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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멍에
- 전세계 이슬람권에서는 여성할례가 광법위하게 퍼져 있다. 15세 이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할례는 이슬람 울법에 따라 여성들이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없도록 하는 시술이다. 여성은 오로지 남성의 자식만 낳는 도구로 취급된다. 이는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여성에 대한 심각한 성적 학대이고 인권 침해이다. 그래도 이슬람 사회에 사는 여성들은 대부분 그에 대한 불평없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또 이슬람 여성들이 쓰는 부르카도 남성 앞에서는 온몸을 가려야 한다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것이다. 비이슬람 사회에서는 타인이 보기에 불편하다. 이는 모두 여성에 대한 멍에이다. 과연 여성에 대한 인권이 신장되고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고 있는 현대에도 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이같은 멍에는 해소될 수 없는 것인가?한국사회에도 이슬람이 늘어난다는 보고가 있다. 중동 이슬람 국가에서 온 무슬림 남성들을 만난 한국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여성들 가운데 기독교인들도 있다는 말도 들린다. 기독교처럼 여성인권이 신장된 종교는 없다. 인류사회에서 기독교 복음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계층이 여성과 아동이다. 유교의 성리학에 사로잡혀 있던 구한말 조선의 여인들을 해방시킨 것도 기독교의 복음이었다.그런데 왜 한국여성들은 기독교를 외면하고 이처럼 가혹한 여성 차별을 요구하는 이슬람을 선택하는가. 그것도 기독교의 자유함을 맛본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오히려 주체할 수 없는 자유로 인해 스스로를 어딘가에 속박하고자 하는 심리현상에서 오는 것인가.한국의 무슬림 여성들이 딸을 낳아 여성할례를 하고, 거리에서 부르카를 뒤집어 쓴 한국여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것 또한 개인의 선택의 자유이겠으나 우리사회에서 어딘가 어색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동성애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타락한 성문화를 기독교를 비롯한 우리사회의 기성종교가 제어할 수 없다면, 어쩌면 우리사회가 이슬람에서 그 답을 찾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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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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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과 종말을 향한 치달음-이 광 호 목사
-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기가 처한 시대를 정확하게 읽고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리석은 자들은 변화하는 세상의 가치에 순응하기를 좋아하며, 그것이 마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인 양 여기고 있다. 하지만 성도들은 그와 같은 태도가 제 무덤을 파는 위태로운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과거에 있지 않았던 이상한 분위기에 빠져 예사롭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죄에 빠진 인간이라 할지라도 보편적인 도덕을 소유하고 있었다. 즉 누가 봐도 인간으로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어느 정도 객관성 있는 윤리적인 척도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선지 불과 십 수 년이 지나지 않아 도덕적인 척도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지난 세기 말인 1960년대 경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포스트모던 사상으로 인해 그와 같은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여 점차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그것들 가운데 현재 가장 두드러지고 있는 영역이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관한 문제이다. 동성애가 고대로부터 있어온 죄악이었다면 동성결혼이란 우리 시대에 생겨난 신개념으로써 원리상 그 용어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악이 가득한 현대 사회에는 그에 대한 문이 활짝 열리고 말았다. 동성결혼은 이미 서구의 많은 나라들에서 합법화된 상태이지만, 그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중세 유럽에서 신앙의 박해가 일어날 때 참된 신앙을 유지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삭막한 땅인 신대륙으로 이주해갔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은 취임식을 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며, 화폐에는 ‘IN GOD WE TRUST’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불과 며칠 전인 지난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결혼 합법화를 선언했고, 대통령 오바마는 그에 대한 지지입장을 표명했다. 거기다가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도 그에 적극 합세했다. 그들은 시대적 형편과 인권을 명분으로 앞세워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게 되자 처세술에 능한 자들은 앞 다투어 그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적인 지도자로 자처하는 자들은 지금도 전체 인류를 외면한 채 세상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어가는 무책임한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들의 판단과 행동은 결코 세계의 시민들을 위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도리어 온 세계와 순박한 사람들을 악의 수렁으로 몰아가고 있다.시류에 편승하고자 하는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혼인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것은 결국 가정을 파괴하는 양상을 몰고 오게 된다. 앞으로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일부다처나 일처다부 혹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부부관계를 맺는 복수 관계의 결혼마저도 허용될 것이 틀림없다. 나아가 장차 상상을 초월한 형태의 결혼이 허용될 것이며 인간들의 가정은 치명적인 위기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인권을 앞세워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세계 지도자들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만일 저들이 진심으로 동성결혼을 수용한다면 저들의 자식이나 손자, 손녀가 동성결혼을 하려고 할 때 기쁜 마음으로 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다른 사람들의 동성결혼은 지지하면서 자기 자식에 대해서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천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처세술에 의한 위선적인 반응 이상이 아니다.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관한 문제는 어떤 전염병보다도 무서운 기능을 하고 있다. 이미 터진 물줄기를 다시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우는 안타까운 교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불구경하듯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동성애, 동성결혼 문제에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그에 맞서 대항하며 세상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그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지상 교회는 급속히 본질을 상실하게 될 것이며 복음을 상속받게 될 다음 세대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겉보기에 그럴듯한 모습으로 세계 지도자 행세를 하는 자들에 의해 유혹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무리 유능한 정치인으로 인정받고 희생적인 평화 운동을 펼친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어긋난 주장을 내세운다면 우리는 정신 차려 저들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자! -이 광 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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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과 종말을 향한 치달음-이 광 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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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의 차이에서 오는 사회현상
- 만국 장로교회가 채택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믿음의 은혜는 선택받은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영혼이 믿어 구원에 이르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심령 속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다.”(제14장)라고 했다. 즉 인간의 구원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 믿음을 결코 인간들이 스스로 가질 수는 없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그런데 같은 성경을 보고, 같은 신앙을 가진 기독교 안에도 믿음과 구원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논쟁이 계속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쟁이들은 모이면 말이 많다”고 하는 것 같다.개신교회는 믿음으로 신앙의 모든 것이 완성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로마 가톨릭교회는 믿음은 기본이고, 거기에 행함이 있어야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 구원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또는 거절할 수도 있다는 자유의지를 내세운다. 가톨릭은 인간은 원죄로 인해 “원초적 거룩함과 의로움을 박탈당했지만 인간 본성이 전적으로 타락한 것은 아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제405조)라고 믿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선행의 열매를 맺지 않으면 구원적 신앙이 아니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행(信行)에 있어서 가툴릭이 개신교보다 적극적이고 윤리적일 것 같은데, 그 열매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최근 그리스로부터 벌어지고 있는 유럽사회의 디폴트 가능성은 모두가 가톨릭 국가나 정교회 등 구교권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체로 종교개혁을 거치지 않은 구교권 사회가 윤리성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성이 게으르고 근면성실하지 않으며, 이웃에 대한 책임의식이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그러나 범죄 이후 인간의 상태는 전적으로 타락되고, 전적으로 부패되고, 영적으로 전적 무능해졌음으로 인간의 선행이 구원에 공로가 될 수는 없다고 믿는 개신교권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은총이 강조되고 있어 윤리성이 강하다. 이는 구원론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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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의 차이에서 오는 사회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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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자살 바이러스
- 메르스가 진정국면에 들었다. 방역당국과 의료진 그리고 국민들의 선진의식이 그나마 무서운 바이러스를 이 정도에서 제압할 수 있게 되었다. 7월 6일 현재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는 33명이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나타난지 한달 보름여 만의 일이다.그런데 우리사회에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오래동안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는 것 같다. 바로 매일 평균 40여명이 넘게 죽어나가는 ‘자살’ 바이러스이다. 자살로 죽는 사람이 한달이면 1,200명, 일년에 1만6000여명에 이른다.자살 바이러스에 쓰러져 가는 사람에는 대통령도 있고, 대기업 회장도 있으며, 인기연예인도 있다. 한달 보름여 만에 33명이 죽어나간 전염병 메르스에는 온 사회가 무너져 가는 것처럼 야단법석이면서, 어쩌다 우리사회가 이처럼 무서운 자살 바이러스에 대한 대책에는 등한한지 알 수 없다.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온갖 유형이 있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 사업에 실패한 사람, 오랜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 경제문제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 우울증을 앓는 사람, 모두 그 삶의 위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경제가 어렵고 삶이 팍팍할 때는 그래도 잘 견뎌낸 사람들도, 이젠 경제적 여유가 좀 생겨 우리사회에 보편적 복지가 늘아나 절대빈곤층이 사라져 가는데도 자살율은 높아져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이는 우리사회의 이기적 경쟁심 때문이다. 이기적 경쟁심을 부추기는 것은 기복주의이다. 교회 안에도 만연해 있는 기복주의는 경쟁심만 부추길 뿐 인간의 정신세계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 기복 행위의 대상은 구체적인 현세적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복 행위를 하는 인간은 구체적으로 바라는 것들이 채워질 때 비로소 행복해질 뿐이다.기복 행위는 언제나 행위자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갖는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이기적인 욕심을 갖는다. 그러나 이 이기적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다. 이 길을 가르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종교는 이기적 욕망을 억제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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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자살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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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 동성애 ◇성경은 동성애(同性愛)가 인류의 타락으로 생겨난 오랜 역사를 가진 더러운 성문화로서 사회악임을 밝히고 있다. 먼저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동성애 문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난다. 아브라함을 찾아온 두 천사가 날이 저물 때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찾아 소돔 성에 들어갔다.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4-5). 이에 롯은 소돔 백성들을 향해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고 당부한다. 이로인해 ‘소도미(sodomite)’라는 말이 생겨났다. 소도미는 동성애자, 수간자(獸姦者), 이상(異常) 성행위자를 일컫는 말이다.◇레위기는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18:22)고 했고,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 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갈지니라”(레 20:13)고 하여, 동성애가 심각한 사회악임을 규정하고 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온 나라에 우상숭배가 만연하자,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좇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 행하였더라”(왕상 14:23-24)고 했다. 우상숭배와 타락한 성문화는 함께 간다. 따라서 남색자는 짐승과 교합하는 수간자와 같은 가증한 사회악으로 규정되었다.◇신약에도 남색자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기록되고 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 또 남색은 존속상해, 살인, 음행, 거짓말, 거짓 맹세, 사람을 탈취하는 행위와 같이 율법을 위반하는 사회악으로 취급된다(딤전 1:10). 또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게 받았느니라”(롬 1:27)고 하여 동성애는 하나님의 분노가 임하는 죄악일뿐 아니라, 동성애자 자신들이 무서운 질병에 노출될 수 있음을 알게 한다..◇동성애는 인류의 타락과 함께 인류 사회에 들어온 더러운 성문화이다. 소수자의 인권이나 개인의 성적 취향에 맡겨두어도 좋은 ‘하나의 성문화’가 아니다. 한 사회의 미풍양속을 파괴하고 가정과 가족 질서를 더럽히는 사회악이다. 더우기 동성애 문제는 차별의 문제도 아니고, 소수자의 인권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질병을 앓고 있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앓고 있는 그들도 이같은 병리현상에서 해방되어 건강한 사회구성원들이 되도록 그들을 도와야 할 책임이 국가와 사회에 있다. 동성애 치유는 교회만 나설 일이 아니다. 우리사회 전체의 윤리와 도덕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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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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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당착
-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자 양병희 목사)이 최근 바른신앙수호위원회를 통해 은혜로교회의 신옥주 목사를 조사 검증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한교연의 바수위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이대위의 역할을 감당하는 곳으로, 이단으로부터 한국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한교연이 최근 한기총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취한 태도 때문에 바수위의 역할이 매우 모호해졌다. 한교연은 그동안 한기총이 평강제일교회 고 박윤식 목사나 다락방 류광수 목사 등을 이단 해제한 것을 두고 “연합기관은 이단에 대한 결정이나 해제를 할 권한이 없다”고 여러차례 강조하며, 한기총의 이단해제를 정면에서 비난했다. 또한 한교연은 한기총과의 통합에 있어 그 선결 조건으로 이단 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내걸었고, 이 조건은 사실상 ‘이단해제 철회’였다. 한교연이 한기총 이대위의 결정에 대해 연합기관의 한계를 명시하고, 이에 따른 ‘월권’을 지적했지만, 역으로 볼 때 한교연 역시 그 연합기관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렇다는 것은 한교연의 바수위 역시 이단 문제에 있어 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지난해 한교연의 회원교단인 예장합신이 총회에서 은혜로교회의 신옥주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자 신 목사측이 이에 앙심을 품고, 올해 초 합신측의 신년하례회를 찾아 난동을 부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합신측은 한교연에 신옥주 목사와 은혜로교회에 대한 대처를 요구했고, 한교연은 이 문제를 바수위에 위임했다. 문제는 바수위가 신옥주 목사를 조사하고, 검증을 하긴 해야겠는데, 그동안 한교연이 앞세운 연합기관의 ‘월권’에 자신들의 행위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최근 바수위는 신옥주 목사를 심문키 위해 만든 자리에 대해 검증, 조사 등의 단어를 배제하고 굳이 질의응답이라는 말을 썼다. 하지만 이름만 ‘질의응답’일 뿐 내용은 신옥주 목사에 이단성이 있는지를 조사한 사실상의 검증이었다. 여기에 바수위는 이날 자리의 내용을 절대 유포하지 않겠다는 사전 서약을 받은 채 비공개로 모임을 진행했다. 언론마저도 철저히 통제하고, 대화 내용도 발설치 못하게 한 바수위가 이날 숨기고 싶었던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그리고 ‘질의응답’ 이후에 바수위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유포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험악한 서약까지 해가며, 꽁꽁 숨기는데는 성공했지만, 위에서 말했듯 이단문제에 있어서 바수위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혹여 무엇이라도 하려 한다면, 한국교회 공기관과 지도자가 자가당착의 전형을 보여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그간 이단 문제에 있어 한기총을 견제하기 위해 한교연이 주장했던 ‘월권’이란 말은 결국 부메랑처럼 한교연으로 돌아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발목을 묶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교연이 앞으로 신 목사 뿐 아니라 이단 문제에 있어 어떤 입장을 보일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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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당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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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반대, 개인기가 아니라 팀웍이다-이 효 상 목사
- 최근 한 포털사의 여론 조사에서 보면 네티즌의 96%가 ‘국민의 정서와 맞지 않다’며, “퀴어축제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국민들 대다수가 이미 동성애를 우려하고, 동성애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게 통계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국민들의 정서는 이번 퀴어축제 앞에서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법원은 반나체의 음란한 행위를 하는 동성애 거리 퍼레이드를 인정했고, 서울시는 오는 28일 서울시민들이 자유로이 이용하는 서울 광장을 퍼레이드 장소로 허락했다. 이런 와중에 한국교회의 대표 연합기관 및 단체들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제2의 소돔과 고모라로 만들려는 퀴어축제를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한국교회연합,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미래목회포럼, 한국교회언론회 등 5개 단체는 6월 1일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최고 5개 기관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 한국교회 과거에 비춰 굉장히 이례적인 것으로, 이는 역사적 관점에서 봤을 때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분열과 반목만을 반복하던 한국교회가 동성애라는 비성경적 사회적 현상에 대해 한 목소리로 반대를 외치는 것은 정치적 이해 관계나 자기 단체의 이익을 떠나 오직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의 건강을 우려한 가장 모범적인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교회는 지금의 기회를 결코 허비해서는 안된다. 5개 단체들의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된 모습을 보여야 하며, 이번 연합을 계기로 향후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각 단체들에서 파견한 현장 실무자들이 공통된 목표 앞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책회의를 하며, 쌓은 경험들은 차후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큰 동력이 될 것이기에 더욱 큰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성경의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언 24장 6절)”는 말씀처럼 열정만으로 전투에서 승리할지 모르지만 전쟁에서 이기려면 전략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협심과 더불어 전략이 필요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한국교회동성애책위원회는 동성애 및 퀴어축제 반대캠페인, 이론화작업의 일환으로 △‘동성애는 성왜곡이요, 중독이다’ 라는 논문집 발간 △탈동성애 지향자를 위한 상담, 보호와 상담사 양성 △교과서 동성애 조장 및 삭제나 폐기유도 △국가인권위와 기자협회가 체결한 인권보도준칙 삭제 △질병관리협회의 2012년 이후 에이즈발생 원인과 대책, 현황 공개청구 △동성결혼·동거법 대체결혼보호법제정(간통법 폐지이후) 저지 △동성애 지지의원 공개 질의 및 낙선운동 전개 △지방자치조례폐지 및 위헌소송 제기 등의 사역방향을 정하고 추진하게 된다. 이는 이번 연합을 한국교회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 프로젝트로 보고, 꾸준한 대처활동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아직도 동성애를 조장하는 일부 세력들은 교회와 강단(講壇)에서 동성애의 문제점을 가르치는 것도 원천봉쇄하는 ‘차별금지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결국 한국교회에 심대한 타격은 물론,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될 것이다. 동성애는 우리 사회적 전통 가치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성경적 가르침과 교훈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성애조장반대운동의 전개는 우리 자녀들의 건강한 미래를 지키기 위한 방패 역할을 하는 것이다. 건강한 가정과 건전한 사회를 이루기 원하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동성애조장 반대운동에 나서야 한다. 한국교회가 힘을 합하면 할 수 있다. 이제는 개인기가 아니라 팀웍이다. 한국교회, 분열과 갈등으로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세속과 역사의 현장에서 비겁하게 그 책임을 회피하는 지도자들로도 미래는 없다.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에 새로운 지도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교회는 연합기관 지도자를 하나된 모습으로 교회가 대사회적 지도력과 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얼마 전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보았듯이 한국교회가 연합기관의 지도자들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고 외면하는 상황에서 더욱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하나되는 모습은 절실하게 요청되어 진다.한국교회는 복음 선교 130년 세월동안 나라와 민족과 함께 해왔다. 6.25전쟁 65주년을 맞아 되돌아보면 북한의 남침을 한국교회가 맞써 공산화를 막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신앙의 자유를 지켜내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교회는 또 다시 동성애 조장과 확산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어야 하는 사명을 부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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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반대, 개인기가 아니라 팀웍이다-이 효 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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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칭의(以信稱義)
- ‘이신칭의’는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가 설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온전한 의(義)를 전가 받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이나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3:11).로마 가톨릭교회는 “의화(義化, 즉 칭의)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화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며 행위구원을 강조하고, 오히려 “만일 누구든지 사람이 그리스도의 의의전가에 의하여만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말한다면... 또는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는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호의뿐이라고 말한다면, 저주를 받을지어다”(트렌트공의회)라고 이신칭의를 저주하며 부정한다.그러나 루터는 “이신칭의 교리는 복음의 진리이다. 그것은 또한 기독교 교리의 기본 주제이다... 만일 칭의의 교리를 한 번 상실하면 모든 참된 기독교 교리를 상실하게 된다”고 했고, 칼빈은 “칭의의 시작은 사람에게서가 아니고 하나님께 달렸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은혜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하시는 성령의 은사이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죄에 얽매인 우리에게 칭의를 선물로 주신다”고 했다.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칭의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행위로서, 저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엡 1:7), 그의 안목에 우리를 의롭게 여겨 받으시는 것이니(고후 5:21), 이는 다만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심이요,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니라”(롬 5:9)고 말하고 있다.오늘날 한국교회에 이 이신칭의 교리가 약화되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누구나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선행에 힘써야 한다. 이는 믿는 자가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몫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선행은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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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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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칭의(以信稱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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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의 간증과 개런티
- 수년 전부터 사람 좀 모인다는 교회는 인기 연예인이나 이름난 예술가 등을 초청해 소위 ‘간증’ 시간을 갖고 있다. 개중에는 아예 전문적으로 교회만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어떤 계기로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간증이 교인들에게는 상당한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교회에 와서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한 간증을 한 후 교회로부터 적지 않은 개런티를 받아가는게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몇몇 인기있는 가수나 탤런트는 세속 행사에서 받는 개런티와 맞먹는 액수를 요구한다. 한 시간 왔다 가면 500-800만원이 보통이고 성악가나 예술가들도 200-300만원의 개런티를 받기도 한다. 좀 잘나간다는 사람은 몇 곡 연주하고 500-60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대중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연예인들을 강단에 세워 간증을 듣는 일은 분명 관심을 받을 만한 일이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해가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또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교회를 상대로 자신의 간증을 하고 개런티를 받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이는 교회의 세속화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로 밖에 볼 수 없다.연예인이든, 예술인이든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으면 돈은 밖에서 벌고, 교회에서는 그 은혜를 나누는 일에 참여해야지, 어떻게 교회를 상대로 돈벌이를 하려 하는가? 이런 연예인 치고 교회에 헌금 제대로 하는 사람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물론 대다수의 기독인 연예인들은 개런티를 받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며, 교회 부흥과 복음 전도에 헌신하고 있다. 다만 몇몇의 일부 연예인과 이들을 동원하는 교회들의 행태가 문제인 것이다. 한국교회가 돈 몇 푼 모인다고 이런 식으로 돈을 쓰면 안된다. 그 돈은 성도들이 선교에 사용하라고 교회에 헌금한 돈이다. 연예인 불러 간증 집회를 하면 전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너무 가벼운 짓이다.어떤 교회 목사에게 왜 그런 연예인들을 불러 강단에 세우고 그 많은 돈을 주느냐고 물었더니,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얻는다면 그 돈이 무슨 대수냐’고 대꾸했다. 솔직히 그런 교회 부목사나 전도사들에게 한달에 월급을 얼마나 주는지 묻고 싶다. 부교역자들에 대한 생활비나 후생비는 사명 운운하며 평준에도 못 미치게 대우하면서 연예인 불러다가 수백만원씩 개런티를 퍼주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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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의 간증과 개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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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논쟁
- ◇종교는 무엇을 믿는가 하는 교리체계를 갖는다. 성경의 종교인 기독교는 더욱 그러하다. 교리(敎理)는 성경의 가르침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것으로, 내가 믿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전파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따라서 교리는 내가 믿는 신앙을 선전하고 다른 사람이 내 신앙을 공격할 때 방어하는 ‘방패’(防牌)의 역활을 한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신앙적 헛점을 공격하는 ‘창’(槍)도 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특별히 믿는 교리가 없고 성경만을 믿는다”고 말한다. 이 또한 그들이 특별히 강조하는 성경구절이 곧 교리인 셈이다. ◇역사적 기독교에 교파가 생겨나기 전, 기독교가 ‘하나’였을 때 모두가 동의하여 민든 교리를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삼위일체 교리)라고 하고, 중세 이후 여러 교파로 갈라진 이후에는 그 교파가 강조하는 각 교파별 전통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는 교리가 추가 되었다. 이 역시 모두가 성경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성경을 보는 관점에 따라 강조점이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교리가 다르다며 이단으로 규정할 땐, 교파별 전통에 따른 ‘내가 믿는 바’와 다른 점을 기준 삼을 것이 아니라, ‘그가 믿는 바’가 성경과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와 어떻게 다른가를 기준 삼아야 한다.◇세계 기독교는 처음에는 하나였으나 시간이 지나고 수많은 문화권과 만나면서 같은 성경을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여 교파가 나누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가톨릭교회와 희랍정교회의 교리가 다르고,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가 다르며, 개신교 내에서도 각 교파별 전통에 따라 다르게 고백된다. 중세 종교개혁 시대에 루터나 쯔빙글리나 칼빈의 로마 가톨릭 개혁에 만족하지 않고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거나 또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한 ‘환원주의’ 교파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가톨릭의 전통과 신앙고백을 부정했다. 그래서 가톨릭의 잘못된 교리와 전통적 관행을 고친 ‘개혁교회’가 아니라, 이들을 초대교회로 돌아간 ‘환원주의 교회’라고 부른다. 엄격히 말하면 사실상 이들은 프로테스탄트이긴 하지만, 개신교(改新敎)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개신교로 분류되어 한기총에도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한다.◇그런데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안에서 회원교단 간 교리적 논쟁에 이단 시비가 붙었다. 문제는 한기총 소속 환원주의 교단의 한 인사가 그 교단 대학의 총장을 지내면서 ‘유아세례’가 아니라 ‘성인세례’를 받고 그 대학 교수로 임용된 타교단 출신 목사에게 다시 ‘침례’를 받을 것을 강요했다는 이유에서이다. 개신교는 ‘세례’와 ‘침례’는 형식의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침례는 믿는 자의 세례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대속주로 믿는다는 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다시 ‘침례’를 받을 것을 요구한다면, 먼저 받은 세례는 부정한 셈이 된다. 한기총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아주 미묘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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