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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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워킹 맘들이 유리천장을 뚫어내는 사례들을 매스컴에서 접하면서, 세상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좋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요한복음을 읽노라면, 2천년 이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늘 우리 세상의 여성들 이야기를 기록하여 놓은 듯 하는 착각마저 든다. 요한은 당시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그의 복음서를 구상하면서, 다른 기자들과는 다르게 의도적으로 여성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에는 누구보다도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소개하였다. 마리아는 흥이 깨져가는 포도주가 떨어진 세상의 끝자락에 서서 그들의 실제적인 상황과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가나의 잔치가 예수의 시간은 아니었어도, 마리아는 그녀의 시간대에 예수를 놓치지 않고 초대한 것이었다. 복중의 쌍둥이 아이들 중에서 하늘의 부름을 입은 자를 식별한 리브가처럼, 그녀의 민감함을 말한다면, 마리아는 베드로와 비중을 같이하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선지자요 사도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울적하여진 구름이 덮인 세상이 금방 해가 밝게 빛나도록 상황을 뒤바꿔준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어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루신 그 순간에, 요한은 마리아를 그의 교회의 지도자(어머니)로 모신다. 요한 공동체가 모친으로 모신 마리아는 그 공동체의 비중을 보아서 수장일 수밖에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마리아 여성을, 율법의 수장 니고데모보다도 먼저 앞세워서 세상의 구원자이신 메시아를 직면하게 하고, 눈을 뜨게 하여 구원을 얻게 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적어도 십자가를 지시려는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붓는 것도 여성이고, 예수의 부활 이후 하늘과 땅의 심판주이신 예수와의 첫 번째 만남을 얻은 이도 여성이다. 이렇게 성령께서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요한을 들어서 새롭게 복음을 진술하시는 뜻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당시 세상은 남성 위주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적어도 요한복음서에서 만큼은 남성을 차선에 둔다. 심지어는 마리아가 주연이고 베드로는 조연이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세상은 어떠한 세상인가? 지루할 정도로 수천 년을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하며 지치지도 않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에서는 여성들이 말을 하고 앞에 나선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였을까? 이는 아래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이들은 남녀노소 차별이 없고, 배움을 가졌든지 못 가졌든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하나님나라의 영생을 얻은 이들이다. 오로지 이들의 가치는 위로부터의 태어남이며, 이들의 삶의 장막과 기준은 오로지 인간의 세속적 가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세례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태어나야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다면, 성령이 바로 그 공동체의 시작이고 근본이며 척도이다. 그래서인지 저들은 예배에 대한 가치관이나 개념이 바뀌었다. 육신적인 사람들이야 말로 예배당을 궁전처럼 지어놓고 예배하는 것을 영적인 것인 양, 슬그머니 하나님의 영광을 바꾸려 하지만, 요한 공동체는 이에 속지 아니하였다. 저들은 그리심산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이념을 파기하고, 오로지 성령 안에서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일시적이고도 그림자 같은 거짓된 세속적 가치를 식별하고, 영적 실체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하였던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우리가 조금만 주의 깊게 집중하면 예수께서 삼일 만에 세우신 교회를 접할 수 있게 된다. 요한은 이 교회의 실상을 바르게 직면할 수 있었기에 요한복음을 저술하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이 바로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이고, 요한 공동체가 바로 성령이 임재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독자들이 보혜사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서 요한복음을 읽는다면, 예수님이 허물려 하는 교회는 다시 세우진 않을 것이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이 다시금 육으로 태어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지 육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가 전례를 행하고, 금방 성찬에 참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노회 임원을 조직하고 총회 총대를 선출하고, 연합 단체의 임원을 조직할 때에, 우리는 교회의 직제와 직임에 마음을 뺏긴 나머지 주님을 즉각 범하게 된다. 성령을 훼방하면 용서가 불가한 죄가 되는데도 지치지도 않고, 굳이 주님이 허물은 성전을 다시 세우려는 자야말로, 무너뜨린 여리고를 다시 세운 자에게 미친 그 형벌보다도 더한 벌을 피해 갈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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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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