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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40’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3. 목회자의 기도생활 ⑦ 다윗의 기도생활 다윗은 "사랑받는자"란 이름으로 아브라함의 14대손이요, 유다 지파 이새의 여덟번째 아들로서, 유대 베들레헴 출생이다.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 제2대 왕이다, 사울 왕의 사위된 이래 맡은 직책 충성한 자요(삼상 17:34), 전쟁을 믿음으로 치른 자요(삼상 17장), 용서와 자비를 늘 베푼 자였다(삼상 24:26). 또한 하나님나라 사랑과 성전 건축을 지극히 열망하던 자(삼상 22장), 40년 재위 중 성군된 자,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행 13:22, 삼상 13:14),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선두에 선 자로 대표자이다(마 1:1), 그의 많은 자취는 유명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오점은 역사가 진행하는 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니, 아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비극의 오점. 여러분은 다 아시지 않는가? 첫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야를 전쟁터로 내몰아 죽인 계획 범죄를 저지른 잔인무도한 끔직한 사건! 밧세바여 슬퍼서 너무 슬퍼서 통곡하는가? 필자도 함께 울어 드리리이다(삼하 13장). 둘째, "사단이 유혹하여 다윗을 격동시켜 이스라엘로 인구 조사케 한 사건(대상 21장, 삼하 24장), 고로 하나님께서 밧세바 사건에는 나단 선지자를, 인구 조사에는 갓 선지자를 보낸 걸 보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도 안 죽을 만큼 처벌하지 않든가? 여러분에게 삼하 11-13장과 대상 21장, 삼하 24장을 꼭 정독할 것을 깊은 교훈으로 드리노라. 이로 인한 그의 감명깊은 기도는 이러하다. 아마도 그의 반생애는 눈물로 회개하며 살아간 기도였을 것이다. 전쟁할 때도 언제나 하나님께 물었지만(삼하 5장), 그의 회개 기도는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든가? 어쩌다가 그렇게 범죄했던고! 시편 51편 그의 회개 기도는 눈물이 나서 못 보겠도다! 범죄한 마음이 이렇게 후회되었던가? "상하고 통회한 마음,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믈로 침상을 띄우며, 요를 적시며 종일 신음, 종일토록 슬픔 중,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 뼈는 냉가리 같이 녹고, 죄가 머리털보다 많아 종일 주께 부르짖고 등등은 기도 중에도 참 회개 기도였다(시 6, 32, 38, 39, 40, 41, 51, 86, 102, 103, 143). 고로 다윗은 사함받고 성군이 되었도다. ⑧ 엘리야의 기도생활 여러분, 엘리야는 북왕국 아합 왕과 유다 아하시야 왕 시대(주전 876-854년경) 활동한 디셉 출신 선지자요(왕하 17:1), 가장 무서운 예언자로 활약하다가 불수레와 불말의 호위 속에 회오리 바람을 타고 산 채로 승천한 선지자이다(왕하 2:1-11). 그는 이후 예수의 변화산 사건에서 모세와 함께 등장하여 주님과 말씀하신 선지자(마 17:3)로, 후계자 엘리사를 배출한 대선지자이다. 이제 그 기도를 보라! 강렬하고도 목숨 걸고 한 그의 기도생활, 너무나 위대하고 유명하다. 여러분, 그의 강력한 기도생활은 꼭 배워 살지 않으면 아니된다. 기도는 해도 되고, 아니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도생활에 게으런 자들아, 엘리야 선자자 알면 매 맞아 부어 터질지도 모른다. 아시는가? 정신차려라.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고 다니는 세상이 아닌가. 그대도 삼키면 어쩌려는가? 아합 왕이 하나님 버리고 우상꾼들과 놀아날 때, 하늘문을 닫고 3년 6개월이나 비가 오지 못하게도 하고, 다시 비가 오게도 하는 역사함은 무엇이었던가? 엘리야의 강력한 기도가 아닌가?(왕하 17:1-7, 약 5:17,18).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릴 때(왕상 17:7-24), 바알 선지 400명과 아세라 선지 450명, 합 850명 대 1로서 갈멜산상 종교대결에서 불의 응답으로 승리, 저들 850명을 기손시내로 끌어다 다 죽인 것은 그의 강렬한 기도의 힘이 아니든가(왕하 18:19-40), 야고보 왈, 이 기도는 "간절한 기도"였다고 증언한다(약 5:17). 여러분, 지금 이 시대에도 엘리야의 기도가 필요하지 않는가? 엘리야의 그 기도는 무릎을 꿇는 기도,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은 기도, 부르짖는 기도, 강렬하고 강력한 기도, 이 기도에 자연을 움직여 비가 못 오게도 하며, 오게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850명의 우상꾼들을 전멸시키기도 했다. 이는 목숨을 건 기도가 아니면 아니된다. 곳곳마다, 건물마다 교회는 보이는데, 곳곳마다 큰 교회 작은 교회 줄줄한데, 기도! 엘리야의 그 기도로 지역사회의 악영들을 이기라! 마귀와 세상문화와에서 승리하라. 불신 세계의 악령들에서 승리하라. 교회에도 있을지 모르는 "용이요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계 12:9, 20:1-3)을 쫓아내 승리하라. 무엇으로엘리야의 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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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04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37’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3. 목회자의 기도생활 (4) 성경사의 기도자들 ⑤ 아브라함의 기도생활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로, 우리 모두의 믿음의 조상으로 유명한 위인이시고, 그의 기도생활도 모범자이시었다(창 11:26-25:10). 그는 노아의 12대 손이며, 갈대아 우르 출생인데, 부친은 데라요, 아내는 사라요, 아우는 나홀, 조카는 롯, 아들은 이삭, 며느리는 리브가였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구분한다면 4분할 수 있을 줄로 안다. 첫째, 믿음의 생활이다. 그는 믿음으로 살았으니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4-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며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롬 4:3),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럼으로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8-22). 보라! 여기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다. 또한 여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는 원리, 아브라함이 의롭게 되는 원리가 이것이니라(약 2:23). 둘째, 베푸는 생활이다. 지나는 길 손님 세 분에게 베푼 일은 곧 천사를 대접함이었다(창 18:1-5). 또한 롯의 목자와 아브라함의 목자가 서로 다툴 때 아브라함의 양보 "네가 좌(左)하면 내가 우(右)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창 13:5-9). 이것도 참으로 쉽지 않은 대단히 베푸는 일이다. 한국에도 잘 베푸는 일로, 교회로는 남원 동부 교인들이고, 어려운 자에 베푸는 데는 서울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이며, 노인 목사에 잘 베푼 자는 개봉교회 노창영 목사가 있다. 이 고마운 분들은 히브리서 13장 1,2절 대로 사는 분들로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1,2). 이와 같이 베풀고 산 자들을 확증 뒷받침하는 말씀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셋째, 순종생활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창 12:1-5). 또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엿음이니라"(창 22:1-19). 자! 여러분 아브라함의 생활은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다 합격의 생활이었다. 고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받아 복의 근원이 되고, 자손 번성 번영, 적군의 문을 얻음, 아브라함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은 것이 아닌가(그 씨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심). 고로 여호와께 순종은 축복 받는 열쇠인 줄 알라! "순종이 제사보다 더 낳다"(삼상 15:22) 하지 않든가? 그대들도 순종하여 복 많이 받으시라! 넷째, 기도생활이다. 그는 중보기도자로 소돔 고모라 멸망 직전에 의인 50에서 10인까지 용서와 죄 사함의 그 기도, 우리 영혼의 파도처럼 메아리쳐 온다(창 18:22,23). 여러분 우리도 이 중보기도가 필요하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중보기도를 어느 때 요청할 날이 올 줄 누가 아느냐. 그는 태(胎)의 생산의 문을 열게 한 기도자다. 그랄 왕 아비멜렉의 집을 보라! 아브라함의 기도가 없었다면 그 집은 끝장났을 게다(창 20:17,18). 여러분은 한 가문의 태의 생산의 문을 열고 닫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움직일 수가 있겠는가. 현대 목회자들도 아브라함 같은 기도의 능력자가 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참으로 하나님을 움직이지 못한 기도가 있다면 그 기도는 준비가 안된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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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2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35’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3. 주 예수의 기도생활 (4) 성경상의 기도자들 1. 베드로의 기도생활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여러분은 이것을 아실 게다. 이하에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 선구자들 그 기도생활을 열거함에 베드로의 기도부터 본다. 그는 옛 갈릴리 바다의 어부이던 중 주님의 부름을 받아 12제자로 사도가 되었다. 그는 어부여서 불학무식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제자가 되었다. 바울 사도는 그를 "초대교회 기둥이라"(갈 2:9)고 했다. 사도 베드로의 많은 사생활은 덮자. 왜 아는 사람은 다 아니까. 베드로의 기도는 이러하다. 그의 기도생활은 첫째, 전적인 순종의 기도생활이다. "...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 1:14-2:4). 우리도 주께서 분부한 기도에 순종하여 전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충만한 성령의 불을 못받는 것 아닐까. 둘째, 규칙적인 기도생활이다. "제9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 가다가" 이때 구걸하던 앉은뱅이도 고쳤다(행 3:1-16). 욥바에서 제6시에 기도했다. 이때 고넬로에 관계된 환상을 하나님은 보여 주셨으니 환상은 거의 기도 중에 보지 않든가 (행 10:1-48).여러분, 선한 생활엔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하다. 엣날 성 프랜시스는 일일일선(一日一善)을 실천했다. 이 규칙 생활로 천사를 만났다고 하지 않는가. 서울 모 대형교회 목사는 규칙적인 기도로 성공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규칙적인 기도시간이 있는가? 셋째, 기적 행한 기도생활이다. 사마리아에서 성령받기를 기도하고 안수함으로 성령받게 했을 뿐만 아니라(행 14:17), 헤롯의 핍박에 옥중에 감금되었으나 교인들 기도에 천사 출현, 옥문 열려 기적 체험(행 12:1-17),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주의 사자가 옥문 열어 출옥케 된 일, 병든 자들을 고친 일(행 5:1-32), 중풍환자 애니아를 고치고, 죽은 다비다도 기도로 살린 일 등등(행 9:32-42). 베드로는 전적 기도, 규칙적 기도, 기적적 기도를 했다. 2. 바울의 기도생활 토마스 칼라일은 "체험(경험)은 위대한 정신적 의사"라 했다. 사도 바울도 역시 체험의 역사에서 그의 사도의 생애가 시작된다. 다메섹 도상의 대낮에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행 9:1-9). 바울 사도의 생애는 이 크나큰 유사 이래 체험,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베드로는 성령불을 체험하고, 바울은 대낮에 살아계신 주 예수를 체험했다. 수년 전 죽은 줄만 알았던 그 예수를, 이제 살아계신 예수로 체험했다. 여러분은 어떤 예수인가? 죽어버린 예수인가, 살아계신 예수인가? 여기에 목회자의 승패가 있다. 예수를 체험했는가? 기도로 꼭 체험해야 목회자가 된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많은 목회자가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고 목회하니 얼마나 많은 기적을 만드는가. 로마서에서 히브리서까지, 유럽과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 설립도, 세계복음전도 1차에서 3차까지도, 최후 순교도, 그의 설교 예수는 죽었다가 살아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그를 믿어야 죄사함 구원받는다 함은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함에서였다. 그의 기도생활은 어떤가? 첫째, 체험의 기도생활이다. 바울과 실라가 옥중 감금 됐을 때, 밤중에 기도와 찬송, 지진에 옥터는 움직이고 옥문은 열리고, 간수를 구원하고(행 16:24-34), 이 얼마나 크나큰 체험의 기도인가! 둘째, 겸손의 기도생활이다. "밀레도에서 무릎 꿇고 기도"(행 20:17-36, 21:3-6), 오늘날 기도는 걸상문화가 망쳤지만 목회자들엔 무릎기도가 요청된다. 여기에 목회자의 겸손이 있다. 셋째, 환상보는 기도생활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때 비몽사몽 간에..."(행 22:17,18), 기도할 때 주님은 영적 신비로 응답하지 않든가. 넷째, 병고치는 기도생활이다. "브블리오의 부친께...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하시매"(행 28:8), 여러분도 교인들 병원심방도 하지만은 병고치는 은사로 병을 고쳤으면! 다섯째, 계속적인 기도생활이다. "항상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엡 1:16, 롬 1:9, 빌 1:9, 골 1:2, 살전 1:2), 동시에 계속적인 기도생활을 요청했다(살전 5:17). 바울 사도의 기독교의 대업적, 공적은 주님 만남 체험에서!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라. 님 기다리며 기도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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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7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34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3) 주 예수의 기도생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생활은 우리의 법전이다. 이제 성경의 기도자들을 고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생활부터 서술하려고 한다. 이에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길을 찾는데 큰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 간절 하다. 기도생활은 성공적 목회생활에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게다. 뿐만 아니라 일반 신앙인들도 그렇지 않든가 여컨데 4성 장군 아이젠하워가 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 세계 제2차 대전, 독일군과 연합군의 대전, 노르만디 상륙작전 개시 당시 어떻게 한 줄 아실 게다. 기도했단다. 주 하나님께! 말타 항구 언덕에서 지휘관과 부관들과 함께 하나님 전에 무릎 꿇고, 모자를 벗고, 엎드려 기도했단다. 간절히 기도하고 일어나서 말하기를, "기술과 모든 두뇌의 훈련을 동원할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 손에 있다. 하나님 손에 맡기고 행동에 들어가자." 그래서 승전했던 것 아닌가 여러분이 맡은 영혼들을 지키고,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전해야 할 여러분의 목회는 어떤가 모든 것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지 않는가. 고로 기도, 또 기도해야 한다. 이제 우리 주 예수의 그 기도생활을 배우자. 배워야 어두운 세상 밤길 안 걸을 게다. 중국 주나라 문왕의 스승이요, 제나라 시조인 강태공은 "인생불학이면 여명명야행"(人生不學 如冥冥夜行)이니라"고 했다. 사람이 살면서 배우지 않으면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하물며 목회자가 예수님께 기도를 배우지 않으면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겸손한 자세로 세속적 사상 버리고 한걸음 물러서 자리를 비껴서 배워야 한다. 중국 유학 십삼경 중 하나인 효경(孝經)에 "자왈 증자피석왈(子曰, 曾子避席曰)이니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려 할 때 제자 증자가 선생을 공경하는 뜻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물러 앉아 들었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의 영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이렇다. 주님의 기도는 '40일 금식'으로부터 시작했다(마 4:1,2). 이어서 '세례 받으실 때' 기도하셨고(눅 3:21), '사도를 택하실 때'도 기도하셨다(눅 6:12-19). 습관화 된 평상시 기도를 하셨으며(눅 22:34-44, 마 14:23), 새벽에 기도하셨으며(막 1:35),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으며(마 6:9-13, 눅 11:1-4), 5병2어와 기적을 행하실 때 기도하셨고(마 14:19, 15:36, 막 6:4, 8:6, 눅 9:13, 요 6:9), 벙어리와 귀먹은 귀신을 쫓아 내실 때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막 9:28,29)고 하셨고, 또 안수 하실 때 기도하셨다(마 19:13). 다시 주님의 그 기도 몇 곳을 추구하여 이를 마음에 새기자. 첫째, '금식'으로 시작했단 것을,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 4:2), 여러분도 큰 일을 시행할 때 금식기도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다. 둘째, '새벽기도'이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여러분도 새벽기도로 항상 주님을 만나라. 셋째, '혼자서'의 기도이다. "무리를 보내신 후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며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 14:23), 이 시간은 아주 귀중한 시간이다. 여러분 이걸 아실까 아버지 하나님과만 만나는 그 시간! 넷째, 그리스도의 직책의 고뇌,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 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직책 감당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던고!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겠도다. 여러분, 목회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시는가 주님도 그랬더니라.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도 못 가는 길, 영문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목회성공 하려하면 이 길만은 걸어야 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가야 하네! 다섯째, 감람산기도이다. "주의 사지가 하늘로서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 22:39-44, 마 26:36-46, 막 14:32-42). 이 기도에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접근했다. 택한 백성들 영혼을 담당한 십자가의 기도였기에! 여섯째, 천상에서 지금도 기도하신다. "... 이는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이러했으니 우리도 우리의 사명 십자가를 짊어짐에 눈물과 통곡의 기도가 요청된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기다리며 기도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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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27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32
    3. 목회자의 기도생활 (1) 의미로 본 기도생활 귀공은 "하나님 때문에 마음이 괴로운 사람의 음성을 들어보았는가 이것은 이 영적 암흑 시대에 기도하는 자들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라고 한 전 휘튼대학 총장의 말을 전하면서 이하에 상기한 의미를 기술하려고 한다. 기도의 의미란 무엇인가 세상에 교회 안에 기도의 의미를 모르는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기도한 사람들의 설명을 들어보라.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왈, "기도란 예배의 일종", 덴마크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왈, "기도는 영혼의 호흡"(육체가 숨 못 쉬면 죽는 것처럼, 기도하지 못하면 영혼이 죽는 것),?프랑스 비평가 보들레르 왈, "기도는 힘의 저장고"(기도를 많이 해서 저축해야 할?것), 스위스 교육가 페스탈로치 왈, "기도는 자기를?제어하는 무기"(자기를 제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실패), 일본 구마노끼꼬 왈,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 등으로 설명했다. '기도'에 대한 구체적 문자로 보면, 히브리어 동사로는 "파랄"이다. 이는 기도하다. 간구하다. 탄원하다이고, 명사로는 보통기도로 "테피라"이다. 이는 기도 또는 간구이며, 간절한 기도로 "타가눈"이 있다. 구부려 기도, 애걸, 간청, 탄원, 간구, 애원 등이다. 헬라어 동사로는 "프로슈코마이" 기도하다. 간청하다. 예배하다이고, 명사로는 "프로슈케" 기도, 간청, 예배 등이 있는데, 기도란 간구하고, 탄원하고, 애걸하고, 간청하고, 애원하고, 구부려 예배하는 것, 이 모두를기도라 한다. 또한 영어의 명사 "prayer"와 동사 "pray", 그리고 한자어 "祈禱" 등은 히브리어, 헬라어의 그 뜻을 따른다. 여기 기도의 원문을 가슴에 품고. 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왜 기도를 해야 하는가를 들어보시라! ①응답 받고, 내가 알지 못한 크고 비밀함을 알게 되니까(렘 33:3). ②만사를 푸는 열쇠니까(빌 4:6,7, 약 5:13-18). ③시험에 들지 않게 되니까(눅 22:40, 벧전 4:7). ④성령을 충만히 받게 되니까(행 1:24-2:4). ⑤거룩하여지니까(딤전 4:5). ⑥체험하게 되니까(막 11:24). 이상만 열거하노니 남은 내용들은 귀하들께서 더 찾아 목회생활에 피와 살이 되게 하시라! 목회자들은 기도하시라. 바쁜 것과 게으른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도 없음이 얼마나 위태한 영적 말기환자 인줄 아는가 기도한 자들의 기도의 모습을 배우라. 교회사에서, 성경의 인물들에서! 이하에 몇가지만 제안한다.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고난 중에도, 병중에도, 죄를 범했어도 낙심 말고 기도하라(약 5:13-18). 둘째, 무릎 꿇고 기도하라. 솔로몬도, 주 예수도, 스데반도, 베드로도, 바울도, 다니엘도. 기도의 거성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느니라. 왜 무릎을 꿇었을까. 이는 자신을 낮춘단 뜻이요. 항복, 복종, 굴복, 간청, 호소, 용서를 구함, 처분대로, 소원, 애원 등의 뜻이 있지 않겠는가. 셋째, 엎드려 기도하라. 주 예수와 에스라며 허다한 기도자들은 엎드렸느니라. 넷째, 부르짖어 기도하라. 렘 33장 3절을 보고! 다섯째, 간절히 기도하라. 사무엘도, 야고보도, 이사야도, 히스기야도, 한나도, 엘리야도, 오순절 120문도들도, 주 예수께서도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든가 좌우간 전적으로 간절한 기도에 기적과 응답은 반드시 오는 법, 이걸 믿고 이걸 아는가 골방의 이 기도에 하나님의 결정이 있고, 천사도 왕래한다는 걸. 그러나 들으시라. 기도하지 않음은 범죄라는 걸(삼 12:23), 또한 죄를 마음에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않으신다는 것도(시 66:18). 귀하들이여, 골방생활을 하고 있는가 무릎을 꿇는가 거기서 엎드리는가? 간절히 부르짖는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전적으로 기도하는가 귀하의 목회성공과 실패는 여기에 달려 있는데, 이걸 아실까, 모르실까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더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 기도는 곳곳마다 걸상문화에 골병이 들어있다. 이 걸상문화가 골병들게 했기 때문이 아니냐. 여러분! 하나님이 찾으신 기도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치 않고 기도한 자들, 하나님 존전에 무릎 꿇고 기도한 자들, 하나님 존전에 완전히 엎드려 기도한 자들, 부르짖어 간절히 전적으로 기도한?자들 아닌가. 지금은 코로나 재난 시대이지만, 이때에 귀하들은 골방의 더 많은 생활로, 기도가 풍성하여 성령이 충만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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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30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30’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1. 육성자(肉性者)의 목회생활 이 장에서는 목회자의 영성생활을 논증하여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에 초석을 기하고자 한다. 본 제목은 목회의 핵심이다. 고로 '영성'(靈性)에 희박한 '육성'(肉性)에 의한 목회와 영성을 중시한 '영성'에 의한 목회, 이 두 가지로 나누어 논하고자 한다. '육성'은 영성의 반대로 "육성, 육신의 욕망, 육신의 정욕, 육신의 일, 육체의 일" 등등으로 표현한다. 이를 헬라어로는 '에스카테스 사르코스'라 하고, 히브리어로는 '바사르, 타아바' 등으로 표현된다. 즉 "육체의 일"이라는 뜻이다. 이런 육성의 목회는 영적인 목회와 대립되는 것으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들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함이니라"(갈 5:17)와 같이, 영성의 성령을 떠난 육정적인 목회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이 육성적 목회는 이러하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1). 여기 육체의 일은 곧 정욕, 육정, 육신의 일로서 죄의 기관이요, 죄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말한다. 이에 의한 목회를 육성에 의한 목회라 한다. 과연 이러한 육성에 의한 목회자가 있을까? 그런데 목회자 중에는 이런 목회자도 있단다. 겉모양은 '양'(羊)의 탈을 쓴 자가 있단다. 이제 보라! 속은 노략질로,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를 맺는 것, 분쟁, 시기, 편가름(당 짓는 것), 분리,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 그와 같은 것 즉 교회, 노회, 총회 회의시에 이런 짓을 하는 자들이 있다면 어이할까? 이제 들어보라! 엘리 제사장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삼상 2장), 이들은 불량한 자들이었다. 당대에 유명하고 존경받는 제사장의 아들들이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들로서, 제물에만 관심한 자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자들, 회막문의 수종 드는 여자와 음행 호색한 자들, 아비의 꾸짖는 권고도 안 듣는 자들, 하나님께 큰 죄 되어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된 자들이었다. 저 유명한 사무엘 선지의 아들들은 어떤가? 요엘과 아비아는 자신의 '이'(利)를 따라 뇌물(재물)에만 관심이 있을 뿐, 백성들의 정사(政事)는 내 몰라라 했다. 그 결과는 백성들이 등 돌리고 불신 당하지 않았는가. 여기도 육성소유 사사들이 있었다. 이리하여 사사직과 국사는 실패 또 실패였다(삼상 8:1-5). 또한 선지자 발람은 뇌물에 눈이 멀어 오히려 말 못하는 나귀에게 책망 받고, 하늘의 천사에게 견책 당하고, 끝내 모세에게 죽임 당했다. 왜? 오직 물욕에 취한 자,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상 제물 먹게 하여 범죄케 했으니, 오! 재앙 비극!(민 22, 31장, 수 4:9). 가룟 유다는? 자살, 자살했단다. 왜? 돈 궤 맡아 헌금에서 도둑질하고, 선생 팔아 은 30냥 돈 벌었으나 양심은 고동 쳐서 견딜 수 없어 목매 갔으니(요 12:6, 마 26:27). 이들 모두 실패하여 불행했으며, 자손 만대 행복하게 못 살았단다. 이 자들의 생애는 무얼 말하는고? 창세기 6장 3절에서 "육체"라 하는데, 이는 육적 욕심과 육적 원리로서 이런 자를 하나님의 영이 떠난 자라 한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자들 있다. 이성에 도취한 혹자는 사건 발생 밤보짐으로 좋은 강단 다 내놓고 어두운 밤길에 갔고, 재물욕심 가득한 혹자는 교회재산 말아 먹으려다가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렸고, 분쟁 당파 좋아하던 혹자는 비밀리에 도주하고 말았다 하고, 선임자 축줄하고 자리 빼앗은 혹자는 그의 말로가 비참했었고, 외형적으론 신실한 척 하던 혹자는 엄청난 사고 터져 행방불명 되었다 한다. 그러나 여러분, 정죄는 금물! 언제 회개하고 돌아올지 뉘 알까? 기도하고 긍휼로 기다리시라.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한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전 7:20) 하지 않든가. 나도 언제 무슨 실수 할지 그 누구도 장담 못한다. 다만 권고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 8:1) 하소! 다시 한번 권함은 "육성 목회 비극, 영성 목회 성공", 과연 육성 목회 비극인데 그걸 보고도 괜찮다고 말하는 자는 나의 적이요, 나의 잘못을 말해 주는 자는 참 스승이라! (道吾善者 是吾賊, 道吾惡者 是吾師)<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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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7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29’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2. 화평생활 복된 요청 (2) 예증으로 본 화평생활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궤휼이 있고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잠 12:20).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천도로 화평생활을 에증하려 한다. 옛 성인들도 왈, "이인지언 난여면서"(利人之言 煖如綿絮)라고 했다. 사람의 좋은 말은 솜털같이 따뜻하다는 뜻이다. 화평의 말이 그럴 것이다. 또 "황금천냥 미위기 득인일어 승천금"(黃金千兩 未爲貴 得人一語 勝千金)이란 말도 있다. 황금 천냥 보다 훌륭한 말 한 마디 얻는 것이 귀하다는 뜻이다. 화평의 말 한 마디가 그렇지 않을까? 어느 교회의 설문조사, 팔복 중에 어느 복을 제일 원하는가? 라고 물었더니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을 원한다고 하는 것이 90%였다 한다. 고로 신앙생활 제1조는 화평생활인 줄로 알라. 어느 목사는 교회개척 삼대 방편으로 "기도생활, 구제생활, 화평생활"로 교회 문 열고 시작한 결과 몇 십년 지난 오늘날에는 봉사를 많이 한 대표적인 교회가 되어서 참 보기에 아름답다. 화평을 논하면 태종대왕의 아들 삼형제의 일화도 뺄 수 없다. 태종대왕이 후계자 왕위를 계승시키려 할 때에, 셋째 충녕대군이 왕의 자질과 덕망이 있는 줄 알고, 태자 양녕대군은 거짓으로 미치광이 되어버렸고, 차자 효녕대군은 머리 깍고 중 되어 입산해버렸다. 고로 셋째 충녕대군이 양위를 받아 왕이 되니 이가 세종대왕이시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치선정, 국태민안, 그 문화 혜택은 오늘까지 내려온다. 삼형제 화목이 왕궁 화단 꽃들처럼 고울까? 귀하들도 화평하면 곱게 보일 것이다. 고로 화평하라. 화평하라. 또 화평을 논하는 아브라함도 보라!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툴 때, 조카 롯을 불러놓고 이르는 말, 우리는 동일한 골육인데, 네가 좌(左)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右)하면 내가 좌하리라. 또한 이 땅엔 여러 종족들이 있어 우리들이 싸우면 저들 욕하고, 멸시에 멸시를 할 것 아닌가! 삶의 생활 제1조도 화평이란 것, 왜? 불화 분쟁하면 다 망하니까! 독일 토마스 아캠퍼스의 화평의 논언, "먼저 당신 마음에 화평을 가져라. 그래야 상대에게 화평을 준다. 마음이 평화로운 그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 보다도 더 많은 선덕을 행할 수 있다. 육정의 사람은 모든 일에 악하나 마음이 화평한 사람은 모든 일에 선하며, 불만의 사람은 안정 얻지 못하나 마음이 화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평화케 한다. 마음이 평화롭지 못한 사람은 타인을 평화롭게 하지 못하나 마음 평화를 유지한 사람은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을 이긴 사람은 세계를 정복한 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 하나님 나라 상속자다"라고 하였다. 실로 이는 정언(正言) 중의 정언이다. 세상에 자란 꽃 한 송이도 화평을 위해 낫다 하는데 하물며 인생이랴! 여러분! 팬지 꽃을 아시겠지? 이 꽃의 꽃말은 평화, 화평이란 뜻이란다. 모든 사람에 화평 평화를 주려고 난 꽃, 이 꽃만이 아니라 모든 세계 인류, 아니 주 하나님도 천군천사 평화의 찬송,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화평한 자의 결국은 화평, 화평을 논하면 희락,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 아들, 성령의 열매는 화평, 화평의 열매는 의의 열매, 이는 지상과 천상의 도덕이요 천도이니 이 존귀한 화평생활을 논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승용차의 심한 피해 중에도 화평을 구한 결과로 많은 은혜를 체험한 한 목사의 실화가 있다. 이웃 집 영감이 승용차를 심히 훼손한 것을 순회경찰이 발견하여 경찰서에 구인해, 조서 완료 검찰로 송치할 때에 그 목사 왈, 이 영감 문제 내가 책임지겠소. 하오니 이 사건 무효화 요청하오. 결과 백지로 돌리니, 경찰 집무실 함성소리 와! 목사님은 다르시다. 목사님은 달라! 그 다음 날 그 영감 찾아와 엎드려 사죄를 요청, 돈 봉투 내밀면서 수리비라고, 그러나 다시 돌려주니 그 영감 눈물로 감복하고, 동네에 그 이야기 퍼져 승용차 염가로 수리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는 사람 통해 목사님네 생활비를 보내왔다 한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 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시 33:13,14). 하나님이 보신다. 화평생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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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7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28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12. 화평생활 복된요청 (1) 뜻으로 본 화평생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가." 목회자 여러분, 목회성공과 교회부흥 요소들 중, 화평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지임은 누구나 아는 일 아니겠는가. 화평은 어느 시대, 어느 국가, 어느 민족, 어느 사회에도 요청되지 않는 곳은 없다. 한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하지 않는가! 하나님 말씀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이것이 진리이다. 기독교 뿐만 아니라 동양의 교훈도 마찬가지. 중국 송나라 경행목 왈, "가화빈야호, 불의부여하"(家和貧也好 不義富如何)라고 했다. 집안이 가난해도 화목하면 좋으나 집안이 부요해도 불화하면 어찌할까? 화평은 동서양, 아니 온 세계가 번영의 요소로 추구한다. 회평은 평안, 평화, 평강, 평탄, 화목, 태평, 안심, 안정 등의 동의어로 응용된다. 왜냐, 영어의 "peace"를 보라. 위의 여러 표현을 우리의 여려 말에 "peace" 한 단어로 다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화평의 언어적 의미는 무엇인가? 한자로는 '和' 화목할 화, '平' 평평할 평이요, 영어로는 'peace' 'harmony' 'placidity' 등이요, 헬라어는 '에이레네'요, 히브리어로는 '샬롬' '마노아흐' '누하오' 등인데, 공통된 뜻은 "화평, 평화, 평안"이다. 여러분, 교회는 화평해야 교인들이 붙는다. 고로 목회자는 화평으로 목회를 해야 교회가 부흥된다. 만일 목회자가 싸워 불화한다면 청산유수의 설교, 대웅변가의 언변, 유창한 문장가라 할지라도 영적으로 교인은 속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떠나가고 만다. 상처 입은 그 교회 목회가 될까? 분열하겠지! 주 예수 가라사대 "나라나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설 수 없다"(막 3;24)고 하지 않든가? 뿐만 아니다. 목회자가 싸우고 불화하면, 불신 이방인들이 보고, 공산주의자들도 보고, 천주교인들도 보지 않는가? 또 마귀는 안 보는가? 교회가 무너지고 저들의 조롱거리 되면 주 하나님 무척 슬퍼하실 것! 왜? 교회는 주님의 몸이니까. 목회자 제위께서는 잘 들으시고 교회를 화평케 하라. 목회자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화평해야 한다. 그래야 강단 설교 은혜 넘치고, 교인들 떠나지 않고 잘 받들 게다. "모진 돌이 정 맞는다." 이 말도 기억하고 화평을 도모하라! 화평케 하는 자 위한 14개 조언 지침도 있다. (1) 양보 (2) 극기 (3) 근언 (4) 용서 (5) 포기 (6) 기도 (7) 성경 (8) 봉사 (9) 마음가난 (10) 실행 (11) 온유 (12) 의사모 (13) 긍휼 (14) 마음청결 등이다. 이 생활 위에 자신을 세우라 조언한다. 이런 조언은 동서양을 막론한다. 중국 북송의 제6대 신종 황제 왈, 화목하려면 자기의 욕망을 이기는 길을 부지런히 검소함을 먼저하고, 사람 사랑함은 겸손과 화목을 첫째 머리로 하라(克己以勤儉爲先 愛衆以謙和爲首)고 했다. 모든 인류가 최고로 바라는 행복은 '화평'이요, 최대로 거부하는 불행은 '불화'라고 한다. 귀하는 어느 편 목자인가? 주님은 산상보훈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한다. 여러분, 다시 묻노니 하나님 앞에서 대답을 요한다. 귀하는 피스 메이커인가, 트러블 메이커인가? 귀하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누구의 아들인가? 화평한 목자는 되되, 불화의 창검 쓰는 목자는 되지 말라. 왜? 불화의 도구 창검 쓰서 성공한 자 유사이래 한 분도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말씀 들어보라. "너는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 26:53,52), 회평을 거부, 불화의 도구 창검으로는 다 망한다 하지 않았는가? 여러분! 예수의 법, 천도도 모르고 까불거리다 망한 이태리 뭇소리니를 아시겠지, 그는 사범학교 출신, 학교 교사로 사표의 길을 걸었으나 무슨 미친 병이 들어와 정권 잡아 성공하려면, 불평 불화의 도구 폭력 사용이라야 한다고, 그래 폭력 사용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야망 달성, 그래 일국의 원수가 되어 왠만큼 행복의 노래를 부를 줄 알았지만, 62세 그의 나이에 독일 장갑부대의 총뿌리에 총살되지 않았는가? 불평 불화의 도구 폭력? 아서라 아니다. 화평이라야 된다. 천지가 변해도 이는 진리이다. 모든 목자는 화평의 사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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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8
  • [특별기고] 치리회 조직과 폐지 시비 소고
    시무목사의 단독권, 당회권인가 당회장권인가? 3당회 이하 노회도 총회결의 없이는 폐지 못하고 설립된 노회, 총회의 폐지결의 없는한 그대로 존속 제105회 총회(2020년)가 어느 노회들의 헌의에 따라 “…21당회 미만 노회는 총회총대 천서 및 상비부 및 특별위원을 제한하고, 당회가 충족될 때까지 옵서버로 참석토록 한 결의에 대하여 위헌적 결의이니 당연무효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당회조직은 세례교인 25인 이상인 지교회 목사와 장로로 조직된다(합동: 정 제9장 제1조). 그리고 조직요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지교회를 설립, 분립, 합병, 폐지 및 당회를 조직하는 것은 노회의 직무(합동: 정 제10장 제6조 5)이니, 노회의 결의가 있어야 설립된다. 설립만이 아니다. 분립, 폐지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노회조직은 “…일정한 지방 안에 모든 목사와 각 당회에서 총대로 세례교인 200명 미만이면 1인, 200명 이상 500명 미만이면 2인, 500명 이상 1,000명 미만은 3인, 1,000명 이상은 4명씩 파송하는 장로로 조직한다. 단, 21당회 이상을 요한다”(동: 정 제10장 제2조)고 하였는데, 이같이 조직요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저절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고 “총회는 노회, 대회를 설립, 합병, 분립하기도 하며 폐지하는 것과 구역을 정하는…” (합동: 정 제12장 제5조 2) 직무를 총회의 권한으로 규정하였으니, 역시 노회 설립도 총회가 결의해야 하고, 노회분립도 총회가 결의해야 하니, 노회설립 후 노회가 쇠퇴하여 노회조직의 기본수인 21당회 이하로 줄어들었어도 (설립요건을 갖추었어도 저절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고 총회가 결의해야 조직이 되는 것과 같이) 폐지도 역시 총회가 결의해야 하니, 폐지 결의가 없는 한 노회는 총회의 설립 결의 그대로 존속된다. 그리고 각 노회가 총회에 총회총대를 파송하는 기준은 “…총대는 각 노회 지방의 매 7당회에서 목사 1인, 장로 1 인씩 파송하되, 노회가 투표 선거하여 개회 2개월 전에 총회서기에게 송달하고, 차점순(次點順)으로 부총대 몇 사람을 정해둔다. 단, 7당회 못 되는 경우에는 4당회 이상에는 목사, 장로 각 1인 씩 더 파송할 수 있다. 3당회 이하 되는 노회는 목사, 장로 각 1인 씩 언권회원으로 참석한다. 총회총대는 1당회에서 목사, 장로 각 1인을 초과하지 못한다” (동: 정 제12장 제2조)는 규정에 따라 노회조직의 기본수인 21당회를 넘어 가령 26당회로 구성된 노회의 경우, 7당회에서 목사 1인 장로 1인 비례로 목사, 장로 각 3인의 총대를 선거하면 5당회가 남게 되고 “…4당회 이상에는 목사, 장로 각 1인 씩 더 파송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결국 총대 목사, 장로 각 4인씩 파송하게 된다. 그리고 3당회 이하되는 노회, 즉 3당회, 2당회 1당회인 노회도 총회조직의 구성요원은 그대로이니 총대는 파송하지 못하나 언권회원으로 목사, 장로 각 1인 씩 참석하도록 하였으니, 결국 법은 노회조직의 기본수인 21당회가 무너져 겨우 3당회, 2당회, 1당회가 되었다고 해도 총회가 폐지를 결의하지 아니하였으니 설립 그대로 존속된다는 사실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교회헌법 해석의 유일한 공인참고서(1919년 제8회 총회 결의)인 교회정치 문답조례 282문답(문: 목사 5인이 못되어도 노회를 성립할 수 있느냐?) 답: 노회 성립에 목사 5인은 필수적인 것이니, 혹시 선교지역에 조직된 교회가 넷 이상이 있어도 목사 5인에 미달되면 노회가 성립될 수 없다(Ibid., p.135). 이미 조직되었던 노회가 헌법대로 목사 5인 이하로 떨어져도 노회는 그대로 존속한다(Ibid., p.143 본서 32문답 참조). 32문답 (문: 당회가 있던 교회에서 장로가 다 사망하거나 타처로 이거하면 지교회가 폐지되느냐?) 답: 노회가 특별위원으로 그 교회를 주관하되 속히 직원을 택하도록 할 것이요, 폐지되지 아니한다. 이제는 제105회 총회가 “서울 K노회장 C 씨가 헌의한 21당회 미만 노회는 총회총대천서를 제한하고, 당회가 충족될 때까지 옵서버로 참석도록 한 헌의의 건과, C노회장 L 씨가 헌의한 21당회 미만 노회는 총회총대 천서 및 상비부 및 특별위원을 제한하고 당회가 충족될 때까지 옵서버로 참석토록 한 헌의 건은 허락하기로 가결하다”(2020년 제105회 총회 회의결의 및 요람(P.97)는 결의가 위헌인 여부를 본다. 첫째로 “…총대는 각 노회 지방의 매 7당회에서 목사 1인, 장로 1인 씩 파송하되, 노회가 투표 선거하여 개회 2개월 전에 총회서기에게 송달하고, 차점순으로 부총대 몇 사람을 정해 둔다. 단, 7당회 못 되는 경우에는 4당회 이상에는 목사, 장로 각 1인 씩 더 파송할 수 있다…” (합동: 정 제12장 제2조)는 규정은 7당회이면 총대, 목사, 장로 각 1인 씩 파송한다 하였는데, 이 총대가 왜 제105회 총회의 결의대로 옵서버가 되어야 하는가? 그러므로 문제의 결의는 정 제12장 제2조를 위배한 위헌 결의이니 당연무효이고, 뿐만 아니라 위에서 논급한 바와 같이 노회조직의 기본수인 21당회가 되었다고 해도 총회가 노회설립을 결의해야 설립이 됨과 같이(합동: 정 제12장 제5조 2), 노회가 기본수인 21당회 이하로 떨어졌다고 해도 총회가 폐지를 결의해야 폐지되는데, 총회가 폐지결의를 하지 않았으니 총회의 노회설립 결의는 그대로 존속된다. 그리고 총회총대 파송기준은 21당회가 아니고 7당회 단위제요, “단, 7당회 못 되는 경우에는 4당회 이상에는 목사, 장로 각 1인 씩 더 파송할 수 있다…”(합동: 정 제12장 제2조 단서)고 하였으니 결국 총대목사, 장로 각 2인 씩 파송할 수 있다 함이요, 그리고 노회가 3당회 이하가 되었다고 해도 폐지결의가 없는 한, 노회는 설립결의 그대로 존속하니 그 노회도 총회가 전국노회들의 회라는 점에서는 총회조직의 구성 요건이라 할 것인즉, 그래서 총대는 파송하지 못할지언정 언권회원으로 목사, 장로 각 1인 씩 참석도록 규정하게 된다. 그리고 총회총대 파송은 21당회와는 무관하고 “…매 7당회에서 목사 1인 장로 1인씩 파송하되… 단, 7당회가 못되는 경우에는, 4당회 이상에는 목사, 장로 1인씩 더 파송할 수 있다. 3당회 이하되는 노회는 목사, 장로 각 1인씩 언권회원으로 참석한다…”(정 제12장 제2조)고 하였으니, 7당회 단위제인 총대파송 기준을 노회조직의 기본수인 21당회로 여겼는지 “그래서 21당회 미만 노회는 총회총대 천서를 제한하고 (…상비부 및 특별위원을 제한하고) 당회가 충족될 때까지 옵서버로 참석토록한 헌의건은 허락하기로 가결하다”(제105회 총회결의 및 요람 p.97)는 결의는 총대파송 기준 규정인 정 제12장 제2조에 위배되는 위헌결의이니 당연무효로 돌아가게 된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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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8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27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11. 감사생활 평생요청 (2) 예증으로 본 감사생활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여러분, 위 성경구절을 아신다면 감사하지 않고는 안될 것이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범사는 한자로 "凡"(무릇 범), "事"(일 사)요, 영어로는 "all circumstance"로 어떤 처지이든지 감사하라는 것이다. 여러분, 괴로우나 즐거우나, 환란이나 평안이나 범사에 감사하시길, 햇빛 볼 때는 감사하고, 비 올 때는 불평일까. 하나님이 계신 저 하늘을 쳐다보라!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거기로서 감사할 평화가 내려오네, 인간 역사에 감사치 못한 자들 너무 많지 않은가. 여기에서 인간 비극이 발생한다. 이 세상 비극은 어데서 오는가? 감사할 줄 모른 데서 온다. 에수님 시대가 이를 증거하지 않든가. 열 문둥병자 고쳐줬지만 사마리아인 한 명만 감사했다. 남은 아홉은 인사도 없어! 그러기에 감사생할 논하려면 사전에서나 찾으라고! 그리스의 입법학자 라이커큐어스 왈, "하나님께 감사치 못하고 산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쳐버린다"고 했다. 이 사실은 성경도 증언한다(롬 1:18-23). 모 교회 어느 교인 이야기. 얼마나 인색한지 생활의 여유가 있었음에도 감사생활 나는 못해 하고 놀아나더니,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살림 차리고, 그런대로 운영되던 실 공장은 빚더미가 다 가져가고, 자신은 살길 막막 삯월세방에 중병들어 통곡하니, 있을 때 감사생활 왜 안했던고! 감사생활 못한 자들 장담을 마오. 어떤 교회 36년 간 손 벌리고 찾아온 어려운 교회들, 기관들, 힘을 다해 정성 다해 도와 줬건만, 감사의 말 한 마디, 감사의 편지 한 장 없었다 한다. 미국 변호사 사무엘 이브워치도 78명 중죄인을 변호해 구해 줬어도 어느 한 사람 감사한 자 없더라고 했다. 하나님도 이런 세상 다 아시고 계신다. 소원의 바구니 든 그 천사는 가득가득 넘치게 채워 왔으나, 감사의 바구니 든 그 천사는 감사를 담지 못해 그냥 갔다네! 혹시 우리의 감사 없어 못 담았을까? 감사하라.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에 번영 축복, 감사에 문명 대국, 감사에 빛을 발한 세계를 보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사무엘 이드자이 크라우드의 고난 중에 배운 감사생활이 교회 설립, 학교 설립, 전도하고 교육하며 19세기 신생 문명국가 이뤘으니, 한 사람의 감사생활 그 열매가 이렇게 큰데. 미국을 보라. 11월 하순 국정감사일. 그러기에 세계 일등의 문명 대국, 세계역사 속에 입성한지 오래로서 국가적 감사! 우리의 기원함도 국정의 감사, 불란서도 노동현장 감사의 기도 밀레의 그림 한 폭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생활로 그리스를 빛나게 했다고 하고, 한국의 손양원 목사도 순교의 두 아들 영결식 때에 아홉 가지 감사로 온 세상을 감동케 했다. 세계를 더 넓게 보시라. 영국의 크롬웰이 지도하던 교회는 교인들 모두가 감사생활 했다 한다. 왜? 그곳 교회 목회자가 감사생활 목자니까! 세계적인 삼중불구자 헬렌켈러도 일생을 감사로 살았다 한다. 하물며 불구 중에도 그런대 건강한 우리는 왜 못하리요. 오래전 들은 이야기, 세브란스병원에서 어느 교회 목사사모님이 암수술 하다가 불가능 판정을 받고 의술로는 못 고치나 한 가지 방법 뿐, 집사인 의사 왈, 감사할 것 찾아 노트에 기록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새김질 감사하라 했다 한다. 여러분, 그 사모님 죽었을까, 살았을까? 감사새김질, 감사새김질, 그 의사 말이 헛튼 소리였을까. 지금도 신유은사는 작용하는가, 어떤 박사 말대로 사도 시대에 끝난 것인가? 감사새김질 5개월 만에 완치되어 살아났단다. 이걸 못 믿겠으면 예수 믿음 걷어치워야! 현대 신유 부인한 그 박사 동료될라. 하나님의 헌금 먹고 살면서 신학도 안한 그 의사만도 못해서야, 약방의 감초는 빠질지언정 목자들 새김질 감사생활은 계속돠어야 한다. 짐승도 주인 은공 다 안다는데!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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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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