소득 32,661달러이며, 경제적인 면에서 세계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의 비교에서도 국가의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혹독하고 부정적으로 매기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본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1953년 6월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석방한 것을 두고, 당시 미 국무부 극동 담당 차관보였던 월터 로버트슨은 ‘이승만은 빈틈이 없고 책략이 풍부한 인물이라’고 하였다. 또 미국의 37대 대통령을 지낸 리처드 닉슨은 당시 부통령으로 한국을 방문한 후에 ‘나는 이승만의 용기와 뛰어난 지성에 감명을 받았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시카고 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사학과 석좌교수는 ‘그는 포커꾼으로서의 타고난 기술로 최대의 자릿세를 뽑아냈다’고 역설적 언어로 칭찬하였다. 마크 클라크 전 유엔군 사령관은 ‘한국의 애국자 이승만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반공 지도자로 존경한다’고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도 이승만 대통령이 서거한 후, ‘조국 독립운동의 원훈(元勳)이요, 초대 건국 대통령이라’고 인정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전문가들은 ‘이승만은 외교의 달인이다. 그렇기에 세계를 알고, 여러 민족을 알고, 다양한 문화를 알았다. 나라를 지키는 능력이 비범했다. 세계 정세에 해박했던 것은 미국 동부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을 평가한 것에서도 국민들의 지지는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높았다. 2002년 한국대통령평가위원회가 역대 대통령들의 자질을 5개 분야로 나누어 평가하였다(비전 제시, 인사 관리, 위기 관리, 민주적 정책 결정 및 실행, 도덕성) 그런데 1위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62.70, 두 번째는 김대중 대통령으로 58.45, 다음이 이승만 대통령으로 56.95점을 받았다. 당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이었다는 점,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이 씌워진 상태에서의 조사였음에도 그 정도 평가를 받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공과 과로 나뉜다.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에서도 공을 7로, 과를 3으로 본다. 이는 3선을 한 것과 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부정선거가 이뤄진 것 때문으로 본다. 즉 이승만 대통령은 1956년 3선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이로 인하여 탁월한 지성과 고결한 도덕성이 감퇴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전문가들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1950년 북한의 남침에 의하여 3년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루웠지만, 정치는 안정되지 못했고, 당시 야당은 이승만 대통령을 위기에 몰려고 끈질기게 내각책임제를 주장하였고, 1956년 치뤄진 3대 대통령 선거에서 과거 공산주의자였던 후보를 중심으로 진보•좌파가 무섭게 결집하고, 건국•호국 세력의 통일 방안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출마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공산화되었을 것이라는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한 예측이 있다. 6.25전쟁 이후에도 한미동맹, 교육 혁명 등 대다수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의존했다는 평가이다. 그러므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공과 과가 7:3이라는 것도 마땅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올해로 해방 78주년과 정부설립 75주년을 맞는다. 우리들은 이런 일들에 대하여 기념하고 기뻐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그사이 잃어버리고 바르게 정립하지 못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올해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바른 평가와 함께 국민들의 힘으로 기념관을 세운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승만을 ‘신격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역사적 진실과 실체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해방과 함께 이뤄낸 건국에 준하는 업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8-1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시설보다 중요한 것들
    저는 지난주부터 한교총 사무총장에게 “폭염 때문에 잼버리 대회가 난항을 겪고 있으니 한국교회에서 해야 할 게 뭐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선 ‘생수 5만 병 보내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1만 병을 지원했는데 이것 가지고는 너무 허전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주최 측으로부터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할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용은 수천 명도 할 수 있지만 샤워시설이 따르지를 못합니다. 더더구나 우리 교회는 지금 여름수련회 집회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관을 개방하면 바닥에 침구를 깔고 500명 이상은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간작업을 해서 화장실을 샤워시설로 개조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날 480명이 입소를 했습니다. 애들이 교회 들어오자마자 “야,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느냐.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교회에서 밥만 제공한 게 아니라 간식까지 제공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캐리비안베이를 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새만금에서 흘린 땀을 캐리비안베이에서 다 식혀 버리도록 한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모든 경비를 다 제공했고요. 그런데 다음날 연락이 왔습니다. 교회보다는 용인시를 비롯해서 다른 숙박 시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2인 1실이고 샤워 시설도 제대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솔하는 대장들이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그쪽으로 가고 싶은지 설문조사를 하니까 10분의 9가 교회에 남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청소년 수련원이나 기업체 연수원에 가면 훨씬 시설이 좋죠. 그렇지만 캐리비안베이를 비롯해서 교회에서 하는 행사와 프로그램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화요일부터 마지막날까지 이재훈 목사님 주도로 메디컬처치를 오픈하였습니다. 실제로 의사와 간호사들이 직접 하얀 가운을 입고 무료 진료를 해 주고 약을 주니까 아이들이 더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종민 목사님을 비롯해서 모든 스텝들에게 “최대한으로 잘 섬겨 주세요. 특별히 중국에서 온 아이들은 새만금 잼버리의 폭염의 기억들을 다 지워버리고 우리 교회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도록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 주세요”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회에 남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방송에서 우리 교회라고 콕 집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강당 바닥에서 잠을 자도록 했다는 부정적 보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아침을 먹으러 나온 아이들이 핸드폰을 켜들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 뭐래요? 왜 이렇게 썼대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쓰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단장님들도 서류 뭉치를 들고 와서 걱정스럽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사는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가 기자회견이라도 할까요?” 그러나 우리 스텝들은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단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합시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보고를 받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빠른 뉴스와 정확한 보도를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뉴스를 할 때 심층 취재를 좀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니 우리가 원해서 아이들을 숙박하게 한 것도 아니고 갈 데가 없으니까 우선 종교시설과 여러 교육시설을 알아보고 우리한테 요청해서 온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밤을 새워서 샤워시설을 만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점이 있었겠지만. 그런 부분만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인가, 언론은 균형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더 좋은 시설이 있으니까 가지 않겠느냐고 묻고 그들이 가면 정말로 환송을 잘 해주려고 했는데 그들은 끝까지 교회에 남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MZ세대와 기성세대의 차이가 대단한 줄 알았는데 MZ세대라고 별 차이가 없구나. 그들도 시설보다 중요한 게 친절이고 환대고 섬김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지금 바깥에선 아무 행사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시원한 실내 공간에서 재미있는 레크레이션을 하고 심지어는 CCM 율동까지 하면서 완전히 디쇽(영원한 불꽃은 없으니 빛날 때 만끽하라)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떤 청소년은 진짜 어렸을 때 교회에 나갔었는데 처음으로 교회로 와서 숙식을 해봤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정성을 다해서 사랑해 주고 섬겨주는 것을 보면서 교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나가고 안 나가고를 떠나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애와 인류애를 실천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는 반드시 이런 일을 해야 됩니다. 저는 수련회 집회 중에도 비전홀과 각 교육관 시설을 개방하여 화장실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성도들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교회 화장실을 들리지 않고 집회를 마친 후에 집에 가서 용변을 보신 성도들에게 한없이 송구하고 추앙합니다. 그리고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재정을 투자하여도 모든 걸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신 장로님들과 성도님께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역시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살아남는 길은 처치 션샤인을 해야 합니다. 무조건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 교회가 앞장서서 사회적 돌봄과 시대적 아우름에 앞장서야 교회가 산다고 생각합니다. 퇴소하는 마지막 날까지 그들이 행복한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부정적 성향의 보도를 한 언론은 이런 것을 알고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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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8-13
  • [언론회 논평] 정치 지도자들의 말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혁신위원장으로 활동하는 김은경 씨가 노인을 비하•폄하 발언하여 전 국민들의 질타를 받고, 특히 노인들이 한탄어린 사과를 요청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가 있게 된 것은 그들도 모두 노인인 부모들을 통하여 태어났고, 또 그분들의 지금까지의 온갖 희생과 헌신의 바탕위에서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을 모르는가? 그런데도 공당(公黨)의 중요 요직에 있는 책임감 있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노인들의 마음과 자존감을 무참하게 짓밟아 놓고서도, 처음에는 사과할 일이 아니라는 혁신위 대변인 입장을 보면, 큰 실망이다. 그리고 위원장은 4일이 지난 후에 마지 못해 국민들에게 사과한 것은 국민을 국민답게 여기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월에도 혁신위원장을 세웠지만, 그가 전에 ‘천안함은 자폭’이라는 발언이 문제가 되어 사퇴한 일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김은경 위원장은 노인들을 비하하여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젊은이들과) 똑같이 표결을 하냐’는 인용으로, 반민주적, 반인륜적인 물의를 빚었다. 그런데 민주당쪽 인사들의 노인 비하•폄하 발언은 전에서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2004년 3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60,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하였다. 또 2004년 9월 천정배 원내 대표는 ‘노인들은 곧 돌아가실 분이다. 무슨 힘이 있나’라고 하였다. 그해 11월 국회의원이었던 유시민 씨는 ‘50대에 접어들게 되면 죽어 나가는 뇌세포가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많다. 사람이 멍청해진다’고 하였다. 역시 그해 김용민 총선 후보는 ‘시청에 에스컬레이트를 다 없애면 노인들이 엄두가 나지 않아 시청에 안 와’라는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2011년 조국은 트위터에서 부모님을 투표 못하게 여행을 보내드렸다는 말에 ‘진짜 효자’라고 하였다. 2014년 10월 국회의원 설훈은 ‘나이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져’라고 하였다. 그리고 2020년 국회의원 김한규는 ‘부모님 투표소 못 가게 하라’고 하였다. 2022년 1월 국회의원 최강욱은 ‘노인층 맹목적, 청년층 화풀이 지지 염려’라고 하였다. 그리고 윤호중 2022년 5월 비상대책위원장은 ‘일흔 넘어 뭘 배우나’라고 하였다. 거기에다 이번에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노인 비하•폄하 발언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편 2015년 12월 당시 새정치연합 대표 문재인 씨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노인 세대는 박근혜 정권을 지지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어르신 세대는 바꿔야 한다는 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지난 해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층이 901만 명이다.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그런데 이렇듯 시시때때로 노인층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분명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하여 민주당 쪽 인사들도 우려를 표한다. ‘민주당 쪽 사람들이 계몽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고, 국민들을 가르치려는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민주당쪽은 노인층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연령대가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고, 젊은 세대와 갈라치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어찌 우리가 부모 없이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부모 세대를 홀대하고 비하하고 낮춰보는 것은 패륜(悖倫)이다. 아무리 정치권이 자기들이 지지하는 세력들을 결집·충동시키려 한 것이라지만, 이것은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잃는 것이다. 성경은 백발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한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언16:31) 또 하나님과 같이 공경하라고 하신다. “너는 센 머리(백발)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위기19:32) 노인을 얕잡아보고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것은 마치 물 없는 강에 있는 배와 같다. 열매 없는 가지와 같다. 추락하는 비행기와 같다. 정치에 앞서 수신(修身)을 하라. 이후로 정치권에서 자기들의 부모 세대, 조부모 세대를 비아냥거리고 무시하는 비인간적 비인륜적 발언은 다시 나오지 않기 바란다.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8-12
  • [언론회 논평] 성소수자를 옹호한 낯뜨거운 아동용 도서들
    최근 충청남도 본회의에서는 모 도의원이 제기한 일선 학교와 공공도서관에 아동용으로 비치된 도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에 대하여 충청남도지사가 공감한다는 취지의 답변이 있었다. 그 내용은 충남 지역의 홍성, 천안, 서산, 예산, 아산, 공주, 서천 등 관내 여러 곳의 학교 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 아이들이 보라고 비치된 책들 가운데 성소수자를 옹호하고, 수간(獸姦-짐승과의 변태적 성행위)과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한 표현들이 낯이 뜨거울 정도의 것들이 있는데, 이에 대한 충청남도와 충남교육청이 깊이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이를 질의한 지 모 도의원은 충남 도내 학교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 비치된 수백 권의 도서에서 에넬 섹스(항문성교) 동물과의 수간, 항문 애무, 쓰리썸(다자간 성행위) 동성끼리 성행위를 하는 방법이 표현된 책들이 다량 비치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책들은 생명의 존엄함과 건전한 성교육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오히려 자라나는 세대들을 마치 인간성을 버린,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만들려는 악행으로 본다. 이런 행위는 주로 진보•좌파 교육감들이 득세하면서 뿌린 독초이며 독아(毒蛾)처럼, 언제 촉수를 드러내어 찌를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이미 2020년에 학부모 단체들의 항의로 인하여 여성가족부가 아동들에게 부적절한 도서들을 일부 회수한 바 있지만, 아직도 학교 곳곳에 뿌린 악서(惡書)들이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민들은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열심히 교육세를 냈는데, 정작 진보 교육 당국에서는 이런 낯부끄러운 책들을 다량으로, 무한정으로 보급하여 아이들의 정신과 영혼을 망치게 해 온 것으로, 통탄할 일이다. 차제에 전국의 모든 학교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 비치된 이런 종류의 책들은 모두 수거하여 폐기해야 한다. 교육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것을 왜곡하고, 인권이라는 빌미로 우리 아이들을 망가트리는데 앞장선 ‘더러운 교육’은 학교 일선에서 몰아내야 한다. 또 이런 교육과 그에 따른 잡서(雜書)들이 횡행하는 것은 모두 ‘학생인권조례’의 위력이다. 지난 27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이 설문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사 대상 교사 32,951명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83.1%를 차지했다. 결국 학생인권조례는 교사들에 대해서는 교권을 크게 추락시켰고, 이를 추구하는 전교조의 지원을 받은 진보•좌파 교육감과 그 세력들은 악서들을 만들어 일선 학교와 공공도서관에 마구 뿌리는 역할을 해 온 것이다. 현재 충청남도는 ‘주민 발의’에 의하여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나온 상태이며, 향후 토론회 등을 거쳐서 충청남도 본회의를 통하여 표결되는 과정이 남아 있는데, 전국에서 가장 먼저 악법을 폐지하는 기록을 남기기 바란다. 학생인권조례는 처음에는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신장(伸張)해야 한다는 다소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면 할수록 교육과 인성과 건강한 자아실현을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조례는 가장 빠르게 폐지되어야 한다. 또 일선 도서관에 비치된 악서들은 속히 전량 수거하여 폐기함으로, 우리 교육 방향이 ‘참된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주머니 속에 감추어진 흉기는 언젠가는 자신을 찌르고, 남을 찌르고, 우리 모두를 찌르게 할 것이다. 좌파•진보 교육감들이 만든 학생인권조례는 마치 주머니 속의 흉기와 같다. 이것은 교육의 미래를 찌르고, 건강하게 자라 나야 할 미래 세대들의 앞날을 찔러, 정상적 사고(思考)의 불능과 불구(不具)를 가져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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