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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적 봄 생명의 봄-홍 성 표 목사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꽃소식은 봄바람을 타고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오늘은 세월호의 아픔이 1082일 되는 주일이다. 건국이래 최악의 ‘국정농단’과 ‘촛불혁명’으로 5.16 쿠테타 이후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탄핵정권으로 분노와 새로운 희망을 부르짖고 있다. 조기 대선경쟁으로 후보들 각자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작은 약점으로 네거티브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3년 동안 차가운 바다에 잠자고 있던 세월호는 인양되어 목포신항에 접안되어 9명의 미수습자들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꽃도 피어보지 못한 많은 어린 생명들이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들의 부모와 가족들, 미 수습 가족들의 슬픔을 누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까맣게 타버린 가슴과 마음에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벚꽃들이 바람에 날리고 산에 핀 진달래는 4월의 역사를 노래한다. 담벼락에 흐드러진 개나리는 차가운 바람을 포근하게 감싼다.한미 군사훈련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생존의 핵을 앞세우는 북의 바람 역시 우리의 평화를 의심케 한다. 가문 땅에 생명의 단비가 내린다. 역사의 모순들로 답답해진 우리의 희망을 은혜의 단비로 적셔주기를 기도한다. 역사의 발전 동력은 정치인이나 재벌도 아니고 사회적 명망가들도 아니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땀 흘리며 묵묵히 살아가다 어느 순간 모순들을 태워버리는 뜨거운 불로 타오른다. 민초와 민중들의 힘들이 역사발전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민중들은 세월호의 인양과 함께 진실의 인양을 바라고 역사의 정의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계절의 봄은 북풍한설을 몰아내고 어둠을 빛으로 바꾸고 있다. 창조주를 앞세우고 생명과 부활의 믿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역사는 여전히 밥통을 지키며 밥벌이를 하는데 전전긍긍 한다. 신은 계속해서 새로운 혁명을 촉구하며 우리에게는 책임적 존재로 살기를 명령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오직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는 어떤 세대인가? 우리가 본받아서는 안 될 것은 무엇인가? 우리 각자의 변화를 통하여 전체의 변화를 이루어야한다. 선한 분은 오직 한 분뿐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은 무엇인가? 사람은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온전함을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빌 공약을 통해서 빈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 자본의 탐욕을 위하여 민중을 속이는 독점재벌을 본받아서도 안 된다. 신의 이름을 앞세워 민중을 착취하는 사이비 종교인들을 본 받아서도 안 된다. 전통적 기독교의 구원론은 사람들의 죄를 원죄론으로 규정하고 죄의 DNA 유전을 반복하고 있다. ‘구조악’을 원죄로 포장하고 개인의 무능력과 허물로만 몰아가고 있다. 진정한 악의 실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거나 비겁하게 피해간다. 인간의 이성이 신의 섭리를 좌우할 수 없다. 그러나 신이 선물한 이성의 빛을 어둠 속에 묻히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교만을 경계하면서 신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는 모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역사 전체의 악이나 염려가 있기 전에 한 개인의 삶의 여로와 과정이 있다. 한 사람의 인생사가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 번영과 영광의 시간이 있고 눈물과 아픔의 세월이 있다. 희망과 도전의 순간이 있기도 하지만 고통과 비통의 행로도 있다. 희노애락과 생사화복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러한 한 개인의 삶과 같이 역사무대의 드라마 역시 단지 평탄한 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숱한 질곡과 고난, 모순으로 점철된 어둠과 빛의 전개가 있다. 4월은 생명의 계절이고 희망의 계절이다. 4월은 또한 잔인한 십자가의 처형을 물리치고 모든 어둠을 떨치고 죽음의 없는 영생의 부활로 우리 앞에 우뚝 선다. 들판과 산야에 핀 노란 민들레는 우리들 곁을 지킨다. 우리가 본 받아서는 안 될 것은 악의 세력과 죽음의 세력이다. 우리가 닮아서는 안 될 것은 거짓과 불의의 세력이다. 우리가 바라 봐서는 안 될 것은 모든 경제를 독점하는 독점 재벌세력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진정한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 평회 통일을 지향하는 통일운동을 억압하는 세력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우리의 진정한 생명의 봄은 서로가 서로의 귀함과 존귀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함께 더불어 사는 역사의 창조이다. 역사는 모순투성이다. 이기적인 자기 탐욕의 정치는 이제 청산 되어야 한다. 일제와 지배욕의 침탈의 역사, 분단과 분열의 역사, 착취와 억압 , 학살의 역사는 청산되고 진정한 정치의 봄이 되어야 한다. 경제적 양극화와 가정의 해체,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 더 이상 확대 재생산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자기 울타리만을 고비해서는 안 된다. 자기 벽을 높이 쌓고 과거의 향수와 동굴에 갇혀 있는 교회는 역사 속에 생명의 부활과 희망을 이룰 수 없다. 닫히고 굳어져 화석화 된 가슴을 열고 진정한 봄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곳에 예수그리스도가 크게 웃는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04-14
  • 김동리와 김평우, 부전자전식 내림-임 영 천 목사
    지난 탄핵 정국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국회에서 결의한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라는 외침과 그 탄핵을 기각하라는 외침이 군중들 사이에 첨예하게 대립했었다. 전자를 촛불집회라 불렀고, 후자를 처음엔 맞불집회라 부르다가 곧 태극기집회란 표현으로 바꾸어 불렀다. 전자에 대한 호칭은 앞서부터 사용해 오던 터라 자연스럽게 들렸지만 후자에 대한 호칭만은 조금 부자연스럽게 들렸다. 무슨 3&#8228;1운동 때의 거사에 대한 명명(命名)인가 하는 의구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없지 않았으나, 어떻든 그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모임을 주도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면도 없지 않았다고 보겠다. 이 두 대립적 양상의 집회는 전자가 비교적 온건하고 평화적인 집회의 모습을 지속시키고 있었다면, 후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거칠고 폭력적인 양상까지 드러내기 시작함으로써 전자를 선량한 사람들의 모임, 후자는 악동과 같은 이들의 모임 정도로 보게 하는 면마저 노정하고 있었다. 후자의 모임의 경우 특히 그 지도자 격인 인물들의 언행이 다분히 악동적인 면을 드러냄으로써 일반인들이 태극기집회 전반(全般)을 무슨 악동들이 주도하는 모임처럼 바라보게 만들었지 않았나 싶다. 김진태 의원, 서석구 변호사, 김평우 변호사 등이 그 지도자 군의 트리오(三大家)였다고 표현해 볼 수 있겠다. 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대형 태극기를 온몸에 칭칭 감고서 무슨 태극결사대의 충성스런 대원과 같은 비장한 모습으로 행동했는데, 그랬으면서도 그런 그들의 행동이 국민들에게 별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당시 그 탄핵이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선량(選良)들의, 국회에서의 합법적인 결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동시에 국민 자신들의 의견마저도 85% 이상이 그 탄핵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엄연히 나와 있는 실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것에 역행하는 그런 돌출 행동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특히 그 트리오 인물들 가운데 미국에서 귀국해 제일 나중에 합류한 김평우 변호사에 대하여 보다 더한 관심이 기울어지게 된다. 아무래도 필자가 문단(평단)의 말석에서나마 활동하고 있는 문인의 처지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달리 말해 김 변호사는 고 김동리 작가의 아들(차남)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주 안된(잘못된?) 것은, 아무래도 이번에 그 아들이 고국에 입국해 한바탕의 흑색돌풍을 일으키지만 않았어도 아비 김동리는 우리에게 매우 인상적인 작가, 또는 문학애호가들이 상당히 숭모하는 작가 정도로 그 괜찮은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을 법도 하다. 다시 말해 <무녀도>와 <등신불>…과 같은 단편소설의 작가, 또는 <사반의 십자가>와 <을화>와 같은 장편소설의 인기작가로서 그의 한국 문학사적 위치가 제법 튼튼한 작가로서만 기억될 수 있었으리란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그 기대는 그 아들의 갑작스런 출현과 돌출된 언동 때문에 무너져 내리지 않았나 판단된다.좀 엉뚱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부전자전이란 말이 있듯이 두 부자(父子)의 유명세는 이제 막상막하가 되지 않았나 여겨질 정도이다. 유명세도 부전자전 식이 되었다는 말이다. 만일 이번의 헌재 재판에 김평우 씨가 변호인단의 한 사람으로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그 이름이 지금처럼 일반대중에게까지 크게 알려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탄핵을 탄핵한다”란 책까지 내고 귀국한 그에게 갑자기 찾아온 유명세는 악동으로서의 유명세로 나타났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는 헌재(憲裁) 재판에서의 피의자 변호 중에 왜 헌재가 약한 여자 편을 들지 않느냐는 식의 발언을 했다가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부친 김동리의 세 번째 아내 서영은 작가를 부친 사망 시에 재산소송을 걸어 연약한 그녀가 유산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나게 만들어놓고 나서, 그때 그 일의 주역이었던 그(김평우)가 이제 와서 왜 약한 여자 편을 안 드느냐고 따진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뜻이겠다. 그는 미국으로 귀국한 뒤에도 세월호 희생자들이 너무 많은 보상을 받았다고 힐난했는데, 역시 약자 옹호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하겠다. 어떤 네티즌(nama)은 김동리 씨의 소설작법 강의를 수강했는데, 그가 시대착오적 발언을 해서 학생들로부터 수강 거부를 당해 대학강단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지금 그의 아들이 왜 부친처럼 시대착오적 언동을 하느냐는 식의 비판을 하고 있음이 보인다. 아마도 1988년의 서울국제펜대회에 참석한 외국문인들을 중심으로 투옥문인 김남주 시인의 석방운동이 추진되고 있었을 때, 당시 한국문협의 이사장 김동리 씨가 오히려 그 석방운동을 방해하고 나섰던 일을 꼬집어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투옥 중인 김 시인을 겨냥해 “반체제 행위는 진보에 역행하는 시대착오”라는 다소 억지스런 말까지 했던 것이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기득권층에 대한 충성과 체제옹호적인 헌신만은 부전자전 식의 내림이 아닌가 싶다. 이 사실을 온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는 의미에서 금번의 그 아들의 출현은 선친에겐 전혀 득이 되지 못한 것 같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03-31
  • 한반도와 4월의 부활-홍 성 표 목사
    계절의 봄이 왔고 ‘촛불혁명’을 통한 국정논단의 ‘탄핵’이 정치의 봄을 예견하고 있다. 또 세월호의 인양이 4월 5일 예정되어 있다. 통진당의 강압적인 해산과 함께 박근혜-최순실게이트의 고조선 이후 민족역사에서 가장 최악의 민중피폐의 삶을 살고 있다.4월은 4,19혁명과 함께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되기도 한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의 외침처럼 이 4월에는 거짓된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와 종교의 껍데기들이 성령과 민중들의 뜨거운 불로 다 태워지는 새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종교학에서는 인간을 ‘종교적 존재’ 다른 말로 하면 ‘의존적 존재’ 라고 말한다. 이성과 정신의 존재이고 이런 것들을 통하여 역사와 문화를 창조 하는 문화적 존재로 규정하기도 한다. 강하기도 하지만 가장 나약한 존재이기도하다는 말이다. 아마도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가장 나약한 존재인 것을 말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하의 국무장관 틸러슨이 일·한·중을 방문하면서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자주적 주체적 세력이 빠져버린 비통한 모습을 보고 있다. 테프트-카트라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일본에게 넘겨준 미국의 뼈아픈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후의 민족의 역사는 일제의 침략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미소 냉전체제 하에서 민족분단과 민족상잔을 겪고 남북한의 사상적 경제적 차이로진정한 통일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6.15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통하여 개성공단을 열고 금강산을 오가는 새 희망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일제 잔재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5.16 군부 쿠테타 이후 전두환, 노태우를 거치고, 이명박-박근혜의 정권을 거치면서 새 역사의 길은 휘어지게 되었다. 이제 다시 촛불민중혁명을 통해서 새 역사의 문 앞에 서 있다. 서민의 가계부체는 1340조를 넘어가고 서민경제는 파탄의 지경에 이르러 IMF와 외환위기 보다 더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교회는 4월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사건에 대하여 불의한 모든 세력의 무덤의 문을 열고 다시 산 부활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는 어떤 부활을 말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부활의 모습은 무엇인가? 대교회의 세습과 썩은 교권의 세습이 자리하고 불의한 권력과 독점재벌과 공생하며 아부하는 맘몬과 우상을 섬기는 교회의 모습은 아닌가를 깊이 성찰해야한다고 본다. 민중들과 민족분단에 반역사적, 반사회적, 반통일적 자리를 보수하고 있다면 교회는 조만 간 역사에서 배격당하고 배제 받는 슬피 우는 곳에 버려질 수 있다. 한 개인의 영혼을 살리고 “상처받은 자의 치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 ‘나와 너 가’ 함께 살아가야할 존재로서 구조악에서 신음하는 국민과 민중을 구원해야 한다. 세월호의 상처를 싸매고, 국회의원과 민주정당이 불의한 권력에 쫓겨나며 강제 해산 되는 역사는 중지 되어야 한다. 진정한 민주국가에서는 능력위주가 아니라 기본적인 이간의 삶이 유지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불의한 권력과 자본의 힘으로서 억울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힘에 의한 불이익과 악한 정치, 경제, 기업 구조로서의 불편부당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생명 기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해져 있는 이치에 있다. 지금 대한민국과 한반도가 처한 상황은 위기상황의 극치에 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강조하고 최첨단 무기와 핵장비들을 한반도 근처에 집중하고 있다. 만일 미국의 북에 대한 선제공격이 일어난다면, 한반도에서 전면전의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상황은 전쟁이다. 전쟁과 관련한 무고한 생명들이 수 없이 학살된다. 6.25 민족세계전쟁은 세계 1-2차 대전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룬 참혹한 비극적 전쟁이다. 이제 또 다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상상할 수 없는 파괴가 이루어지고 파멸로 가는 길이다. 어떤 이유라 할지라도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내부의 갈등이 중폭되는 것을 외세가 조장하고 과거 청일-러일 전쟁의 대리전쟁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한국교회의 기도는 어떤 경우에도 전쟁방지이며, 외세를 통하여 이루어질 강압적 ‘흡수통일’의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사드를 대한민국 국민과 민중, 그리고 정치인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들여와서 강압적으로 설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드는 대한민국 안보를 위한 전쟁방지책이 아니라 미중의 패권전략에 의한 제국주의의 폭력이라 생각한다. 교회는 구원을 선포하고 설교한다. 우리가 말하는 구한말의 한국과 오늘의 위기 비교는 어떤 의미를 말하고 있는가? 오늘의 대한민국에서의 구원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개인의 영혼과 역사의 구원 그것은 물과 기름이란 말인가? 과연 정치적 봄은 올 것이며, 민중의 삶이 행복을 사는 경제적 봄은 올 것인가? 이 생명이 약동하며 샘솟는 생명의 계절에 교회가 할 수 있는 기도, 그것은 진정한 생명들의 자유와 해방의 기도가 있어야할 것이다. 부활은 불의와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의 부활이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03-24
  • 적과 아군만 구별하는 사회인가?-심만섭 목사
    우리 사회는 최근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이 얼마나 폭압적이고, 획일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을 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고교는 전국에 5,566개교가 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 대한 ‘편향’ 논란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2년 전부터 편향된 국사교과서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로,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일선 학교에서 이 교과서로 가르치려고 했으나, 여의치 못하자, ‘연구학교’ 신청을 받았다. 그런데 이 ‘국정교과서’를 선택한 학교는 전국에서 경북에 있는 단 1개 고교 밖에 없었다. 왜 그럴까? 그 내용이 문제라서인가? 아니면 다른 일들이 있었는가? 안타깝게도 이를 반대하는 진보 교육 세력들과 외부 세력의 압력 때문에 빚어진 결과이다. 이를 선택한 학교에서는 내부적인 반대와 방해로 3월초 입학식마저 파행되고 말았다. 이 학교가 ‘연구학교’로 신청했을 때에도, 민조노총과 전교조는 거센 압력을 가해왔고, 외부 인사들이 교장실에 찾아와 폭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단체들, 40여 개가 대책위를 결성하여,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펼친다고 한다. 섬뜩하다. 마치 교육 현장을, 전쟁터에서 아군이 아니면, 죽여야 하는 적군으로 몰아가는 형세이다. 도대체 국사교과서가 무엇인가? 왜 이런 일들은 벌어지게 되었는가? 한 마디로 교과서의 ‘편향’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 편향의 문제는 언제 그렇게 된 것인가? 2003년 G출판사가 만든 교과서가 검정(檢定)을 통과하였는데, 이를 ‘북한 주제사상과 동일한 시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여, 보수 단체들이 그 출판사 앞에서 ‘폐기’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였었다. 그러고 나서 2013년에는 또 다른 G출판사의 교과서가 만들어졌는데, 이번에는 전교조.민주노총 등이 나서서 그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를 찾아가서, 항의하고 그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의 이름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채택하는 학교를 ‘친일파’ ‘매국노’ 등으로 몰아, 결국은 그 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가 한 개도 없었다. 이쯤 되자, 정부에서는 의지를 가지고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작업을 해 왔는데, 현 대통령이 지난 해 ‘탄핵소추’를 받으면서 그 동력은 상당히 힘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현장 검토본을 지난 해 말 공개했는데, 야권과 진보 단체에서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것으로, 나쁜 교과서의 이미지를 씌웠다. 뿐만 아니라, 8개 지역 진보 교육감들은 일선 학교에 연구학교와 관련된 공문을 내려 보내지 않아, 결국 신청 기한을 넘기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런데다 전교조 등은 연구학교를 신청한 학교를 항의 방문하는 등, 모든 것이 자신들이 뜻하는 바에 반하면,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 강경수를 두었다. 그리고 ‘연구학교’로 유일하게 신청한 경북의 모 고교에 대하여, 연구학교 철회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기본은 ‘다양성’이다. 그 다양성을 말살하면, 획일주의와 독재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 교육의 현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선택한 학교에 대해서도, 0.02%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 폭압적이고 비교육적인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이를 적극적으로 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전교조의 강령에 보면, ‘민주화’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민주화 교육’ ‘민주화 실현’ ‘민주적 권리’ ‘민주 시민’ ‘민주주의를 사랑’한다고 한다. 그럼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교과서 채택을 ‘싹쓸이’로 막아서고, 다른 의견은 존중하지 않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 교육’인가? 역사 해석에는 ‘사실과 객관으로서의 기록’이 있고, 또 ‘해석과 주관의 역사’가 있다. 그것이 비록 상충(相衝)한다 하여도, 이를 용인하는 것이 ‘참 민주주의 교육’이 아닐까? 지금의 행태는 참다운 교육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볼모로, 이념과 자신들의 주장을 선점하겠다는 전쟁의 광기로 느껴진다. 나만의 과장(誇張)일까? 이런 문제에 있어,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가 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다양한 교과서로 공부할 자격이 있다. 어차피, 진보든 보수든 역사교과서가 ‘편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왜 편향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획일화되고 강요하여 규정된, 교과서로는 그런 다양성을 접하기 어렵게 된다. 또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들이 다양한 교과서로 공부하도록 후원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교육은 학교의 자율권도 인정되지 않고 있고, 외부의 압력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학부모들이 교육의 객체로써, 혹은 주체로써의 자기 권리를 찾아야 한다. 만약 ‘국정교과서’가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데만 역점을 둔 것이라면 선택하는 학교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또 다른 편향성을 지적받는 다른 검정 교과서와 균형을 맞추는 것이 되지 않을까!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03-09
  • 촛불의 혁명과 탄핵의 자주독립-홍 성 표 목사
    3월에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적 실천은 독립이다. 대한민국은 과연 독립 국가인가? 1991년 9월 18일에 남과 북은 UN에 동시 가입하였다. 이것은 국제사회에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현존함을 만방에 공표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것은 분단 46년만의 일이다. 두 개의 한국이 존재하는 실체를 역사에 공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고조선을 시작으로 5천년 민족의 역사가 다시 한 번 분리되는 슬픈 날이기도 하고 서로의 적대적 관계를 평화적 공존관계로 정착시키면서 국가와 국가의 관계개선을 도모하여 언제인가 한민족의 이름으로 통일의 길을 구체화 하는 출발점을 만들어 보자는 역사적 의미를 새겨보는 사건이기도 하다. 일제의 잔재들을 청산하지 못한 죄이며 결과이기도 하고, 진정한 민주화를 성취하지 못한 현실을 대변하는 역사의 한 획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계절의 3월은 분명 새 생명이 대지의 껍질을 뚫고 소생하는 부활의 계절임에 틀림없다. 추위와 북풍한설을 견디기 위해 깊은 겨울잠을 자거나 숨 고르며 희망의 봄을 기다리는 성숙을 위한 준비와 약동의 시작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계절을 맞이하며 역사의 봄이 이 땅에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진실이 왜곡되고 거짓된 역사를 만들어 권력과 자본의 부귀영화를 기도하는 부류들의 반란을 분명한 이성과 영적 눈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민족의 완전한 독립은 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토록 바라고 외치며 몸부림 쳤던 자주 독립을 다시 결행해야한다. 은총은 밖으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간절히 바라고 실천하는 온전한 삶과 기도가 있을 때 온다는 것을 생각해야한다. 예수의 마지막 기도는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 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은 아들인 예수가 그렇게 되기를 원할 때이다.자적 독립은 외세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자주 독립은 미국이나 일본, 중국이나 러시아가 저절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당사자들, 주체들이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진정한 소원과 행동, 그리고 실천이 있을 때 가능성이 주어진다. 아무도 우리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아니한다. 아무도 우리의 진정한 자주적 독립을 이루어지도록 돕지 않는다. 내가 , 그리고 우리가 그 것을 만들어 가조 주체적으로 실천해 가야 한다. 살고 죽는 것, 생사화복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일어나 구하고 찾으며, 문을 두드리고 그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구하는 것을 주시고, 찾는 것을 허락하신다. 혁명은 전쟁 같은 혁명만이 아니다. 삶의 방향과 질을 바꾸는 것이 혁명이다. 존재의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움직이며 실천하는 기도가 진정한 하나님나라의 혁명을 실현할 수 있는 ‘탄핵’이다. ‘도전과 응전’의 삶을 넘어서는 문명과 가치의 혁명이 필요한 시대가 지금의 시대이다. 혁명은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나 회복이 아니다. 혁명은 근본을 바꾸는 새로운 역사와 문명, 가치를 심고 그 열매를 맺게 하는 새로운 농사를 짓는 것이다. ‘소비와 생산’의 원리로 이루어진 자본주의나 ‘기획경제’의 ‘공산주의’ 그리고 평등의 삶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복지와 분배 등이 보다더 발전지향적인 가치로 통합 되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존중되는 가치의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보다 민족의 가치가 우선이 되어야 하고 민족보다 민중들의 삶의 가치가 우선 되어야 한다. 민중이란 단순히 시대의 소외 된 특수 계급이나 계층이 아니다. 역사를 떠 바치면서도 지배자들과 자본과 권력에 억압되고 주변으로 밀려나는 순한 양들이다. 민중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그들의 억울함과 슬픔들을 외면하는 신이란 아무런 의미와 가치가 없다. 민중들의 소리를 외면하고 권력과 자본에 기생하며 공생을 추구하는 교회나 종교 세력이란 역사와 사회적 악만을 재생산 한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이 탄핵되어야 할 우선의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거짓된 종교 세력이나 교회 세력의 밥벌이들이 동시에 탄핵의 대상이다. 우리는 3월의 맞이하며 진정한 한민족의 자주독립을 소원한다. 군작전권을 되찾는 것부터, 우리 스스로가 한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진정한 자주독립 말이다. 일제의 총칼과 형용하기 어려운 우리 조상들의 1919년 3월 기미 독립의 함성이 오늘의 진정한 자주독립의 소리가 성육화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역사와 교회 앞에서 진실을 말하고 ‘예와 아니오’.를 말하고 삶으로 실천하는 자주독립을 기다린다. 비존재가 존재를 삼키는 거짓된 기도가 아니라 존재가 비존재를 바꾸는 우리들 각자의 삶을 소원하는 것이다. 나의 탄핵으로부터 국정농단의 탄핵이 이루어지고 역사의 탄핵이 진정한 믿음의 혁명을 이루는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가는 자주독립의 봄이 되기를 기도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03-03
  • 절대권 거부를 위한 절대적 교훈-임 영 천 목사
    2017년 올해는 종교개혁(1517) 500주년의 해이다. 마르틴 루터가 본격적인 종교개혁의 선두주자 역할을 맡았다는 관점에서 보아 그러하다. 그가 교회개혁을 위해 면죄부 반박 95개 신조를 독일 비텐베르크 성곽교회 정문에 1517년(10월31일) 공표했었기 때문이다. 이것의 파급효과는 예상외로 컸고 루터가 의도했건 안 했건 간에 그는 이미 종교개혁 운동의 소용돌이에 선두주자로 휘말리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은 장 칼뱅과 같은 프랑스 개혁가가 뒤따라 이어가면서 유럽 사회와 교회(종교계)를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켜 놓았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상징적인 두 인물 루터와 칼뱅에게도 성취 못지않게 실패의 면도 있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어서 여기서는 타산지석의 교훈이란 의미에서 그 면을 강조적으로 다루어보고, 마지막으로 현 시국과도 그 점을 연관시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이 ‘실패’의 면을 ‘생명 존중’이란 사항과 관련시켜 접근함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덕목 가운데 이웃의 인권을 존중하고 특히 그 생명을 존중하는 일은 무엇보다 훌륭한 것으로 찬양돼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그에 반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그 점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자연히 뒤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루터(1483-1546)는 종교개혁의 총아로 우뚝 서게 되었을 때, 남은 한 가지 문제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었다. 그것은 얼마 동안 독일농민전쟁을 주도해온 민중들과 함께해 왔던 그가 더 이상 그들과만 얽혀 가지고선 개혁의 완성(?) 단계에 도달할 수 없다는 판단과 관련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던 농민들을 저버리기로 하고, 그동안 서로 소원(疎遠)했던 제후/영주들과 끝내 손을 잡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힘을 얻게 된 영주들이 농민들을 적극 공격함으로써 많게는 12만 명의 농민들이 도륙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제후/영주들과 손을 잡았을 때 농민들이 몰살되리란 것을 루터교의 수장이 될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칼뱅(1509-1564)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개혁운동을 하면서 여러 대적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중의 한 사람이 세르베투스(1511-1553)란 박식하고 논쟁적인 인물이었다. 의사이기도 했던 그는 신학적 견해 차이 때문에 칼뱅과 충돌하게 되었다. 칼뱅은 그를 만나 담판을 지으려 했으나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의 교회에 설교를 들으러 온 세르베투스를 발견하고 칼뱅은 수하를 시켜 그를 체포하였다.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그를 회유하다 실패하자 종교재판에 회부해 이단으로 화형선고를 내렸고 그는 1553년(10월27일) 불에 타 숨졌다. 그러나 이런 식의 처형 방식은 개혁가들이 지금껏 저항해온, 중세 가톨릭 교황들의 소위 이단자들에 대한 처형방식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으니 큰 문젯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세르베투스 처형 사건은 그러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였다. 칼뱅이 제네바에 머무르는 동안 1542년부터 1546년까지의 5년 어간에 그에 의해 무려 57명의 자유사상가 또는 개혁가들이 이단 명의로 처형되었다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후에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1515~1563)가 칼빈의 세르베투스 처형에 항의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끝내는 그 역시 이단으로 몰려 칼뱅의 종교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불행이라 해야할지 다행이라 해야할지 재판 기간 중에 운명하고 말아 처참한 꼴만은 면한 셈이 되었다. 루터가 독일농민들을 제후/영주의 손에 맡기려 했던 즈음 그는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농민폭도들을 치라”는, 절대권 의지를 드러낸 팸플릿을 내어 제후들을 부추겼다. 이로 인해 그 팸플릿은 신학자 리처드 니버에 의해 “기독교적인 내용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무가치한 문서라는 악평을 듣게까지 된 것이다. 칼뱅은 평소 세르베투스에 대해 유감을 품고 있었는데, 그는 개혁의 동료 파렐에게 “세르베투스가 만약 제네바에 오기만 하면, 나는 내가 권력을 갖고 있는 한 그를 결코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고 노골적으로 천명한 바 있었다. 세계적인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에 의해 씌어진, 칼뱅에 저항한 카스텔리오의 전기물이 그때의 사정을 잘 기술함으로써 절대권자로 군림하려 했던 칼뱅의 사람됨에 대해 많은 이들이 그 진면목을 알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이들(루터와 칼뱅)이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그 답은, 그들이 권력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결국 절대권력은 그것이 교권이든 속권이든 똑같다는 점을 위의 사례는 잘 말해주고 있다. 나약한 인간에게 그것의 유혹은 너무도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절대권력을 추구하게 되면 중세의 로마 가톨릭, 또는 그에 저항했던 루터와 칼뱅에게서도 보듯이 부정적인 그늘(부패상)을 필히 남기게 되는 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탄핵 정국도 그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국민이나 위정자나, 또는 평신도나 성직자나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교훈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바벨탑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신 주님의 절대적 교훈이기 때문이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02-24
  •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로드맵/이 효 상 목사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지난 세기 양적성장에도 불구하고 연합하지 못하고 분열하는 영적미숙은 여전히 우리 교회의 개혁과제로 남아있다. 교파와 교단의 경쟁주의를 극복하고 일치와 공동창조로 나아가는 것이 한국교회가 도약하는 방편이자 한국교회의 영적부흥의 지름길이며 기초가 될 것이다. 이런 연합운동의 시작이 교단간의 ‘연합’과 ‘협치’이다. 최근 연합기관 통합논의에 ‘교단장협의회’를 중심으로 주요교단이 참여하며 출범한 ‘한교총’은 연합기관의 통합을 이뤄낼 것인가 하는 물음을 준다. 명분에는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완성된 통합의 그림으로 나타날 것인가하는 것과 그 이후 나타날 후유증에 우려가 참 많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교회연합기관’은 개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힘을 모아 대신하기위해 그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이다. 그런데 연합기관이 그 위임받은 힘으로 해야 할 일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면 한국교회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그런 예가 정치권력 지향하거나 또는 자리를 만들고 자리를 차지하는 일에 관심을 전력투구하는 일이다.한국교회의 교단을 대표적이라는 연합기구들이 사회적 문제에 책임있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피와 땀을 흘려야할 상황이다.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은 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안티세력으로부터 교회를 방어하는 영적 전진기지로서 그 역할이 막중하다. 그러나 그 역할에 맞는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다. 사실 현재 한국교회는 연합운동에 대한 패러다임쉬프트가 이루어져야 한다. ‘연합운동’이 기존의 교단중심의 연합기관이 연합기관이라는 독선적 사고에 매여 있다보니 이 연합기관이라는 곳의 분열로 인하여 지난 2006년 이후 한국교회는 대사회적, 대정부적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도 오히려 실종되고 말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난립한 교단 연합기관들의 통합으로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혀지 진행되는 통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들이 가진 철밥통을 내어 놓는 것만큼 어렵다. 그런 점에서 연합기관 지도자들이 얼마나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에큐메니컬정신을 구현하며 하나되느냐 하는 시험대에 서 있다. 그래서 이제 건강한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며 다양한 연합기관을 함께 키워내는 ‘삼겹줄연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삼겹줄연합론’의 핵심은 연합기관들을 교단중심과 지역중심, 그리고 NGO를 포함하는 교회중심 연합기관들로 축을 나누고 벨트화해야 한다. 교단중심, 지역중심, 교회중심을 축으로 하는 삼겹줄처럼 튼튼한 연대를 형성하여 한국교회를 방어하고 보호하는 일들을 해나가자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고기를 낚는 그물과 같은 망을 촘촘히 형성하자는 말이다. 지금처럼 허송해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교단연합기관이나 지역연합기관 , 그리고 교회연합기관 등이 유기적인 협력강화를 통한 연합운동 활성화를 심층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교단의 연합기관이 대변하지 못하는 지역적 현실적인 문제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한국교회를 방어하는 차원에서 제2의 방어벽이자 벨트로 지역교회중심의 연합기관이 그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기존 광역시나 시, 군, 구별 ‘기독교연합회’ 들이 이미 조직되어 수십년동안 활동하고 있지만 이를 하나로 묶어내야 한국교회가 건강하게 살아날 수 있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NGO단체를 포함한 개 교회연합기관이 제3의 방어벽으로 연합운동의 벨트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이건 순전히 자생적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교단중심의 정치적 연합이나 지역적 연합운동에 나서지 않는 40~50대 젊은 목회자들이 독립교단이나 독립교회로 옮겨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교회연합기관이 각 영역에서 전문화된 단체들과의 유대강화를 통해 전문영역을 더욱 활성화 해 나가야 한다. 한국교회는 연합운동의 새로운 축을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교회는 개인기는 강점이지만 팀웍이 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우리민족 전체로나 한국교회가 당면한 이런 현실적 모순들을 과감히 개혁하고 새로운 역사,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 나가려면 이 팀웍의 문제, 옳은 일을 함께 이루어 나가는 협치와 역동성을 길러야 한다. 개개인으로는 뜻이 있으되 그 뜻이 합쳐져 힘이 되고 조직이 되지 못하므로 광야의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개혁정신’을 되새기며 한국교회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기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삼겹줄연합론’으로 새로운 역동성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지금은 민족과 역사를 개혁하는 일에 자신이 가진 것을 바칠 수 있는 리더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2017년에는 ‘삼겹줄연합운동’이라는 새로운 그림으로 한국교회연합운동의 지도를 함께 그려보자.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02-10
  • 한국교회와 한민족/홍 성 표 목사
    한국에 상륙한 개신교 원년을 1876년 2월 27일 조일수호조약으로 보는 이해도 있고, 민경배교수는 1884년으로 보기도 한다. 한국개신교의 특징으로는 선교사가 한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한글 말 성서가 번역이 되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교사로 하여금 교회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역사, 그리고 한국 민중의 주체적인 믿음의 실천과 행동으로 한국교회의 선교는 시작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왕과 궁중을 중심으로 한 지배자들의 역사에서 이제는 역사의 변두리에 살던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해 가는 역사의 주체인 민중이 역사중심에 서게 되는 시작을 알리게 된 것이다. 물론 열강과 일제의 침탈이 둘러싸고 있는 암흑과 어둠이 한반도의 운명을 도마에 올려놓으려는 상황이 전개되고는 있었지만 하나님은 분명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음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일제의 병탄이 한반도를 깊은 지하로 몰아넣는 죽음의 긴 세월이 있었고, 그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다시 미소의 냉전의 산물인 민족분단과 이후에 세계적 민족전쟁을 겪어야 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71여 년의 분단과 세계적 민족전쟁을 겪으며 북은 북대로, 남은 남쪽대로 살아오는 동안 그 깊은 고난과 고통을 겪어내며 하늘의 섭리를 향하여 울부짖고 몸부림치며 한 많은 시간들을 이겨내 오고 있다. 근자에 벌어진 박근혜와 최순실게이트를 통한 국기문란과 국정농단으로 대한민국은 방향성을 상실한 채 존재의 의미가 혼돈에 묻히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여전히 남북으로 갈라 서 있고, 역사적으로는 친일세력의 잔재들이 민족의 기상을 흐려놓고 있으며, 친일에서 이제는 친미의 신 식민을 살고 있다. 해방공간에서의 미소의 냉전의 산물인 좌우 이념의 분단 이데올로기를 정권유지의 방패와 지배이데올로기로 삼고 여전히 민족의 희망과 미래를 짓밟고 있다. 이러한 거짓과 진실의 혼돈 속에서‘촛불혁명’ 그나마 새 역사를 여는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것은 정치의 지도자나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바로 130 여 년 전에 살아 역사의 변두리로부터 역사의 중심과 주체로서 있게 된 민중(사실은 모든 역사를 떠받치고 살아 온)이 있는 것이다. 트럼프를 통한 미국으로부터 세계는 요동치고 있다. ‘자국우선주의’의 이익을 주장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는 함께와 더불어의 역사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개인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기 실존의 역사가 된지 오래이다. 보이지 않는 신을 주장하며, 그 이름으로 민중을 협박하고 속이며, 착취하는 종교라는 이름의 거짓과 위선이 우리의 희망을 더욱더 어둡게 하고 있다. 믿어야 하는데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역사를 다가오는 미래의 희망으로 채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희망을 쉽게 노래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교회대로, 세속의 역사는 역사 대로 분명히 문명의 파괴와 새 문명의 물결이 밀려오고 그 파고는 아주 거칠고 높게 치고 있다. 과연 한국교회는 한 민족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대통령의 탄핵과 대선이 앞에 놓이고 진정한 혁명과 개혁 세력 앞에 거짓된 세력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여 말해야 되고 ‘예와 아니오’를 확실히 말해야 한다. 설령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고통이 역사적 예수의 처형에 임하는 고통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교회가 그래야만 한민족의 미래와 희망을 담아낼 수 있다. 십자가는 무늬만의 십자가도 아니고 부활은 흉내만 내는 부활이 아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은 모든 어둠과 모든 죽음의 세력들을 몰아내고 마침내 어둠을 이기는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 한 해에 한국교회는 불의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관계를 단호히 끊고 생명의 능력으로 새로이 태어나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개혁과 혁명의 길이 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02-03
  • 기독교 1등 국가-강 경 신 목사
    대한민국의 기독교(개신교)가 1등 종교가 되었다. 작년 12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종교인구 조사결과에 의하면 기독교가 불교를 앞질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신도수를 보유하게 되었다. 불교와 천주교 등 타 종교들이 감소하는 가운데서, 유독 기독교만이 증가했다는 발표가 의아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특히 교회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지수와 너무도 다른 결과에 많은 목회자들은 어리둥절하다. 하지만, 이번 조사발표에서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종교지형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가 종교적 다원주의사회로 접어 든 것이다. 무엇보다도 종교인구에 비해 무종교인구의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은 세계적인 현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우리 기독교가 감소내지 정체현상에서 증가세로 돌아섰을까? 나름대로의 다양한 분석과 견해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교인수의 증가는 대형교회와 이단교회의 부흥과 맞물려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대형교회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게 되었다. 이전에 없었던 초대형교회들이 그 규모와 교세를 과시하고 있다. 적어도 개교회적인 차원에서 교인수로만 따진다면, ‘대한민국 1등이 세계 1등’이다. 아니 1위부터 10위까지 쭉 줄을 세워도 대한민국교회들이 거의 다 차지한다. 실로 대단하다. 그런데도 대형교회들의 교세확장과 부흥열기는 식지 않고 뜨겁다. 마찬가지로 이단교회들도 이에 뒤질세라 교세확장에 가일층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한국교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형 교회들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부흥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고 노력하지만 교회의 자리는 갈수록 비어간다. 교회는 냉냉하고 좀체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는다. 기독교가 1등 종교가 된 시대에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주눅이 들고 있다. 왜 그럴까? 왜 그리 당당하지 못할까? 왜 자신있게 “우리를 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올해는 종교개혁 5백주년의 해이다. 역사학자들은 서양사에서 중세를 ‘암흑기’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암흑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역사의 암흑기이다. 그런데 암흑의 중심에 세상의 빛인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중세시대 서구기독교는 찬란했다. 위엄과 권위와 권력과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카노사의 굴욕’이라고 일컫는 사건이다. 신성로마제국시대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와의 권력싸움은 가히 점입가경이었다. 그러다가 황제 하인리히가 자신을 파문하는 교황의 최후통첩에 굴복하여 북이탈리아 카노사 성에 있는 교황을 직접 찾아가게 된다. 황제는 성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추운 겨울 눈보라 속에서 맨발로 사흘 동안이나 서서 용서를 빌었다. 그리하여 교황이 최고의 권력과 지위를 가지고,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이후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중세는 그야말로 긴역사의 암흑기였다.그렇다면 종교개혁 5백년 주년을 맞는 대한민국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오늘날 교회는 세상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 사회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교회지도자들은 입으로는 ‘섬김’과 ‘낮아짐’을 말하고, 말로는 ‘연합’과 일치‘를 이구동성으로 외치지만, 여전히 합종연횡하며 자리다툼에 연연해하고 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자타가 공인하는 ’큰 목사‘요, ’능력의 종‘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주도한 큰 인물들이다. 한국기독교가 1등 종교가 되게 한 장본인들이다. 교회부흥의 수고에 대한 공로장이라도 주어야 될 만한 분들이다. 그래서 우리네 보통 목회자들은 감히 입을 열지 못한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차라리 침묵이 말보다 낫다고 묵언한다. 하지만 은밀한 골방에서 기도하며 조용히 묻고 또 묻는다. “우리나라가 기독교 1등 국가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까?” 하나님은 묵묵하시다. 하지만, 왠지 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어지럽고, 지도자는 썩었고, 국민이 도탄에 빠지고 사회가 온통 불의가 만연한데, 기독교 1등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도 교회지도자들이란 사람들이 권력의 주변에 서성거리며, 권력자의 대변자가 되고 불의한 정권의 옹호자가 되어 자기의 기준과 잣대로 의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매도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기독교 1등 국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는 아니다. 먼 훗날 기독교 1등 시대가 대한민국 역사의 암흑기라고 평가받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교인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지도자들은 제 자리로 돌아가서 ‘코람 데오’하여야 한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01-24
  • 블랙리스트와 블랙 정치 / 임 영 천 목사
    이른바 용띠 출생(1940년생)인 필자는 1970년대에 아직은 혈기 방종한 30대였었다. 당시 한 지방대학의 교수직에 있었던 나는 당시의 사회·정치적 분위기가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아마도 그 불편한 심기를 강의 도중에 은연중(아니 자주?) 토로했었던 것 같다. 결국 77년에 나는 긴급조치9호 경합범으로 구속되었고 3심의 재판과정을 거쳐 실형을 언도받아 실제로 2년 4개월의 영어(囹圄) 생활도 하게 되었다.1979년 김재규 주도의 10·26 사태가 터져 긴급조치 9호법이 폐지되면서 나는 그해 말 감옥에서 출소하였고, 1980년 2월말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아 복권이 됨으로써 3월초에 옛 대학으로 복직까지 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복직 교수의 근무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복직 후 2개월 반이 지난, 5월 18일 일어난 광주 민중항쟁(민주화운동)의 여파로 결국 대학교수직에서 다시 물러나야 했다. 그때 전국적으로 나 말고도 80여 명의 교수들이 함께 교수직에서 물러나야 했었다. 그때 물러난 교수들은 나처럼 70년대에 해직되었다가 80년 3월에 복직한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알려졌다. 시쳇말과 연관시켜 표현해 보자면, 70년대에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던 교수들은 80년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그 처지(신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요즘 블랙리스트 문제가 커다란 사회·정치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블랙리스트 4인방이란 말도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편이다. 지금 특검에서는 블랙리스트 작성의 실제 책임자가 누구이며, 그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그 피해 실상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하여 사실(査實)하느라고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검이 그 사실의 결과를 명쾌하게 발표할 날을 우리는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시점에서 다음의 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더 기울어지고 있는 편이다. 우리 정부가 주도해서 요즘 크게 지탄받고 있는 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1만여 명 안팎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압박해 들어갔다고 한다면 현 정부의 그 고위 인사들은 ‘블랙(暗黑) 정치’에 앞장선 인사들로 평가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누구를 암흑인사(블랙리스트)로 특별히 지목해 해(害)를 끼치는 일은 엄연한 반헌법적, 반인권적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암흑 정치에 체질화된 인사가 아니고서는 이런 만행에 앞장설 수가 없는 법이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야만적인 행위가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서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주의 깊게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블랙리스트는 현 정부에 들어와서 다시 살아난 일종의 긴급조치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 70년대의 긴급조치법들(1·4·9호들)은 다른 말로 표현해 당시의 블랙리스트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오늘날의 블랙리스트는 70년대식 긴급조치법의 현대판이라고 표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70년대의 긴급조치와 오늘날의 블랙리스트는 그것들이 어느 면 살생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면에서 닮아 있고, 또 실제적으로도 제왕적 통치자 부녀(父女)가 바톤을 서로 주고받아온 처지란 면에서도 그러하다고 보는 게 무리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시니어 박 대통령과 주니어 박 대통령으로 편의적으로 나누어 양인(兩人)을 구별해 보기로 하겠다(여성에겐 ‘주니어’란 식의 표현이 맞지 않다고 지적해도 괘념하지 않기로 한다). 최근 주니어 박 대통령은 부친(시니어) 박 대통령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박정희 기념관을 사비(私費)도 아닌 건립비 200억을 들여 건립한 데서 그 면이 엿보인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통하여 부친의 업적을 지나치게 내세우려 하는 데서도 그 점이 훤히 엿보이지 않는가? 교과서에 혁명 공약의 어떤 부분은 완전히 빼버리고 다른 구절을 새로 만들어 넣었다는 말도 들리는데, 그러면 이때는 “나는 그런 바 없다. 교과서 편찬자들이 한 일일 뿐이다.”라고 변명해 버리기만 하면 끝날 일일까? 이런 무리가 따르다 보니 시니어 박 대통령 때처럼 현대판 긴급조치라 할 블랙리스트가 등장하게 되는 법이다. 강압적인 방법이 아니고서는 비판자들의 입을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들을 오래 사용해 그 적폐가 누적되다 보면 결국에는 집단적인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법이다. 특검을 중심으로 한 오늘의 사법 발동 사태는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 정부는 과거의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 재심의 기회를 주어 많은 이들이 재심 과정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게 해주었다. 그러나, 한 편에선 이런 일을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론 현대판 긴급조치로 그들을 다시 엮는 일을 했으니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과거(70년대 말)에 블랙리스트 교수들을 사면시켜 80년대 초(신학기)에 복직시켜 놓고는 5·18 직후 다시 그들을 잘라냈던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의 어두운 면을 떠올리게 한다. 블랙(暗黑)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블랙리스트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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