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사회의 하나의 합법적 종교로서 자격을 얻고, 나아가 로마의 국교화 됨으로써, 로마사회 내에 있는 온갖 민족의 종교적 문화적 관습들이 기독교에 습합되기 시작했다. 개인의 종교적 체험이 강조되고, 성경해석과 신학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설교도 변질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교회는 설교의 통일성의 필요를 느끼고 4세기부터 8세기까지 전체 공의회를 열고 교리를 통일했다. 그것을 우리는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라고 부른다. 기독교는 325년 니케아회의부터 787년 니케아회의까지 신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등을 통일하고, 통일성을 강조했다. 교회의 모든 행사는 통일된 의전(儀典)에 따랐다.
◇중세교회의 설교에서 통일성이 강조되자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의전에 따른 교회의 가르침은 획일화 되고, 이에대해 다른 소리를 내는 자는 모두 이단(異端)으로 몰린 것이다. 심지어 신학훈련을 받지 않은 평신도는 성경을 읽는 것까지 금지되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이단설을 주장할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종교개혁은 이 통일성만으로는 성경의 말씀을 바르게 전달할 수 없다며, 다양성을 역설한 운동이다. 이제 설교는 획일화를 벗어나 다양화 되었다. 그러자 여기에도 부작용이 나타났다. 설교에 개인의 경험이나 온갖 철학이 개재되어 제 멋대로 성경이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 기독교를 부정하는 또다른 이단들이 나타났다.
◇현대 기독교 개신교파 가운데는 많은 교파가 의전이 따로 없다. 이 주간에 설교자가 어떤 성경 본문을 읽고, 어떤 주제의 설교를 해야 한다는 지침도 없다. 설교자가 멋대로 본문을 정하고 설교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경우 과연 그것이 설교인지, 만담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심지어 무당의 점괘인지, 철학관의 예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온갖 잡소리가 석여 나온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삶의 복음’으로 소시민의 종교적 심성에 야합하려는 심각한 기복주의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기복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바로 서려면 설교에서 기복주의를 몰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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