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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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종교개혁자 칼빈은 제네바 시의 질서를 확립하고 칼빈의 생각하는 도덕을 향상시키고자, 칼빈의 신앙체계를 세우기 위하여 반대자를 처형했다고 합니다.
칼빈이 말한 대상은 불신자들이 아니었다. 이단도 아니었다. 또 교회를 거역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칼빈의 이런 면만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오늘 보수주의자들입니다. 이와 같은 기독교라는 두터운 벽 안에 갇혀진 역반응이 결국 기업형 교회로 신나는 프로그램이 춤추며 날뛰는 사단이 밝아지고, 같아지고, 선악을 알게 되는 깊은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칼빈주의요, 개혁주의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독선은 그와 비례하는 신흥종교 같은 기업형 교회들만 키워내는 불행한 일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문 닫아 걸고 정통보수라는 이론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소위 칼빈주의의 진실한 의미도 모르고 금욕이나 극단주의는 주님이 부탁한 생명적 가치를 계속 소멸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더위에 못 이겨 문 닫은 채 에어컨을 틀고 자던 사람이 그 이튿날에 차디찬 시체로 변했다는 현실적, 사회적 사건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나 머지않은 날 보수라는 고집 아래 숨을 거두는 차디찬 사람으로의 나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사랑하는 아내를 취한 사건이 그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깨닫고 돌아온 고백은 우리 모두가 시편 51편을 수없이 읽고 묵상한 터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 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게 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과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름 없는 병신 같은 자식이 어디 나에게 이따위 말을 하느냐? 라고 당장 능지처참시킬 순간입니다. 네 따위 놈이 별 볼일도 없는 놈이….
기업형에서 성공한 제왕에게 그의 입지와 명분을 건드리면 금세 저주를 해버릴 것이고 출교시킬 사람이 목사님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설교 자체가 신자들을 기죽게 만드는 말만 일삼는다는 것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큰소리치는 자에게 순간적으로 추락해 버릴 사건을 용납할 수 있는가?
칼빈이 제네바 사건이 전체로만 보아 그 일을 감행하라고 제사장이라는 권위 때문에 온몸에 철갑으로 씌워진 위선과 고통스러움을 자백할 수 있는 개혁주의 예수 생명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칼빈은 제네바 사건으로 인한 부정적인 면만이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16세기 제네바를 통치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지어낸 유언비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에 의해 징계를 받았거나 권징을 받았던 사람들이 악의로 그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퍼뜨렸다고 합니다.
어찌하던 우리는 칼빈의 그런 점에만 묶여 있는 것이 한국적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의 특성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칼빈주의가 오늘까지 우리의 문제점이 근시안적인 눈에 단면으로 보이는 것만 매달려 있음을 곧 하나님의 창조주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복잡한 자료를 들추어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건 중심에서 나타난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칼빈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보수권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보수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보수란 성경중심이라고 하는 오직 성경이나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영광이라는 것이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대로인가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보수라는 사람들의 문제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나, 작전이나, 예정이나, 창조나 섭리가, 보수주의자들의 생각이 전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것이 아님을 다음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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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쉬운 것이다·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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