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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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지상에 오시게 되면서, 하나님이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갖게 된 가장 효율적인 소통 방식은, 그 어느 것보다도 ‘성육신 적인 소통’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당시 고귀한 자들이 서있던 특별한 자리를 탈피하여, 상식을 깨고서 말구유에 오시었다. 그가 말구유에 첫 자리를 둔 것은 사회제도를 뛰어 넘어서서, 그 누구든지 그를 만날 수 있고, 언제든지 열려진 공간에 예수가 계시다는 것임을 시사한다. 예수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 함은 그가 항시 사람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사람과 소통하시는 영이심을 밝히신 것이다. 세상의 종교란 하나님을 지극히 고귀한 성소에 계시도록 그의 공간을 제한하려하고, 그와 친히 만날 수 있는 이도 오로지 한 사람만으로 제한하여 특화시키려하고, 그의 거룩한 처소에 일반인이 접근하려고 하면, 온갖 종교 의식과 제도적 신비에 감싸여져 있어서, 실제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왕이나 대제사장이 아니면 불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였던 이들 중에 가장 막내로 알려진 요한에게서는, 그가 복음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60년을 함께 살면서, 그리스도의 성육신 하신 참된 뜻을 더욱 깊게 알게 되었다. 우리가 레위기를 보면 누구나 하나님을 예배하려 하면, 그 누구에게든지 하나님께 나아오는 길을 간편하게 열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행색이 아무리 비천하다 하더라도 비둘기 한 쌍이나, 반 세겔이면 하나님의 성전에 언제든지 들어 갈 수 있었다. 비록 중간에 제사장을 경유해야 했지만 언제든지 유대인 성인 남자라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예수 이후 그의 제자들은 바울을 비롯해서 이 경계를 모두 깨트렸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로 받고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그가 언제든지, 어디서이든지,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가까이 하도록 한 것이다. 예배의 공간과 시간과 계층을 모두 넘어서게 한 것이었다. 예배 자와 하나님 사이에 거추장스러운 것을 모두 배제한 것이다. 마태복음에서도 보면, 예수께서 숨을 거두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하였는데, 이는 하늘에서 찢었음을 시사한다. 어느 랍비가 그 휘장을 다시 꿰매려고 애를 썼으나, 그 어떤 노력도 허사였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제도와 규칙으로 만들어진, 지정된 처소에 있도록 하는 것을 이미 파기하였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종교가 입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제례 보다는, 아주 간소한 예를 말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주님은 거기에 계신다. 남자나 여자, 노인이나 어린이를 구분하지 아니하고 저들이 주님을 예배하면 주님은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예배를 받으신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지하 감옥에서 한밤중에 혼절한 상태에 있다가 깨어났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경배를 받으셨고, 바울이 금고 상태에서 로마로 이송될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혼자 두시지를 아니하셨다.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선포하신 때부터, 그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역사를 시위한 곳은 모두가, 구별된 성소 바깥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성령과 함께 하셨는데, 사람들은 이를 보고 성령이 그에게 기름 붓듯이 하였다고 표현하였다. 이는 그가 계신 곳은 어디라도 하나님의 영이 소통하고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제도권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계신 곳을 특정화 하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신은 항시 인간이 되신, 사람의 아들 예수와 항상 함께 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제도권에 있는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저들의 예배당 안에만 계시도록 정하고 있지만, 우주를 만드시고, 그의 백성 한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지도자가 볼모잡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아브라함도 그가 하나님을 환대하고 사귐을 나눈 후에는, 가시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베드로가 주님을 위한다며 좋은 집을 짓고자 하였더라도, 주님은 즉각 다른 곳으로 가시질 않던가? 과거에 성경을 소유하거나 읽을 수 있는 권한을 성직자들만이 독점하였던 것은, 지성소나 성소를 독점하던 유대 사제들과 다르지 않다. 지난 오백년간 종교개혁으로 고귀한 피 값을 치룬 후에 비로소 성경이 번역되었고, 일반인들도 글을 깨우치고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권한이 회복되었지만, 교회주의로 인해서 성령의 은사나 사역들 역시 일반 신도들에게서 퇴화되어 있다. 신도라 하면 누구나,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고, 서로의 은사를 장려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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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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