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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사법부에 카르텔이라니, 말이 되나?’
- 우리는 평소에 경찰, 법원, 검찰의 국가 조직에 별 관심이 없다. 말 그대로 죄를 짓거나 어떤 범죄적 혐의나 행위가 있을 때, 관련되는 곳이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는 더욱 관심이 가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에 가장 관심을 받는 곳이 헌법재판소이다. 대통령의 탄핵 문제에 있어, 최종적으로 헌법적 판단을 할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국민들이 헌법재판소의 헌법 재판관들의 면면에 대하여 좔좔 외울 정도가 되었다.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존함은 모르는 사람들도 헌법 재판관 8명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다. 또 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치적 성향과 그들의 판사활동 궤적(軌跡)을 훤히 알게 되었다. 헌법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에서 눈에 띄는 것이 ‘우리법연구회’(이하 우리법)와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인권법)이다. 이는 국민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조직에 들어갔던 판사들이 상당수 정치적인 편향성을 가졌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다. 그런 조직 속에서 활동했던 인사들 가운데, 이번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을 살펴보자. 오동운 공수처장은 인권법 출신이다. 또 공수처가 요청한 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의 이순형 판사는 우리법 출신이다. 그리고 탄핵 심판을 맡은 헌법 재판관 가운데 문형배 권한 대행은 우리법 회장 출신이다. 그리고 이미선 재판관은 인권법 출신이다. 정계선 재판관은 우리법과 인권법 모두에서 활동하였다. 또 야당의 국회 탄핵소추단의 박범계, 최기상 의원도 모두 우리법 출신이다. 그리고 민주당의 추천으로 헌재 재판관이 되려는 마은혁도 우리법 출신이다. 또한 서울서부지법의 영장 전담 판사도 아니면서, 당직 판사로 대통령에 대하여 15자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차은경 판사도 우리법 출신이다. 뿐만이 아니다. 최근에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의원에게 선거법과 관련하여, 1심에서는 두 사람이 각각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2심에서는 ‘유죄 의심이 가지만 직접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내린 2심의 주심 판사도 인권법 출신이다. 그리고 당초 1심을 맡았던 김미리 판사는 계속 재판을 지연하므로, 결국 3년 10개월 만에 1심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인데, 그도 우리법 출신이다. 이러니 국민들은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법부 내 사조직 판사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다. 그래서 카르텔(Kartell)를 형성했다고 비난한다. 이 말은, ‘동일 업종의 기업들이 이윤의 증대를 노리고 자유 경쟁을 피하기 위한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되는 시장 독점의 연합 형태’라고 정의한다. 판사들은 기본적으로 ‘법’과 ‘양심’에 충실하게 판결해야 한다. 이때 양심은 개인의 정치적 편향이나 주관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특정 세력을 변호하고 감싸기 위해서 법을 악용하거나 구부러진 잣대로 적용한다면, 이것은 국가와 국민들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이 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공산 국가에서도 법정도 있고, 판사도 있고, 검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다. 그러나 그들을 결코 양심적이고 법에 충실한 ‘법조인’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공산당과 자기들이 받드는 수령(首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군대 내 사조직으로 알려져 크게 비난과 심판을 받은 조직이 있었다. ‘하나회’였다. 그런데 군부 독재 시대도 아닌, 현재에 사법부 내에서 권력을 독점하는 사조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나? 우리법연구회는 1989년 만들어져서 후에 호남계 법조인, 운동권 법조인들이 중심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조직은 2018년 해체될 때까지 140여 명의 회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우리법 출신이 많이 기용되었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박시환 대법관, 강금실 법무부장관, 김종훈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이 있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표적인데, 그는 우리법 초대 회장 출신으로, 그가 대법원장이 된 후 우리법 출신들을 집중적으로 핵심 요직과 수뇌부에 승진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박범계 법무부장관, 이용구 차관도 같은 우리법 출신이다. 그리고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몫으로 향판(鄕判) 출신인 문형배를 인사청문회 당시 횡령 의혹과 정치적 편향성 등의 문제점이 있었으나, 끝내 헌법 재판관으로 세운 것이다. 그가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으로 이번 대통령 탄핵 사건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후에 생긴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의 법관은 4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 법관 3,000여 명 가운데 우리법과 인권법 판사들의 비율이 얼마나 높은가? 이런 조직에 들어간 판사들이라고 무조건 정치적 편향성을 가졌다고 의심해야 하나? 물론 100% 다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언론 보도에 의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 같은 의견을 낸 경우가 90%까지 이른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현상을 어찌 가벼운 문제로 보겠는가? 책임과 파급력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모든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그야말로 판사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법원으로 상징되는데 이런 사조직 활동과 편향성을 갖게 된다면, 이는 국민들이 인정할 수 없다. 국민들의 결집된 힘으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사법부 내에 모든 사조직은 없어져야 한다. 카르텔을 해체해야 한다. 온 국민들이 이런 올바르지 못한 법관들을 위하여 비싼 세금을 내서 그들을 예우하고, 그런 사람들에 의한 부당한 법의 지배를 받는다면, 이를 용납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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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사법부에 카르텔이라니,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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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사회 "돌들의 외침을 막지 말라"
- ◆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1919년 3월 1일, 대한의 민중들은 일제히 거리로 나와 일제 침탈의 불법을 고발하고, 당당히 대한의 독립을 선포했다. 우리나라가 독립국임을 전 세계 알린 3.1 만세운동의 중심에는 유독 눈에 띄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이화학당에 다니던 17세 무렵의 꽃다운 소녀들로, 바로 그 유명한 유관순 열사와 6인의 이문회였다. 이들의 희생과 투쟁은 대한의 민중들로 하여금 독립의 의지를 북돋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60년 3월 15일, 자유당이 민주당의 장면에 뒤지던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부정선거를 실시하게 된다. 이미 이승만은 단독후보로 대통령 당선이 결정된 상황이었음에도, 자유당이 이기붕의 부통령직을 위해 부정을 자행한 것이다. 결국 이 일로 전국의 청년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섰고, 대한민국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4.19혁명이 발생한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당의 부정선거가 자신의 탓이 아니었음에도, 모든 책임을 직접 지고 하야를 수락한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자신을 향해 반기를 들었던 청년들을 보며 "이 땅의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한다. ◆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운정참존교회(담임 고병찬 목사)에 최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부지법에서 폭력사태를 일으킨 '투블럭 청년'이 바로 운정참존교회의 교인이라는 '악의적 거짓' 때문인데, 이를 입증할 어떠한 증거도 없었지만, 이미 '거짓'은 사실인양 언론, 유튜브, 블로그 등에서 재생산되며, 운정참존교회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더 끔찍한 것은 무자비한 정치적 공격이 어른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서슴지 않고 가해진다는 점이었다. 최근 일부 여론은 운정참존교회에서 운영하는 기독스쿨 IBMS의 아이들이 애국집회에 참여해서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을 두고 간악한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사상에 문제가 있다거나, 어른들이 아이들을 잘못된 가스라이팅을 했다거나 등등 온갖 막말을 해오는 것인데, 대부분은 아이들이 집회에 참여한 것 자체를 문제 삼는 식이다. 이 상황에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례없는 위기와 혼란을 겪고 있다. 다음시대를 결정할 역사적 선택의 한복판에 있는데, 과연 이런 때에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그리 잘못된 것일까? 그렇다면 이 시대가 원하는 바람직한 아이들의 모습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불의를 봐도 어떻게든 침묵하며, 오로지 자기 영달을 위한 공부만 하는 것이 참된 아이들인 것인가? 우리 어른들은 지금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단 말인가? ◆ 대한민국의 굴곡진 역사에서 이 시대를 지켜낸 것은 10~20대의 청년들이었다. 시대의 폭력 앞에 깨어있는 청년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일궈냈으며, 오늘의 선진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을 향해 반기를 든 청년들을 보며 이를 탓하지 않고 "그것이 곧 민주주의"라고 했던 것은 그만큼 젊은층이 이 시대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60년이 훨씬 지난 오늘, 오히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그저 침묵이 정답인양 가르치며, 아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눅 19:40). 지금 이 시대의 어른들은 자기 안위에 타협한 비겁한 침묵자들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불의 앞에 굴하지 않는 우리 돌들의 외침은 막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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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사회 "돌들의 외침을 막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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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의병(義兵)
- 정확한 수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역사학자들은 지난 시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이 무려 1,000여회 이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은 외세의 공격에 의한 침략전쟁으로, 굳이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 전쟁을 포함시키지 않더라도 이 땅은 지난 반만년동안 중국, 일본, 몽골 등의 주변국에 의해 지독하리만큼 당하고 당해왔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여몽전쟁 등 시대마다 바뀌는 동아시아의 패권국은 하나같이 바로 이 땅 한반도를 탐내왔다. 대부분은 이들의 침략을 이겨냈고, 무력의 한계 앞에서는 슬기롭게 타협해야 했다. 놀라운 것은 그 오랜 역사 속에 우리 땅은 일제시대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의 지배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작지만 강한 땅, 하지만 그만큼 땅에 새겨진 처절한 울분이 참으로 서글픈 곳, 바로 한반도다. 의병(義兵)은 그 처절한 울분의 끝에서 새롭게 태어난 민초들의 이름이다. 아무도 그들을 지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난 존재들, 자기희생의 상징이 바로 의병인 것이다. 문(文)을 숭상하는 대신 무(武)를 지독히도 천시했던 500년 역사의 조선은 국가방위에 언제나 취약했고, 그 피해는 오롯이 민초들의 몫이었다. 국가의 잘못된 정책과 의식으로 짓밟히고 또 짓밟혔던 그들, 하지만 그들은 원망 대신 스스로 의병이 되어 나라를 지키기를 택했다. 임진왜란 초기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왜군들을 보며 관군들도 도망가기 바빴던 그 시기에 전국 각지에서 반전의 씨앗을 틔운 것은 바로 의병들이었다. 의령의 곽재우, 나주의 김천일, 영천의 권응수, 금산의 조헌, 묘향산의 서산대사, 금강산의 사명대사 등 누구하나 시킨 적 없지만, 스스로 군을 일으켜 왜군들을 막아냈다.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 등의 혁혁한 성과 역시 의병들의 희생이 바탕에 깔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반만년 역사의 한반도를 이제껏 지탱해 온 것은 바로 민초들의 애국이었다.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한 민초들의 발호는 의병이라는 매우 숭고한 결실로 나타나 이제껏 한반도를 지켜내 왔다. 중요한 것은 우리 한반도의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종전국이 아닌 휴전국으로, 언제든 우리를 집어삼킬 대적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 한반도다. 지금 우리에게 완전한 평화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혹자는 6.25전쟁 이후 북한의 도발이 무려 3,000회 이상 이어져 왔다고 보고하고 있다. 아직 이 땅은 전쟁 중인 셈이다. 하지만 이 땅을 지켜왔던 그 의병들이 지금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이 땅에 전쟁은 남아있지만, 의병들은 사라진 현실은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땅의 교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현 대한민국의 주류종교는 단연 기독교다. 1,000만 성도들이 함께하는 기독교는 모든 분야를 통틀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최대 집단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교회가 시대의 계속되는 전쟁 앞에 침묵을 택하고 있다. 그것이 종교의 사명인 듯, 기독교의 정의인 듯 얘기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민초들이 지켜낸 이 땅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매우 비겁한 합리화일지 모른다는 씁쓸함이 크다. 굳이 총칼을 들어야 애국이 아니다. 시대는 변했고, 애국의 방법도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다. 2025년 교회는 스스로 할 수 있고, 스스로 해야 하는 의병의 참 모습을 찾아야 한다. 침묵은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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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의병(義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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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진보계 미국 대통령의 한계’
- 지난해 12월 29일 미국의 전직 지미 카터 대통령이 100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1977년 1월부터 1981년 1월까지 4년간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을 지냈다. 지미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된 1976년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전의 장기화로 미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컸던 때이다. 이로 인하여 그는 변변한 미국 중앙 정치의 경험도 별로 없는 가운데, 조지아주 주지사를 지낸 것만으로 명함을 내밀어 대통령에 당선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의 정치 공약은 놀랍게도 ‘절대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것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어 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는 만만치 않았다. 중동의 오일쇼크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이란의 이슬람 혁명 세력이 미국 대사관을 점령하여 52명을 인질로 444일간 억류한 사태는 미국민들의 자존심을 구기는,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지미 카터는 재선에 실패하고, ‘강한 미국’을 내세운 로널드 레이건에게 다음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지미 카터는 현직에 있을 때, 아주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대통령이다. 그는 57세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자기 땅콩 농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을 지낸 경력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민주주의, 인권, 평화, 기아 퇴치라는 미국 진보계 민주당이 주창하는 것들에 헌신하였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40년 이상을 이런 일에 몰두하였다. 그는 퇴임 후, 저소득층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해 주는 ‘해비타트 운동’을 이끌어서 전세계 14개국에서 4,447채의 주택을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을 하였다. 또 분쟁 지역의 외교에서 막후 협상을 벌여 해결사 및 중재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는 북한, 수단, 아이티, 세르비아, 보스니아 등을 누볐다. 그래서 지미 카터를 ‘사태를 해결한다’는 의미로 ‘미스터 픽스 잇’(Mr.Fix. it)이라고 불렀다. 그로 인하여 2002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런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한국과는 그리 친밀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지미 카터 대통령 당시 한국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다. 지미 카터는 1977년 대통령에 취임 하자 마자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한다’고 밝혔다. 당시 참모인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안보담당 보좌관은 신중론을 폈지만, 카터는 한국의 유신체제와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내려놓지 않았다. 이 문제로 양국은 심각한 갈등이 생겼었다. 그런데 지미 카터 대통령은 한국보다는 북한의 김일성에게 더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1994년 6월 1차 북핵 위기가 있을 때, 카터는 당시 클린턴 행정부와 협의도 없이, 김일성의 초청을 받아들여 평양을 방문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카터는 김일성과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즉 ‘미국이 대북 제재를 중단하면 북한도 핵개발을 동결하겠다’는 주장을 폈다. 그때까지 강경했던 클린턴 행정부도 어쩔 수 없이 ‘제네바 합의’를 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때 카터의 역할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개발하여 사실상 보유하는 나라로 만들어 준 셈이 되고 말았다. 또 카터는 2010년 천안함 폭침이 북한에 의하여 발생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이, 북한이 원하는 6자회담 개최에 대한 것을, 북한의 입장대로 뉴욕타임스에 기고하였다. 그리고 2011년에도 북한을 방문하고 나서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북한 인권 문제에 간섭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대하여 식량 지원 중단한 것을 ‘인권침해’로 비난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2014년 카터가 설립한 ‘카터센터’에서는 당시 내란 음모와 선동 협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을 우려한다고 논평하였다. 그는 평화나 인권을 말하면서도, 이를 악용하여 독재를 벌이는 자들에게는 관대하므로, 그들이 평화와 인권 뒤에서 벌이는 허위와 위선을 간파하지 못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아야 했다. 지미 카터는 100세까지 장수하였다. 그의 부고(訃告) 기사는 이미 오래전에 쓰여졌다고 한다. 뉴욕타임스가 내보낸 지미 카터의 부고 기사는 지난 2017년 사망한 로이 리드 기자가 쓴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부고 기사도 지난해 사망한 에드워드 월시 기자가 작성해 놓은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의 부고 기사도 이미 2021년에 사망한 해럴드 잭슨 기자의 글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놀랍다. 그러나 미국 정치에서 진보 대통령이 가졌던 인식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공산주의 북한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자유민주주의 한국에 대해서는 왜 그리 박정(薄情)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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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진보계 미국 대통령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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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그 때 한국교회가 하나 됐더라면···
- ◆ 지난 2022년 6월 2일, 그 날은 한국교회 역사를 완전히 바꿀 뻔한 매우 의미있는 결의가 이뤄진다. 한기총이 임시총회를 열고, 한교총과의 통합을 위한 세부합의서를 통과시킨 것인데, 총 135명 중 찬성 70표, 반대 64표, 무효 1표라는 결과가 말해주듯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지만, 이날 한기총은 사사로운 문제를 덮고 한국교회를 위한 대의에 과감히 한 발을 던지게 된다. 한기총의 결단은 한국교회 전체에 파장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교계 연합단체 분열 이후, 단 한 번도 도달한 적 없던 9부 능선의 자리는 얽히고 설킨 교계 정치의 물고 물리는 방해를 고려할 때 사실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분열 이후 제 힘을 잃어 버리고, 대립과 다툼으로 서러운 시절을 보내던 한국교회에 있어 한 치 앞으로 다가온 '대통합'은 이제 한국교회의 새 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단체의 통합은 한교총의 내부 반대로 결국 무산되게 된다. 한국교회는 고지를 바로 코 앞에 두고 통한의 발길을 돌려야 했다. ◆ 복잡하고 치열한 교계의 정치 방해를 극복하고, 두 단체의 통합을 9부 능선에 올려놓은 주인공은 바로 소강석 목사다. 많은 인물이 한국교회 통합을 위해 동조하고 노력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깊은 내막을 살펴보면 사실 소 목사 혼자 이 모든 일을 짊어졌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는 교단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 그리고 한교총 통합추진위원장을 역임하며 무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오직 통합에만 모든 것을 바쳤다. 적극적이다 못해 치열하기까지 했던 그의 통합 추진 야사(野史)는 책 한권으로는 택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건들을 낳았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성과를 낼수록 이를 깎아 내리려는 일각의 시기와 질투도 함께 증가했다. 그의 진심을 왜곡하는 거짓과 음해는 기본이고, 통합을 방해하기 위한 노골적인 정치 공작들이 횡행했다. 한때 길가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도 소강석 탓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일부 진영으로부터 말도 안되는 '억까'(억지로 까다)를 당해야 했다. 사실 한기총-한교총 통합 논의가 도달한 9부 능선은 실로 엄청난 성과였다. 대부분의 교계 관계자들은 수도 없는 실패를 목도하며, 양 기관 통합에 대해 절대 불가를 예상했는데, 소 목사는 이들의 예측을 모두 뒤집고, 통합을 목전까지 끌고 갔던 것이다. 당시 소 목사가 그토록 통합에 매진했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분열을 치유하지 못하면 한국교회는 물론 우리사회의 미래 역시 결코 보장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다. ◆ 2025년 새해 정초부터 우리 국민들은 짙은 어둠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겉잡을 수 없이 깊게 패인 이념의 갈등은 국민들은 물론 교회마저도 집어 삼키며, 하나님의 정의보다 빨강과 파랑의 어느 한쪽을 선택케 강요하고 있다.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거대 야당의 선을 넘은 횡포는 어느 하나 정상적이지 못한 우리나라가 마주한 저급 정치의 현실임에도, 국민들은 원치 않게 반드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매우 불행한 기로에 서게 됐다. 최선과 차선보다는, 최악과 차악 중에 하나를 택해온 우리나라의 정치가 결국 부정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터져 버린 탓이다. 교회의 대처는 정도(正道)를 잃었다. 우리사회의 빛과 소금을 자처하며, 시대를 선도할 등불이 되겠다던 교회들이 이념의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의 치어리더로 전락했고, 그나마 중립을 추구하던 연합기관은 이도저도 못한 채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국민들이 교회를 보며 품을 희망은 이 시대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이런 상황에 한국교회가 만약 그 때 9부 능선을 넘어, 진정 하나가 됐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궁금증을 품어본다. 그 당시 소 목사가 내건 통합의 구호는 바로 '원 리더십 원 보이스'··· 하나된 한국교회, 하나의 리더십은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우리 정치와 사회의 그릇된 방향을 분명 지적했을 것이고, 더 큰 화가 미치기 전에 이를 막았을 것이다. 비상계엄과 야당의 횡포는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우리나라의 정치 문제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하나된 목소리는 사회와 정치의 상처가 곪기 전에 이를 발견하고 치유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100만명이 모이는 집회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상시적으로 우리사회를 보듬을 한국교회의 하나된 힘이 먼저다. 그렇기에 만약에 그 때 한국교회가 하나됐더라면, 한국교회가 하나의 목소리로 우리 정치의 변화를 촉구했더라면, 어쩌면 우리의 오늘이 좀 더 밝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반대로 당시 한국교회의 통합을 목전에서 저지한 바로 그들이 그 역사적 과오를 뼈저리게 반성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 소강석 목사는 한국교회 통합에 전력하던 지난 2022년 6월,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긴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를 보아도 분열하면 망하고 연합하면 흥하게 되어 있다" 지금 우리는 또다시 역사적 교훈을 망각한 그 죗값를 톡톡히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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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그 때 한국교회가 하나 됐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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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골] 지족부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
- ▲노자도덕경 제44장은 "지족부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라고 한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하지 않다. 그렇게 하면 오래 갈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모든 인생사의 만고의 진리이다.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거나 탐내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욕을 당하는 일이 없고, 또한 그 욕심으로 인해 선을 넘지 않는다면 생명에도 크게 지장 없이 살아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태적으로 죄성을 가진 존재여서 그 속에 욕심(辱心)이란 것이 있어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욕 따위를 억제하기 어렵다. 일단 그것을 가진 사람은 더 가지고 싶어 하고,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은 더 높아지고 싶어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실족하고 넘어져 망신을 당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 정치권의 행태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회 의석 3분의 2에 이르는 거대 야당은 대선에서 자신들이 져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행정부를 무력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직자에 대한 탄핵을 악용하고 있다. 자당 대표의 비리를 수사하는 검사들로부터 장관, 감사원장, 방통위원장, 경찰청장, 국무총리, 대통령대행, 대대행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탄핵을 휘둘러 공권력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끝내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자기네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수단이 탄핵이다. 그러나 작금의 야당의 탄핵 행태는 다수당의 힘만 믿고 정부를 압박하는 무도한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국정 공백이 따르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 피해는 소로시 국민의 몫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사심이 앞서면 그 욕심을 정당화 하며 다른 공익은 보려 하지 않는 법이다. 특히 정치인은 권력이 눈 앞에 어른거리면 합리적 사고를 하기 어렵다. 지금 야당의 모습이 바로 이런 함정에 빠져 있다. 당장이라도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른다면 자기네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권력을 누렸던 때를 생각하며, 아! 옛날을 되뇌이고 국회의 입법권만 믿고 강한 드라이브를 걸며 무리수를 두고 있다. 또 노자는 말한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며"(過猶不及),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속성이고, 연한 것은 삶의 속성이다." 정치란 국민의 이익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정당 간 타협하는 것이다. 한 정당이 독식하는 것은 독재이지 정치가 아니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가 국민의 삶에 폐해를 끼치고, 국가 외교 안보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과연 '과유불급'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속성이라 한다. 사람도, 동물도, 생물도, 식물도 죽으면 굳어져 딱딱해져 땅에 묻혀 썪는다. 정치도 굳고 강하면 결국 부러져 사라지는 것이다. 지족부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하지 않다 그렇게 하면 오래 갈 것이라"는 노자의 말을 상기하라. 그렇지 않으면 거대 야당도 결국엔 딱딱해져 오래지 않아 부러지는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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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골] 지족부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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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간절히 성탄의 예수님이 생각난다
- 유명 정치인 한 사람이 지난 12일 대법원에서 3심의 형을 확정받아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그에 대한 재판은 무려 5년여를 끌어왔다. 죄목도 많다. 아들의 학사 입시부정 행위에서, 학생출결관리 업무방해 유죄, 미국 대학 온라인시험 부정행위 유죄, 대학원부정지원 유죄, 법전원 부정 지원에서 위계공무집행방해 유죄를 받았다. 또 딸의 입시 부정행위에서, 의학전문대학원 부정지원에서 위조공문서행사 유죄, 허위작성 공문서행사 유죄, 위조사문서행사 유죄, 업무방해 유죄, 의전원 장학금에서 청탁금지법위반행위가 유죄를 받았다. 그리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서, 특별감찰반관계자상대권리행사방해 유죄를 받았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법원 판결 확정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1심 결과가 나오는데만 3년 2개월이 걸렸다. 거기에는 판결을 연기해 주려는 한 여자 판사의 숨은 노력(?)까지 있었다. 그리고 보통 유죄가 나올 경우, 일반인 같으면 바로 ‘법정구속’인데, 그는 1심과 2심에서 유죄가 나왔는데도 구속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그는 새로운 당을 만들어 총선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당 대표까지 꿰차게 되었다. 그리고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바로 구속되지 않고 며칠의 말미를 얻었다. 그가 청와대의 민정수석을 거쳐 2019년 8월 법무부장관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는 그로 인하여 분열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를 장관으로 임명한 당시 대통령은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해 검찰개혁을 희망한다’고 하였다. 그가 누구인가? 전 00혁신당 대표였던 사람이다. 그가 법의 단죄를 받던 날, 그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발급해 주고서도 이를 인터넷 방송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한 전 더불어민주당 모 의원에게도 유죄가 떨어졌다. 그는 이미 허위 인턴 확인서를 발급해 준, 업무방해 행위로 작년 9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재판이 늦어지는 바람에 국회의원 4년 임기 가운데 83%를 채운 뒤였다. 우리 사회에서 주목을 받은 그는 형을 2년 마치고 나서도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되어 그가 꿈꾸던 막강한 권력을 또 잡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리고 구속을 앞둔 가운데에도 ‘더 탄탄한 사람으로 돌아오겠다’고 하였다.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다. 세상에 이런 권력이 있을까? 그러니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그렇게 욕을 먹어도 권력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일찌감치 주목을 받던 사람이다. 특히 언론들이 주목했는데, 그가 30대이던 2004년 한겨레신문은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으로 선정하였고, 2006년 경향신문은 ‘한국을 이끌어갈 60인’으로 선정하였고, 동아일보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연속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으로 선정하였다. 과연 우리 사회를 빛내는 인물이 되었는가?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했고, 강남 좌파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그가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이용하여, 온갖 죄목으로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권력의 상징인 국회의원직을 잃고 죄수의 몸이 된다는 것이 다행스럽다기보다 서글프다. 입시 비리나 부정은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들을 저질러서 법의 심판을 받았다면, 평생을 반성하며 살겠다고 용서를 구해도 시원치 못한데, 더 맑고 탄탄한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도대체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신뢰해야 하나? 16일 입감(入監)하던 날도 지지자들 앞에서 ‘국민 여러분...’을 찾으며, 마치 자신이 대단한 애국이나 구국(救國)의 출정식을 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지지자들과 함께 ‘내가 00이다’라는 구호를 힘차게 여러 차례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도대체 염치(廉恥)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향하여 환호성을 지를까? 서민들은 교통법규 하나만 어겨도 마음이 불안하고 미안한데,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반칙이나 잘못이나 실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리도 떳떳하고 당당할까? 도대체 우리 사회는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교육일까? 인성일까? 성격일까? 진영논리일까? 아니면 지지하는 사람들 때문에 모든 판단과 생각이 흐려진 때문일까? 이런 기현상을 보면서 답답해하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인가? 간절히 성탄으로 오신 예수님이 생각난다. 그래, 그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으니,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그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불가사의(不可思議)할 정도로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이 모든 인간이 아닌가? 그런 죄악되고 연약한 인간들에게 하늘의 긍휼과 은총이 내려지는 2024년 성탄절이 되기를 간구(懇求)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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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간절히 성탄의 예수님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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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요즘 정치인들 무섭다 또 안됐다’
- 지난 2010년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책 가운데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저서가 있다. 이 책은 출간되면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타고, 국내에서만 무려 20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어린이를 위한 책까지 나왔으니 대단하다. 그러나 영미권에서는 10만 부도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관심을 끈 책이다. 샌델 교수는 공동체의 도덕을 개선해 나가는데, 네 가지 관점이 있음을 말한다. 공리주의적 관점, 자유주의적 관점, 공동체주의 관점 등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정의로운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닌가? 최근 유명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 ‘공직 선거 위반’으로 법원에서는 징역형과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졌다. 그러나 자신은 무죄라며, 세상 법정에서의 2심, 3심이 남아있다고 항변한다. 또 민심과 역사의 법정을 들먹인다. 그래서 그가 과거에 타인에 대하여 발언한 것이 비교가 된다. 당시 탄핵을 당하는 대통령에 관한 문제에서 ‘법률 해석은 범죄자가 아니라, 판•검사가 한다’고 했었다. 또 수년 전 자신에게 유리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는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고 호기롭게 말하였다. 그리고 지난해 본인과 관련된 판결 문제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을 때에는 ‘사법부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높이 칭찬했었다. 그런 정치 지도자가 최근 법원에서 자신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자,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의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선동하였다. 그러나 사법부가 그에게 실형을 선고한 이유는 ‘선거제도의 기능과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가 기대하는 사법부의 2심, 3심은 다른 결정을 내릴까? 우리는 흔히 사법부의 결정이 내려지면 빈말이라도 ‘존중한다’고 한다. 즉 사법부의 결정을 일종의 정의로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리와 사법적 판단이 자신들의 생각과 합치되지 않아도, 이를 수긍하는 것이다. 사법부의 존재는 자유민주주의 제도하에서 권력의 집중을 막고자 하여 두는 국가기관이다. 그리고 사법부의 역할은 권력자들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권력자들의 막강한 횡포나 전횡을 막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유력 정치인이 사법부의 결정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결국 ‘사법 정의’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정치인이 재판을 받는 곳에 자당 국회의원 70여 명이 대거 몰려가, 희희락락하면서 사법부를 압박하려 한 것을 보아도 도대체 사회 정의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다 사법부의 1심 판결이 나오자, 그가 속한 정당(국내 제1당의 막강한 세력)이 함께 나서서 사법부를 심판한다고 압박한다. 게다가 자기들끼리도 당내에서 다른 생각을 갖는 사람은 ‘죽여 버리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나왔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무섭다. 정말 무섭다. 자신들이 믿는 세력과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국가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뱉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분(憤)에 사로잡혀 행패를 부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듯하다. 사실 지난 정권하에서 사법부가 잘못을 많이 하였다. 사법부의 공정성이 결여되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명백한 범죄가 있는 의원이 기소된 지 4년 2개월 만에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로 의원직 상실형이 나왔으나, 이미 의원직을 무사히(?) 마치고 모든 세비를 다 받아먹고 난 다음이었다. 또 자녀 입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모 의원도 5년이 다 돼 가는데도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위에서 언급된 유명 정치인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도 2년 2개월 만에 겨우 1심 판결이 나온 것이다.(법의 취지는 6개월 이내에 나와야 하는데) 또 지난 정권 당시 광역시장 선거 개입의 불법성을 다루는 문제에서도 1심 선고가 나오는데 3년 10개월이 걸렸다. 이런 사법부의 행태이니,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입법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을 때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추켜세우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타도의 대상으로 우습게 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공동체 속에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시민의식이 있는가를 묻고 싶다. 값싸고 잘못된 의리 때문에 국가 사회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있지는 않은가? 최근 한국리서치가 ‘주요 사회기관 역할수행 긍정 평가’에서 정당은 8%로 최하위였다. 이런 정당들이지만, 그들이 국민의 삶과 국가의 안위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나라를 걱정하게 된다. 무너진 공의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은 국민들이 어서 속히 깨어나야 한다. ‘확증 편향’을 버려야 한다. 이번에 실형이 선고된 유명 정치인은 자칭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그 말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말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정의(正義)와 공의(公義)에 눈감을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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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요즘 정치인들 무섭다 또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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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교회를 초토화시킬 WEA 전쟁, 전리품은 누구의 몫인가?
- WCC와 더불어 한국교회의 가장 위험한 주제로 꼽히는 WEA의 서울총회가 내년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한국교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2013년 WCC 부산총회의 처참한 상흔이 아직 한국교회에 오롯이 남아있는 상황에, WEA 서울총회가 그때의 끔찍했던 트라우마를 다시 일깨우는 것 아닌지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는 11월 15일, '2025 WEA서울총회 조직위원회'가 공식 출범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교계가 뒤흔들리고 있다. WEA는 대다수의 보수교계가 절대 반대하는 단체로, 일각에서는 WCC보다 훨씬 더 반기독교적이라는 평가까지 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대표 보수교단인 예장합동측은 'WEA 교류 단절'을 놓고, 근래까지 매우 치열한 논의를 벌였을 만큼 그 문제적 이슈에 대한 부분은 교계 내부에서 공론화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누가? 대체? 왜? 교계 전체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WEA를 한국교회에 들여 놓으려는 것일까? 아직 조직위원회 구성이 나오지는 않았기에 확답할 수는 없지만, 일단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와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의 주도로 이뤄지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명성과 규모를 가진 두 교회가 WEA라는 뜨거운 불덩이를 한국교회에 들여놓은 꼴이다. 조직위 출범 소식이 들리자마자 이미 일부 교계는 극렬한 반대에 나섰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정서영 목사)는 "종교혼합주의, 다원주의의 의혹이 가득한 WEA를 한국교회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주최한다는 것은 한국교회를 기망하는 것"이라고 비난했고, 예장합동측 소속 신학교인 광신대 동문들도 "WEA가 로마카톨릭, 무슬림 등과 밀착하고, 혼합주의 다원주의 신학을 표방한다"며 "합동교단은 WEA와의 교류를 엄중히 단절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뿐 아니라 15일, 조직위 출범행사장에는 이미 이를 반대키 위한 보수교계 단체들의 집회도 예고된 상태다. 뜬금없는 WEA 소식에 한국교회는 말 그대로 전쟁이라도 벌일 태세다. 더욱이 최근 한국교회에 가장 예민한 이슈로 꼽히는 동성애, 포괄적차별금지법에 대해 반대를 표명치 않는 WEA는 이 시기에 한국에서 결코 환영받을 수 없는 단체임이 분명하다. 뻔히 눈 앞에 보이는 반발을 감수하면서, 지독히도 뜨거운 불덩이를 한국교회에 들여와 전쟁을 일으키려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혹시나 하는 여지도 없다. WCC를 경험한 한국교회에 있어 WEA가 들어온다면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 확실하다. 그렇기에 우리가 현 시점에 가져야 하는 진짜 질문은 WEA의 건전성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도대체 왜? 라는 물음이다. 전쟁은 영토를 파괴하고, 사람을 죽이며 사회를 멸망시키는 엄청난 재난을 초래하지만,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전리품'을 선물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대부분 '전리품'을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다. 현 시점에 과연 그 '누구'는 누구인가? 누가 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고, 전리품을 챙기려 하는가?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이를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이 전쟁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 전리품이 과연 한국교회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될 만큼 가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한국교회 누구나 이 전쟁이 감수할 만하다고 느낄 정도의 엄청난 전리품을 내놓아야 한다. 이미 교계는 WEA서울총회와 관련해 수많은 추측을 내놓고 있다. 한국교회를 초토화 시킬 것이 뻔한 WEA를 이용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추측들은 그 이유는 달라도 결국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이 전쟁의 목적이 결코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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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교회를 초토화시킬 WEA 전쟁, 전리품은 누구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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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10/27의 성공이 남긴 아쉬움과 숙제
- 한국교회 역사의 손꼽히는 초대형 집회로 기록될 '10/27 200만 연합예배'가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애초 현장 100만을 목표로 했던 주최측의 기대에 부응해 이날 당일에는 무려 110만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 30만명)의 기독교인이 거리에 나와 집회에 동참했다. 대한민국 사회에 한국교회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준 이 역사적인 사건은 기독교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 은혜와 감동을 선사했다. 정치적 구호가 아닌 오직 순수한 기도로 110만명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한국교회의 자부심이 샘솟을 정도였다. 허나 준비단계부터 한국교회 전체를 들썩이게 한 엄청난 관심과 110만명이라는 성공적인 결과는 오히려 더 큰 기대를 품은 이들에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먼저 사회·정치적인 성과, 명시화된 열매가 매우 애매했다. 물론 110만명이라는 숫자만으로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국민들에 한국교회의 목소리와 저력을 알린 중요한 시간이었다고는 하지만 110만의 목소리가 가져온 '열매'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딱히 대답키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의문은 기도회 전 열린 주최측의 기자회견에서 이미 제기됐었다. '10/27 200만 연합예배'의 가장 큰 구호는 바로 '포괄적차별금지법 반대'인데, 정작 이번 국회에는 포괄적차별금지법이 아직 상정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 이에 대해 모 일간지 기자는 주최측에 이번 기도회의 ‘시기와 명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기자의 지적이 상당히 공감이 가는 것은 만약 한국교회가 '포괄적차별금지법'이 국회에 상정된 상황에서 이번 집회를 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시기적 아쉬움 때문이다. 만약 정치권의 그릇된 방향에 위기를 느낀 100만명의 기독교인들이 기도회를 열고, 국회를 규탄한 결과 '포괄적차별금지법'을 완전히 좌절시켰다면, 한국교회가 거둔 확실한 열매는 물론 사회와 정치권에 결코 무시하지 못할 무거운 경고가 됐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한국교회가 110만명이나 모였지만, 사회적으로 별다른 변화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자칫 한국교회의 모습이 다소 초라하게 보일 우려도 생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냈다는 교회 스스로의 만족을 넘어 현실적으로 국민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사회정치적 열매를 도모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집회 전부터 논란이 있던 '주일예배 성수'에 대한 홍보 역시 아쉽다. 이날 집회는 말 그대로 전국 각지에서 기독교인들이 물밀듯이 동참한 역사적 결과였다. 문제는 지방에서 참여하는 성도들이 집회에 참석키 위해 이른 오전에 출발해야 했고, 이로인해 보통 9시 혹은 11시에 열리는 주일예배에 참석치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꼭 그 시간에만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예배'라는 개념이 있는 한국교회 정서상 자칫 충분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 주최측은 주일예배 성수와 관련해 '새벽예배' '온라인 예배' 등의 대처방안에 대한 적극적인 안내가 필요했었다. 여기에 몇몇 교회들과 협의해 전국에서 올라오는 성도들을 위한 맞춤식 온라인 예배를 송출하고 해당 링크를 미리 공지했다면, 논란 불식은 물론 큰 호응을 얻었을 것이다. 또다른 아쉬움은 일부에서 나타난 편가름이다. '10/27 200만 연합예배'는 이념과 정치를 넘어 한국교회는 물론 사회와 국민 모두를 품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한 연합의 장이었다. 하지만 일부 참여자들의 너무 과도한 열정은 기도회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를 용납치 않았고, 일부는 이를 정죄하는 듯한 매우 강압적인 대처를 보이기도 했다. '10/27 200만 연합예배'가 확실히 한국교회 역사에 새로운 족적을 남긴 것은 분명했다. 이런 역사를 또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엄청난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만족과 찬양은 스스로에 독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포괄적차별금지법의 위협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노리고 있고, 동성애를 용인하기 위한 사회적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번 집회를 끝이 아닌, 또 다른 투쟁의 시작점이라는 인식으로, 더 큰 역사 창출을 위한 냉정한 평가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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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10/27의 성공이 남긴 아쉬움과 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