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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미니즘과 동성애/심 만 섭 목사
    최근 한국의 유명한 신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문제가 나왔고, 또 어느 다른 신학교에서는 교수들의 강의를 성희롱으로 학생들이 문제를 삼아 교계를 당혹케 한다. 당연히 거룩한 선지학교에서 이런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세상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게 가고 있어 안타깝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재 한국 사회를 달구고 있는 동성애와 페미니즘 때문이다. 이런 담론(談論)들은 동성애 보다는 페미니즘의 역사가 오래되었다. 먼저 페미니즘을 살펴보자. 페미니즘은 소위 ‘제1물결’ ‘제2물결’ ‘제3물결’이 있다. 제1물결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여성들의 법적, 사회적, 정치적 지위와 권리 획득을 위한 노력이었다. 사실 서구 사회에서 여성들의 참정권은 처음부터 남성들과 함께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20세기가 되면서, 남·녀에게 동등한 권리가 주어졌다. 그리고 제2물결은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68혁명’과 괘를 같이한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세력을 합해 이런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때의 슬로건은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 한다’는 것이었다. 즉 기존의 모든 질서와 가치와 체계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때 페미니즘 운동은 남녀의 지배관계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생긴다고 보고, 이것을 거부하는 운동이 격화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론을 제공한 사람으로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이다. 그녀는 <제2의 성>이라는 저서를 남겼는데, 그의 명제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성’을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적인 성(gender)의 구분을 가능케 하였다. 또 케이트 밀렛은 <성의 정치학>에서 ‘여성억압의 뿌리는 가부장제의 성 및 성별 체계에 깊이 박혀 있다’는 주장으로, 사적인 영역에 속하던 ‘성’의 문제를 정치적이고,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낸 것이다. 또 한 사람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여성이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임신과 출산을 거부해야 한다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주장을 하게 된다. 이런 운동은 1970년대를 넘어서면서 시들해졌다. 그런데 1990년대 언어학자이며, 페미니스트이고, 레즈비언이었던 쥬디스 버틀러가 <젠더 트러블-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한다. ‘생물학적인 성과 사회적인 성은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며, 성은 사회 속에서 반복적인 수행을 통해 구성하는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수자 섹슈얼리티를 확장시켜, 퀴어 이론을 제공한 것이다. 이런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동성애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그 근거를 제공하기로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동성애를 차별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고, 소위 ‘차별금지법’ 제정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고, 각 교육청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비롯하여, 각 지자체에서는 각종 ‘인권조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서울시청 앞에서의 퀴어축제가 벌어지고, 이것을 전국으로 확산하려는 시도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 정부에서는 엄청난 금액을 책정하여 ‘성인지’교육이란 명목으로 사회 각계에 걸쳐 교육하고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일선 초·중·고교에서는 총체적인 성(사회적인 성·문화적인 성·생물학적인 성)을 도덕교과서, 보건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서 ‘성평화동아리’를 학교에서 강제로 해체하여 벌어진 사건도 페미니즘, 동성애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2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바른인권여성연합>이 개최된 포럼에 참석한 그 학교의 한 학생은 ‘페미니즘은 가정을 해체하고 우리 사회의 안녕과 질서의 체계를 무너뜨리며, 인간들이 살아오면서 세워온 원칙들을 해체하며, 인류의 문명과 발전에 퇴행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한국은 서구 사회가 1970년대 겪었던 제2의 페미니즘 물결과 1990년대 나타난 제3의 물결이 동시에 몰려와서 기승을 부린다. 그런 운동은 이미 상당히 알려진 대로, 반사회적, 반국가적, 반종교적, 반가정적이며, 남녀의 관계를 혐오와 폭력과 일방적 강요로 인해, 평화와 화합을 깨는 무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분명한 노선을 정해야 한다. 세속적이고 비성경적인 페미니즘과 동성애 사상과 이데올로기에 동조하여, 그들에 의한 물결에 떠내려가든지, 아니면 진리 말씀과 창조 질서를 중시하여, 우리 사회 마지노선을 지킬 것인가를 말이다. ‘동성애가 대세라느니’ ‘성소수자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느니’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느니’하는 말은,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 모두에게 혼란·혼선을 주는 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9-12-06
  • 교권과 국권 간의 긴장과 갈등/임 영 천 목사
    거칠고 성급한 장군 출신인 테오도시우스가 4세기말(379년)에 동(東)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수년 뒤인 387년에 황제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한 폭동 사건이 터졌다. 이는 제국이 세금을 너무 무겁게 올린 데 대한 시민들의 불만에서 터진 것이었다. 중과세에 항거해 일어난 안디옥(안티오크)의 폭도들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와 황후의 동상을 넘어뜨리고 그것들을 시내 거리로 끌고 다니면서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황제의 보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안디옥의 감독이 진사단(陳謝團)을 구성하여 직접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황궁으로 찾아가 황제의 분노를 달래기에 최선을 다했다. 이때 1년 전(386)부터 안디옥의 장로로 안수를 받고 열심히 설교를 하고 있었던 크리소스토무스가 나서서 유창한 설교를 하였으니,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민들로 하여금 사람(황제)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갈파해 시민들과 황제 측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 몫을 담당하였다. 결국 황제는 안디옥의 장로 크리소스토무스의 간절하고도 강렬한 설복 때문에 폭도들에 대한 보복을 멈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1년 뒤(388)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서(西)로마의 찬탈자 막시무스를 아퀼레이아 전투에서 패퇴시키고 이어서 그를 처형함으로써 동서 통일 로마제국의 통합 황제가 되었다. 경사라면 경사였다. 그러나 바로 그해(388)에 다른 한 종교적 충돌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황제의 처지를 다시 난처하게 만들었다. 제국의 동쪽 끝,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강변의 한 도시 칼리니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열성이 극심했던 그곳의 감독이 열광적인 신도들과 함께 어느 이단자들의 집회소와 유대인의 회당을 부수고 불살라 버린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지방의 평화를 교란시킨 죄를 응징하는 의미로 그 감독을 문책하고 또 가해자의 부담으로 그 파괴, 소실된 곳을 재건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374년부터 밀라노의 감독으로 재직해온 암브로시우스가 황제에게 그 명령을 거두어들일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교회 측이 유대인의 회당을 재건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적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일이 되므로 그 명령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암브로시우스 감독의 큰 영향력을 의식한 황제는 이번에도 앞서 내렸던 그 명령을 철회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뒤(390)에 또 하나의 큰 사건이 터졌다. 마케도니아의 도시 데살로니가에서 유혈 폭동이 일어나 황제의 측근(주둔군 사령관)인 장교 한 사람이 살해된 사건이었다. 그 내막은 이러했다. 데살로니가에 유명한 전차 경주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황제의 장교에게 체포당할 만한 위법의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데 경기 날짜가 다가오자 사람들은 그 전차 경주자의 출전 모습을 보기 위하여, 성급하게도 결국 그 장교를 살해해 버렸다. 이에 화가 난 황제는 “좋아. 어디 너희들끼리 실컷 경기를 해 보라지.”라고 심술궂게 응수하였다. 감추어진 속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원형경기장 안으로 황제의 무서운 음모를 모르는 7천여 명의 관중들이 모여들었다. 군인들도 따라 들어갔다. 그 경기장이 관중들로 꽉 차자 군인들은 문을 걸어 잠근 뒤 무려 세 시간 동안 그 경기장 안의 모든 사람들을 남김없이 학살하였다. 7천여 명의 관객들이 모두 시체로 변해 버렸다. 지난번 안디옥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기(황제)의 동상을 파괴했던 불쾌한 기억을 지니고 있었던 황제는 이번 자기의 측근 장교를 살해한 일에 대해서는 본때를 보여주기로 작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 감독은 황제의 이 만행을 도저히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황제를 파문시킨다는 결의를 하고 그에게 회개를 촉구해 보았다. 그러나 별 반응이 없자 감독은 참회의 증거를 보일 때까지 교회에 결코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황제에게 분명히 일러두었다. 결국 견딜 수 없게 된 황제는 홧김에 일을 처리하는 일이 없도록 누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40일이 경과하기 전에는 절대로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해야만 하였다. 또한 황제는 모든 공중이 보는 앞에서 교회 바닥에 누워 손발을 하늘로 뻗고서 하나님과 교인들에게 죄의 용서를 호소했다. 이런 통회자복이 있은 후 황제는 교회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암브로시우스 감독은 교회의,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주창하고, 교회의 교권을 국가의 국권으로부터 독립시키는 데 굳건한 토대를 세운 성직자로 알려져 있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9-11-18
  • 언론의 시각이 왜 이다지도 다른가?-심 만 섭 목사
    지난 세 달여 동안 우리 사회는 한 장관 후보자와 그의 장관 임명을 놓고, 엄청난 국력 낭비와 국민들을 피곤하고, 절망케 하였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마치 서로가 적을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는 형국이었다. ‘개혁’이 목표라고 하지만, 그것 때문에 ‘블랙홀’에 빠져 들었다. 우리는 어떤 특정인의 의지나 소신만으로 우리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그가 그 일에 여러 면에서 적임자가 되느냐, 못되느냐의 판단이 우선이다. 만약 이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목표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이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것은 허공을 때리는 헛손질에 불과하다. 이제는 국민들의 저항에 한풀 꺾인 모습이다. 양식 있는 국민들이 호응하지 않는 정책은 한낱 고집과 독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이 사건에 대하여 각 언론들은 제각각 “사설”을 통해, 그 의중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그 시각이 첨예하게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그 표현들을 통하여, 우리 사회 갈등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서부터 그런 생각들이 대립하는 근원인지 살펴보자. 먼저 진보 언론의 대표적인 한겨레는 ‘그 동안 00 장관과 그의 가족에게 쏟아진 무책임한 의혹 제기와 언론 보도, 여기에 국민 동의도 없이 ‘정치적 판관’을 자처하고 나선 검찰의 수사가 지나치고 가혹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한다. 또 ‘검찰은 대통령 인사권과 국회의 장관 인준 절차에 무리하게 개입한 행태가 ‘00 논란’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키웠음을 엄중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검찰을 비판하고 있다. 또 다른 진보지인 경향신문은 ‘검찰 개혁의 본령은 비대해진 검찰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는 것이다. 이번 0 장관 일가 수사만 하더라도 검찰은 주어진 권한을 넘어 대통령 인사권과 국회의 인준 절차를 무력화하고 장관 임명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검찰 개혁 못지않게 언론 개혁도 시급한 과제임을 일깨워줬다. 시민들은 의혹 부풀리기, 인권 침해, 검증되지 않은 피의 사실 유포 등 무책임한 보도를 쏟아낸 언론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검찰과 언론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다. 반면에 다른 언론들은 어떤가? 국민일보는 ‘00 법무부장관이 사퇴했다.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게 하고, 불공정과 불법을 비호하는 수많은 궤변과 요설을 낳게 하고 많은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사퇴했다. 하지만 진작 물러나야 했다’ ‘결국 0 장관은 자진 사퇴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 의해 끌어내려졌다고 봐야 한다’고 00 장관 자신에게 문제점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문화일보는 ‘00 사태로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 000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했던 문 대통령은 0 전 장관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자 ‘절제된 검찰권’을 주문하여 검찰을 압박했다’ ‘겉으로 공정과 정의를 표방한 집권 세력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계기도 됐다’고 주장한다. 즉 대통령과 여당의 문제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동아일보는 ‘검찰에 대한 감독권과 인사권을 행사하는 법무부장관에 일가족이 검찰 수사 대상인 사람을 앉힌 것도 민주주의와 법치의 정신에 반하는 비정상을 초래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하나가 돼 검찰의 0 장관 수사를 공격하면서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신뢰에 흠집을 낸 것도 문제다. 00사태는 국민의 상식과 순리에 저항하는 아집의 정치는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가에 큰 상처를 남긴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보도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사필귀정이자 만시지탄이다. 그 동안 온 나라가 ‘00 블랙홀’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대한민국은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두 동강이 나 국론분열의 민낯을 드러냈다’ ‘0 장관의 사퇴로 검찰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그 동안 0 장관 가족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이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에 입힌 상처는 너무 크다’고 하여 앞으로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민의와 상식을 거스른 대통령의 0 씨 임명은 나라를 내전 상태로 몰아갔다’ ‘00 사태가 남긴 상처는 0 씨 사퇴만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반칙과 특혜로 살아온 사람에게 법무부장관 임명장을 줬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대통령의 취임 전 약속은 이제 희극적 대사가 됐다’고 비판한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 다음 단계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자명하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반성하면 다음을 향해 바르게 나아갈 기회가 있게 된다. 그러나 잘못도 잘못으로 보지 못하거나, 그것을 제쳐두고 덧칠을 하게 된다면, 이는 거듭된 패착이 될 수 있다. 그 만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9-10-23
  • 농민들의 축제와 일제(日帝)의 몰락/임 영 천 목사
    제74주년 8·15 광복절을 올해에 맞고 보내면서 고(故) 정종수 작가의 단편소설 <해방>이란 작품이 특별히 필자의 관심의 표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매우 ‘흥미’ 있는 작품이면서, 또 더욱 ‘의미’ 있는 작품으로도 여겨졌기 때문이다. 정 작가의 <해방>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4반세기 전이라고 할 1996년에 계간 <농민문학> 가을호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 작품 속의 스토리가 매우 극적으로 전개되면서 독자의 흥미를 한껏 유발하는가 하면, 뒤에 가서는 독자들을 깨우치는 강한 힘을 발휘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이기도 하다. 어떤 작품이기에 그럴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1945년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단 사흘 동안에 걸쳐 일어난, 어느 농촌 마을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들을 이야기의 축으로 전개한 농촌소설이다. 얼마 전 일제의 강제징용에 끌려간 주인공 박만수의 아들 정구가 이날(13일) 귀향했다는 낭보가 전해지면서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들끓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청년들이 모두 다 죽어서 백골(白骨)로나 귀향하거나, 아니면 아예 종무소식(終無消息)인 채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었는데, 어떻게 그의 아들 정구가 이렇게 두 눈이 시퍼렇게 살아 가지고 돌아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축제의 분위기는 너무도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고작 하루가 지나고 난 바로 다음날(14일) 더 놀라운 일이 새로 벌어졌다. 긴 칼을 찬 검은 양복의 일본 장정이 느닷없이 박만수의 집으로 들이닥쳐서 “박정구 있느냐?” 하고 잠시 호통을 쳤는가 싶었는데, 이에 지레 놀랐던지 아들 정구가 스스로 출두해 순순히 일본 순사 무리에게 끌려가고 말았으니, 정구는 이를테면 도망병 신세였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아버지 박만수가 이 사태에 대해 너무도 놀랐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날 밤 정신이 완전히 나간 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한 박만수는 그러나 다음날(15일) 아침 일찍 어제 모 심었던 논으로 향했다. 이날은 이야기 속의 제3일, 바로 1945년 8월15일 정오(正午)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을회관 쪽에서 “대한민국 만세! 독립 만세!”라고 외치는 소리들이 들리는가 하면 “해방이다, 해방!” 하는 톤이 높은 부르짖음도 들려 왔다. 이때 박만수는 갑자기 마을회관 쪽을 향해 달려가면서 외쳐대기 시작했다. “해방이다아. 정구야아, 해방이다아!” 이러는 그에게 해방이란 사건은 곧 자기 아들의 석방이었다. 그에게 있어 해방은 무엇보다도 아들의 무사 귀환이란 보다 구체적인 사실과 관련되는 일이었다. 어제 아들이 자기 면전에서 일본 순사들에게 연행됨으로써 먹구름 상태였던 박만수의 얼굴은 바로 하루 뒤인 오늘(15일), 활짝 웃는 해(태양)의 얼굴로 뒤바뀌어진 것이었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작품 속에는 몇 가지의 축제 행위들이 나타나는데, 이런 카니발적인 성격의 축제는 러시아의 문예이론가 미하일 바흐친이 규정한 이른바 ‘뒤집혀진 삶’, 또는 ‘거꾸로 된 세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농민들은 자기들의 축제를 통하여 일제에 대한 평소의 저항의식을 그런 집단유희를 통해 분출하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그 축제를 통하여 농민들은 일시적이나마 일제의 압제와 질곡으로부터 해방감을 만끽하는 것이다.실제로는 도망병 신세에 불과했던 아들이 귀향했다고 하여 아버지가 온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는 일은 확실히 일제 패망의 예조를 보여주는, 일종의 ‘뒤집혀진 삶’의 예행연습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8·15 해방의 축제를 온 마을 사람들이 마음껏 즐기는 행위 역시 그 집단 연행자들이 이전과는 달리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게 되었음을 실제로 확인하는 행위라고 보겠다. 이 축제 행위는 사회·정치적 장벽이 갑자기 허물어지면서, 지금껏 한국인들을 억압해오던 일본 순사들이나 억압받던 한국 백성들이나 양쪽 모두가 서로 평등한 위치에 놓이게 된 사실을 자축하고 그 기쁨을 만끽하는 향연이라 하겠으며, 이 집단적인 축제 행위가 진행되는 동안 일상적인 삶을 지배해 오던 사회 질서나 법률, 또는 제도나 관습 등이 모두 중지(종식)되어 그 효력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천황 제도에 기초한 일본 군국주의를 뒤늦게나마 거역하는 한국 농민들의 오만스러운 축제 행위가 천조대신 숭배에 항거하고 동시에 동방요배나 신사참배도 송두리째 거부함으로써 결국 태양신에 대한 신성모독적인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 열기를 더해 갈 수 있었다고 본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9-10-17
  • 교회, 세상에 무엇을 줄 것인가?/이 효 상 목사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교회가 최근에는 자유주의 가치에 확고한 중심을 두고 대한민국이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분명한 정책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뛰어 넘어 정치적 참여를 위해 행보가 읽힌다.한국교회가 뜨겁다. 뜨거운 세상 복판 중심에 교회가 나섰기 때문이다. 찬반양론으로 뜨거워진 머리로는 해답이 없다. 분열된 감정의 표출과 정치적 행보로도 답이 없다. 특히 한기총의 전 대표회장의 정치발언은 일부 공감하는 측면도 있지만 한기총의 정체성과 추구하는 방향이 정치적인가를 묻게 한다. 이성보단 감성에 치중한 선동정치의 전행을 본 느낌이다. 기독정당을 위한 표를 가져오기 위한 전략인가?교회는 시대의 방관자인가? 적극적 참여자인가? 하는 문제를 넘어 북한과 미국과의 문제, 한·일간의 문제, 문재인 정부와 조국 장관에 대한 문제 등 현안이 교회가 목소리를 내며 적극 나서게 하는 이유다. 포퓰리즘의 극치를 넘어 선심정책이 날마다 발표되고 나라 돈이 거덜나고 빚은 쌓여만 간다. 결국 청구서는 국민들의 몫이다. 대한민국은 이념과 과거에 매몰된 무능한 운동권에 의해 한계를 경험하며,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극우는 적폐가 되고 과거는 친일, 친북은 종북, 한미는 영원한 동맹이라는 관념의 고착화는 불행하다. 탄핵과 과거에 매몰된 정치적 갈등을 미래의 희망으로 치환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차분함과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진중함이 요청되어 진다. 교회가 길거리로 나섰다. 길거리 기도회는 자유 민주주의체제, 한미동맹, 경제회복을 위하여, 위정자들이 정녕 국민을 위한 봉사자가 되도록 순수 기도집회를 하자는데 동의하면서도, 정치적이진 말아야 한다는 전제를 생각하게 된다. 분열된 지금의 교회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줄 것이 없기에 목소리 높여 피켓들고 거리로 나가는 것이 교회의 역할과 사명이 맞기는 한 것인가? 교회는 이런 골목대장식 앞장서는 행동이 아니라 우선 할 일은 한국교회 연합기관들이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 더 이상 여러 말로 분열과 갈등을 정당화하면 안된다. 그리고 과거의 민족주의 대신 미래와 글로벌 시민으로 시선을 돌려 국제적으로 당당하고 자부심 넘치는 나라가 되도록 하는 캠페인을 주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3.1운동의 중심이었던 민족교회로, 민족이 사는 길은 100주년을 보내면서 그 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의 자립을 모색하는 것이다.그러려면, 지금과 같은 중국이나 일본, 북한 그리고 심지어 미국에까지 의존하는 방식을 뛰어 넘어서야 한다. 중국의 저가 상품과 값싼 노동력, 일본의 기술이전, 미국의 동맹으로서 경제적 지원 과 맞물려 이 민족의 근면 성실함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져오는데 일익을 감당했다. 전쟁 폐허국에서 이렇게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경우가 없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축복이다. 그 중심에 교회가 있었다. 묵묵히 일하며 시대와 나라를 지킨 신앙인들이 있었다. 집안에 여러 자녀가 있는 것처럼 교회에도 마찬가지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두 자녀가 있다. 하물며 나라에도 다양한 세력이 존재한다. 혹시나 친중, 친일, 친미, 친북일지라도 어느 한 쪽을 무조건 비판할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 목표는 그것을 딛고 넘어서야 자주 독립국가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 길이 민족이 다시 사는 십자가의 길이자 제2의 안창호, 유관순의 길이다.교회는 교회의 길을 가야 한다. 지금 교회가 할 일이 있다. 교회가 다시 사는 길은 가슴을 넓혀 갈등과 분열의 시대에 보수든 진보든 품고 한강의 기적을 만든 국민적 역량을 다음세대와 함께 미래세대가 희망을 갖는 나라를 만들어 가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심과 역량을 쏟아야 한다. 교회여! 선동 정치에 발을 담구고 온 몸에 진흙탕 물로 뒤범벅되므로 교회의 사명을 잃어버리지 말자. 양극단의 길에서 정신 차리고 이성을 찾자. 시류에 영합하여 너무 흥분하다 교회의 본질을 벗어나진 않았는가? 한국교회가 그만 표류하고 갈 길을 찾게 되길 손 모아 기도하며, 교회는 교회이다. 교회가 이 시대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연지골
    • 토요시평
    2019-09-27
  • 진보의 민낯을 보는 참담함-심 만 섭 목사
    최근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9일 발표되면서, 우리 사회는 20여 일을 그 후보자의 여러 가지 드러난 문제로 인하여 들끓고 있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가 개최되기도 전에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불거져 나왔다. 한 마디로 ‘그런 줄 몰랐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모두 귀와 눈을 의심할 정도이다. 정말 국민들은 그 정도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려는 줄은 몰랐고, 자꾸 알려지는 문제들을 보면서도, 아니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 정권이 어떤 정권인가? 촛불로 전 정권을 무너뜨리고, 전직 대통령은 그대로 감옥행으로, 아직까지도 2년 넘게 영어(囹圄)의 몸이다. 그리고 이 정권의 실세 중에 최고였던 사람이 그 정도였나? 대통령께서 얼마나 신임하면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기고, 또 그 자리를 떠나는데, 곧 바로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했겠는가? 대통령은 제19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여 국민들의 심금(心琴)을 울렸다. 그런데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불거져 나온 문제는 자못 심각한 내용들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젊은이들을 분노케 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은 온갖 노력과 혼신의 힘을 다해서 노력해도 어려운데, 그 후보자의 딸은 고등학생 때부터 스팩을 관리하여 승승장구한 것을 보면서, 대학생과 청년들이 허탈해 하며, 심지어는 화내는 것도 지쳐서 ‘다 포기 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정말 꿈 많은 젊은이들에게 무슨 일을 한 것인가? 우리가 흔히 너무 실망스러울 때,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고 넋두리 한다.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사회 ‘적폐 청산’과 ‘개혁’을 말하던 진보계 인사들의 태도이다.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문제점이 이 정도 알려졌으면, 이제 바른 말을 해 줘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알려진 바로는 너무 실망스럽다. 어느 인사는 ‘이명박/박근혜 때 비해 조족지혈도 안 되는 사건’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00 물어뜯으려는 승냥이들이 더 안쓰러워’라고 했다. 그리고 모 인사는 ‘적폐들에게 00 넘기겠다는 자들은 무조건 적’이라고 했다. 또 어느 교육계 수장은 ‘딸 논문은 현장 실습보고서 성격의 에세이...뭐가 문제냐’고 했다. 그런가 하면 어느 방송인은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비판하는 청년을 ‘수꼴(수구꼴통)’로 표현했다.(나중에 사과했음) 우리 사회에서 한발 앞서 간다는 진보계 인사들의 말을 듣자니, 무엇이 ‘수구꼴통’인지 헷갈린다. 국민들의 여론도 들끓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50.4%로 절반을 넘었으며,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적합성에 대하여 ‘부적합’이 48%이며, ‘적합’은 18%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고위 공직과 권력을 가진 사람의 태도로써 맞을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26일에도 검찰개혁과 법무행정의 개혁을 천명했다. 그런데 정부쪽에서도 별다른 조치는 없는 것 같고, 오히려 청와대 쪽에서는 ‘알려진 문제점 가운데 상당 부분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주장한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느 언론인은 ‘근거가 분명한 합리적 지적도 가짜 뉴스로 앞 다퉈 매도한다. 위선의 상징 00에 대한 우상숭배 수준이다’라고 일갈한다. 우리는 정말 큰 혼란에 빠졌다. 지금까지 ‘빛’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빛으로 보려고 했다. 그런데 진짜 빛이 비춰지니 그들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러난다. 우리는 현재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서 빛과 그림자가 극명히 드러나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자기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남이 눈에 있는 티끌을 잘못되었다고 나무라고 있지 않은가? 적폐를 몰아낸다는 사람들이 더 큰 적폐를 싸안고 있는 것 아닌가? 어느 의사회에서 26일자 모 신문에 광고한 것의 제목을 보자. ‘000 대통령님 돈 없고 빽 없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게 정의입니까?’ 얼마 전까지 국민들을 상대로 정의를 부르짖고, 적폐청산을 침이 마르도록 외치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정의를 부르짖어야 할 때, 그들은 다 어디로 숨었는가? 이 땅의 진정한 정의와 공의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며, 그 분만이 정확한 심판을 펼치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갑자기 성경 마지막의 요한계시록 말씀이 떠오른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연지골
    • 토요시평
    2019-09-06
  • 어느 친일인사의 감춰진 속내/임 영 천 목사
    어느 TV방송사와 어떤 한 교육계 인사 사이에 시비(是非)가 붙었다. 그 시비의 내용인즉슨 폭력행위 대(對) 정당방위의 논란이었다. 방송사 측은 당신이 우리 기자에게 폭언과 폭력을 쓰지 않았느냐고 했고, 상대는 그것은 정당방위였다고 했다. 폭력행위와 정당방위-. 어느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더니 ‘폭력’을 “육체적 손상을 가져오고 정신적, 심리적 압박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러니까 폭력 행위는 상대에게 육체적 손상을 입히는 어떤 물리적 강제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물리적 강제력이 전혀 가해지지 않은 속에서 정당방위란 구실 하에 상대에게 어떤 육체적 손상을 입히는 행위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때는 그 육체적 손상을 입힌 사람이 바로 폭력 행위자가 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과거엔 아버지가 아들을 때려도 “교육 차원에서”란 구실로 적당히 변명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매질도 ‘폭행’이 될 수 있으며, 한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를 때려도 엄연한 법적 개념의 폭행이 된다.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훈계한다고 회초리를 들어도, 또 대학에서 교수가 제자에게 그렇게 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어른이랍시고 손아랫사람에게 함부로 손을 대게 되면 폭력을 쓴 것으로 간주되어 법적인 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느 어른이 무슨 일로 손아랫사람에게 손찌검을 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사후(事後) 그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는 게 가해자로서 취해야 할 정당한 도리이다. 손윗사람이 느닷없이 권위의식이 발동해 손아랫사람에게 손을 댔다면 그것은 엄연한 폭력이고 그 행위는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자신의 그 행위가 정당방위라 주장한다면 그것은 곧 적반하장(賊反荷杖)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서울대 명예교수요, 요즘 친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 집필자이기도 한 이영훈 대표저자와 MBC 방송사의 시사교양 프로 ‘스트레이트’ 취재진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보다 객관적인 위치에 자리해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시청자)의 위치에서 바라본 것을 적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건을 좀더 부연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시사교양 프로 ‘스트레이트’의 취재진이 몇 차례의 취재 요청에도 잘 응하지 않던 이영훈을 4일 그의 자택 앞에서 어렵사리 만나 소속과 신분을 밝힌 뒤 몇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갑자기 고성을 지르며 녹음 장비를 내려치더니 급기야 취재 기자에게까지 손을 대는 폭력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기자에게 “야, 인마” 등 폭언성 반말을 해 대며, 20여 분 동안 강압적 자세로 그만의 분풀이 식 훈계를 해 댔다고 한다. 그리곤 그날 저녁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 기자에 대한 자신의 폭력이 ‘정당방위’란 주장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MBC 기자회는 곧 그에 대한 반박 성명을 내었고, 방송기자연합회도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시사교양 프로 ‘스트레이트’의 방송을 금지해달라고 한 이영훈의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은 9일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는 소식이다. 전 민정수석 조국은 그의 그 말썽 많은 저작을 ‘구역질나는 책’이라 혹평했으며, 우리가 그를 ‘친일파’라고 부를 자유가 있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한편 자유한국당 의원 장제원도, 우리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옳지 않고, 강제 징용설은 허구일 뿐이라고 저자가 몰아붙이는 것은 “우리 역사에 대한 자해행위”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은 친일파가 아니라 독립운동가(차리석)의 후손이라고 변명한 데 대해서는 차리석의 가까운 후손이 나타나, 조상 이름을 팔 게 따로 있지, 라며 그를 매우 한심한 인간으로 치부하였다. 그리고 차리석을 자신의 외종조부라고 칭한 데 대해서도 외종조부가 아니라 외외증종조부일 뿐이라고 사실을 고쳐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가 돈 벌기 위해 자원했던 창부에 불과했다는 식으로 해석한 그의 잔인한 주장이라고 하겠다. 도대체 이러는 이영훈의 속내는 무엇일까? 그는 ‘이승만 학당’이란 기구의 운영자요, 식민지근대화론(식근론)의 기수들이 모인 낙성대경제연구소의 리더요, 그 자신이 그 식근론의 견인차 역할을 한 대표적 인사이며, 또한 이 모든 것들을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한국 뉴라이트 운동의 두취 격 인물이기도 하다는 데에서 답은 찾아져야 할 것이다. 그는 앞으로 그런 뜻을 지닌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오기를 걸기대(乞期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만이 그가 활개치고 살 수 있는 살맛나는 세상이겠기 때문이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9-08-21
  • 성경이 중요한가? 동성애 인권이 중요한가?/심만섭 목사
    우리 한국교회는 최근 동성애로 인한 도전을 심각하게 받고 있다. 서울에서는 시청 앞에서 수년간 동성애 축제를 서울시가 허락하여 벌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전국의 주요 도시들이 서울과 같은 동성애 축제를 벌이려고 하여서, 지역 주민들과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그런데다 각 지자체들은 동성애를 보호할 수 있는 각종 ‘인권 조례’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것들을 지역 주민들도 처음에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는 기독교와 시민 단체들에 의하여 그 저의(底意)를 알게 되고는, 지역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지자체들과 상당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경기도의회에서는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당초 기독교/시민단체들과 약속한 것을 깨고, 기습적으로 통과시켜, 경기도민들의 반발과 분노를 사고 있다. 동성애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성소수자들의 단순한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 문제가 아니라 성경에 의하여, 동성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교회의 입장을 잘 알고 있으면서, 교회를 공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라, 동성애는 건강한 가정을 깨고, 기독교의 진리를 부정함으로, 교회의 질서를 흔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014년에 동성애 합법화를 통과 시킬 때 침묵했던 영국교회는 지금은 동성애 문제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동성애를 인정하게 될 때, 단순히 이성/동성의 생물학적 성 구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학적 성을 말하는 ‘젠더’까지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수십 가지의 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그 혼란과 무질서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유명한 모 교단의 서울에 있는 모 신학대학에서는 3년 전부터 동성애 문제가 불거져, 교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 학교에서는 지난 2016년 신학생들이 성소수자의 날을 맞이하여 채플시간에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6색)색의 옷을 입고 참석하였다. 그리고 그 해에 신학대학가 발행하는 신학지에 동성애 모임을 우호적으로 소개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7년에는 역시 신학지에 퀴어신학운동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급기야 이 학교가 속한 교단에서는 2017년, 총회에서 동성애자가 신학대학에 입학할 수 없고, 이를 지지하는 교수와 교직원의 행동을 금하는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이 학교에서는 동성애와 관련된 학생들의 활동이 멈추지 않았다. 지난 해 5월에는 성소수자 날에 학생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채플에 참석하고, 예배당에서 무지개 깃발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하여, 학교 내, 교단 내 갈등이 점화되었다. 결국 신학대학에서는 총회의 결정에 따라 학생들을 징계하였으나, 지난 해 12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소수자인권위원회는 신학생들의 징계 처분을 무효 하라는 소송을 냈고, 이것을 법원에서는 이 달에, 이들에 대하여 징계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며, 징계 무효 결정을 하였다. 신학대학의 특수성과 교단의 결의에 반하는 법적 판단인 것이다. 교단에서는 이미 총회 결의를 한 바 있고, 신학대학교에서는 이들에 대한 징계 문제를 다시 검토해야 할 처지이다. 그런 가운데 이 교단에서는 동성애를 지지하는 목회자 후보생에게, 목사 안수를 주어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까지 겹쳐, 그 향방이 주목받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차별금지법’에 포함된 동성애 문제를 놓고 지난 수년간 열심히 싸워왔으나, 그러는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교회 속에 동성애의 그림자가 깊이 파고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드러내 놓고, 교회에 대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기독교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성경에 의한 것이다. 동성애를 성경에서는 엄하게 금하고 있으며, 죄로 규정하여, 하나님께 가증스런 행위로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동성애를 인정하라는 압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성소수자들에게도 ‘인권’이 있고, 인권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교회가 이를 받아들이면, 교회는 망가지게 된다. 지금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합법화를 시킨 구라파 나라들에서 교회들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는 말들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그래서 동성애는 어쩌면 21세기 ‘선악과’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교회가 동성애 문제에서, ‘성경법’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압력과 도전처럼 ‘인권법’을 따를 것인가? 이에 대하여 보다 분명한 태도를 취할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9-08-01
  • 개혁의 조건-강용원 박사
    개혁은 살아 존재하는 모든 유기체의 발전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리더의 존재와 리더와 구성원 간의 적합한 상호작용이 필수적인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오래 전 어느 일간신문에 ‘제왕들의 성공학’이라는 기획물이 연재된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고구려부터 조선대에 이르기까지 아홉 명의 왕을 중심으로 그들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분석되었다. 물론 다른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오늘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더 검토해 보아야 하겠지만, 몇 가지 좋은 시사점은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첫째로 눈에 띄는 것은 개혁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 즉 미래에 대한 확고한 꿈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의 성공에 도취되거나 성급한 개혁을 시도하는 일은 미래적인 안목이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온전한 개혁은 단지 눈에 보이는 문제의 해결만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것들을 요구한다. 물론 어느 시점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성격은 무엇이며 또한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작업 역시 보다 넓은 미래적 안목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개혁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넓은 그림 속에서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구성원의 설득과 동의를 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비전이 거시적인 방향의 제시라면 개혁은 실제적인 변화를 요청한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그 비전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개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과 정책이 있어도 백성의 동의나 공감을 받지 못했던 정치는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 분석의 결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며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나의 재임 중에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개혁을 실패하게 만든다. 개혁은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개혁과 혁명의 차이점이다. 셋째, 진정한 개혁은 자기개혁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정치적 지위나 입장을 앞세우며, 제 멋대로 행하는 자의(恣意)적 리더십이 실패를 가져왔다는 것은 이 점을 강조한다. 진정한 자기개혁이 없이는 동의와 설득,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지도자는 겸손하여야하고, 자기 한계성을 알아야 하며, 부단한 자기성찰을 필요로 한다. 자기만이 개혁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자신은 개혁의 대상이 된다. 많은 지도자들의 실패는 무엇보다도 자기관리에서의 실패이다. 넷째, 측근정치의 문제점이다. 측근정치가 이루어지면 의사수렴의 통로가 좁아져 군주는 한쪽 이야기만 듣게 되며, 공적인 관계가 아닌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많은 것을 의존하게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분파적 개혁은 성공의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끌어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념과 출신과 배경을 뛰어넘는 광범위한 인재의 풀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어적이거나 수세(守勢)적인 지도력, 분파적 개혁, 폐쇄적 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음은 자명한 일이다. 더 나아가 주도권, 이익이나 권력, 사리사욕의 쟁취를 위해서 개혁을 앞세운다면 이는 다시 자멸을 의미할 것이다. 이와 함께 근년에 제안된 ‘변혁적 리더십’의 개념 역시 중요한 시사점을 주며 이와 일맥상통하는 교훈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변혁적 리더십은 ‘거래적 리더십’과 대응되는 개념이다. 거래적 리더십은 단기성과를 보상으로 구성원의 동기를 유발하는 것임에 비해서 변혁적 리더십은 미래의 비전과 공동체적 사명감을 강조함으로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변혁적 리더십에서 리더는 우선 구성원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그 자신이 모델이 됨으로 구성원을 이끄는 힘이 되어야 한다. 또한 리더는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그런 변화의 의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비전과 영감을 제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리더는 낮은 수준의 신체적인 필요에 대한 구성원들의 관심을 높은 수준의 정신적인 필요로 끌어올린다. 여기서 항상 강조되는 것은 리더와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으로 여기에는 ‘지적자극’, ‘신뢰감’, ‘인격적 존중’, ‘수행과제의 가치와 당위성 강조’ 그리고 ‘영감적 동기부여’ 등이 포함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9-07-19
  • 친일 문인과 그 기념 문학상 시비(是非)-임 영 천 목사
    지난번 우리는 최남선 서정주 조연현 3인의 시비(詩碑) 철거의 실제 사례를 보았다. 그들의 시비 철거뿐만 아니라 그들을 기리는 문학상들도 이젠 함께 사라져야 할 운명에 놓여 있음도 지적했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친일 문인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친일문인 기념 문학상’ 문제가 대두될 때에는 위의 3인보다도 자연히 순위가 더 앞서게 되는 춘원 이광수 작가의 사례를 함께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그는 한국 문단(또는 문학사)에서 거목으로 인정되어온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3년 전 이맘때(2016년 7월)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학단체인 한국문인협회가 느닷없이 춘원문학상과 육당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겠다고 공표하였다. 앞은 소설가 이광수를 기리는 문학상이고, 뒤는 시조시인 최남선을 기념하는 문학상이다.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자마자 그 사업을 추진하려던 문인협회가 큰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 한국작가회의(자실위)와 민족문제연구소가 합동으로 그해 8월 4일 거센 반대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춘원문학상, 육당문학상 제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면서까지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이유는 명약관화했다. 그들(춘원·육당)이 너무도 잘 알려진 친일 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작가회의는 중앙일보사가 제정해 2001년부터 시상하기 시작한, 서정주 기념 문학상인 ‘미당문학상’에 대하여 최근 강력히 반대해 오고 있었으며, 한편 사상계사가 1956년부터 시상해 오다가 요즘은 조선일보사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동인문학상에 대해서도 철폐 주장을 해 오고 있는 판에 느닷없는 춘원문학상과 육당문학상의 제정 문제까지 새롭게 돌출하자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졌던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가 앞서본 바와 같은 “춘원문학상, 육당문학상 제정 규탄 기자회견”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떻든 기자회견을 겸한 강력한 반대 집회로 인해 사세(事勢) 불리해짐을 깨닫게 된 문인협회 측의 해당 문학상 제정 철회 발표로 일이 일단락되게 되었던 것은 양쪽 모두에게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된다.해방 이후 반민특위가 결성되고(1948) 난 뒤, 반민족행위자라 하여 그 특위에 소환된(1949. 1) 친일 혐의자들 중에 문인 측으로는 이광수와 최남선이 가장 먼저 검거되었던 사례만 보더라도 그들(춘원·육당)이 친일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든 인물들로 특정되어 있었음이 드러났다고 보겠다. 그들 중 이광수 한 사람만 보자고 하면, 그의 친일 흔적(혐의)에 대해 논의(증언)한 문학자나 평론가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친일 문인들 중에 상당수의 인사들은 1930년대, 그것도 후반 이후로 (친일)활동을 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희한하게도 이광수는 1920년대부터 그의 정신세계가 친일 쪽으로 기울고 있었음을 상당수의 연구 결과들이 증명해주고 있음은 그 자신을 위해서 매우 불행한 일로 보인다.그런데도 아래와 같은 일까지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마저 상당히 슬프게 하는 것 같다. 김병익 평론가가 1970년대(초반)에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 그 지상을 통해 이광수의 친일 훼절을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글을 읽어본 미국 거주의 춘원의 딸 이정화 씨가 김 평론가에게 이렇게 항의 서한을 보내왔다고 했다. “아버님의 애국심이란 열렬하셨습니다. 민족을 위해 친일했다는 뜻을 그대로 독자들이 들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는 자신의 친일행위가 어디까지나 민족애의 발로였다고 주장해온 부친의 말(변명)을 딸이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었다고 김 평론가는 어느 글에서 적었다. 그런데, 시상식이 열리고 있는 조선일보 미술관 앞에서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고 외치는 젊은 문인들의 주장을 직접 들었다고 한다면(하나의 가정일 뿐이지만) 심기가 몹시 불편해졌을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 씨가 어딘가에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2010)”이란 글에서는 이렇게 씌어 있음이 보인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라며 매우 애석해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6년 초판’으로 출판된 임종국 평론가의 <친일문학론>이란 책에는 불행하게도 성씨가 김씨여서였겠지만 제1번 순위인 “1,김동인론”이 그의 창씨개명인 동문인(東文仁)이란 일본식 이름과 함께 올라 있음이 확인되어, 아들인 김광명 씨가 “아버님이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다”고 한 그 말이 다소 구차한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친일 당사자든 그 후손이든 바람직한 일은 그 사실을 고백하고 또 만인 앞에 참회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 연지골
    • 토요시평
    20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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