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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목회자 이중직, 이렇게 본다
    최근 이재철 목사님의 목회자 이중직 발언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께서 한 목회자 세미나에서 ‘어떤 목사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이중직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신 것입니다. 이 목사님 이야기의 요지는 이런 것입니다. “목회자는 교인과 다르게 신앙생활에서 프로 정신을 가져야 한다. 대통령, 의사와 더불어 수습 기간이 없어야 할 직종이다. 최근 젊은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가져도 좋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많이 하는데, 추신수 선수가 미국에 건너가 7-8년 동안 2군, 3군으로 활동을 할 때는 햄버거만 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가 이중직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고 나흘은 야구장 가서 야구하고 사흘은 아르바이트를 했더라면 오늘날의 추신수가 존재하겠는가. 자기 기량을 더 높이기 위해 프로야구 선수도 그렇게 치열하게 미래를 위해 자기를 가꾸는데, 목사는 프로야구 선수보다 더 프로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더 몰입한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는 세속직을 가지라고 권한다. 목사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 자립이다. 세상에서는 내가 살아가는데, 내가 처자식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들이는 능력을 경제적 자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경제적인 자립은 내게 얼마가 주어지던 내게 주어진 경제적인 여건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목회자가 이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목회자의 마음을 담아서 설교할 수가 없다.” 이러한 발언을 놓고 유튜브와 SNS 상에서 찬반 논란이 뜨거워진 것입니다. 이 목사님의 발언에 대해서 이해하고 동의하는 쪽보다는 무차별적인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보았습니다. 과거와 달라진 목회 환경과 각자가 처해진 상황을 간과한 채 이중직을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폄훼하거나 작은 개척교회의 현실을 모르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중직 목회자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이재철 목사님이 말씀하신 “목사는 프로가 되어야지 아마추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이해하고 맞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라면 당연히 목회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목회자의 이중직이 무조건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바울도 천막을 만들며 선교를 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중직은 본질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선교적 방법론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목회자들의 이중직 문제를 생각할 때, 과거에 정말 일반 회사 직원들보다 더 열심히, 아니 굶어 죽을 각오로 전도하고 목회를 해 본 적이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정말 아침 일찍부터 온 종일 사람들을 만나며 전도하고 심방하고 목회에 인생 전부를 걸고 투혼을 발휘해 본 적이 있는가하고 말입니다. 저 역시 가락동 지하상가 23평에서 개척 맴버 한 명 없이 개척을 한 개척목회자였습니다. 당시 저는 아파트 전도를 하기 위해서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며 전도지를 돌리며 뛰었습니다. 그때 신문 배달을 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문에 교회 전도지를 끼워 놓을 뿐 아니라 모든 아파트 문 앞에 교회 전도지를 놓는 전제로 신문 배달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살기 위한 이중직을 하는 것보다 선교 방법론적인 차원에서 접근을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방법의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선교의 본질은 똑같습니다. 저는 정말 목회에 목숨을 걸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도를 하고, 말로 안되면 손을 잡고 뜨겁게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새부터인가 영혼이 달라붙고 납치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와 비슷한 방법을 실천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정말 굶어 죽을 각오를 가지고 뛰었습니다. 집사람이 우리 딸을 임신했을 때 먹을 것이 없어서 거의 유산 직전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때그때마다 까마귀를 보내주시고, 애를 낳은 다음에도 우유를 대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굶어 죽을 각오로 전도하고 목회를 했을 때, 어느 순간부터 교회가 부흥이 되는 걸 봤습니다. 저는 이중직에 대해서 왈가불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환경과 상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중직이 새로운 목회 대안이나 출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이중직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이것이 새로운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중직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더한 열심을 가지고 목회에 모든 것을 투신한 후에야 환경과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안 된다고 생각하고 바로 이중직을 선택하는 것은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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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7-0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말씀으로 영혼을 납치하다
    ‘남자 셋 여자 셋’이라는 시트콤을 아십니까?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며 초히트를 친 대한민국 최고의 시트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트콤을 쓴 박보영 작가님을 우리 교회 권부용 권사님이 전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분께서 우리 교회 신문에 ‘나는 왜 일요일 10시 48분 차를 기다리는가!’라는 글을 쓰신 것입니다. “...(상략) 나는 타고난 성격으로 나르시즘과 낙천적이다. 유달리 연휴를 좋아하고 징검다리 연휴라도 끼어 있으면 미리부터 가슴이 설렌다...(중략) 6월 2일부터 6일까지의 5일간의 일정 여행이 나를 유혹했다. 아!! 한가운데 끼어 있는 일요일! 교회! 나는 “주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저와 함께 계셔야 합니다!!라는 목사님의 열창이 자꾸만 귀에 쟁쟁하게 맴돌았다. 목사님은 풍부하신 감정으로 그렇게도 노래를 잘 부르시는데 가수가 되셨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생산적이지 않거나 건져 올릴 대화가 없는 자리는 피하는 편인데 더구나 교회와 설교는 나에겐 거리가 먼 곳이었다. ‘작가님은 교회랑 어울리지 않아요.’, ‘산새 좋고 공기 · 경치가 얼마나 좋은데요.’ 하며 모두들 나와 같이 여행 가기를 갈망했으나 나는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다. 왜일까? 나 스스로 나의 변화에 놀랍다. 인간은 나이를 먹으며 내려놓고, 욕심을 버리고 베풀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해서일까? 아님_ 공감과 유머와 열창(?)하시는 목사님의 설교 시간일까? 나는 어떤 것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설교 시간을 오롯이 혼자가 되어 느끼며, 반성하며 마음속의 고뇌를 정리한다. 그 시간은 나에게 참으로 가치 있는 시간이기에 내가 나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분명한 것은_ 설거지를 깨끗이 하고 난 후 혹은 이불 호청을 햇볕이 쨍쨍한 마당에 하얗게 널고 난 후의 개운함 같은 것은 가치 있는 변화임에 틀림없기에 나는 일요일 오전 10시 48분 차(교회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역시 대작가답게 한 줄, 한 줄이 저의 심금을 파고드는 명문들이었습니다. 이 글을 제가 먼저 읽고 그분께 직접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정말 교회는 질색이고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에덴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소 목사님의 설교에 매료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도중에 부르는 찬양이 너무너무 매료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어쩌면 가수가 되셨으면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노래로 심화를 시키고 정서적 환기를 시켜주셨을 거란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저는 앞으로 작가님께서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담은 드라마 대본을 써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전화를 끊고 보니까 류시화 시인이 쓴 ‘시로 납치하다’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전 세계의 유명한 시인의 시를 해설하면서 제목대로 시로 사람들을 납치하는 아름다운 글을 쓴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시를 쓰는 시인들도 있고 또 무덤덤한 시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천의무봉과 같은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사람도 있고, 지나치게 낯설게 하는 시를 써서 정말 이해하기 힘든 시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바람직한 시는 그 시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납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키 지오바니라는 시인은 ‘납치의 시’라는 시를 썼습니다. “시인에게 납치된 적이 있는가. 만약 내가 시인이라면 당신을 납치할 거야. 나의 시구와 운율 속에 당신을 집어넣고 롱아일랜드의 존스 해변이나 혹은 어쩌면 코니아일랜드로 혹은 어쩌면 곧바로 우리 집으로 데려갈 거야. 라일락 꽃으로 당신을 노래하고 당신에게 흠뻑 비를 맞히고 내 시야를 완성시키기 위해 당신을 해변과 뒤섞을 거야....”(하략) 이 시를 보는 순간 다시 박보영 성도가 떠올랐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입니까? 정말 시트콤의 원조라고 할 있는 ‘남자 셋 여자 셋’을 쓴 대작가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분이 제가 전하는 말씀으로 매혹이 되고 납치가 되어 5일간의 여행의 유혹을 뿌리치고 교회로 오다니요. 그래서 저도 그 시를 변형해 보았습니다. “설교에 납치된 적이 있는가. 만약 내가 목사라면 당신을 말씀으로 납치할 거야. 나의 설교와 찬양 속에 당신을 집어넣고 성전문을 지나 성소로 데려가고 은혜의 지성소로 당신을 데려갈 거야. CCM으로 당신에게 노래하면서 당신의 영혼을 흠뻑 젖게 하기 위해 당신과 눈물을 뒤섞을 거야..." 그런 위대한 작가가, 그것도 안티크리스천이었던 분이 우리 교회 예배와 제가 전하는 말씀에 매료가 되고 납치가 되어 이번 주에도 교회에 오실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더 설레였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그 어떤 AI시대, 챗GPT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의 마음을 매료하고 영혼을 납치하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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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7-0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었습니다.”
    수요일 오전 전쟁기념관 방문은 정말 가슴 뜨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 적힌 전사자들의 이름들은 이 세상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이름이었고 포탄의 화염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 불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검은 잿더미 위에 낙화하였지만, 그 향기는 코끝을 진동하고 가슴을 뭉클하게 해 주고도 남았습니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촛농보다 더 뜨겁게 떨어졌고 검은 재 위에 하얀 꽃잎으로 다시 피어났습니다. 거기에 적힌 이름들은 모두가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잎의 이름들이었고 사무치는 이름들이었습니다. 참전용사들은 그런 전우들의 이름을 만지며 오열하였습니다. 특히 ‘조지 수사’(George Sousa)라는 참전용사가 계셨는데 이분은 6.25 전투에서 중상을 입은 분입니다. 중상을 입으면 대부분 본국으로 귀환 조치가 내려지는데 이분은 중상을 치료받고 또다시 전선에 투입될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전선에 투입되어 전투를 하셨는데 함께 싸우던 친구들은 대부분 죽고 자기만 살아남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오열을 하고 또 오열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전사자 유가족들은 그 이름에 탁본을 뜨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탁본이 떠지는 그 이름들이 제 가슴 속에서는 향기가 그윽한 꽃송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와서 취재를 하는지 카메라에서 터지는 플래시의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튀기는 번갯불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앞을 다투어 기사를 쓰고 보도를 하였습니다. 저를 만날 때마다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은 “세상에 이런 교회는 없다고, 지상에 새에덴교회 같은 곳은 없다”고 계속 말을 하는 것입니다. 기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직까지 이런 교회는 없었다”고 말입니다. 보은이 한 개인의 인격이라면 보훈은 국가의 품격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지난 한 주간 세상에 보은의 교회로, 보훈 정신을 마음껏 함양하는 교회로 인각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험한 세상 다리가 되는 교회가 되었죠. 마음껏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힘들었습니다. 이 일은 어느 단체나 기관의 후원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순수한 헌신으로만 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올해뿐만 아니라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앞두고 매년 고심을 합니다. “이 일은 반드시 우리 교회가 해야 되는데, 누가 한꺼번에 큰 헌신을 하는 일은 없을까. 하늘에서 횡재처럼 뚝 떨어지는 헌신은 없을까.” 그러나 올해도 그런 헌신은 없었습니다. 그저 성도들이 개미군단이 되어서 십시일반으로 헌신하여 이런 일을 너끈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수요일 저녁 잠실 롯데호텔에서 환영 만찬을 하는데 가서 보니까 안내자들까지 방을 40여개 이상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식사를 대접하는 돈, 또 환송 만찬의 비용이 모두가 성도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송구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넘쳤습니다. 목이 메였습니다. 그러나 한 주간 동안 우리 교회는 마음껏 험한 세상 다리가 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성도들에게 복을 주옵소서. 어려운 가운데 헌신한 성도들에게 적어도 30배 60배 100배의 복을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 교회는 앞으로도 험한 세상 다리가 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김종대 장로님을 비롯해서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을 가족처럼 섬겨주신 준비위원들, 안내위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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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6-2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보훈, 국가의 품격
    벌써 17년 전의 일입니다. 2007년 1월 15일, 저는 마틴 루터킹 국제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하여 마틴 루터킹 퍼레이드 전야제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흑인 노병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더듬거리는 말투로 “동두천, 의정부, 수원, 평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왼쪽 허리의 총상 흉터를 보여주면서 “6.25 전쟁 이후 한국에 꼭 한 번이라도 가보고 싶은데 누가 초청해 주는 사람도 없고 형편이 어려워 못 간다”고 하면서 울먹이는 것입니다. 그 분의 이름은 리딕 나다니엘 제임스(Riddick Nathaniel James)였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엎드려서 절을 하면서 “제가 반드시 한국으로 초청하겠습니다. 친구 분들도 함께 오셔도 됩니다”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분이 친구 분들 5-6명 정도와 함께 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50여 명 가까이 함께 와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교회 최초로 제1회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시작되었고 17년째 한 번도 빠짐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국가기관에서도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경비와 대규모 자원봉사자, 기획과 준비과정이 필요한 행사입니다. 그래서 정 권사님을 비롯해서 주변에서도 너무 힘이 드니 몇 년만 하고 그만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의 감동이 결코 그만 둘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초청을 받아 온 참전용사 노병들의 그 감격의 웃음과 눈물, 기쁨과 환희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이 먼저 감동을 받고 가치와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서 싸워준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잊지 않는 보은의 신앙과 보훈 정신을 함양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단 한 번도 빠짐없이 17년째 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세계 최초로 온라인 화상 줌과 메타버스를 활용하여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가 국가 기관도 하기 힘든 일을 17년째 해 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지난 날의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며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의 야드바셈 박물관에 보면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기억함은 구원의 빛이다. 그러나 망각은 포로 상태로 돌아가는 첩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수치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 다시 6.25와 같은 참상이 재발하지 않습니다. 둘째, 우리 스스로 보은의 신앙과 보훈의 정신을 새기고 그 신앙과 정신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목회적 대형교회로서의 사회적 환원을 하기 위함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의해 건국된 대한민국은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공산주의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애국가 가사처럼 하나님이 보우하시고, 국군 참전용사와 미국과 유엔 참전용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주셔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참전용사까지 기억하고 예우하며 보은해야 합니다. 보은이 한 인격의 품격이라면 보훈은 그 국가의 품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민간 차원에서 참전용사들의 보은을 할 뿐만 아니라 보훈정신을 함양하는 한 알의 밀알로 쓰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셋째, 한미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한 민간외교 차원에서 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희 교회가 17년째 진정성을 가지고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하니까 여러 일간지에 소개되고 공영방송에서 다큐까지 제작 방영되어 국민들에게 역사와 사회를 섬기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고양(高揚)시킬 수 있었지 않습니까? 오늘의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있기까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해군 제독 출신이신 김종대 장로님이십니다. 김 장로님께서는 몇 년 전에 성대 수술을 하셔서 목소리를 잃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일생의 사명으로 알고 헌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새에덴교회 성도들의 눈물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한 분의 참전용사가 살아남을 때까지 잊지 않고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이어갈 것입니다. 저와 새에덴교회의 자그마한 헌신과 섬김이 한미동맹을 더 강화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의 길을 여는 자유와 평화의 꽃이 되고 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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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6-1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사랑은 무작정 따르고 싶은 마음이지요.”
    지난 수요오전예배를 마치고 평신도사역개발원 간사들과 함께 산행을 하며 숲속의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냥 교회 소예배실에서 모임을 할 수도 있지만 숲길을 함께 걷고 대화를 하며 더 깊은 소통과 공감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산에 오르자 푸른 나뭇잎들 사이로 진한 밤꽃 향기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바쁜 일정 때문에 늘 저녁에 산행을 하는데, 그날은 낮에 평개원 간사들과 소통하는 사역도 하면서 산행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에 밤꽃 향기보다 더 진한 소통과 공감의 향기가 불어왔습니다. 불곡산과 대지산 사이 깊은 숲에서 나무 벤치에 앉아 평개원 원장인 이경희 전도사의 인도로 간사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양육 사역을 하면서 힘든 일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그 힘듬을 극복했는지, 보람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간사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은혜와 감격에 목이 메여 말을 못 잇는 것입니다. 저의 눈에는 그들의 뜨거운 눈물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었고 떨리는 숨결이 감사와 찬양의 노래였습니다. 눈물이 쏟아져 말을 못 하겠다고 하는 분들을 보며 제 마음도 울컥하였습니다. “아,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성도들이 있을까. 내가 보기에도 저렇게 아름다운데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아름답고 귀하게 보실까.” 어느 누가 사명을 감당하면서 힘들지 않겠습니까? 모두 다 사명을 감당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사명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고 성숙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아니, 사명이 아니었으면 살지 못했을 거라고 하면서 ‘사명은 생명’이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저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목회 뿐만 아니라 여러 공적 사역을 하다보면 정말 절망하고 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주일설교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금요철야기도 같은 경우는 가끔 쉬고 싶을 때도 있고, 목양칼럼도 예전에 쓴 글을 재탕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결국 사명을 붙잡고 다시 설교를 준비하고 글을 쓰며 사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성도들과 숲속의 대화를 하는데 정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의 끝 무렵에 “앞으로 내가 어떤 목사가 되기를 원하는지, 나에게 바라는 상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 지금보다 더 잘하실 수가 없습니다. 건강만 하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은퇴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무조건 목사님을 따릅니다. 몇 살이 되었건 목사님이 가시는 길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태완 작가의 “사랑은 무작정 따르고 싶은 마음이다”라는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너무 좋아서, 너무 닮고 싶어서, 너무 소중해서 무작정 따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들꽃들, 올라갈 때 맡지 못했던 밤꽃 향기가 더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꽃보다도, 그 어느 향기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 평개원 간사들과의 소통과 공감의 시간이었습니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모두 다 하나님 앞에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 받고 있는 간사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이야 말로 새에덴의 핵심 원동력이요 보배들과 같은 사역자들이었습니다. 대화의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높음이 아니라 깊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도 깊음이 아니라 높음을 추구하니까 서로 싸우고 분열하고 교만하게 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우리 평신도 양육 간사들은 언제까지나 높음이 아니라 깊음을 추구하며 각자의 상황 속에서 누군가의 모델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평신도사역개발원 간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중국의 시인 쉬즈모의 표현처럼 ‘고개 숙인 온화함’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그날 그리스도 안에서 나눈 밤꽃보다 더 짙은 소통과 공감의 향기는 계절이 지나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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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6-1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샐리와 줄리를 초월한 은혜”
    두어 달 전부터 북유럽 해외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북유럽 교회의 요양복지시설을 탐방하고 연수하는 프로그램에 동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헬싱키에서 스톡홀름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크루즈 시간이 17시간이나 되는 환상적 타임도 있어서 가려고 했습니다. 더구나 요즘 교계 어느 기관 일로 머리를 식히고 도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며칠 전부터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가기로 약속을 했으니까 한편으로는 가야 할 의무감을 갖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생각하노라니까 출국 전날인 주일 저녁에 도대체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 날 오전에 새에덴전도단의 집회를 인도해야 하는데 새벽녘까지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겨우 쪽잠을 자고서야 전도단 강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항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가면서 “차가 밀려서 차라리 비행기를 놓쳐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차가 막히는 일이 없이 공항에 도착했고 저는 순조롭게 비행기에 탑승을 하였습니다. 비즈니스 클래스를 탔는데 제 앞쪽으로 서너 자리 앞에서 두 아이가 연달아 울어대는 것입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큰일 났구나. 오늘 저녁도 저 아이들 때문에 잠을 못 자면 어쩌지? 얼마 전 베트남에 갈 때도 아이들 때문에 잠을 못 자서 정말 힘들었는데 오늘도 잠을 못 자고 다음날도 불면으로 이어지면 어찌 될 것인가.” 정말 베트남 일정에서 있었던 불면의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경이 부쩍 예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아이를 키웠고 손주가 있기 때문에 백번 이해합니다. 그러나 전날 저녁잠을 충분히 잔 상태라면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날은 정말 자신이 없었습니다. 순간 이런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하나님께 이런 기도, 혹은 서원 아닌 서원을 하였습니다. “주여, 이 비행기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 비행기 이륙이 대책 없이 늦어지거나 승객 전체가 내리는 일이 생기면 저는 북유럽 일정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5분도 안 돼서 기내 방송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비행기 기체에 결함이 있어 안전운항을 하기 위해서는 결함을 다시 수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수리를 위해서 탑승객 전체가 하기(下機)를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집사람과 정권사님께 전화를 했더니 “아이고 잘 됐어요. 어서 빨리 재역입국을 해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순간 샐리와 줄리의 법칙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샐리의 법칙은 머피의 법칙의 반대의 법칙으로서 자신의 생각대로 좋은 일만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줄리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줄리는 좀 더 시간에 차이를 두지만 같은 의미죠. 택시를 타고 교회로 돌아오는데 “하나님 은혜 안에서 이것이 샐리인가, 줄리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제 수행비서이자 현지에 가 있는 강인철 집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내가 거기 안 가기를 잘한 것인가. 잘못했던 것인가.” “잘하신 것 같습니다. 그 갓난아이들이 저녁에도 울고 깊은 밤에도 울고 새벽까지 계속 울어 대었습니다. 목사님, 절대 잠을 못 이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오신 분들과 함께 이동을 하는 것이 굉장히 불편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훗날 개인적으로 편한 시간에 편한 마음으로 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재입국 후에 무슨 일이 생길까, 어떻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느 한 사람의 미래를 통째로 바꿔주는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해외에 갔다면 그 일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절묘한 타이밍의 심방과 헌신기도를 잘할 수 있었고요. 꼭 가야 할 장례식 조문과 약속된 결혼 주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몸이 혹사당하지 않고 쉴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감사했습니다. 이거야말로 샐리와 줄리를 초월한, 아니면 하나님께서 제 삶 속에 샐리와 줄리의 법칙을 적용해주신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 속에서 저는 한 주간을 더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언제나 샐리와 줄리의 법칙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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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6-0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하늘의 상을 바라본다”
    저는 목요일 오후에 홀리 스피리츠맨 메달리온 시상식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김포순복음교회 담임목사이신 김삼환 목사님과 대만 선교사이신 서상진 선교사님께 시상을 하였습니다. 설교 후 두 분에게 시상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상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것이죠. 이 땅에서도 잘하는 걸 가지고 상으로 보상을 하지 않습니까? 제가 어린 시절에 다녔던 초등학교는 워낙 시골이라 한 학년에 두 반씩 있는 학교였는데 그 작은 학교에서도 여러 가지 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상을 받으면 책보 속에 넣지 않고 그 상장을 손으로 들고 다녔습니다. 저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동네 사람들 많이 보라고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려고 그 상장을 벽에다가 다 붙여놔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상장이라고 보관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다행히 초등학교 때 교육감상 받은 게 있어서 그걸 우리 형님이 어찌어찌 보관을 해서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크고 작은 상을 많이 받아봤습니다. 대통령 표창장에서부터 국민훈장까지, 또 해외에 가서는 마틴 루터킹 재단에서 주는 국제평화상도 받아봤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최초로 미국 연방하원 의회에서 17년째 참전용사초청을 해 왔던 것이 등재되어 등재패도 받았습니다. 제가 시를 쓰다 보니까 천상병문학상과 윤동주문학상도 받았습니다. 글 쓰는 사람의 영광이죠. 그런데 정말 영광스러운 상을 받으면 눈물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연예인들이 연기대상이나 가수상을 받을 때 보면 기뻐서 환호하기보다는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요? 슬퍼서 흘렸을까요, 속상해서 흘렸을까요? 그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극도로 기쁘고 즐거운 순간에는 우리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자신이 원했던 것을 각고의 노력으로 이뤄낸 순간, 그 절정의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눈물이 우리의 격한 감정의 균형을 잡아줄 뿐만 아니라 그 긍정적 감정을 오래오래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 땅의 상도 중요하지만 하늘의 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자신을 위하여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사모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 뿐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그 상이 예비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딤후4:7-8) 이렇게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그 영광스러운 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면 「믿음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걸 믿는 것이고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지 않습니까?(히11:6)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상도 영광스럽지만 하늘에서 받는 상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 상을 받을 때 우리 모두는 다 울 것입니다. 너무 감격에 감격을 이기지 못해서 울고 또 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땅의 상도 영광스럽지만 하늘의 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상은 하늘의 상을 바라보도록 하는 일종의 동기가 되고 동력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하늘의 상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무뎌져가고 있습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는 것이고 그 하나님께서 상 주시는 것을 믿는 것인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상 주심을 잊어버리고 사람에게 인기와 명예와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현대판 바리새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삶을 지향하면서도 자기는 그런 바리새인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은 현대판 초 바리새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시상식을 하면서 다시 한번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얼마나 하늘의 상을 바라보는가. 그래, 하나님의 상을 사모하며 살아야지. 이 땅이 어지럽고 혼탁할수록 하늘의 거룩한 상을 사모해야지.” 시상식을 마치고 다음 일정으로 이동하는 중 입에서 이런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 ... 빛난 면류관 받아쓰고서 주와 함께 길이 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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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5-2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래도 감사하는 이유”
    지난 화요일은 어느 신학대학교에 가서 설교를 하고 왔습니다. 설교뿐만 아니라 신학대학교 채플의 노후된 영상 시설까지 저희 교회가 교체를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전날 저녁, 제가 하필이면 어느 지상파 방송의 고발 프로그램에 나오는 어느 교회 분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유튜브로 본 것입니다. “서로 함께 개척을 한 교회가 어떻게 설립자와 후임자 간에 다툼이 있고 교인들이 그렇게까지 싸울 수 있을까. 어쩌면 저렇게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잔상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잠이 부족한 상태로 신학교를 갔죠. 그래도 어쨌든 제가 강단 체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다행히 젊은 학생들과 소통하는 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단 몇 분이라도 빨리 차로 가서 쉬면서 교회로 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총장실에 도시락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설교를 하는 도중에 제 핸드폰에 불쾌한 메시지가 몇 개 들어와 있었습니다. 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그리고 저에게 지난날 그토록 인간적으로 충성했던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오해의 문자를 보내온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배신감이 들고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총장님과 식사를 하는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밥을 먹었습니다. 밥은 먹었지만 생각은 아주 유치한 문자에 있었던 거죠. 그런데 하필이면 도시락 반찬 속에 돌이 있었던 것입니다. 반찬을 살살 씹어 먹어야 되는데 제 마음에 약간 불편한 분노 같은 게 있어가지고 그냥 반찬을 콱콱 씹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돌이 팍 씹힌 것입니다. 그 돌을 꺼내놓고 보니까 얼마나 단단한 돌이었는지, 게다가 입안에서 더 큰 돌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큰 돌을 자세히 봤더니 돌이 아니라 오른쪽 어금니가 부러져버렸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총장님과 다른 교수님께 말도 못하고 끙끙 앓으며 왔습니다. 그 길로 당장 죽전 중앙로에 있는 다봄치과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원장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가 충치 먹은 것도 아니고 아주 건강한데 무슨 돌을 그렇게 세게 씹었길래 이렇게 상해 버렸습니까?” 그러면서 크라운을 씌우는 것도 현재로서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또 마취해서 뽑기도 애매하고, 우선은 견딜 수 있도록 상한 이에 옷을 입혀주겠다며 곧장 임시치료를 해주셨습니다. 제가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돌이 나한테... 돌 있는 도시락이 총장님이나 다른 교수님한테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나한테, 그리고 왜 설교 중에 마음을 상하게 하는 문자가 와가지고 그렇게 돌을 씹게 만들었는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 기분 좋게 식사를 해야 되는데 생니가 나가버릴 정도로 돌을 씹었으니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잘 안 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사탄이 저를 시험하는 거였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성도가 교회에 와서 헌신기도를 받고 돌아가는 길에 접촉사고가 난 일이었습니다. 하필이면 교회를 와서 저에게 헌신기도를 받고 가는 중에 그런 일이 있으면 제가 얼마나 미안하겠습니까? 그래서 전화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그런 겁니다. 더 큰 사고가 나지 않는 게 감사할 뿐입니다. 목사님, 기도 많이 해주세요.” 그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무조건 감사해야 되겠구나! 그래도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이가 두 개, 세 개가 부러진 게 아니라 하나만 부러져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험이 교인들에게 임하지 않고 차라리 내가 당한 것을 감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지나가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청년시절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왼쪽 광대뼈 위로 얼굴을 갈아버린 적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모르지만 거울 가까이서 보면 저만 알 수 있는 흉터 자국이 있습니다. 저는 그걸 ‘은혜의 상흔’이라고 여기는데요, 마찬가지로 제가 부러진 이를 혓바닥으로 감지할 때마다 “이 역시 감사의 상흔이다. 이걸 생각할 때마다 항상 더 감사해야 되겠다. 무조건 감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글이 하나님께 헌신을 하면서도 좋은 일이 아닌 조그마한 시험이라도 온 분들에게 조그마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공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의 감사로 인하여 하나님이 더 넘치는 위로와 좋은 일을 공급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또 헌신을 하면서 잠시 마음이 상했던 분들도 이 글로 인하여 위로를 받고 감사로 더 큰 승리와 기적을 경험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감사로 더 좋은 소식, 더 좋은 기적이 공급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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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5-2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거저 받았으니 거저 드립니다”
    저는 설교를 할 때 중간 중간에 찬양을 하고 비록 찬양이 아니더라도 곡조 있는 예화로서 일반 노래를 부를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음악적 존재입니다. 음악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운율과 곡을 섞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암송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신명기31:19) 성 프랜시스 역시 거리와 시장, 광장에서 설교를 하고 복음을 전할 때면, 평민들에게 익숙한, 당시 유행하던 민요나 대중가요에 복음 가사를 입혀 그들에게 복음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때 당시의 사제들은 전부 고상한 라틴어로 설교를 했고, 평민들은 설교를 알아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성 프랜시스는 시장에서 장터 언어로, 대중가요에 복음 가사를 입힌 노래로 평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하였습니다. 그뿐입니까? 존 칼빈도 시편 쥬네브 찬송을 만들 때, 다는 아니지만 일부 찬송은 당시 유행했던 프랑스 민요나 대중가요에 시편 말씀을 가사로 붙였습니다. 저 역시 전도집회나 복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 성 프랜시스나 칼빈처럼 대중가요를 복음적으로 개사해서 부를 때가 있습니다. 사실 찬송가에 나오는 ‘하늘가는 밝은 길이’, ‘천부여 의지 없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신자 되기 원합니다’ 등도 다 그 당시 민요와 흑인영가에서 차용했습니다. 그리고 아리랑이라고 하는 곡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찬송가 곡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설교 중 예화가 없는 설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예화는 어차피 다 세상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볼 때, 일반 예화는 곡조 없는 예화이고, 노래는 곡조가 있는 예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성도들과 소통하고 감동을 더 하기 위해서 설교 중 찬송도 부르고 특별한 경우 곡조 있는 예화로 일반 노래도 선용하는 것이죠. 과거에는 주지주의적인 설교를 하였지만 요즘은 감성과 에토스가 있는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음악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애로사항이 많아져 갑니다. 유튜브에 설교 영상을 올리면 노래의 저작권에 걸리는 것입니다. 다른 노래의 저작권이라면 모르겠는데 3.1절이나 8.15 광복절을 맞아 ‘애국가’를 부르는데도 저작권에 걸리는 것입니다. 또한 어버이주일을 맞아 ‘어머니 은혜’를 불렀는데 이것 역시 저작권에 걸리는 것입니다. ‘애국가’나 ‘어머니 은혜’와 같은 노래는 진짜 국민의 노래가 아닙니까? CCM은 말하기도 어색할 정도로 저작권에 제한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스텝에게 빨리 저작권 단체에 비용을 지불해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부를 수 있도록 하라고 했는데 저작권을 관리하는 단체도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만만치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누가 저에게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작사를 하거나 작곡한 노래를 저작권협회에다가 등록을 하세요. 특별히 ‘사명의 길’ 같은 경우는 어지간한 교회 성가대에서 다 불렀고 해외에서도 많이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목사님께서도 저작권등록을 하면 저작권료를 꽤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노래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정말 좋은 가사를 쓰고 좋은 곡을 작곡하여 저작권협회에 등록을 해 보세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그게 무슨 떼돈을 버는 거라고요. 제가 저작권에 걸려 상처를 입었다면 저라도 남에게 그런 상처를 안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작권은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저는 음악 공부도 안 한 사람이고 국문과 출신도 아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문학성과 음악성을 거저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저는 저작권료보다 제가 만든 노래가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이 쓰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저 받았는데 거저 줘야 되는 것이 신앙의 정신과 가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랬더니 그 분이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목사님, 듣고 보니까 참 그러네요. 정말 존경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더 큰 은혜를 주시고 더 큰 복을 주신 것이 아닙니까? 생각해 보면 목사님도 문학성과 음악성을 거저 받은 것이겠지요. 하나님이 몹시 기뻐하실 것입니다. 저작권은 세상의 영역이라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은총의 영역이고 거룩의 영역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60권 가까이 책을 썼는데 누가 제 책에서 설교를 인용하거나, 책을 쓰는데 풋 노트를 달지 않고 인용한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마저도 쓰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저는 부흥회나 세미나에 가서 설교나 강연을 한 후 어떤 분이 제 설교나 강의 원고를 달라고 하면 그냥 바인더 채로 줘버립니다. 이렇듯이 저는 앞으로도 거저 받은 은혜를 거저 드리고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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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5-1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용종 있어요?”
    10여 년 쯤이었을까요. 제가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종합검진을 받을 때였습니다. 종합검진을 처음 받았으니 대장내시경도 처음 받은 것이죠. 저는 그때까지 종합검진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저의 건강을 지켜주시리라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여러 사람들이 권유를 했습니다. 누구도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대장에서 용종이 몇 개가 나왔고, 또 어떤 분은 7개, 8개가 있어서 그것을 다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종을 그대로 두면 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그러니 빨리 종합검진을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장내시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면 마취를 받기 전에 저의 관심은 “과연 내 속에도 용종이 있을까? 아니야, 없을 거야. 나에게는 절대로 용종이 없을 거야” 하는 기대감을 갖고 한편으로는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면 마취가 완전히 안 된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수면 마취 중에 닥터에게 느닷없이 물어봤잖아요. “선생님, 제 안에 용종이 있나요?” 그랬더니 하얀 가운을 입은 닥터가 이렇게 중얼거리는 겁니다. “이 양반 마취가 왜 제대로 안 된 거야? 약 좀 더 넣어.” 그래서 제가 뭐라고 응대한 줄 아십니까? “이 양반이라니요? 나는 목사입니다.” 그러자 닥터가 말씀하시기를 “예, 알고 있습니다. 용종 하나도 없습니다. 깨끗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도 두어 번 대장내시경을 했지만 이런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냥 잠든 채로 내시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 용종이 전혀 없다는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검사결과도 깨끗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화요일에 이재훈 의료목사님이 새로 개원하는 다건연세내과에서 종합검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날 개원예배를 드리고 병원 시설을 둘러보는데 새로 개원한 병원이기 때문에 들어가자마자 호텔 프런트와 같은 분위기를 느꼈고 내과뿐만 아니라 가정의학과도 개설하여 여성들의 자궁경부암과 유방암까지 진단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너무 깨끗하고 시설이 좋아서 가까이에 있는 동네 대학병원과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제가 다음 날 받을 내시경실을 둘러보니까 아주 깨끗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경험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날 저녁 장 청소를 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게다가 가슴까지 설레여서 예약 시간보다 30분이나 먼저 병원을 찾았습니다. 정말 어린 시절 소풍 가는 것처럼 들뜬 분위기였고 설레이는 가슴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가 다건연세내과 개원 제1호 환자로 내시경을 받기 때문이죠. “이번에도 용종은 없겠지? 어찌 내 안에 용종이 있을 수 있겠어?” 제가 얼마나 들뜬 기대감으로 가득했는지 이번에도 수면 마취 중에 눈을 뜨고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저 용종 있었나요? 용종 없죠?” 그러자 이재훈 원장님(목사님)이 “없습니다. 깨끗합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물어봤죠. “제가 마취 중에 분명히 그런 질문을 했죠? 그리고 용종 없다고 대답하셨죠?” 원장님이 답하기를 확실하게 질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저와 함께하신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용종이 있을 수도 있죠. 그러나 저는 없다고 확신을 했고 그런 기대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기대가 컸으면 수면 마취 중에 깨어나서 그런 질문을 했겠습니까? 또 하나 제가 다건연세내과 1호 내원 환자로서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죠. 제가 병원에 가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용종이 없고 깨끗한 결과가 나오면 하나님께서 다건연세내과병원이 정말 형통하고 번성하는 걸로 전제를 하고 상상을 할 것입니다. 이 생각이 얼마나 간절하고 기대가 컸으면 수면 마취 중에 눈을 부릅뜨고 그런 질문을 했겠습니까? 그냥 모든 걸 의료진에게 맡겨두고 편히 잠들어도 되는데, 그리고 잠시 후에 결과를 알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저의 기대감과 다건연세내과에 대한 간절함이 가득했다는 것이겠지요. 이 다음에도 대장내시경을 받을 때 수면 마취 중에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 생각과 상상대로 제 안에 용종이 하나도 없었듯이 다건연세내과가 더 형통하고 번성하기를 바라는 것이죠. 앞으로 다건연세내과병원이 더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섬기고 주민 보건에 귀하게 쓰임 받고 형통하는 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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