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남은 자’
2021/08/26 18: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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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목사 (신촌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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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10:22).

 

코로나19가 창궐한 시기, 백신이 개발 되었다고 하나 여러 변이가 나와 백신을 무색케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주님의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시기일지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남겨두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남겨두실까요?

 

성경은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에 빈천한 국민을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52:16) 라고 말합니다. 당시 느부갓네살왕은 사회 집권세력들, 부한 사람들, 능력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포로로 끌어가 왕실에서 인질로 사용하거나 유다로부터 먼 곳으로 흩어버리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만 남겨 두었습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이 당시에도 사회에서 볼품없고, 반란을 일으킬 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만 남겨 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가난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경에서의 가난은 마음의 태도입니다(5:3). 실제로 풍족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난한 태도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간혹 빈곤하면서도 허영심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 포함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가난한 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전7:29~30). 여기서 “~같이 하라.”는 말씀은 마음의 태도입니다. 마땅히 누릴 권이 있는 풍족한 사람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을 다 쓰지 않고 실제 부족한 사람들을 위하여 쓴다면 이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인들의 상급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을 주님을 위하여 다 쓰지 않는 것입니다(고전9:18). 우리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실제 부요하신 분이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고후8:9).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남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7:2~3). 종이란 자기 뜻이 없이 오직 주인의 뜻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목회자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뜻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목회의 직분을 갖지는 않았지만 범사에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살아간다면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 바라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작정하는 종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이러한 종을 붙잡고 계십니다(42:1).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또한 먹을 것을 주십니다(65:13). 하나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찬송을 합니다(65:14).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 한분 기쁘시게 할 마음을 품습니다(1:10). 하나님 한 분의 기쁨을 추구 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인을 치도록 하십니다. 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거나 물질을 의지하거나 과학을 맹신하는 자는 짐승의 표를 받습니다. 666은 인간 지혜의 최대의 숫자입니다.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발전해도 7로는 가지 못하고 6옆에 6이라는 숫자가 붙을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종을 남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하고, 세상 신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을 남기십니다(11:4). 아합 시대에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엘리야는 자신만 살아남은 줄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남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왕상19:14).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자신이 잘 해서 남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남기셨으며, 그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칠천 인을 남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명예와 영광을 섬기는 사람은 세상 신에게 무릎을 꿇은 사람입니다. 돈을 섬기는 사람 역시 세상 신에 무릎을 꿇은 사람이며, 세상 풍속과 유행과 여러 가지 이념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 신에게 무릎을 꿇은 사람입니다. 신앙인들의 이념은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 의일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상 신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을 남기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남기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6:13). 거룩하게 되는 것은 진리를 순종할 때입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17). 그러므로 거룩함의 씨는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남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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